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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하백)

수신
1. 수신 신앙
수신(水神) 신앙은 물을 관장하는 신에 대한 제의 및 신앙습속이다. 수신은 물의 성격이나 규모에 따라 해신(海神), 강신(江神), 지소신(池沼神), 천정신(泉井神) 등으로 변별되기도 하고, 신의 형체도 용․뱀․거북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대체로 어떤 물이거나 용이 수신으로 많이 나타나기 때문에 수신신앙은 용신신앙과 상통한다.
우리 민족은 고대로부터 강한 수신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건국신화를 검토하면 수신이 국가의 조상신 또는 수호신으로 숭앙된 면모를 엿볼 수 있다. 고구려 건국신화에서 시조 주몽(朱蒙)은 천신(天神)인 해모수(解慕漱)와 수신인 하백녀(河伯女) 사이에서 출생한다.
하백의 딸인 유화(柳花)는 고구려의 국모신(國母神)으로 숭앙되었으며, 고구려의 왕들은 항상 천제자(天帝子)와 하백외손(河伯外孫)의 후예임을 긍지로 삼았다. 이러한 점에서 고구려에서는 수신이 천신과 한가지로 높게 숭앙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유사』 동부여조(東扶餘條)에는 해부루가 동해가로 이주하여 동부여를 세웠는데, 아들이 없어서 곤연(鯤淵)이라는 연못가에서 금빛이 나는 개구리 모양의 어린아이를 얻어다가 왕위를 물려주었는데, 이 아이가 곧 금와왕(金蛙王)이라는 기록이 있다. 금와왕은 사실상 동부여 국조의 성격을 가지는데, 그가 출현한 곳이 연못가로서 그 형체가 물과 친연성(親緣性)이 강한 개구리를 닮았다는 점에서 수신의 후예라고 볼 수 있다.
수신의 후예를 왕으로 모셨다는 것은 동부여에서 수신을 국가의 조상신으로 숭앙했음을 말해주는 점이다. 신라의 국조인 박혁거세(朴赫居世)의 왕비는 알영(閼英)인데, 그녀는 알영정(閼英井)이라는 못에서 계룡(鷄龍)이 출현하여 왼쪽 갈빗대 사이로 낳은 동녀(童女)이다. 알영은 용의 후예로 왕비가 되어 박혁거세와 함께 이성(二聖)으로 신라인의 숭앙을 받았다.
이러한 점에서 신라에서도 수신이 국가의 조상신으로 숭앙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신라 성덕왕 때 순정공(純貞公)의 부인 수로(水路)는 자용(姿容)이 매우 아름다웠다. 순정공이 강릉태수가 되어 부임해 가는 도중 바다에 임한 정자에서 점심을 먹는데 해룡이 수로부인을 납치해갔다.
순정공은 한 노인의 말을 듣고 〈해가(海歌)〉를 불러 부인을 찾았는데, 부인의 말은 바다 속에는 칠보로 된 궁전이 있었고 음식이 맛있고 향기로웠으며 또한 깨끗하다고 했다. 이 시기에는 이미 해신으로서 용신이 숭앙되었고 바다 가운데 용궁이라는 별세계가 있었다고 믿었던 것으로 보인다.
헌강왕 때에 동해용자(東海龍子)인 처용(處容)이 왕을 따라 서울에 와서 왕정(王政)을 보좌하고 역신(疫神)을 물리쳤다는 이야기가 있다. 수신인 용신은 인간의 병마를 구축하는 신으로 신봉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백제에서의 수신신앙의 면모는 기록이 적어 알 길이 없다.
다만, 서동설화(薯童說話)를 보면 서동의 어머니는 과부로 지룡(池龍)과 통하여 서동을 낳았다고 하였다. 여기서 서동은 용신의 후예임을 알 수 있는데 그가 뒤에 무왕이 되었다는 점에서 백제사회에서도 수신이 국가의 조상신이나 수호신으로 숭앙되었으리라 추측된다.
이처럼 고대국가에서 수신에 대한 신앙이 천신 신앙에 버금갈 정도로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수신신앙은 불교가 전래되면서 불교와 융화하여 호국용신사상을 낳기도 하였다. 신라 문무왕이 죽어서 호국용신이 되었다는 설화는 수신이 수호신으로 신앙되었음을 말해주는 단적인 근거가 된다. 고려조에 들어와서도 수신신앙은 쇠퇴하지 않고 더욱 고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 국조인 왕건(王建)의 아버지인 용건(龍建)은 작제건(作帝建)과 용녀(龍女)인 원창왕후(元昌王后)의 소생이다. 작제건이 아버지를 찾아 중국으로 가는데 서해용왕의 부탁을 받고 여래상(如來像)으로 둔갑한 여우를 활로 쏘아 죽이고 용왕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여 낳은 사남 중 장남이 바로 용건이다.
