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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

마고
1.1. 민간전승 속의 마고할미
1.1.1 신모적(神母的) 창조주로서의 마고할미
보통 마고(마귀)할미 전승은 해남, 옹진, 강화 등 주로 해안 도서지방에서 현재까지도 전해 내려오는 지역전설로서 거인신화의 대표적인 예이다. 이와 같은 맥락의 전승으로는 제주도의 선망대(설문대) 할망이나 안가닥 할미 전승이 있으며, 내용이나 성격상 다를 바가 전혀 없으므로 보통 여성거인전승(女性巨人傳承)으로 통칭한다. 이러한 거인전승은 단순한 지역전설로서 별다른 서사내용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마고할미의 키나 덩치가 커서 제일 깊은 바다가 무릎이나 속곳에 닿았고, 흙을 모아 산과 섬 등을 만들었다는 등의 이야기이다. 대표적으로 강화도의 전승과 제주도의 전승 두 가지를 들면 다음과 같다.
마귀할멈이 온 바다를 다 돌아다녀도 발등에 찰 물도 안 되었는데, 외포리 정포에 다다르니 정강이까지 쑥 들어가므로 ‘아이쿠 여기가 정통이구만’ 하였다. 그래서 거기가 정포가 되었다고 한다.
설문대 할망이 한라산을 베개 삼고 누우면 발끝은 바닷물에 잠기어 물장구를 쳤다. 그리고 빨래를 할 때만 하여도 한쪽 발은 한라산, 또 한 쪽은 관탈섬을 디디었다. 그리고 서귀포 법환리의 앞바다에 있는 섶섬에는 커다란 구멍이 두 개가 뚫려 있는데, 이것은 이 할머니가 누울 때에 잘못 발을 뻗쳐 생긴 것이라 한다.
설문대 할망이 한라산을 베고 누워 한 다리는 서해에, 또 한 다리는 동해에 두고 손으로 땅을 훑어 산을 만들었다고 해요. 마고할미의 오줌은 강이 되고, 둑을 쌓기 위해 돌을 나르다 치마폭을 뚫고 떨어진 돌들은 여기 저기 작은 섬들이 되었다고 한다.
한편, 위와 같이 세속화된 양상 뒤에는 창조주로서의 자격이 부여된 거인신화의 흔적이 보이고 있다. 특히 제주도 설문대 할망 전승에 그러한 모습이 잘 보이고 있는데, 보통 거인신화는 세계 도처에 광범위한 분포를 보이고 있으며, 중국의 반고(盤古)신화 역시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반고신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천지가 분리되기 이전 우주의 모습은 다만 어둑한 한 덩어리의 혼돈으로 마치 큰 달걀과 같은 것이었다. 인류의 시조 반고가 바로 이 큰 달걀 속에서 잉태되었다. 그는 큰 달걀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나 곤하게 잠자며 1만 8천 년을 지냈다. 어느 날 그가 잠에서 깨어나 눈을 떠보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다만 보이는 것은 흐릿한 어둠뿐이었다. 정말 사람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드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는 그 상황에 대하여 몹시 고민하다가 화가 나서 어디서인지 큰 도끼를 하나 가지고 와서 눈앞의 어두운 혼돈을 향해 힘껏 휘둘렀다. 들리는 것은 다만 산이 무너지는 듯한 와르르 소리뿐, 큰 달걀은 드디어 깨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속에 있던 가볍고 맑은 기운은 점점 올라가 하늘이 되었고, 무겁고 탁한 기운은 가라앉아 땅이 되었다. 뒤섞여 있어 갈라지지 않았던 하늘과 땅은 반고의 도끼질 한 번 때문에 이렇게 갈라지게 되었던 것이다. 하늘과 땅이 갈라진 후, 반고는 그 하늘과 땅이 다시 붙을까봐 걱정이 되어 머리로는 하늘을 받치고, 다리로는 땅을 누르고 그 중간에 서서는 하늘과 땅의 변화에 따라 자신도 변화해 갔다. 하늘이 매일 한 길씩 높아지고 땅은 매일 한 길씩 낮아지니, 반고의 키도 역시 매일 한 길씩 자라났다. 이렇게 1만 8천 년이 지나니 하늘은 높아지고 땅은 낮아졌으며 반고의 키도 크게 자랐다. 그리하여 반고의 키는 9만 길이나 되었다. 이 거대한 거인이 마치 큰 기둥과 같이 하늘과 땅 사이에 버티고 서 있어서 하늘과 땅이 다시는 어두운 혼돈으로 합쳐지지 못하게 하였다.
그가 고독하게 그곳에 서서 하늘을 떠받치는 힘든 기둥 노릇을 한지 얼마나 지났는지 모른다. 이제 하늘과 땅의 구조가 견고해져 다시는 하늘과 땅이 합쳐 질까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을 때, 반고는 휴식이 필요해졌고 마침내는 인류와 마찬가지로 쓰러져 죽어갔다.
그가 죽어갈 때, 그의 몸에는 갑자기 큰 변화가 일어났다. 그의 입에서 새어나온 숨길은 바람과 구름이 되었고, 목소리는 우르릉거리는 천둥소리로 변했으며, 왼쪽 눈은 태양으로, 오른쪽 눈은 달로 변했다. 손과 발, 그리고 몸은 오방의 빼어난 산이 되었고, 피는 강물이 되었으며 핏줄은 길이 되었다. 살은 밭이 되었고, 머리카락과 수염은 하늘의 별로, 피부와 털은 화초와 나무로 변하였고, 이, 뼈, 골수 등은 반짝이는 금속과 단단한 돌, 둥근 진주와 아름다운 옥돌로 변했다. 쓸모없는 몸의 땀조차도 이슬과 빗물이 되었다.
