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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차

야차
1. 개요

야차는 인도의 『베다(Veda)』에 나오는 신적 존재이다. 야차란 명칭은 산스크리트어 야크샤(Yaksa)의 음역으로 약차(藥叉)라고도 쓴다. 약차(藥叉), 열차(悅叉)라고도 한다. 능감귀(能瞰鬼), 첩질귀(捷疾鬼), 경첩(輕捷), 용건(勇健), 포악(暴惡) 등으로 한역된다. 야차(夜叉)는 또한 야차팔대장(夜叉八大將), 십육대야차장(十六大夜叉將)으로 불린다. 야차란 본래 놀라게 한다는 뜻인데 거기에 민첩, 용맹, 교활, 비밀 등의 뜻이 보태졌다. 볼 수 없고 초자연적인 힘을 지니고 있어 두려워하게 되는 귀신과 같은 성격을 가졌는데, 공양(供養)을 잘하는 사람에게는 재보(財寶)나 아이를 갖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후에는 귀신(鬼神: 羅刹)의 하나로 여겨졌고, 불교에서는 불교를 지키는 신으로 되어 있다. 『베다』에도 나타나지만 원래 비(非)아리안적 민간신앙의 신으로, 야크샤는 남신(男神)이고 여성신 야크시니는 지모신(地母神), 수신(樹神)으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인도의 신화시대에는 북방 산악지대에 사는 쿠베라(Kubera, 財寶神)의 권속으로서 사람을 잡아먹는 포악한 귀신이었지만, 불교에 들어와서는 8부중의 하나가 되어 나찰 등과 함께 북방 비사문천의 권속이 되었다. 위덕, 포악, 귀인, 사제귀 등으로 번역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야차 역시 다른 8부중들처럼 특정한 고유 명사는 아니고, 비사문천의 권속인 귀신을 총칭하는 말이다. 불법 수호를 목적으로 하고 있으나, 북방의 수호 또는 재보를 지키는 성격도 아울러 갖고 있다.
현재 우리들이 야차라고 할 때는 보통 악귀(惡鬼)라는 의미로 쓴다. 그러나 불경에서는 야차가 매우 좋은 중생으로 묘사되어 있고, 야차팔대장의 임무는 중생계(衆生界)를 수호하는 것이라고 했다. 야차에는 천야차, 지야차, 허공야차의 세 종류가 있어 천야차와 허공야차는 하늘을 날아다니지만 지야차는 날지 못한다. 특정한 신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고 일반적인 총칭이며 다문천의 권속으로서 도리천을 수호한다고 한다. 형상으로 표현할 때에는 사자, 코끼리, 호랑이, 사슴, 말, 소, 양 등의 형태로 표현하기도 하고 사람으로 표현할 때에는 얼굴을 둘 또는 셋으로 나타내기도 하고 손에는 모두 무기를 들고 있다.
염마졸(閻魔卒)이나 민간에서는 두억시니라고도 한다. 불경 속에 나오는 용모가 추하고 사람을 해하는 악독한 귀신(鬼神) 야차들도 깨우침을 얻고 선한 일을 하여 신들의 수하가 되는 자들도 많다. 그 대표적 존재가 금강야차이며 12지신도 12야차장군이었다고 한다.

2. 미술 속의 야차

인도에서의 야차상은 불상이 출현하기 이전 마우리아 왕조 때부터 만들어져 현재 탑문의 부조 등에 많은 예가 남아 있다. 상반신은 나체로 가슴과 허리에 띠를 매고 얇은 치마로 하반신을 감싸고 있으며 손은 합장하고 있다. 또 야차상의 여성상인 약시상은 풍만한 가슴과 허리를 노출시키고 각종의 다양한 장신구로 몸을 장식하고, 한 손을 들어 과일 나뭇가지를 잡은 모습으로 표현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원래는 인도 민간 신앙의 신이었던 야차가 탑을 보호하는 수호신으로서 적극적으로 불교에 들어왔다고 생각된다.
『천길의신주경(天吉義神呪經)』이라는 불교 경전에 기록된 야차의 형상은 “여러 야차, 나찰귀들이 있어 각종 형상을 띠고 있다. 즉 사자, 코끼리, 호랑이, 사슴, 말, 소, 낙타, 양 등의 모습이거나 큰 머리에 몸이 마르고 작거나 1두 2면 또는 3면이나 4면이다. 때로는 거친 사자의 털과 같다. 3두, 혹은 송곳니가 거친 입술 사이로 내려오는 등 이상한 형태로 세상에 두려움을 준다. 방패와 창, 삼지창과 검을 잡고 때로는 철퇴, 칼, 막대를 잡고 소리를 지르며 크게 울부짖어 공포감을 주며 힘으로 땅을 움직이기도 한다”라는 등 각종 변화가 풍부한 모습인데, 어느 것이나 두려움을 주는 모습으로 인도에서의 약시상과는 그 모습이 다르다.
숭복사지 3층 석탑과 같은 우리나라의 부조 상에서는 보통 양손을 가슴에 대고 새의 부리에 보관을 쓴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통일신라시대의 석굴암 8부중 상에는 머리 위에 불꽃 무늬가 있고, 입에는 염주를 문 모습이다. 또한 선림원지 석탑에서는 머리 위에 물고기를 얹은 모습으로 나온다.