용녀의 후손이 국조가 되었다는 『고려사』세가(世家)의 기록에서 우리는 고려시대에도 용신이 조상신으로 신성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조의 건국신화라 할 수 있는 〈용비어천가〉에서도 세종의 육대조(六代祖)를 육룡(六龍)에 비의(比擬:견줌)하고 있다. 그 밖에 많은 시가나 소설에서도 수신에 대한 신앙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조선조의 고전소설인 『홍길동』, 『소대성전』 등에는 주인공의 전생신분이 용이나 용의 자식으로 되어 있다. 또한, 『심청전』에서는 인당수 수신에 대한 인신공희(人身供犧:사람의 몸을 희생물로 제공하는)의 습속이 나타난다. 이처럼 수신은 우리 민족의 수호신 또는 조상신으로 많은 사람의 숭앙의 대상이 되었다.
민속에 나타난 수신신앙은 신앙집단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바다에서 고기잡이를 주로 하는 어촌의 어민들은 수신에 대한 신앙이 매우 강하다. 동해안 어촌에서는 마을에 용왕당(龍王堂)이 있어 용왕신을 모시고 정월 대보름에 행하는 동제(洞祭) 때나 몇 년마다 하는 풍어제(豊魚祭) 때에 마을 전체의 행사로서 용왕제를 올린다.
어촌의 용왕당은 바다를 관장하는 수신이면서 마을 전체의 안녕함을 보살펴주는 마을 수호신의 기능을 겸하고 있다. 서해안 일대에서도 밤이나 새벽에 부녀자들이 간단한 제물을 가지고 바닷가에 나가서 용왕제를 지내며, 고기잡이를 떠날 때에는 배에서 용왕제를 크게 지낸다.
어촌에서 숭앙하는 용왕신은 바다의 신이면서 물고기를 많이 잡도록 도와주는 풍어의 신이다. 또한 어로(漁撈)로 생계를 유지하는 주민을 지켜주는 수호신이기도 하다. 한편 농촌에서는 농경과 관련하여 비를 관장하는 신으로 수신이 숭앙되었다. 해가 바뀐 뒤 처음으로 맞이하는 일진을 상진일(上辰日)이라고 하는데, 이날 새벽에는 부녀자들이 남보다 먼저 일어나 우물물을 길어온다.
이날 새벽에 하늘에서 용이 내려와 우물에 알을 슬어놓고 간다고 하여 그 우물을 제일 처음 먹는 사람은 그해 농사가 대풍이 들고 아들도 낳는다는 전설이 있다. 이 습속을 ‘용알뜨기’라고 하는데 먼저 물을 길어간 사람은 그 표적으로 지푸라기를 우물에 띄워놓는다고 한다. 또한 상진일에 머리를 감으면 머리가 용의 머리털처럼 길어진다고 하여 머리를 감는 습속도 있다.
상원일(上元日)에는 아침해가 뜨기 전에는 샘물을 길지 않는 습속이 있다. 물을 길으면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또한 상원일에는 남의 집에 가서 물을 먹지 않는다. 만약 물을 먹으면 자기 집의 여름농사가 비 때문에 망친다고 한다. 이처럼 물에 대한 여러 가지 속신과 금기가 농사의 풍흉과 관련되어 전해진다.
농사에서는 가뭄의 폐해가 가장 무섭다. 음력 5월 전후 모내기철에 비가 오지 않으면 기우제를 지낸다. 충청북도 단양군에서는 비가 오지 않으면 이장이 제주가 되어 개, 돼지, 소 등의 머리를 용소(龍沼)에 넣고 기우제를 지내는데, 이렇게 하면 용신이 더럽혀진 물을 깨끗하게 하려고 비를 내린다는 것이다.
비는 옥황상제의 명령으로 용신이 내려준다고 믿으며, 비를 관장하는 신으로서 수신신앙이 농촌에서는 특히 강하다. 그 밖에 영험이 있는 물에 가서 자손을 빌거나 소원을 비는 영수신앙(靈水信仰)도 널리 퍼져 있다. 제주시 용담동에는 용소 또는 용연(龍淵)이라는 못이 있는데, 이 못에는 동해용이 와서 풍치를 즐겼고 용이 머물러 있다고 하여 가물 때 기우제를 지내면 효험이 있다고 한다.
전라남도 고흥군 풍양면 풍도농장 못에도 용신이 있다고 한다. 이 못에서 고기를 잡다가 그물이 터져 고기를 놓아주었는데 다음날 물고기들이 앞산의 정상에 죽어 쌓여 있었는데 이것은 연못의 용신이 노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전한다.
가뭄에 마르지 않는 샘이나 깊은 웅덩이에는 영험한 수신이 있다고 믿으며, 이 수신은 아들 점지를 비롯하여 인간의 여러 가지 결핍을 해소해준다고 전하여지고 있다. 이처럼 수신은 인간의 복을 주는 신으로도 숭앙되고 있다.

