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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영

알영

1. 알영부인과 설화의 상징

1.1. 알영부인과 그의 출생 설화
알영부인은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의 부인이다. 그의 출생과 박혁거세와의 혼인에 대한 이야기는 『삼국유사(三國遺事)』 ‘제 1권 기이편 신라시조 혁거세왕조’에 자세히 실려 있다. 그 이야기를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옛날 진한 땅에는 여섯 마을이 있었다. 첫째는 알천양산촌이다. 지금의 담엄사 남쪽에 있었다. 촌장은 알평이다. 처음 표암봉에 내려 왔다. 이 사람이 급량부 이(李)씨의 조상이 되었다. 노례왕 9년에 설치해서 이름을 급량부라 했는데, 고려 태조 천복 5년(1000년) 경자에 중흥부로 개명하였다. 파잠동산, 피상동촌이 이에 속한다. 둘째는 돌산고허촌이다. 촌장은 소벌도리이다. 처음 형산에 내려왔다. 이가 사량부 정(鄭)씨의 조상이다. 지금은 남산부라고 한다. 구량벌, 마등오, 도북, 회덕 등 남촌이 이에 속한다. 셋째는 무산대수촌이다. 촌장은 구례마이다. 처음 이산에 내려 왔다. 이가 점량부 또는 모량부 손(孫)씨의 조상이 되었다. 지금은 장복부라 이른다. 박곡촌 등 서촌이 이에 속한다. 넷째는 취산진지촌이다. 촌장은 지백호이다. 처음 화산에 내려 왔다. 이가 본피부 최(崔)씨의 조상이 되었다. 지금은 통선부이다. 시파 등 동남촌이 이에 속한다. 최치원은 본피부 사람이다. 지금 황룡사 남쪽 미탄사 남쪽에 옛 터가 있다. 이것이 최씨의 고택이라 하는데 아마 명확할 것이다. 다섯째는 금산가리촌이다. 촌장은 지타이다. 처음 명활산에 내려 왔다. 이가 한기부 배(裵)씨의 조상이다. 지금은 가덕부라 이른다. 상서지 하서지 내아 등 동촌이 이에 속한다. 여섯째는 명활산고야촌이다. 촌장은 호진이다. 처음 금강산에 내려 왔다. 이가 습비부 설(薛)씨의 조상이다. 지금 임천부이다. 물이촌 잉구미촌 궐곡 등 동북촌이 이에 혹한다.
위의 글을 살펴보면, 이들 육부의 조상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것 같다. 노례왕 9년(32년)에 처음 육부의 이름을 고쳤고 또 육성(六性)을 주었다. 지금 민간에서 중흥부를 어머니라 하고, 장복부를 아버지라 하고, 임천부를 아들이라 하고, 가덕부를 딸이라 하는데, 그 사실 여부는 자세하지 않다. 전한 지절 원년(기원전 69년) 임자 3월 초하루에 6부의 조상들이 각각 자제를 거느리고 알천 언덕 위에 모두 모여 의논하였다. “우리들은 위로 백성을 다스릴 임금이 없으므로 백성들은 모두 흩어져서 제멋대로 하고 있다. 어찌 유덕한 사람을 찾아, 그를 군주로 삼아 나라를 세우고 도음을 열어야 하지 아니하겠습니까?” 이에 높은 곳에 올라가 남쪽을 바라보니 양산 아래 나정 곁에 전광 같은 이상한 기운이 땅에 드리웠고, 한 백마가 무릎 꿇어 절하는 형상을 하고 있었다. 찾아 가서 살펴 보니, 한 보랏빛 알이 있었고, 말은 사람을 보고 길게 울며 하늘로 올라갔다. 그 알을 쪼개어 사내아이를 얻었다. 용모가 매우 아름다워 사람들은 그 일을 놀랍고 기이하게 여겼다. 동천에 몸을 씻겼더니, 몸에서 광채가 나고, 조수가 줄지어 따르며 춤추었고, 천지가 진동하고 일월이 청명했다. 그로 말미암아, 이름을 혁거세라 하고 위호(位號)를 거슬감이라 했다. 그 때에 사람들은 다투어 경하하며 말했다. “이제 천자는 이미 강림했다. 마땅히 유덕한 여군을 찾아서 짝지어야 하겠다.” 이 날 사량리 알영정가에 계룡(鷄龍)이 나타나 왼쪽 겨드랑이로 여자아이를 낳았다. 용모가 매우 수려했다. 그러나 입술이 닭부리와 같았다. 데려가 월성 북천에 몸을 씻겼더니 그 부리가 떨어졌다. 그로 인하여 그 냇물의 이름을 발천이라 했다.
남산 서록에 궁실을 조영하고 두 아이를 봉양했다. 사내아이는 알에서 태어났으므로 알이 박과 같아서, 마을 사람들이 박(조롱박)을 박(朴)이라 하는 까닭으로 성을 박이라 하고, 여자아이는 태어 나온 곳의 우물이름으로 이름을 삼았다. 두 성인은 나이 열 세 살이 되었다. 오봉 원년(기원전 57년) 갑자에 사내아이를 세워 왕으로 삼고, 그리고 여자아이는 왕후로 삼았다. 국호를 서라벌 또는 서벌이라 하고, 혹은 사라 또는 사로라고 했다. 처음 왕이 계정(鷄井)에서 태어났으므로 혹은 계림국이라고 한다지만, 그것은 계룡이 출현한 상서로운 징조 때문에 이르는 말이다. 일설에는 탈해왕 때 김알지를 얻으면서 숲속에서 닭이 울어, 이에 국호를 고치어 계림이라 했다고 한다. 후세에 가서 드디어 신라의 국호가 정해졌다. 나라를 다스리기 육십일년에 왕은 하늘에 오른지 칠일 후에 남은 뼈가 땅으로 떨어졌다. 왕후도 또한 돌아가 국인이 합치어 장사지내려 했더니 큰 뱀이 따라다니며 방해하므로 오체(五體)를 각기 장사지내어 오름(五陵)이 되었다. 또한 이름을 사릉(蛇陵)이라고도 한다. 담엄사 북쪽 능이 이것이다. 곧 태자 남해왕이 즉위했다.

