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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해조정용궁신장

사해조정용궁신장
용궁신장은 옛 삼개포구에서 행해졌던 마포나루굿에 등장한다. 굿은 육지에서 하는 나루굿(대동제)과 배를 한강에 띄어놓고 배안에서 하는 배굿(용왕굿)으로 나누어 한다. 굿의 진행은 ① 용궁불사 ② 용궁칠성 ③ 용궁제석 ④ 용장군 ⑤ 용궁별상 ⑥ 용궁신장 ⑦ 용궁대감 ⑧ 용궁창부 ⑨ 용궁선황 ⑩ 뒷전의 순으로 진행된다.
나루굿(대동제)은 선착장 잔디밭에서 ① 부정거리 ② 가망거리 ③ 장군거리 ④ 별상거리 ⑤ 신장거리 ⑥ 대감거리 ⑦ 제석거리 ⑧ 호구거리 ⑨ 창부거리 ⑩ 선황거리 ⑪ 뒷전거리의 순서로 진행된다.
용왕신(용궁의 신령)은 바다, 강, 하천, 호수 등을 관장하는 신령들로서 사해바다를 관장하는 사해용왕님들과 그 밑에 많은 권속들을 거느리고 비를 관장하며 해상의 모든 바람, 어업등을 관장한다. 이 용궁의 신령들로는 용부인(용태부인, 용왕대신, 용궁아씨)과, 용장군(물에서 싸우다 돌아가신 조상신들, 이순신장군), 용궁대감, 용궁도사, 용궁신장 등이 있어 산골짜기의 물까지 관장한다. 용궁신령들은 보통 소실령(육식을 안받는 신령)들인데 용궁불사 일월불사 천궁불사 등과 함께 제자들에게 잘 내리는 신령들이다.
수리시설이 거의 없었던 옛날에는 하늘만 쳐다보며 농사를 지었기에 가뭄이 들면 용그림을 그려 놓고 용신에게 기우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신라 진평왕 50년 조에 보인다. "여름에 크게 가물어 시장을 옮기고 용 그림을 그려 비오기를 빌었다." 이러한 기록은 『태종실록』이나 『세종실록』에도 보인다. 우리민속에서 용은 물을 관장하는 농업의 신으로 여겨왔다. 용에는 성격이 다른 아홉 아들이 있다는데 이중에 날아다니는 응용(應龍 또는 청용)이 구름과 비바람을 몰고 다닌다고 믿어 날이 가물면 용이 깃들어 있다는 용소(龍沼)에서 기우제를 지냈는데 이를 용신제(龍神祭)라고 한다. 전라북도 부안에서도 날이 가물면 곰소와 직소폭포에서 용신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옛 「부안읍지」에 보인다. 용신제를 지낼 때는 용그림(용당기)을 세우고 그 아래에서 지낸다. 옛날 농촌에는 서너 마을을 단위로 하여 그 중심마을에 용당기가 하나씩 있었는데 용당기가 있는 마을이 어른 마을이요, 중심 마을이었다. 정초에 이 용당기를 밖에 내어 꽂으면 이웃마을의 농기들이 용당기에게 기세배(旗歲拜)를 하러 온다. 아무리 양반이 많이 사는 반촌(班村)이라도 마을의 좌상(座上)이 풍물굿패를 이끌고 용당기가 있는 마을로 기세배를 드리러 간다. 그리고 백중날은 농사일이 끝난 "호미씻기 날"이어서 용당기를 세워 놓고 풍년을 구가하는 놀이판을 벌인다. 즉, 용왕과 그의 식솔, 부하에게 드리는 용신제는 농업사회와 밀접한 관련을 짓고 실시되었으며 제사가 갖는 축제적 성격 그대로 마을의 축제화된 것이다.