2. 용신

중국에서 비롯된 용신(龍神) 사상은 한국과 일본에서 가장 널리 신앙되는 수신이다. 통상 용왕신 또는 용왕님이라 일컬어지며, 그가 있다고 믿어지는 수중의 궁전을 용궁(龍宮) 또는 칠보궁전(七寶宮殿)이라 한다. 흔히 산에 있다고 믿어지는 산신(山神)은 호랑이로 상징되며, 수신, 특히 용왕신은 용으로 상징되는데, 이 용왕에 얽힌 설화가 한국에는 많다. 그 중에서도 신라의 수로부인(水路夫人)이 강릉 태수로 부임하는 순정공(純貞公)을 따라가다가 임해정(臨海亭)이란 곳에서 해룡(海龍)에게 끌려 용궁에 다녀온 이야기는 널리 알려진 설화이다. 용왕을 숭상하는 풍습은 지금도 각처에서 볼 수 있다. 동해안 일대에서는 매년 정초에 용왕제를 지내고 있고, 국내의 큰 강에는 정월 보름날 용왕밥을 띄워 보내는 습속이 있다.
용신은 재래의 수신과 불교와 도교의 용신이 습합되어 형성된 신으로 국가수호신으로서, 그리고 왕실의 조상신으로서 국가적 차원의 제향의 대상이 되었고, 농경을 보호하는 강우의 신으로서, 풍파를 주재하는 바다의 신으로서 수천 년간 농어민의 폭넓은 숭앙을 받아 왔다. 용신은 본래 물을 관장하는 수신으로서 비오는 것을 관장하는 기능을 가지고 숭앙되었다. 강우(降雨)를 주관하는 용의 이야기는『삼국유사(三國遺事)』보양이목(寶壤梨木)조에도 실려 있다. 보양스님을 따라서 신라로 들어온 용자(龍子) 이목(離目)은 날이 가물자 보양스님의 지시를 받고 천신의 허락도 받지 않은 채 농민을 위하여 비를 내려 주었고 보양스님은 이목을 징벌하러 온 천신의 사자에게 배나무를 이목이라고 하여 벼락 치게 하였다. 이는 불교와 습합된 농경의 신으로서 용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마을에 우물이나 샘은 용왕굿이나 용신제를 받는 용신의 거주처로 알려져 있다. 음력 정월 보름에 행하는 ‘용알뜨기’라는 습속은 임신을 하기 위해서 새벽 일찍 남보다 먼저 우물의 물을 떠다 먹는 것이다. 여기서 샘이나 우물의 용신은 생명의 신으로서 성격을 가진다.
전국에서 전승되는 용못(龍沼)이나 용우물(龍井)에는 용이 은혜를 갚으려고 비를 내리어 황무지를 옥토로 만들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이는 농경의 신으로서 용신이 숭앙되었음을 말해 주는 자료라고 볼 수 있다.
강이나 바다에는 용신이 있고 용이 있는 용궁은 보배가 많은 곳이라는 설화가 많다. 『삼국유사(三國遺事)』수로부인(水路夫人)조에 해룡(海龍)이 수로부인을 납치하였다가 여러 사람이 모여 해가(海歌)를 부르자 돌려보냈는데 수로부인은 바다 가운데 칠보궁전(七寶宮殿)이 있다고 했다. 거타지설화(居陀知說話)나 작제건설화에서도 서해 용왕이 사는 용궁에는 많은 진기한 보물이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 같은 용왕신앙은 불교나 도교의 영향으로 형성된 것으로 생각된다. 바다에는 물고기를 다스리고 파도를 주관하는 용왕이 권역별로 존재하는데, 사해용왕(四海龍王)이라고 하는 용신은 도교의 신의 위계와 직능의 영향을 받아서 형성된 관념이라고 보인다. 바다의 용왕은 배를 부리며 바다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신으로 숭앙되었다. 고기를 잡아 생활하는 어민들이나 무역을 위해 항해하는 사람들은 모진 파도와 싸워야 했고 파도를 일으키고 잠재우는 용왕신을 신성시하여 용왕제를 지냈다.
용왕이 신성시되면서 용왕의 가족인 용자나 용녀가 인간계에 출현하고 용궁의 보물을 얻은 사람이 발복(發福)을 한다는 설화가 많이 전승되었다. 해인사 창건과 관련된 해인(海印)의 유래나 공지천 유래 등의 설화는 용자를 구해 주고 용궁에 들어가 보물을 얻어온 이야기이다. 이처럼 용신신앙은 용궁이라는 신비의 이계(異界)를 설정하기도 하였다
3. 하백