『삼국사기』, ‘권 제 1 신라본기 제 1 시조 혁거세 거서간조’에도 알영부인에 대한 간략한 기사가 실려 있다.

혁거세 5년(서기전 53년) 봄 정월에 용이 알영정에 나타나 오른쪽 옆구리에서 여자아이를 낳았다. 어떤 할멈이 보고서 이상히 여겨 거두어 키웠다. 우물의 이름을 따서 그의 이름을 지었는데, 자라면서 덕행과 용모가 뛰어났다. 시조가 이를 듣고서 맞아들여 왕비로 삼으니, 행실이 어질고 안에서 보필을 잘 하였다. 당시 사람들은 그들을 두 성인이라 일컬었다.

삼국사기의 알영부인에 대한 기사는 삼국유사의 그것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고 있다.

1.2. 토착세력을 상징하는 알영부인
알영을 왕후로 삼은 박혁거세는 신라의 시조이다. 그는 기원전 1세기경 경주를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던 6촌의 씨족장들의 추대를 받아 신라왕국의 시조가 되었다. 현재 그의 세력은 한나라의 침략으로 나라가 망하자 남쪽으로 남하했던 고조선의 유민들 중 한 유력 세력이었을 것으로 파악된다. 6촌은 고조선에서 남하한 유이민들 중 일부일 것으로 보이는데, 이들은 서라벌을 중심으로 6촌을 형성하며 사회발전을 이룩하고 있었다. 그러나 인구가 늘고 생산력이 크게 늘면서 6촌 사회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문제와 난간에 부딪히게 된다. 이때 고조선의 한 유력 세력으로서 서라벌 지역에 도달했던 박혁거세 세력은 뛰어난 철기문명, 청동기 문명과 뛰어난 통치술을 바탕으로 6촌 부족의 큰 저항없이 그들을 통합하는 지배자로 옹립되었다. 삼국유사나 삼국사기의 기록을 보면 그는 6촌을 통괄하는 지도자가 된 이후 뛰어난 통치술과 훌륭한 인품을 바탕으로 6촌의 통합 그리고 새로이 건국된 왕국의 토대를 착실히 다진 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유이민 집단의 우두로머리로 서라벌 지역의 새 통치자가 된 인물이 박혁거세라면 과연 알영 부인은 어떤 세력 집단의 여인이었을까? 먼저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삼국유사에 실린 설화의 상징성을 풀어보자. 먼저 혁거세의 왕비인 알영이 알영정에서 출현한 계룡(鷄龍)의 겨드랑이에서 출생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알영이 계룡의 겨드랑이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는 석가모니가 마야부인의 겨드랑이에서 출생했다는 이야기를 각색한 것으로 보이는데, 계룡이 우물에서 나타났다는 것은 알영의 세력이 토착적 성격을 지닌 집단임을 의미한다. 알영이 용의 옆구리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알영 세력이 아울러 해양세력이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닭은 날지 못하므로, 계룡이라 했던 것은 알영이 닭토템을 신앙하는 토착세력이었음을 의미한다. 닭 토템은 후대에도 신라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지녔던 것으로 보인다. 『삼국유사』 ‘제 5권 의해편 귀축제사(歸竺 諸師, 천축에 간 여러 스님들)’ 조를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인도인들은 신라를 ‘구구탁 예설라’라고 하였는데 구구탁은 닭이라는 말이요 예설라는 신라말로 귀하다는 말이다. 그 나라에 전해오는 말로는, ‘신라는 닭의 신을 섬겨 머리에 날개 짓을 꽂아 꾸미개로 삼았다.