반고신화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거인신화는 대개가 천지창조와 관련된 것들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의 거인전승이 대부분 남성 신격임에 비하여 한국의 경우는 마고할미 전승과 같이 여성신격이라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마고전승과 같은 여성 거인신화는 해안지방에서 주로 전승되는 것이므로 애초 수신(水神)으로서의 신격을 지난다고 보여지는데, 이는 삼국의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유화(柳花), 알영(閼英) 등이 모두 수신의 자격을 공유하고 있으므로 고대의 神母와 연관지을 수 있다. 특히 물은 대지를 낳는 양수(養水)로서의 원초적 카오스의 상태를 상징하므로 반고신화의 계란과 같은 혼돈상황과 대칭을 이루는 상징의미를 지니며, 신모 또한 대지의 어머니로서 생산력의 상징이므로 여성 수신을 통해 천지가 발생한다는 신화적 발상 또한 생겨나게 되었다. 이러한 발상은 중국의 경우 고대의 성모녀(聖神女)로서 만물을 만들어낸 여와(女媧)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중국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자전(字典)에서 ‘여와는 옛날의 신성한 여인으로서 만물을 창조하고 길러낸 사람’이라고 적고 있으며, 중국의 신화에서도 여와의 인류창조와 하늘 메우기에 대한 신화가 전하고 있다.
천지가 개벽한 이래, 대지에는 산과 냇물이 있게 되고 초목이 우거졌으며 새와 짐승들, 벌래와 물고기들까지 생겨났지만 아직 인류만은 없었다. 그리하여 세상은 여전히 황량하고 적막하였다. 이 위를 거닐던 여와는 마음속으로 너무 고독하여 천지간에 무언가를 더 만들어 넣어야 생기가 돌 것 같다고 느꼈다. 생각 끝에 여와는 몸을 굽혀 땅에서 황토를 파내었다. 그리고 그것을 물과 섞어 둥글게 빚어 인형과 같은 작은 모양을 만들었다. 이것을 땅에 내려놓자 희한하게도 곧 살아 움직이는 것이었다. 이것은 곧 ‘인간’이었다. 인간의 체구는 비록 작았으나 여와가 직접 만든 것이었기 때문에, 그 모습은 여와를 닮았다. 여와는 자신의 이 아름다운 창조품에 매우 만족해하며, 계속해서 손으로 물을 섞어 황토를 반죽하여 수없이 많은 남자와 여자를 만들어내었다. 그 모습을 보며 기쁨과 놀라움을 느낀 여와는 이제 더 이상 쓸쓸하고 고독하지 않았다.
여와는 인간들을 대지에 가득 차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대지는 너무 넓었다. 오랫동안 작업을 했지만, 그녀는 너무 지쳐서 더 이상 일을 해나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드디어 여와는 줄 하나를 구해다가 진흙탕 속에 넣고는 누런 진흙물을 적셔서 땅을 향해 한바탕 휘둘렀다. 그러자 진흙물이 방울방울 떨어지고, 떨어진 방울들이 모두 인간으로 변했다. 이 방법은 매우 간단했으므로, 얼마 되지 않아 대지는 인간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여와는 어떻게 하면 인류를 계속 생존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하였다. 인류는 죽어야만 하게 되어 있는데, 한 무리가 죽고 나면 새로 또 한 무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골치 아픈 일이었다. 그래서 여와는 남자와 여자를 짝 지워서 스스로가 그들의 자손을 만들어내고 키우는 책임을 지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여와는 혼인 제도를 만들어낸 것이다.
한국의 마고할미 유형의 전승 역시 이 여와신화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으며 원시 모계사회에서 유래된 신모에 의한 천지창조담의 단편적 잔재형이라 할 수 있다. 거대한 마고할미의 신체 크기는 그녀의 신령스러움을 형상화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아진의선(阿珍義先)이라는 할멈은 석탈해가 든 궤짝을 바다에서 끌어다가 육지로 옮겼는데, 그 궤짝은 길이 20척에 너비 13척이나 되는 거대한 것이었으므로, 아진의선 역시 거인의 여신적 존재였다. 따라서 마고할미와 같은 해안지방에 전승되던 여성거인 민담은 그 유래가 삼국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오래된 신모계(神母系) 전승임에 분명하다. 한편 『후한서(後漢書)』에는 또한 남자가 살지 않는 여인국이 예맥의 동쪽 바다에 있었다고 하는 내용이 있는데, 이에서도 바다와 여신의 신화적 연결은 고대로부터 내려온 한국 고유의 전승임을 보여주고 있다.
1.1.2 마고할미 전승의 지역적 성격
마고할미 전승은 주로 제주나 강화, 해남 등 서해안과 남해안에 폭넓게 분포하지만, 지리산이나 동해안 삼척 근방에도 적지 않게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지리산 전승에서 마고할미는 천왕봉의 성모천왕이라는 인물이며 거인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에 반해, 인근지역인 남해안과 부속도서에는 거녀인 마고를 인격화하여 수많은 지명 및 자연물의 형성과 연관시키고 있다. 예를 들면, 늑도의 돌다리, 종이섬의 종이다리, 비진도의 줄여와 폐왕성, 비진도의 마귀할멈바우와 같이 남해안 전역에 걸쳐 섬과 바위 등이 마고의 조화로 전승되고 있다. 여기서 마고는 역시 괴력의 소유자로 등장하고 있어 제주도의 설문대 할망과 강화도의 마귀할미와 동일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이 도서지역에서는 이러한 마고를 보통 당산신으로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살안당, 대방동당, 늑도당, 녹소당, 어온리당으로서 보통 마고의 한을 위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즉 마고는 주민들을 위하여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돌다리나 산성을 쌓다가 굶어죽거나 지쳐서 죽었다는 것이다. 다음은 그와 관련된 전승 한 가지이다.