용은 중국전설에서 전해지는 사령 가운데 하나이다.『태상동연신주경』의「용왕품」에 의하면 방위에 따라서 「오제용왕」,해양(海洋)에 따라서는「사해용왕」으로도 구분된다. 천지만물을 구분지는 54용왕명 이름과 62 용왕의 이름이 있다고 전해 진다
당현종시절,우사의 예로써(雨師之儀) 용왕께 단을 설치하여 관제(官致祭)로 받들어졌는데,용지(龍池)로 사당에 고하여졌다. 송태조(宋太祖) 때부터 연용(沿用)되어 오다가 당대(唐代)에는 오룡지제로 발전하였다. 송휘종시절(宋徽宗大觀二年,1108年) 천하오룡(天下五龍)은 왕으로 봉작되었다. 청룡신(靑龍神)은 광인왕(廣仁王),적룡신(赤龍神)은 가택왕(嘉澤王),황룡신(黃龍神)은 부응왕(孚應王),백룡신(白龍神)은 의제왕(義濟王),흑룡신(黑龍神)은 영택왕(靈澤王), 청동치이년(淸同治二年,1863年)에는 다시 운하룡신(運河龍神)으로 봉해졌는데「연휴현응분수룡왕지신」,하도총독(河道總督)이 제를 지내었다고 한다.『서유기(西遊記)』가운데,용왕의 분별에 관한 이야기가 있는데: 동해(창녕덕왕滄寧德王)오광, 서해(소청윤왕素淸潤王)오흠, 남해(적안홍성제왕赤安洪聖帝王)오윤, 북해(완순택왕浣旬澤王)오순 이렇듯 사방의 바다를 지키는 사해룡왕으로 분별지었다. 이에 따르면 용왕의 직책은 구름과 비를 모으는 역할이다. 사람의 번뇌와 열화를 감소시킨다고 한다. 용왕이 치수에 성공하기를 바라는 것은 민간의 보편적인 신앙이다.
『태상동연신주경』「龍王品」에 칭하기를, “국토가 가뭄에 들면 오곡을 거둘 수 없게되는데 언제 비가올른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을때,”원시천존(元始天尊)이 오색구름을 타고 강림하여,모든 용왕과 함께 정법을 행하여,중생을 구제하였으니,큰비가 내리게하여,대지가 윤택해졌다고 한다.
우리나라 설화를 들춰 보면 용은 수신의 역할 외에 호법신 또는 호국신의 역할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황룡사 9층 석탑건립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문무왕을 장사한 대왕암은 대표적인 예이다. 고려의 건국설화에는 왕건의 조부 작제건이 용의 딸과 혼인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귀신을 물리치고 경사스런 일을 맞아들이기 위해 쓰인 부적에 그려진 처용도 설화를 보면 용의 아들이라고 한다. 이처럼 설화에 등장하는 용은 나라에 이로운 일을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용왕신의 탄생날,각족 문헌기록과 각지의 민간전설에 의하면 조금 차이가 있다. 옛시절에는 전문으로 공봉(專門供奉)하는 용왕묘(龍王之廟)라 불리는 성황(城隍)이 있었으며、토지묘(土地之廟)와 형태가 비슷한 것이 보편적이다. 매년 풍우가 적절하지 않아,가뭄이나 장마가 오래 지속되면,혹은 비를 구하고 혹은 그치기를,민중들이 모두 모여 용왕묘에서 분향하며 기원하였다,용왕이 알맞게 내리는 비와 순한 바람으로 잘 다스려,풍우가 조화롭기를 기원하였다.
용(龍)은 중국전설 가운데 일종의 좋은 변화이다. 구름과 비를 부르고, 만물의 신이동물(神異動物)을 이롭게하고,이로운 곤충을 잘 자라게하는, 사령(四靈)(즉 용龍, 봉鳳, 기린 麒麟, 거북龜)의 수위자리이다. 옛 고적에 기록되어 있기를 그 형상이 매우 다양하게 표상된다. 일설에 의하면 가늘고 긴 몸집에 발이 네 개이며, 말머리 형상에 뱀꼬리 모양을 하였다 한다. 몸에는 비늘로 뒤덮혀있고,머리에는 각진 수염이 다섯가닥이 있다고 한다.『본초강목(本草綱目)』에 이르길「용은 아홉가지」라고 한다. 각종 동물의 장점을 취합한 동물이라고 전해진다. 그 명칭 또한 다양하여, 비늘이 있는 것으로 교룡(蛟龍), 날개가 있는 것을 가르켜 응룡(應龍),뿔이 있는 것으로 다타룡([多駝,馬제거]龍),뿔이 없는 것을 규(軋,車대신 蟲). 작은 놈은 교(蛟),큰 놈은 룡(龍)이라고 통칭하였다. 전설 또한 풍부한데 대부분 숨어지내는 것으로 묘사된다. 가는 몸에 거대함으로 쉽게 표상된다. 능히 크게도 작게도 변화할 수 있다고 알려진다. 일년 중 춘분(春分) 때면 하늘로 올라가고 추분(秋分) 때는 연못에 숨으며 바람을 일으키고 비를 부르며, 하지 못하는 바가 없다고 한다. 신화 가운데서도 바다 속 세계를 주재하는 것을 용왕(龍王)이라고 하며, 민간에서는 매우 상서로운 상징으로 여기며, 옛부터 제왕이 통치의 화신으로 여겨져왔다.