이 기록은 신라와 닭 토템이 후대에도 계속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러한 닭 토템과 신라와의 밀접한 연관 관계는 닭이 경주 지역의 토착세력의 토템신으로 숭배 받았고, 그 토착세력이 계속해서 신라의 주요한 지배세력으로 존속했음을 보여준다. 닭은 날이 밝음을 알리는 일을 하므로, 반도의 동쪽 끝 해가 제일 먼저 솟아오르는 서라벌 지역에서 닭은 매우 신성한 존재로 인식되었고 그러한 연유로 신라의 닭토템은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입술이 부리모양이었던 알영을 발천에서 목욕시켰더니 알영의 부리가 떨어져나갔다는 이야기는 무엇을 의미할까? 물에 씻자 부리가 떨어져나갔다는 것은 물이 성수(聖水)의 구실을 하였음을 뜻한다. 물은 맑으며 모든 생명의 원천이다. 그런 물은 모든 죄를 씻는 성수이자 한 존재를 다른 존재로 거듭나게 하는 매개체이다. 비단 기독교가 아니더라도 물로 세례하는 것은 고대사회에 널리 퍼진 민속이다. 알영은 세례의식을 통하여 닭에서 혁거세 세력과 혼인할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난 것이다. 이로써 천상계로 상징되는 외부세력과 계룡으로 상징되는 토착집단이 혼인을 통하여 연합정권이 형성되고 혁거세 세력을 중심으로 신라 왕국이 건국되는 것이다.
결국 알영부인과 박혁거세의 결합을 말해주는 위 설화는 닭토템을 신앙했던 토착세력의 한 자제인 알영부인이 새로운 통치세력으로 부상한 유이민 세력의 유력한 지도자인 박혁거세와 결합한 사실을 담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당시의 신라 건국이 발달된 문명과 뛰어난 통치술을 지닌 유이민 세력이 토착 세력과의 연합을 통해 달성된 것임을 입증시켜 주고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단편적 기록을 살펴보면 알영부인은 왕후로 있으면서 그 행동이 매우 성실했으며 그 덕이 크게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1.3. 알영부인에 관한 이야기 한편
박혁거세 왕이 나이가 무척 들었을 때였다. 그는 이상하게도 밤이면 어딜 다녀오는 것이었다. 그것도 늦은 밤 신하의 호의도 없이 나가는 것이었다. 이런 그의 행동에 가장 의심을 품은 사람은 알영 부인이었고, 그녀는 왕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그러나 왕은 잠시 다녀온다는 말 뿐 그이상의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알영 부인은 어느 날 왕을 몰래 따라가 보았다. 왕이 말을 타려 하는 순간, 어디서 말방울 소리는 들리는데, 말발굽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었다. 좀 더 지켜보니 그 말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말이었다. 왕의 일에 대해선 좀처럼 간섭을 하지 않았던 알영부인이지만 이 일에 대해선 왠지 모르게 크게 걱정되고 숱한 의심이 일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도술을 잘 쓴다는 사람을 불러 자초지정을 이야기하고는 대책을 물었다. 