옛날에 과부할멈이 있었는데, 힘이 장사였다. 바다 구경 차 늑도에 왔다가 이 섬이 살기 좋다고 해서 살다가 주민들의 소원이 무엇이냐 해서 육지와 이어지는 돌다리를 놓아 달라 했더니, 이 할멈이 좋다 하고 지리산 산신령에게 아무리 써도 해지지 않는 질긴 가죽치마를 하나 달라고 하였다. 그러나 산신령은 늑도로부터 돌아올 것을 명령하며 가죽치마를 주지 않았다. 그리하여 할멈은 산신령의 명을 거역하고 치마에다 지리산의 돌을 날라 돌다리를 놓다가 그만 지쳐서 죽었다. 지금도 놓다 만 돌다리고 북쪽 바닷가에 있고 큰 바위를 ‘과부할멈서답돌’이라고 한다.

위 이야기에서 마고가 산신의 명을 거역하고 인간을 도왔다는 점에서 그 신격화가 당산신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그리고 마고가 홀어머니 과부할멈이라는 사실이다. 즉 바닷가에 홀로 사는 과부할미의 恨과 이에 대한 연민이 마고와 연계되었던 것이다.
다시 지리산의 마고전승을 살펴보면, 지리산 반야봉에는 지리산 산신 중 여신(女神)인 천왕봉의 마고할미와 관련된 전설이 있다. 그 여신은 선도성모(仙桃聖母) 또는 마고(麻古)할미, 노고(老姑)라 불리는데 바로 천신(天神)의 딸이다. 그 천신의 딸인 마고할미는 지리산에서 불도를 닦고 있던 도사 반야(般若)를 만나 결혼해 천왕봉에서 살았다. 그들은 딸만 8명을 낳았다. 그러던 중 반야는 더 많은 깨우침을 얻기 위해 가족들과 떨어져 반야봉으로 떠났다. 그리고 마고할미가 백발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마고할미는 반야봉에서 깨우침을 얻기 위해 외로이 수도하는 남편 반야를 그리며 나무껍질을 벗겨 남편이 입을 옷을 만든다. 그리고 마고할미는 딸들을 한명씩 전국 팔도에 내려 보내고 홀로 남편을 기다린다. 기다림에 지친 마고할미는 끝내 남편 반야를 위해 만들었던 옷을 갈기갈기 찢어버린 뒤 숨지고 만다. 갈기갈기 찢겨진 옷이 바람에 날리어 반야봉으로 날아가니 바로 반야봉의 풍란이 되었다고 전한다. 후세 사람들은 반야가 불도를 닦던 봉우리를 반야봉이라 불렀고 그의 딸들은 8도 무당의 시조가 됐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선지 반야봉 주변에 안개와 구름이 자주 끼는데 하늘이 저승에서나마 반야와 마고할미가 만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 한다.
한편 동해안인 강원도 삼척․동해 지역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마고할미 전승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특히 이 지역에서는 마고할미가 풍요를 관장하는 여신격으로서 일정한 제향을 받으면서 신앙되고 있었던 토착신격으로 간주되고 있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1.2. 재야사학계의 마고에 대한 견해

현재 일부 재야사학계에서는 지역전승에서 언급되는 마고를 실질적인 동이족과 한민족의 조상이자 최초의 국가로 간주하고 있다. 비록 그 주장의 신빙성은 없으나, 그 내용을 통해 마고에 대한 상상력의 폭은 충분히 넓힐 수 있다.