하백은 고구려 건국설화에 나오는 물의 신이자, 시조 주몽(朱蒙 : 동명왕)의 외할아버지이다. 모두루묘지(牟頭婁墓誌)에는 ‘하박(河泊)’으로 표기되어 있다. 하백은 또한 수신으로 물 속의 궁전에서 살았다고 한다.
유화(柳花), 훤화(萱花), 위화(葦花)의 세 딸을 두었는데, 그 중 맏딸 유화가 천제(天帝)의 아들 해모수(解慕漱)의 유혹에 빠져 정을 통하자 하백은 몹시 화를 냈으나, 해모수가 천제의 아들임을 확인하고는 이들의 혼인을 허락하였다. 그러나 유화가 해모수로부터 버림을 당하자 가문을 더럽혔다고 하여 유화를 우발수(優渤水)로 내쫓았다. 이 유화가 후일 고구려 시조인 주몽을 낳았다고 한다.
하백을 ‘해발’(태양의 광명이라는 의미)이라는 한국고대어의 음차(音借)로 보아 태양신으로 풀이하는 견해도 있다. 그렇지만 중국신화에 나오는 하백이 수신인 점이나, 그의 혈통을 이은 주몽의 탁월한 수계(水界) 지배능력에 대한 전승들로 미루어, 수신으로 보는 것이 옳다는 견해도 있다.

3.1. 주몽신화와 하백

하백은 주몽의 외할아버지이다. 즉 주몽 어머니인 유화부인의 아버지이다. 따라서 주몽신화의 처음 부분에 하백이 등장한다. 주몽 신화는 다음과 같다.

