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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갑신장

둔갑신장
둔갑은 우리나라 민담이나 전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술법으로 마음대로 자기 몸을 감추거나 다른 것으로 변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여우가 아낙으로 둔갑하여 사람을 속이는 이야기나, 둔갑하는 쥐, 책을 읽고 있던 남편이 밤이면 범으로 둔갑하는 이야기, 도깨비가 사람이나 동물로 변하는 이야기는 우리의 옛 이야기 속에 자주 등장한다. 이러한 둔갑, 변신이야기는 신화에서도 흔히 볼 수 있으며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곳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그 결과 본래의 모습에서는 전혀 예상하기 힘들었던 모습이 되거나 현실세계에서는 찾아보기 어렵고 불가능한 형태가 나타나며 이러한 요소가 듣는 사람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준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신화에서 보이는 둔갑, 변신은 신의 능력을 나타내거나 신성한 모습을 띠게 하는 필수적 요소이다.
변신의 문제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마술이라고 불려지는 주술은 변신의 기술일 수도 있다. 주술을 통해 옛 사람들은 다른 유형으로 바뀔 수가 있었다. 인간의 차원을 넘어서 그들은 변신의 세계에서 어떤 가능성을 찾게 된다. 계절에 따라 풍년을 비는 풍요제의나 출산, 결혼, 장례식과 같은 삶의 통과의례, 특히 신이 내려 무당이 되는 입무식(入巫式) 같은 절차는 완전한 변신의 절차이며 그것을 통해 신성한 권능을 부여받았다. 제의는 변신의 관문이었다. 그러므로 제의에 수반된 신화와 무가(巫歌)는 무수한 변신의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다. 이러한 변신사상의 바탕에는 강렬한 생의 연대감과 아울러 인간 이외의 다른 것들과의 사이에 어쩔 수 없이 가로놓인 철저한 단절 의식 같은 것이 표현되는 것이어서 신화에 있어서 권능징표를 나타내는 한 기능이고 민담에 있어서도 필수적인 요소가 되는 것이다.
한 예로『가락국기』의 수로왕과 탈해의 변신․둔갑 시합에서 신들의 권위의 표상을 볼 수 있다.
탈해가 수로왕에게 말하기를 내가 왕위를 뺏으려고 왔다 하였다. 왕이 거절하자 그러면 재주로 겨루어 보겠다고 하자 왕이 좋다 하였다. 삽시간에 탈해가 화하여 매가 되니 왕은 화하여 독수리가 되었고, 탈해가 또 화하여 참새가 되지 왕은 새매로 화하였는데, 그 사이 촌음의 간격이 없었다. 조금 있다가 탈해가 본신으로 화하매 왕도 또한 제 모양을 회복하였다. 탈해는 왕위 다툼이 실로 어렵다 하고 물러섰다.
또한, 『중국인의 신화』라는 책에서도 반고(盤固)가 둔갑(遁甲)의 과정을 거치는 장면을 여러 차례 볼 수가 있다.
어느 나라의 왕후가 오랫동안 귓병을 앓아 왔는데 마침내 황금 색깔의 귀여운 누에가 나왔다. 그런데 이 황금 누에가 차차 자라더니 급기야 황금 강아지로 변하고 황금 강아지는 차차 자라서 적장의 목을 따오는 큰 공을 세우고 나서 다시금 인신(人身) 견수(犬首)의 반(半) 인간이 되는 둔갑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단군신화에서도 변신은 아주 유용한 소재로 등장한다.
하늘의 환인에게 서자가 있으니 이름 하여 환웅이라 했다. 그는 풍백, 우사, 운사와 더불어 무리 3천을 거느리고 이 땅에 내려왔다. 어느 날 곰과 호랑이는 환웅을 찾아와 사람 되기를 간청하였다. 쑥과 마늘을 먹으며 삼칠일을 굴 속 에서 몸을 사려 마침내 곰은 아리따운 여인이 되었으나, 금기를 지키지 못한 호랑이는 별수 없이 변신을 기약할 수 없게 된다. 한웅은 곰이 변한 웅녀와 결혼하여 단군을 낳는다.
변신은 바로 마음대로 가고 오며 가질 수 있고 바뀔 수 있는 자유와 해방의 표식이었다. 모든 것이 가능한 세계, 그 신화의 세계에서 모든 것은 마음대로 바뀔 수 있었으며 바꿀 수도 있다. 그 변신의 능력은 바로 위대한 초능력의 권능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변신과 둔갑은 일종의 권위의 표상이었으며, 간절한 소망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둔갑신장은 술수를 잘 부리는 신장이며 그 밖에 자료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둔갑신장이 어떤 모습으로 신화나 무가에 나타날지는 쉽게 상상할 수가 있다. 신장이라는 것이 무당과 장님의 모시는 신으로서 용맹스러운 장군의 신격을 말하는 것을 보더라도 둔갑신장은 술법으로 모습을 바꾸어 가며 악귀나 요사스러운 귀신들을 쫓아버리고 악한 인간들을 벌하는 신임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신장인 오방신장은 용맹스러운 장군의 신격으로서 무당과 장님이 모시는 신으로 원래 이 신은 도교(道敎)의 신으로서 오방오제설(五方五帝說)을 기초로 하여 무속과 민간 신앙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따라서 흔히 오방 신장이라고 하며 집이나 동네의 동서남북과 중앙의 오방을 막아주는 수호신으로 모셔진다. 특이 이 신장은 장군, 원수의 위엄을 가진 신으로 무가에 구전되고 있다. 무당들은 이 이 신의 위엄을 나타내기 위하여 장군의 복장을 하고 작두를 타거나 사슬세우기(청룡도라는 신칼을 상위에 세우는 것)를 하며 경상도에서는 군웅굿(軍雄祭)라 하여 놋동이를 입에 물고 춤을 추어 위엄을 나타낸다.