1.2.1. 천문학적 관점에서 본 마고의 개국연대

재야사학계에서 받아들이고 있는 천문학적 관점에서는 우주의 역사를 2000년 단위로 끊어서 2000년마다 한 시대로 보고 이름을 붙인다. 이렇게 이름을 붙인 것이 사자궁시대, 거해궁시대, 음양궁시대, 금우궁시대, 백양궁 시대, 쌍어궁시대, 보병궁시대, 마갈궁시대, 인마궁시대, 천갈궁시대, 천창궁시대, 쌍어궁시대로 구분하는 12궁시대이다. 12궁시대는 12간지에서 나온 것으로, 사자궁시대는 자(子, 쥐)에, 거해궁시대는 해(亥, 돼지)에, 음양궁시대는 술(戌, 개)에, 금우궁시대는 유(酉, 닭)에, 백양궁시대는 신(申, 원숭이)에, 쌍어궁시대는 미(未, 양)에, 보명궁시대는 오(午, 말)에, 마갈궁시대는 사(巳해, 뱀)에, 인마궁시대는 진(辰,용)에, 천갈궁시대는 묘(卯, 토끼)에, 천창궁시대는 인(寅, 호랑이)에, 쌍어궁시대는 축(丑, 소)에 해당한다. 이 관점에 의하면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시대는 지금으로부터 12000년 전이라 한다.
이 시대는 사자궁시대에 해당하며 12간지는 자(子)에 해당한다고 한다. 12간지의 자는 시작을 의미하며, 1년으로 치자면 동지에 해당한다. 동지는 겨울의 긴 밤을 끝내고 시작의 눈을 뜨는 때로서 역사를 시작함을 의미한다. 이고선이 쓴 심당전서(心堂全書) 단서대강(檀書大綱)의 삼황개국기(三皇開國紀)에는 환인 천제가 나라(桓國)를 세운 날을 360 갑자(甲子, 桓紀 9199년) 상달(上月) 3일이라고 하였다. 환웅 천왕이 나라(神市. 배달나라)를 세운 날도 4321년 갑자(神市紀 5898년) 상달 3일이라고 하였다. 단군조선의 전신인 단국(檀國, 청구)을 자오지 환웅(치우천왕)이 세운 날도 신시개천 1261년 갑자 상달 3일이라고 하였다. 단군왕검이 장가든 나라인 웅심국은 환인 천제의 대를 이어오는 나라로서 단군왕검의 처(하백녀)의 조부 천일태제(天一泰帝)의 나라였다고 한다. 천일태제는 한국개천 5941년, 신시개천 1621년, 단국개천 361년 되는 해를 갑자개천원년(甲子開天元年) 상달 3일에 나라를 세우고, 나라 이름을 배달나라로 하였다고 한다.
재야사학계에서는 환국, 신시, 단국, 배달나라 모두가 왕조를 세운 시대는 달랐지만, 공통적으로 상달 3일을 나라를 세우는 날로 잡았다는 것은 상달이 언제인가를 볼 줄 아는 천문학자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각 나라가 나라를 세운 당시에는 자월(子月, 11월)을 세수(歲首, 첫 달)로 삼고, 동지 날을 원일(元日, 첫 날)로 잡았으며, 동짓달을 시작한 달로 보았다고 한다. 이렇게 11월 상달(지금은 10월을 상달로 한다)을 여러 나라를 거쳐 오면서 수천 년 동안 지켜왔음에도 불구하고 마고의 개천년대와 개천일은 사서에 기록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으로부터 14000~12500년 전 사이에 지구가 기상이변과 화산폭발로 인류가 전멸했으며, 이 때 살아남은 사람으로는 대서양 쪽에서는 멜기세덱과 태평양 쪽의 마고를 설정하고 있다.
멜기세덱은 성경의 창세기에 나와 있고, 마고는 『부도지(符都誌)』와 중국의 여러 기록에 나와 있다고 한다. 인류역사의 시작을 12간지의 자(子)로 본다면, 이때에 해당하는 12궁 시대는 사자궁 시대이다. 사자궁 시대는 약 12000년 전으로, 멜기세덱과 마고시대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렇게 역사의 시발을 사자궁 시대에서 시작하면, 9199년 전에 환국을 세운 환인천제의 시대는 거해궁 시대에 해당하고, 5898년 전에 신시를 세운 환웅천왕의 시대는 금우궁 시대에 해당하며, 4333년 전에 조선을 세운 단군왕검의 시대는 백양궁 시대에 해당한다. 현재는 쌍어궁 시대를 지나서 이제 막 보병궁 시대로 들어섰으므로. 현재에서 과거로 12궁 시대를 역추적하면 마고시대에 다다를 수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재야사학자들이 주장하는 마고의 개천연대는 12000년~12500년 전 인 BC10000년~BC10500년 상달 3일로 잡아야 한다고 한다.

1.2.2 한민족이 세운 최초의 국명 '마고지나(麻姑之那)'