성북(城北) 청하(靑河)에 하백(河伯)의 세 딸이 아름다웠는데 장녀는 유화(柳花), 차녀는 훤화(萱花), 계녀는 위화(葦花)라고 하였다. 그녀들이 청하로부터 웅심연(熊心淵) 위로 놀러 나가니 신 같은 자태는 곱고 빛났으며 수식한 패옥이 어지럽게 울려 한고(漢皐)와 다름이 없었다. 왕(해모수)은 이들을 보고 좌우에게 말하되 ‘얻어서 왕비를 삼으면 아들을 두리로다’ 하였다. 그녀는 왕을 보자 즉시 물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좌우가 말하기를 ‘대왕께서는 어찌 궁전을 지어 여자들이 들어가기를 기다렸다가 마땅히 문을 닫지 않으십니까’ 하니 왕이 그렇게 여겨 말채찍으로 땅을 그으니 동실(銅室)이 문득 생기어 장관이었다. 방 가운데는 세 자리를 마련해 놓고 동이술을 두었다. 그 여자들이 각각 그 자리에 앉아서 서로 권하며 술을 마시고 크게 취하였다. 왕은 세 여자가 크게 취하기를 기다려 급히 나가 막으니 여자들이 놀라서 달아나고 장녀인 유화만이 왕에게 붙들린바 되었다.
하백은 크게 노하여 사자를 보내 말하기를 ‘너는 어떤 사람인데 나의 딸을 머물게 하였는가’ 하니 왕은 대답하되 ‘나는 천제의 아들로 이제 하백에게 구혼하고자 한다’ 하였다. 하백이 다시 사자를 보내 말하기를 ‘네가 천제의 아들로 나에게 구혼을 하려 한다면 마땅히 중매를 보내야 될 터인데 이제 갑자기 나의 딸을 붙잡아 둔 것은 어찌 실례가 아닌가’ 하였다. 왕은 부끄럽게 여겨 장차 하백을 가서 보려 하고 방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그 여자를 놓아 주려고 하였으나 여자는 이미 왕과 정이 들어서 떠나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왕에게 권하기를 ‘오룡거(五龍車)만 있으면 하백의 나라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였다. 왕이 하늘을 가리켜 고하니 문득 오룡거(五龍車)가 공중으로부터 내려왔다. 왕과 여자가 수레를 타니 풍운(風雲)이 갑자기 일어나며 그 궁(하백의 궁전)에 이르렀다. 하백은 예(禮)를 갖추어 이들을 맞이하고 자리를 정한 뒤에 말하되 ‘혼인하는 법은 천하에 통용하는 법인데 어찌하여 예를 잃고 나의 가문을 욕되게 하였는가? 왕이 천제의 아들이라면 무슨 신이함이 있는가’ 하니 왕이 말하되 ‘오직 시험해 볼 따름이다’라고 했다. 이에 하백이 뜰 앞의 물에서 이어(鯉魚)가 되어 놀자 왕은 수달로 변화해서 이를 잡았다. 하백이 다시 사슴이 되어 달아나니 왕은 늑대가 되어 이를 쫓고 하백이 꿩으로 변화하니 왕은 매가 되어 이를 쳤다. 하백이 이 사람은 참으로 천제의 아들이라 여기고 예로써 혼인을 이루고 왕이 딸을 데려갈 마음이 없을까 겁내서 잔치를 베풀고 술을 왕에게 권해서 크게 취하게 한 뒤 딸과 함께 작은 혁여(革輿)에 넣어서 용거(龍車)에 실어서 승천하도록 하였다. 그 수레가 물을 채 빠져 나오기 전에 해모수는 바로 술이 깨어서 여자의 황금 비녀를 취해서 혁여를 찌르고 그 구멍으로 홀로 나와 하늘로 올라갔다.
하백은 크게 노하여 그 딸에게 말하되 ‘너는 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나의 가문을 욕되게 했다’ 하고 좌우에게 명령해서 딸의 입을 잡아 늘려 그 입술의 길이가 삼척이나 되게 하고 다만 노비 두 사람을 주어 우발수(優渤水) 가운데로 귀양 보냈다.

주몽신화에서의 하백은 주몽의 아버지인 해모수가 천상의 세계를 대표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물의 세계, 혹은 땅의 세계를 대표한다. 하늘의 혈통과 물, 땅의 혈통을 이어받음으로써 주몽의 신이성은 보다 완전해진다. 하백은 주몽에게 완전한 신이성을 부여하기 위한 모계 혈통의 정수인 것이다.