둔갑신장도 오방신장처럼 무서운 장군의 이미지로 위엄을 상징하는 수호신이기는 하지만 이와는 다르게 둔갑, 즉 변신이라는 능력이 가지는 양면성(신성성과 희극성)중에서 희극성을 부각시킨다면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둔갑하여 인간을 속이거나 홀리는 도깨비의 상을 둔갑신장에 대치시켜본다면 전혀 다른 모습의 신장이 나타난다. 겉으로는 위엄과 권위를 내뿜는 신장이지만 약한 동물이나 식물로 변신한 모습은 무서운 신장의 이미지와 대비되어 오히려 희극성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신성성이 부각된다면 신에 대한 경외감과 두려움이 더욱 커지게 된다. 변신의 희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도깨비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도깨비는 혼령이 화(化)한 것이 아니어서 그 근본이 애매하지만 설화나 일화를 통해 보면 곧잘 사람으로 화하여 나타난다. 밤길에 씨름을 청하고 귀찮게 해서 칡덩굴로 나무에 꽁꽁 묶어 놓거나 자기의 허리띠로 꽁꽁 묶어 놓은 후 다음날 아침에 가보면 거기엔 못쓰게 된 헌 빗자루나 부엌에서 불을 땔 때 사용하는 헌 부지깽이가 묶여 있다는 이야기를 흔히 들을 수 있다.
옛날에 다섯 살 난 여자아이가 아버지가 아래 마을에 내려갈 때 따라 간다고 뒤따라 나섰다. 저녁이 되어 아버지가 집에 왔는데도 그 아이는 뒤따라오지 않았다. 집에서는 아버지를 따라 간 줄로만 알았는데, 아버지는 그 곳에 따라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동네에서는 이 아이가 없어졌다고 난리가 났다. 그 날 밤까지 아무리 찾아보아도 없었고, 그 이튿날 아침에 찾아보아도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범에게 물려갔을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아이 찾기를 포기했다. 얼마 후 강에서 낚시질을 하던 어떤 노인이 어떤 아이가 ‘꽥, 꽥’ 우는 소리를 들었다. 어디서 소리가 나나 찾아보았더니 아이가 돌 틈에 꽉 껴 울고 있었다. 바로 범에게 물려갔다고 생각한 그 여자아이였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너, 왜 여기 와 있느냐?” 고 물었다. 그 여자아이가
“밤에 아버지를 뒤쫓아 가다가 아버지가 등을 돌리며 업히라고 해서 업혔는데, 업히고 보니 아버지가 아니었어요.” 라 말했다.
그러면서 그것은 아버지가 아니라 도깨비라고 했다. 등에 업혀서 온 곳이 여기 바위틈인데 자고 깨보니 데리고 온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고도 했다. 마을 사람들은 여자아이가 도깨비의 장난에 걸린 것이라고 했다. 결국 그 여자아이는 돌 틈에 꽉 껴서 난쟁이가 되고 말았다.
그 밖에도 도깨비의 장난은 미녀(美女)로 잘 나타나 밤길 가는 젊은이를 곧잘 골탕 먹이는 이야기에도 나타난다. 미녀와 하룻밤을 잘 지냈는데 깨어 보니 헌 부지깽이나 빗자루를 안고 있었다는 식이다. 이렇게 변신에는 희극적인 요소가 있어서 흥미를 자극하기도 한다.
또는 변신하는 모습이 나타나지는 않지만 어리석은 도깨비의 등장은 귀신이라는 두려움 이전에 친근함마저 갖게 한다.
옛날 글만 읽고 집안 일은 하나도 모르는 선비가 살고 있었다.
몹시 가난하면서도 과거를 보기 위해 산속에 들어가 움집을 짓고 공부만 했다. 외딴 산속에 오래 있다 보니 도깨비하고 친해져서 밤마다 도깨비는 선비가 공부하는 움막집에 놀러왔다. 하루는 이런 얘기 저런 얘기 하다가 선비가 도깨비에게 "당신은 이 세상에서 무엇을 가장 무서워하오?" 하고 물었다.
도깨비는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것은 갈피인데 당신은 무엇을 가장 무서워하오?"
하고 대답하면서 선비에게 묻는 것이었다. 선비는 한참 생각하다.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것은 돈이라오"
그 이튿날 선비는 몰래 도깨비가 있는 곳을 찾아가서 갈피를 잔뜩 뿌려 놓았다.
도깨비가 갈피를 보고 도망가다 생각하니 필시 선비가 한 짓이 틀림없을 것 같아 선비가 공부하는 움막집에 가서 엽전을 잔뜩 뿌려 놓고 "너도 한번 견뎌 보아라" 소리치면서 어디론가 가 버렸다. 선비는 엽전을 긁어모아 산을 내려가 큰 부자가 되어 잘 살았는데 과거를 보았는지 안보았지는 알 수가 없다.
따라서, 변신의 모티프를 가진 둔갑신장은 신장의 위엄을 가지면서도 변신이라는 특이성 때문에 다른 신장들과는 차이점을 느낄 수 있다. 다른 신장들이 무신으로서의 특성만을 지닌다면 둔갑신장은 이와 더불어서 신성성과 희극성이라는 양면을 지니기 때문에 다양한 모습으로 해석될 수가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및 도판
▒ 참고 문헌
이상일, 변신이야기, 밀알, 1994.
한상수, 한국인의 신화, 문음사, 1980.
김열규, 한국신화와 무속연구, 일조각, 1977.
현용준, 무속신화와 문헌신화, 집문당, 1992.
민속학회, 무속신앙, 교문사, 1989.
최길성, 무속의 세계, 정음사, 19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