그러나 도술을 잘 쓴다고 불려온 이는 왕이 연관된 일이라 발뺌만을 계속하였다. 부인이 다른 계책을 생각해 내어 어쩔 수 없이 작은 미물로 변하는 도술을 그 술사에게 물었다. 그는 그 요구만은 쉽게 들어 주었다. 어느날 밤 왕이 또 스스로 일어났다. 밖에는 여전히 말방울 소리가 들렸다. 부인의 작은 미물로 변해 말에 붙었다. 말은 순식간에 왕을 태운 채 하늘로 치솟더니 천국에 도착하였다. 하늘에는 옥황상제가 있어 예를 갖추어 왕을 반갑게 맞이하였다. 곧 풍악이 울리고 왕과 옥황상제는 음식을 들었다. 옥황상제가 왕에게 이제 이 곳에서 함께 할 날이 머지 않았다며 기쁨을 표하였다. 그렇게 담소를 주고받던 중 갑자기 옥황상제의 얼굴에 노여움이 나타내며, "이 보시오, 어찌하여 이 곳에 인간을 데리고 왔소. 인간을 데리고 오면 안된다는 것을 모른단 말이오."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혁거세왕은 그 뜻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놀람운 표정을 지었다. 이 때 옥황상제가 말을 데려다가 빗질을 시키는 것이었다. 그러자 한 미물이 떨어지더니 점점 사람의 형상으로 변해갔다. 바로 알영부인이었다. 그녀는 옥황상제에게 용서를 빌며 혁거세왕과의 친분은 변치 말아 달라고 애원하였다. 그러나 옥황상제의 노여움은 가실 줄 몰랐다. 알영부인은 다시 인간 세계로 보내졌다. 그런데 그 다음날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궁 앞에 혁거세왕의 몸이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져 널려 있었던 것이다. 곧 궁안은 눈물바다로 변했고 장을 치른 후 혁거세왕의 시신을 한데 모아 왕릉을 만들었다. 그런데 다음날 커다란 폭음과 함께 왕릉이 폭발하며 왕의 시신이 나와 널려졌다. 그런 일이 있자 신하들은 궁리 끝에 시신을 각 부분으로 나눠 다섯 개의 능을 만들어 안치하였다 하고 그 능이 오릉이 되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단지 구전되어 온 이야기이므로 그 사실성 여부를 파악하기는 힘들다. 알영부인이 박혁거세를 몰래 미행을 하여 그 덕택에 박혁거세왕이 옥황상제에게 큰 노여움을 받게 되었고 마침내 박혁거세왕은 죽은 후 몸이 5등분되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는 위의 이야기는 그 신빙성이 매우 미약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이야기에선 단순히 알영부인의 경솔한 행동을 부각시키는 측면 이외에는 어떤 중요한 사실도 담고 있지 않는 듯 하다.

참고문헌 및 도판

▒ 참고 문헌
김부식, 정구복 외 4명 번역, 『역주 삼국사기』2, 4 (정신문화연구원, 2003)
일연, 이재호 번역, 『삼국유사』1, 2, (솔, 2002)
김기홍, 『천녀의 왕국 신라』(창작과 비평사, 2000)
윤철중, 『한국의 시조신화』(보고사, 1996)
김정환, 『상상하는 한국사』1~3 (푸른숲, 1996)
이도흠, 『신라인의 마음으로 삼국유사를 읽는다.』(푸른 역사, 2000)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