3.2. 중국의 하백

3.2.1. 하백 신화의 기원

황하는 중국 역사의 주류이다. 중국 상고사를 빛나게 한 소위 하(夏), 은(殷), 주(周) 삼대가 모두 황하를 중심으로 흥망성쇠를 거듭하였다. 고대 중국에서 황하는 그야말로 각 민족의 생명의 젖줄이자 서로 다른 왕권의 요람이었다. 황하에 대한 제의와 신앙은 많은 신화와 전승을 만들어 내었고, 그중 가장 풍부한 고사성과 낭만성을 갖추고 있는 전승이 하백 신화이다.
일반적으로 하백은 황하신의 전칭으로 낙수(落水)에 낙신(落神)이 있고, 강수(江水)에 강비(江妃)가 있고, 상수(湘水)에 상군(湘君), 상부인(湘夫人)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황하를 주재하는 하신(河神)으로 알려져 왔다. 하백 신화의 기원은 황하의 신을 굳이 ‘하백’으로 불렀던 연유를 살펴보면 분명해진다. 왕부지 등에 따르면 고대 중국인들은 일찍이 사독을 제후로 간주했기에 사독 중 수장인 황하를 하백이라고 하였다. 이는 소위 황하의 인격화에 따른 칭호일 수도 있고 더 나아가 범신론적인 원시 사유로 형성된 명칭일 수 있다. 또 문숭일에 따르면 하백은 풍백이나 우사와 마찬가지로 황하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영웅인물이나 혹은 그 영웅인물이 속한 부족명에서 유래한 것이다.
사실상 황하는 이미 은대에 인격화되어 신성으로 인식되어 왔다. 때문에 은인들이 희생이나 옥(玉) 심지어 사람을 제물로 삼아 하신에 제사하는 것이 이미 평상적인 제례가 되었으며, 이 제례를 거행했던 제지(祭地)가 바로 태산(泰山)에 가까운 황하 연안이었다. 황하의 신은 역대 황제들의 끊임없는 제사와 관작의 승격(加封) 아래 황하의 흐름과 같이 정지함이 없이 자체적으로 유동하고 변화하게 되었다. 하신은 원고한 물고기나 뱀 종류의 동물에서 신인동체(神人同體)의 하백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신성으로 인식되었던 황하의 신은 인문정신의 발달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차츰 인격화되기 시작하였다. 즉 신성의 요소와 인성의 요소가 혼재하게 신인동체의 형상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인성의 요소가 차츰 강화되기 시작하면서 상고 선민들은 황하의 신을 자신들의 현실세계의 관리의 직능과 유사한 ‘황하의 안녕과 범람을 조절하고 주관하는 관리자의 의미’로서 ‘하백’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아울러 하백은 황하를 대표하는 하신의 이름으로 고착되었으리라 생각된다. 이런 과정은 ‘풍백’과 ‘우사’도 마찬가지이다. 또 이러한 변화 과정에서 하백은 상당한 기간 동안 황하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영웅이나 부족의 명칭과 하나로 일치하거나 혼동되어 불렸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므로 하백은 일반적인 하신이라는 의미와 황하의 신이라는 의미, 그리고 황하의 물(河水)을 관리하고 관장한다는 현실세계의 질서가 신화에 투영된 복합적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3.2.2. 중국의 하백 신화와 주몽신화

하백 신화의 발생지를 살펴보면 그것은 은나라 사람의 신화 전승이다. 『산해경』「대황동경」과 『죽서기년』의 기록에 하백과 더불어 언급되는 왕해(王亥)는 바로 은인(殷人)의 선조이기 때문이다.

왕해라는 사람이 있어 두 손에 새를 잡고 지금 그 머리를 먹고 있는 중이다. 왕해가 유역(有易)과 하백에게 잘 먹여 튼튼한 소를 맡겼는데 유역이 왕해를 죽이고 길든 소를 차지했다. 하백이 유역을 생각하여 유역을 몰래 빠져 나오게 하여 짐승들 사이에 나라를 세우고 지금 그것을 먹고 있다. (이 나라를) 요민(搖民)이라고 한다. 순임금이 희(戱)를 낳고 희가 요민을 낳았다.(『산해경』)

은왕 자해(子亥)가 유역에 손님으로 갔는데 방종하여 유역의 임금 면신(線臣)이 그를 죽여서 버렸다. 이 때문에 은의 임금 갑미(甲微)가 하백에게 군사를 빌어 유역을 쳐서 멸망시키고 마침내 그 임금 면신을 죽였다.(『죽서기년』)