재야사학자들은 동이(東夷)는 한민족의 직계 조상이며, '마고'가 신시를 세우고 그의 후손인 '황궁'과 '유인'과 '환인'과 '환웅'의 대를 이어 '황제'가 역사에 나오기 이전까지 중원 땅을 다스린 인종은 동이 이외에는 없었으며, 그들의 문명이 동이문명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들에 의하면, 태초에 동북아시아에는 동이족만이 살고 있었으며, 그들은 천문을 시작하였고, 하늘에 제사 지내기를 시작하였다고 한다. 시장을 열어 한 곳에 모이니 이를 신시(神市)라고 하였다 하였으며, '동이문명'의 탄생을 역경(易經)에서는 지화명이(地火明夷)에서 인용하였다. 그리고 그 뜻을 “땅위에서 불을 밝히는 것이 동이”라고 해석하였다. 또한 역경에서 동이의 '지화(地火)'가 사국(四國)을 밝힌다고 보고 지화, 즉 땅에서 불을 밝히는 것이 바로 문명이라고 해석하였다. 그리고 이 일을 최초로 한 사람들이 동이라 하였다. 재야사학자들은 마고가 신시국을 세울 때, 후손을 하나로 결속시킨 사상이 바로 해혹복본(解惑復本)이었다고 한다. 해혹복본의 뜻은 “의혹을 풀고 원래대로 돌아가라"는 주의주장이다.
한편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4국'은 한국, 일본, 중국 세 나라와 이들 세 나라에 기초를 두면서도 한국이나 중국이나 일본도 아닌 제3의 나라로 해석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들은 아직 '제4국'이 출현하지 않은 이상, 지금도 이 괘의 효력은 유효하다고 보고 앞으로 생겨날 제3의 나라는 3국이 연합하여 만들게 될 미래형의 국가로 해석하였다.
그들은 앞으로 <새로운 신시>를 탄생하게 할 뿌리가 될 시원문명(始原文明), 즉 새로운 시대를 밝힐 '지화'를 동이문명에서 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역사학이나 고고학에서 동이문명을 황하문명(黃河文明)이라고 왜곡했다고 한다. 즉 황하문명이 한민족의 조상이 인류 최초로 탄생시킨 동이문명임을 모르고 한족문명(漢族文明)으로 잘못 알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들은 그러한 오해가 생긴 이유를 두 가지로 나누었다. 그 첫째는 한민족이 황하유역을 포기하고 한반도로 철수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민족이동으로 보고 있으며, 그 원인은 한민족의 조상이 중국민족과 겨루어 오면서 사실상 진시황 초기에 조선이 멸망했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에서 찾고 있다. 한편 두번째 이유는 동이가 마고지나(麻姑之那), 환국(桓國), 신시(神市), 조선(朝鮮)으로 국명이 바뀌면서 최초의 이름인 '마고지나'를 보전(保傳)해 오지 못한데 원인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재야사학자들에 의하면, '마고지나'의 문명은 우리 최고의 조상인 '마고'에 의하여 시작되며, 그 연대는 지금으로부터 12000년 이전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 때가 최초로 세운 신시국가시대였다고 한다. 신시국가는 오늘날의 국가체제와 다른 국가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며, 그것을 초국가체제라 한다면 오가(五加)체제에서 마고시대의 초국가체제를 유추할 수 있다고 한다. 이고선이 쓴 ‘조선기’는 BC 2333년에 단군왕검이 그의 장인인 '지일태제(地一泰帝)로부터 '배달나라'를 인수하였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BC2311년에 ‘배달나라'가 국호를 '조선'으로 바꾸었는데, 그 가장 큰 이유는 인구가 불어나서 오가체제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편 재야사학자들은 마고지나가 우주의 원리라고 주장되는 삼태극 원리 위에 세워졌다고 보고 있다. 삼태극의 원리는 음양조화의 원리이며, 이 원리를 원시신앙으로 발전시킨 존재가 바로 마고였다는 것이다. 삼신신앙의 기원도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후 '조선'이 멸망하고 나서, '부여'가 건국되고, 이어서 '고구려'가 건국되었다. 이들 나라가 멸망한 이후에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선포한 '고려'가 건국되었다. 재야사학계에서는 이렇게 역사가 흘러가면서 여러 나라들이 생겨났다가 사라지곤 하였지만, 단 하나 사라지지 않은 것은 ‘마고지나'라는 나라 이름이었다고 한다. '마고지나(麻古之那)'란 '마고의 나라'라는 뜻이며, 그 증거가 『고려사(高麗史)』에 실려 있다고 한다. 더욱이 그들은 고려 때에 조정에서 공식적으로 부르는 국명과 백성이 부르는 국명이 따로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즉 고려는 외교문서에 나오는 국명이고, 백성이 부르는 진짜 이름은 마고지나(麻古之那)였다는 것이다.
고려사 세가 충혜왕조에 ‘마고지나'가 기록되어 있다. 고려사에 의하면, 고려 제28대 임금인 충혜왕은 조선의 연산군에 버금갈 만큼 타락한 폭군으로 기록되어 있다. 당시 고려는 원나라에 종속되어 있었으며, 충혜왕 역시 친원파들의 모략에 의하여 원나라에 의해 왕위에서 쫓겨나 원나라로 압송되었다. 이후 왕은 원 황제에 의해 귀양을 명령받고 먼길을 떠나다가 중간에 독살당했다고 한다. 이 소문이 고려에 퍼져 백성들 사이에는 아야요(阿也謠)라는 노래가 유행하였다. 그 노래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阿也 '麻古之那' 從今去何時來
아아 '마고의 나라' 이제 떠나가면 언제 돌아오려나"

재야사학자들은 여기서 마고지나라는 대목에 주목하고 있다. 즉 당시 사람들은 고려가 국가로서 존립의 기반이 되는 독립성과 자주성을 상실한 채 원의 지배를 받고 있었으며, 고려가 당나라에게 멸망한 고구려에서 나온 명칭이므로 고려가 언젠가는 당나라에게 멸망한 고구려의 전철을 밟게될 것을 두려워하였다고 본다. 따라서 고려의 백성들은 고려라는 명칭보다 마고지나라는 칭호를 선호하였으며, 마고지나는 마고가 인류 최초로 세운 신시나라였으므로 진시황 8년 조선의 멸망과 함께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려 백성들은 역사적인 유물이 된 '마고지나'를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고지나'는 언젠가 회복해야 할 고려 사람들의 근원상징(根源象徵)이며, 땅에서 우주의 중심과 일치하는 곳에 우리의 조상 마고 할머니가 세운 최초의 나라, 지금의 나라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나라였으며, 영토에 대하여 개념정립이 전혀 되지 않았던 나라,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모이는 사람들의 나라, 초국가적인 나라였다는 것이다.

1.2.3 제주도에 대한 기록에서 확인되는 ‘마고지나’의 의미

제주도는 삼신산의 하나인 영주산(瀛洲山)에서 갈라져 나간 섬이므로 옛 이름이 영주(瀛洲)라 한다. 재야사학자들에 의하면, 영주산이 삼신산의 하나로 의미를 갖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4000~12000년 전 사이 동이의 조상인 마고가 그의 후손과 함께 삼신산에 세운 신시(神市)에서 생활을 시작하면서 비롯된다고 한다. 따라서 제주도의 옛 이름이 영주인 것은 마고지나의 사람들이 이 고장에 건너와서 살았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영주’는 마고가 다스리던 '마고지나'의 삼신산(三神山)인 '영주', '방장', '봉래'의 세 산 중의 하나인 '영주산'에서 기원한 명칭이라고 한다. 제주신화에 따르면 삼신이 이 고장의 시조인 고씨 양씨 부씨에게 시집을 옴으로써 비로소 영주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신화에 나오는 삼신은 태초의 삼신인 마고, 궁희, 소희 세 분의 후손이라고 한다.
한반도 곳곳의 신화, 설화나 무가, 지명에 마고삼신이 남긴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이들 흔적은 다른 고장에선 대부분 깊이 파고 들어가야 찾아 낼 수 있으나, 제주에 남아 있는 것은 다른 고장에 남아 있는 것과 달리 기록과 구전으로 나타난 것들로 사실적이고도 구체적이라 쉽게 찾아진다고 한다. 먼저 역사기록에서 찾아보기로 한다. 15세기에 간행된 고려사 지리지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탐라현(耽羅縣)은 제주도 남쪽에 있다.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태초에 사람이 없더니 세 신인(神人)이 땅에서 솟아났다.(지금 진산鎭山:한라산 기슭에 구멍이 있어, 모흥혈毛興穴이 라 하니, 이것이 그 땅이다) 맏이를 양을나(良乙那)라 하고, 다음을 고을나(高乙那)라 하고, 셋째를 부을나(夫乙那)라 했다. 세 신인은 황량한 들판에서 사냥을 하여 가죽옷을 입고 고기 를 먹으며 살았다.