불교에서는 용은 팔부대중 즉, 천룡팔부(天龍八部)중의 하나라고 여긴다.
중국 민족에게는 하나의 공통된 토템신인 용(龍)은 지역의 구분이나 민족의 구분이 없다. 수천년 동안, 각 민족들은 용을 신령(神靈)으로 보고 경건하게 숭배하고 제사를 드렸다. 용은 중화 민족의 표지와 상징일 뿐 아니라, 동시에 제왕(帝王)과 황권(皇權)의 상징이었다. 용 숭배가 오랜 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까닭은, 첫째 역대 제왕들이 용을 이용하여 자신의 권위를 세우고 자신의 통치를 공고히 하였기 때문이고, 둘째 용 숭배 안에는 자연 숭배의 인소(因素), 즉 사람들이 용을 지를 주재하는 신으로 간주하여 숭배하였다는 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중국은 수천년 동안 농업으로 나라를 유지해 왔으므로, 비는 농업 생산의 생명이었다. 고른 날씨와 적당한 비는 곡식을 풍부하게 하였으므로, 사람들은 세세토록 용을 숭배하는데 집착하였던 것이다.
예로부터 남지 사람들은 억만년 동안 낙동강을 보살펴 온 용왕님이 계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래서 가뭄이 심할 때는 용왕님께 비를 내려달라고 빌었고 비가 많이 와서 홍수가 나 물이 마을과 논밭으로 넘쳐 흐를때도 고기잡이를 나갈 때도 그리고 농사를 지을 때도 풍년이 되게 해 달라고 빌었는데 이것이 용왕제, 용왕굿, 용왕 먹인다라고 하였다.
신장은 무당과 장님의 모시는 신으로서 용맹스러운 장군의 신격이다. 원래 이 신은 도교의 도방오제설을 기초로 한 전설적 성격이 있으며, 이것이 무속과 민간신앙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흔히 오방신장(五方神將)이라 하여 집이나 동네의 동서남북과 중앙의 오방을 막아주는 수호신으로 모셔진다. 오방, 즉 다섯 개의 방위는 다섯 개의 색으로 표현되고 그 다섯 개의 색은 우환(憂患), 명복(命福), 재수(財數), 죽음(死), 그리고 조상(祖上)등 다섯 가지 운명으로 상징되고 있다. 다섯 방위는 동쪽으로부터 시작한다. 동쪽은 파랑색으로 우환을 상징하며 동방청제신장이라 한다. 서쪽은 흰색으로 명복을 상징하며 서방백제신장이라 한다. 남쪽은 빨강색으로 재수를 상징하며 남방홍제신장이라 한다. 북쪽은 검정색(때에 따라선 초록색으로도 사용됨)으로 죽음을 상징하며 북방흑제신장이라 한다. 마지막으로 중앙은 노랑색으로 조상을 상징하며 중앙황제신장이라 한다. 이렇듯 신장은 강력한 위엄과 권위를 가진 무장신이다. 이러한 신장과 비슷한 신이 바로 용장군이다. 용장군은 물에서 싸우다 돌아가신 조상신들을 가리키는데 대표적 인물이 이순신장군이다. 이순신장군이 인간으로서 사후에 신이 되어 무당에게 모셔진 것 과는 다르게 사해조정용궁신장은 본래부터 신으로 모셔졌기 때문에 다소 차이가 있긴 하지만 역할은 비슷할 것으로 여겨진다. 더 정확히 사해조정용궁신장의 역할은 용궁에서 사해용왕에게 예속되어 요사한 귀신이나 악귀들을 물리치는 수호장군신으로 볼 수 있다.
참고문헌 및 도판
▒ 참고 문헌
이우영, 기지시 줄다리기:당제.용왕제:,중요무형문화재 제75호, 집문당, 1986.
황루시, 우리 무당 이야기, 풀빛, 2000
김인회, 한국무속사상연구, 집문당. 1987.
편집부, 한국의 굿, 열화당, 19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