『초사』「천문」과 「구가」에 묘사된 하백은 신화적 색채를 가장 완전하게 보유하고 있는 최초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이미 열거한 『산해경』이나 『죽서기년』의 하백에 관한 언급은 특정한 역사 배경을 가지고 있거나, 혹은 이미 완벽하게 역사화되어 버린 하백에 관한 기록들이다. 특히 똑같은 『초사』의 기록이지만, 하백에 관한 형상이 완벽하게 서로 달리 묘사되고 있다는 점에서, 『초사』의 하백에 관한 기록은 변천 과정이나 경로를 더듬어 보는 데 매우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초사』의 「천문」에서는 하백이 분명 예에게 활을 맞고 아내를 빼앗겼음에도 오히려 천제는 하백의 잘못을 꾸짖어 모든 죄를 하백에게 책임을 묻고 나무라는 것으로 묘사될 정도로 신화적 형상이 부정적이다. 뿐만 아니라 『회남자』「범론훈」고유의 주석에서는, ‘하백이 사람을 물에 빠트려 죽이자 예가 그의 왼쪽 눈을 쏘았다’라고 하여, 사람을 익살시키는 못된 악신의 형상으로 묘사되고 있다. 특히 저소손(褚少孫)이 보완한 『사기』「골계열전(滑稽列傳)」에 나타나는 「河伯娶婦」 고사에서는 사람을 제물로 향유하는 완벽한 흉신악살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구가․하백」편에서는 이와는 전혀 다른 생기발랄하고 낭만에 가득 찬 생동적인 하신 하백의 구체적 형상이 묘사되고 있다. 여기에서는 아름다운 한 미인과 함께, 두 마리 용이 끄는 연꽃잎으로 덮개를 한 물결 수레를 타고서, 구하를 노니는 하백의 발랄하고 유쾌한 자태를 쉽게 엿볼 수 있다. 그가 거처하는 곳은 고기 비늘로 이은 지붕에, 용 비늘로 지은 집에, 대문은 보라색 조개로 만든 진주 궁전이다. 그 환상적 아름다움과 낭만적 분위기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흰 자라 타고 무늬 있는 고기를 좇으며, 아름다움 미인과 더불어 즐거워하다, 마침내 미인의 손을 놓고 작별을 하는데 이르러서는 신인조화(神人調和)의 극치를 보여 주고 있으니, 앞에 나오는 흉신악살의 모습은 단 한 점도 찾아볼 수 없다.
하백의 형상을 「천문」과 「구가」가 이처럼 완전히 서로 다르게 묘사하고 있는 데는 반드시 필연적인 연유가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가설은 대략 다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하백 신화가 『초사』에 기록되기 훨씬 이전에 이미 두 가지 서로 다른 형태로 민간에 전해졌을 것이라는 점이고, 둘째는 원래의 하백 신화가 초국에 이르러 독특한 문화환경과 자연환경 등의 영향으로 새롭게 개조되어 유전되다가 마침내 다른 지방의 신화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고착되었을 가능성이다.
하백 신화가 두 가지의 서로 다른 형태로 초국에 전해졌다는 것은 문숭일의 견해로, 그는 「천문」의 ‘(예는) 어째서 하백을 쏘고, 낙수의 여신 복비를 처로 삼았나’의 형식이 틀림없이 『죽서기년』의 ‘낙백 용이 하백 풍이와 싸우다’의 고사와 관계가 있으며, 이러한 신화는 당시의 부락정치에 인연하여 발전된 결과로서, 중국의 동북부에 유전되어 하백이 마침내 고구려 개국시조 주몽의 외조부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구가」에 묘사된 하백으로, 후세에 나타나는 하백 신화 모두가 이 「구가」 속에 묘사된 하백 신화가 진화된 결과라고 보고 있다.
하백 신화 가운데서 동북방 계통에 속한다고 일컫는 주몽 신화의 고사를 광개토대왕비의 기록과 왕충(王充)의 『논형』, 배송지(裵松之)가 인용한 『위략(魏略)』『양서(梁書)』『주서(周書)』『북사(北史)』그리고『삼국사기(三國史記)』「고구려본기(高句麗本紀)」 등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주몽이 위급할 때 어별(魚鼈)들이 도움을 주어 위난을 모면하는 장면이 있다. 외조부 하백이 황하의 신이자 어별을 백성으로 하는 수중 통치자이기 때문에 외손자 주몽이 위급할 때, 어별이 다리를 놓아 구제하였다는 것은 아주 당연한 신화적 논리이며, 또한 이는 『안자춘추』나 『한비자』등과 동일한 형태의 하백 신화에서 파생되어 나와 고구려 건국 신화의 일부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천문」을 중심으로 한『죽서기년』그리고 『산해경』의 하백을 원류로 전승된 것이며, 또 「천문」등에 보이는 하백 신화는 모두 중국의 동북부 지방 바로 고구려의 옛 땅에서 발생하여 후세에 전승된 것임을 말해 준다.
참고문헌 및 도판
▒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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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규, 『중국신화연구』, 고려원, 1996
이재곤, 『서울의 민간신앙』, 백산,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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