하루는 자주빛 진흙으로 봉인한 목함(木函)이 동해빈(東海濱)에 떠밀려 오는 것을 보고 나아가 이를 열었더니, 석함(石函)이 있고, 붉은 띠를 두르고 자주 빛 옷을 입은 사자가 따 라와 있었다. 돌함을 여니 쪽빛 옷을 입은 처녀 세 사람과 송아지, 망아지, 그리고 오곡의 씨가 있었다. 이에 사자가 말하기를 "나는 일본국 사자이다.

우리 임금께서 세 따님을 낳으시고 이르시되, 서해(西海) 중악(中嶽)에 신자(神子) 세 사람이 계셔 장차 나라를 열고자 하나 배필이 없다고 하시며 신에게 명하여 세 따님을 모시도록 하므로 왔으니, 마땅히 배필 을 삼아 대업을 이루소서."하고 사자는 홀연히 구름을 타고 사라져 버렸다. 세 사람이 나이 차례에 따라 장가를 들고, 물이 좋고 땅이 기름진 곳으로 나가 사시복지 (射矢卜地)하니, 양을나가 거쳐하는 곳을 제1도(第一都)라 하고, 고을나가 거쳐하는 곳을 제2도(第二都)라 했으며, 부을나가 거쳐하는 곳을 제3도(第三都)라 했다.

이와 유사한 기록으로 세종 32년(1450년)에 간행한 영주지(瀛洲誌)에 실린 삼성신화(三姓神話)가 있다. 실린 내용은 고려사 지리지에 실린 것과 거의 같으나 다른 부분이 있어서 그 부분만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① '탐라'를 '영주'라고 하였다.
② 세 처녀와 사자가 온 나라 '일본국'을 '동해벽랑국(東海碧浪國)'이라고 하였다.

재야사학자들은 이 부분을 두고 다음과 같이 논의하고 있다. 우선 국호에 관해서는 ‘탐라'는 북극성인 탐랑성에서 온 것이고, 영주는 삼신산의 하나인 영주에서 온 것이므로 ’탐라'는 인류가 아직 대규모로 출현하지 않고 소수의 인종만 살았던 선천시대(先天時代, 지구의 회전축이 천추성을 향하기 시작한 천추성시대)부터 지명으로 쓰였다고 본다. 그리고 ‘영주'는 동이(東夷)의 시조인 '마고'가 삼신산 (三神山)에 신시(神市)를 열게 됨으로써 갖게 되는 이름이므로, 후천시대(後天時代)부터 쓰였다고 간주한다. 그러므로 '탐라'와 '영주'는 선천개천이냐, 후천개천이냐 하는 시대적 차이를 보이는 이름이라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들은 “『고기(古記)』에 이르기를"이라고 한 대목도 눈여겨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고기'는 옛 사서(史書)의 이름이므로 '고기'의 기록을 옮겨서 고려사를 편찬할 때, 당시 기록자들의 의도적, 혹은 무의식적 곡필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는 고려사 충혜왕조의 ‘마고지나(麻古之那)', 즉 ‘마고의 옛 나라’라는 표현에 주목하여 ‘고기'에 ’지나(之那)'가 '을나(乙那)'로 곡필이 되었다는 것이다. 즉 나(那)는 나라를 의미하므로, 고씨, 양씨, 부씨가 탐라(영주)의 시조인 만큼 이들의 나라가 있었을 것으로 본다면, 마땅히 을나(乙那)를 지나(之那)로 고쳐서, 그 뜻을 '나라' 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고을나'는 ‘고지나', 즉 고의 나라가 되고, ‘양을나'는 ‘양지나'가 되고, ‘부을나'는 ‘부지나'가 된다.
다음으로 재야사학자들은 세 신인과 세 처녀의 의미에 대해서 주목하였다. 이들과 관련된 3이라는 숫자는 이들이 '마고삼신(麻姑三神)'의 자식임을 상징한다고 한다. 즉 세 신인은 모흥혈(毛興穴)에서 출생했다고 한다. 모(毛)는 "털이 흰 소의 쇠꼬리"로 보아 무당이 쇠꼬리 춤을 출 때 들고 추는 쇠꼬리와 동일시하였으며, 혈(穴)은 쇠꼬리를 꽂는 구멍이라 간주하고, 흥(興)은 모를 구멍에 꽂아 일으켜 세웠다는 뜻으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상을 정리하면, 모흥혈은 춘분 맞이굿을 할 때 모를 꽂아 세우는 구멍이므로, 고, 양, 부 세 사람이 모를 꽂아 놓고 쇠꼬리 춤을 춘 곳이 모흥혈이 된다고 한다. 세 처녀는 '삼신산'의 하나인 '영주'를 찾아 온 '마고삼신'의 후예임을 상징하며, 세 처녀가 가지고 온 것에는 종자 이외에 마고의 신표인 '천부삼인'과 '해혹복본'의 메시지가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비록 그러한 기록은 문헌에는 보이지 않으나, 제주도 무가사설에는 드러난다고 하였다. 이 지역의 한 무가사설을 보면, “할로(한라, 漢拏) 영주(瀛洲) 삼신산(三神山) 상상고고리(上峰) …" 라는 대목이 있어 무가에서 한라산을 영주 삼신산으로 본다는 것이다. 또한 이 지역의 영등제는 2월 바람으로 오는 마고삼신을 맞이하는 굿으로, 영등제에 오는 마고삼신은 어디에서나 두 딸을 데리고 나타난다는 점에 착안하여 이들이 삼신이기 때문에 마고와 궁희와 소희가 함께 온다는 것이다.
재야사학자들은 또한 마고가 삼신을 '할로 영주 삼신산'에 보낸 이유는 삼신신앙의 전파에 있었다고 보고 있다. 부도지(符都誌)는 마고가 생존했던 시대에 지구에 엄청난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으며, 소위 “지구가 뒤집어지는 현상"이 일어났다고 보는 것이다. 불가사의한 현상을 기억하게 하기 위하여 마고는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파견한 존재가 바로 삼신이라는 것이다. 마고는 선교사로 떠나는 삼신들에게 두 가지를 가르쳐 보냈다고 하는데, 그 하나는 북두칠성과 해와 달을 신체로 모신 '천부삼인(天符三印)'이고, 다른 하나는 삼신시대의 삼신신앙의 교리인 '해혹복본(解惑復本)'이라고 한다. 이 천부삼인天符三印과 해혹복본解惑復本은 모든 종교가 가지고 있는 원형의 교리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삼신들은 각지에서의 활동을 통하여 해혹복본을 교리로 하는 삼신신앙이 뿌리를 내리게 되었으며, 동이는 마고가 가르친 '해혹복본'의 보호막 안에서 편안하고 안락하게 살 수 있었다는 것이다.

1.2.4 마고삼신의 상징물과 흔적들

재야사학자들은 신시(神市)를 세워 동이의 최고 조상이 된 마고가 후손 중에서 여자 셋을 한 조로 묶어 사방으로 시집보냈다고 한다. 세 여자 중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여자를 마고라고 하고, 두 여자는 각각 궁희외 소희라고 하였으며, 이들은 삼신의 상징이고 삼신의 형상이었다고 한다. 시집을 갈 마고삼신은 방장(方丈)에서 삼신제(三神祭)를 지냈다고 하며, 그들이 시집가는 곳에 가지고 가는 것은 오곡의 종자와 삼신의 신표인 천부삼인이라고 한다.
한편 그들이 건너간 땅을 영주(瀛洲)라고 불렀다 한다. 제주도의 토착어 중에 ‘바리’라는 말이 있는데, ‘바리’는 ‘발’을 의미한다고 한다. 한자로 ‘發’이라고 쓰며, 발은 곧 ‘神’을 신고 걸어다니는 발이므로, 즉 하느님을 싣고 다니는 발족(發足)이라는 말을 뜻한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저술인 관자(管子)에서도 發은 동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재야사학자들은 ‘바리’라는 말은 우리 민족이 동이임을 표현하는 말이라고 단언한다. 상고시대에 발이 큰 사람을 대인(大人)이라고 하였으며, 대인은 주역에 보면, 하늘에서는 달을 뜻한다 하니, 달은 거녀(巨女)와 땅을 의미한다고 한다. 여자와 땅은 지모신(地母神)이 되므로, 영주에서 지모신은 곧 마고삼신인 셈이다. 이러한 일련의 변화과정을 신화화(神話化)하여 기록한 것이 제주도의 창세역사라는 것이다. 마고삼신을 받아들인 영주에서는 마고의 후손인 삼신을 보내주신 진짜 마고를 기억하기 위하여 추모제를 지내니, 이 제사가 바로 성주(星主)제사라고 한다. 그러므로 재야사학자들은 성주제사를 동이의 조상인 마고에게 드리는 제사로 보고 그 유습이 현재까지 그대로 남아 전해 온다고 본다.
한편 성주는 하늘에서는 직녀성이라고 한다. 재야사학자들은 직녀성은 지금으로부터 12000년 전 이전에는 지구 중력의 회전축을 관장하던 북극성의 지위에 있었던 별로 판단하고 마고시대, 즉 쌍녀궁(雙女宮)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직녀성이 북극성의 임무를 수행하였다고 하는 것이다.
쌍녀(雙女)라는 문자를 분석해 보면, 쌍(雙)자는 새 ‘추’자가 겹쳐 있고, 밑에는 또 ‘우’자가 있다. 재야사학자들은 이는 새가 두 마리가 있는데, 여기에 또 한 마리가 더 있다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하며, 따라서 새 세 마리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도 새 세 마리를 마을 입구에 세운 솟대가 존재하며, 솟대에 앉은 새 세 마리는 '두 마리 새'에게 '한 마리 새'가 합류한 모양의 구도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는 문자로는 쌍여(雙女)를 의미하고, 이들은 영등바람을 타고 날아온 마고삼신을 상징하는 오리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재야사학자들은 쌍여궁시대를 바람을 타고 몰려오는 오리의 시대로 파악한다. 그러므로 솟대에 앉은 새들이 모두 오리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리는 바로 삼신을 상징한다고 보았으며, 그것은 마고삼신이 바람을 타고 바다를 건너온다는 의미와 연관시켰던 것이다.
마고의 상징을 오리로 썼던 또 다른 이유는 오리를 의미하는 한자 鴨에서도 해답이 있다고 한다. 압(鴨)자를 분리하면 甲과 鳥로 나뉜다. 갑조(甲鳥)는 말 그대로 '세상에 처음 나온 새'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즉 세상에 새가 나오기 시작했을 때 '오리가 제일 먼저 나온 새'라는 의미로 파악하여, 인류의 조상이 되는 마고와 상통한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이유로 마고가 '시집가는 마고삼신'을 수행하는 사자에게 오리를 들려 보내면, 오리가 마고의 징표임을 의미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마을 입구에 서 있는 솟대에 앉힌 세 마리의 오리는 그 마을 사람들이 마고삼신이 시집가서 낳은 마고의 자손이라는 의미가 생긴다는 것이다.
한편 굿을 할 때 쓰는 신장대는 방장에 세운 솟대에서 나온 것이라 하며, 굿상에 올리는 시루에 신대를 꽂는 것은 방장에서 나온 것이라 한다. 시루는 신시를 의미한다 하므로 시루는 나라를 상징하며, 나라에서 제사지내는 산을 시루산(烝山, 증산은 임금님 산이라는 뜻이다)이라 하였다고 한다. 안택굿에서 무당이 신대를 꽂은 시루를 들고 춤을 추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옛날에 상고시대에 임금이 제관이 되어 굿을 할 때 행했던 의식이 그대로 굿에 남아서 전해 오는 것이라 한다.
안택이라는 말이 지금은 한 집안의 평안함을 비는 굿으로 그 의미가 축소되었지만, 상고시대에는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단군왕검이 마고 할머니에게서 전수한 삼신신앙과 환웅 할아버지에 게서 전수한 태백진교를 발전시켜 덕교(德敎, 덕사상)를 만들어 선포하시고 나라의 사대문 안에서 안택을 빌었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물론 안택(安宅)이란 나라의 서울을 정하기 위하여 방위를 잡는 일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당시에는 북두칠성이 떠오르는 동북간방(東北艮方)을 대단히 중요시하였으며, 동북간방에 잡은 터를 서사태방위(西四宅方位)라고 한다. 동북간방에 터를 잡고 4대문을 내는 데, 이때 올린 굿이 안택굿이라 한다. 재야사학자들은 성주거리에 나오는 성조는 당시에 처음 집을 짓고 궁궐을 지은 성조 할아버지로 본다. 또한 현재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무당내력이라는 책에 보면, 성주거리는 반드시 단군왕검을 먼저 청배하여 굿을 해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왜냐하면 단군왕검 때 서울 백산 아래에서 처음 안택한 감격을 되살리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재야사학자들에 의하면, 환웅 할아버지는 신시를 세우고 태백진교(太白眞敎, 참사상) 선포하면서 두 가지 신시나라의 국정지표를 내세웠으니, 정치는 화백(和白)으로 하고, 자연재해에 대한 책임은 책화(責禍)로 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재야사학자들은 국민에게 꿈을 주고 결속시켜 줄 매개로서 민족과 나라는 그들 나름대로 '구원의 여인상'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고유한 단 한 분의 여신을 받들어 모시려는 견해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조선시대까지 민간신앙으로서 삼신할머니인 마고를 받들어 모셔왔던 것에서 착안하여 마고의 존재를 복원하고자 한다. 따라서 그들은 비록 현재 마고할미는 미신 정도로 취급되지만, 중국에서의 금모낭낭(金母娘娘)이나 서왕모(西王母), 일본에서의 천조대신(天照大神)과 같은 상급의 여신으로 모실 것을 제안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한국과 중국과 일본의 삼국관계에서도 우리 역사에 있어서 마고 복원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마고를 부활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재야사학자들은 마고가 후손에게 신표인 삼신을 새긴 '천부삼인'을 전수하고, 모든 종교의 원전이 될 수 있는 '해혹복본(解惑復本)'을 가르쳤다는 점을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천부삼인은 인류가 천문을 시작했다는 징표이며, 특히 천문이 동이에 의하여 인류 최초로 시작되었다는 점에 의의를 둔다. 또한 그들은 천문에서 우주의 원리를 끄집어 낼 수 있다고 믿으며, 그 원리는 '천부경(天符經)'에서 제시하는 '일석삼극(一析三極)의 원리'라고 본다. 일석삼극의 원리는 환웅천왕에 의하여 세상을 이끌어 가는 '참사상'인 '태백진교(太白眞敎)'를 출현하게 하였고, 단군왕검 시대에 가서 덕교로 발전하였다는 점을 주장하면서, 마고의 존재를 우리의 문화사와 종교사에서 자리 매김하고자 한다.
또한 재야사학자들은 신시에 대해서도 각 종족의 대표가 삼신산 아래에 와서 함께 모여 하늘에 제를 지내고 시장을 열어 문물을 교환하는 곳이라 정의하고, 신시는 의회와 시장의 기능만을 갖추었으며, 각 종족은 독자적으로 제사를 지내며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자 할 때만 신시를 열어 의사를 결정하고 시장을 여는 초국가적인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 각 종족의 대표가 참석하는 회의를 화백이라고 하였고, 또한 문물을 배에 싣고 와서, 해변에 당(幢, 깃발)을 꽂아 놓고 서로 필요한 것을 찾아서 교환하는 것을 시장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참고문헌 및 도판
▒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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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상 원저, 윤치원 편저, 『부도지』, 대원출판, 2002.
전인초, 정재서, 김선자, 이인택, 『중국신화의 이해』, 아카넷,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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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일, 「남해안 당신설화의 비극적 특성에 관한 연구」『가라문화』11, 동아문화연구소,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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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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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 <麻姑>,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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