3. 야차와 한국의 도깨비

동양문화사에 있어서 어떤 문제이든 간에 불교(佛敎) 이전의 것이냐 불교 이후의 것이냐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정도로 불교가 끼친 영향력이 강했던 것이다. 이에 따라서 도깨비문화에 있어서도 불교 이전의 도깨비냐 불교 이후의 도깨비냐는 문제가 중요시 된다. 불교 이전의 세계에서 중국은 도깨비를 귀신(鬼神)이라고 했고, 한국은 도깨비라고 불렀고, 일본은 오니라고 불렀다. 가장 전형적인 도깨비로서 뇌공(雷公)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중국 사람들은 뇌신(雷神)이라고 불렀고, 한국 사람들은 벼락장군이라고 불렀고, 일본사람들은 가미나리사마라고 불렀다. 여기서 일본말 표현이 가장 깊은 관심을 끄는데 가미(神), 나리(嗚), 사마(님)는 보림, 신울림(신?)하는 님이라는 뜻이 된다. 『산해경(山海經)』에는 용신인면(龍身人面)의 괴물상으로 나타나 있지만 결국 삼국이 다 뇌공(雷公)을 신(神)으로 모셨다는 점은 삼국의 뇌신신앙(雷神信仰)만 살펴보아도 확실하다. 신으로만 믿고 있던 도깨비가 불교전래의 뒤를 따라서 불교전통의 야차(夜叉)나 나찰(羅刹)같은 흉물로 급변하고 사람을 해치고 잡아먹는 악마로 탈바꿈하게 된다. 그런데 동양전통의 특이한 도깨비신상이 야차나 나찰의 흉측한 모습으로 쓰인 것이다.

4. 도깨비

도깨비는 허주, 독각귀, 망량, 이매라고도 한다. 음허기로서 원시신앙적인 귀신사상에 의하여 형성된 잡신이지만, 음귀로서의 귀신과는 다르다. 도깨비는 사람이 죽은 후에 생기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이 일상생활의 용구로 쓰다가 버린 물체에서 생성된다고 한다. 즉, 헌 빗자루, 짚신, 부지깽이, 오래된 가구 등이 밤이 되면 도깨비로 변하여 나타나는데, 그 형체는 알 수 없으나 도깨비불이라는 원인불명의 불을 켜고 나타난다고 한다.
또 이 귀신은 다른 귀신과는 달리 사람에게 악한 일만 하는 것이 아니고, 장난기가 심하여 사람을 현혹하고 희롱도 하며, 잘 사귀면 신통력으로 금은보화를 가져다주는 등 기적적인 도움을 주기도 한다고 한다. 성질이 음(陰)하기 때문에 동굴, 오래된 집, 오래된 나무, 계곡 같은 곳에 모여 살다가 밤에 나와 활동한다고 한다.
도깨비에 대한 관념은 옛날부터 민속적으로 정신적인 바탕을 이루는 요소가 되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여러 가지 설화를 낳았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를테면, 도깨비는 초인적인 괴력(怪力)을 지니고 있으므로 황소를 지붕 위에 올려놓고, 솥뚜껑을 솥 속에 넣으며 큰 산을 움직이고, 큰 바위를 굴리며 많은 물을 단숨에 마신다는 것이다.
도깨비는 이 괴력으로 심술궂은 일도 많이 하는데, 논에 개똥을 가져다 놓으며, 밤사이에 가구를 엎어 놓고, 국수를 산에다 버리기도 하며, 물고기나 궤를 훔쳐간다. 이와 같은 설화는 아직도 민간에서 많은 사람이 은연중에 믿고 있다. 그 단적인 예로, 밤에 산길이나 들길을 혼자 걸을 때 은근히 두려운 생각이 들거나 압박감에 사로잡히는 것은 도깨비를 의식하기 때문이다.
도깨비의 형태는 독각귀라는 말처럼 다리가 하나밖에 없으며, 그래서 씨름을 할 때에는 다리를 감아야 넘어지고, 키가 커서 하반부는 보이나 상반부는 보이지 않아 얼굴을 알 수 없다. 진(晉)나라의 갈홍(葛洪)은 저서 『포박자(抱朴子)』에서 도깨비를 잘 설명하고 있는데, “산정(山精) 도깨비는 모양이 어린애와 같고 외발로 뒷걸음질쳐 걸으며 밤을 좋아하고 사람을 해치는데 그 이름을 소(籍)라고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뾰족한 뿔에 커다란 몸집을 가지고 있고 힘이 아주 센 신비한 존재이다. 무엇이든지 이루어지게 하는 신기한 도깨비 방망이와 모습을 안 보이게 하는 도깨비감투를 가지고 있다. 밤중에 길을 가다 보이는 파란 불빛은 도깨비불이라고 불린다.
장난치기를 좋아하지만 아주 악한 존재는 아니며, 어리석어 보이기도 한다. 주로 밤중에 어두운 숲 속이나 폐가에 모습을 드러낸다.

4.1. 도깨비의 어원

도깨비의 어원은 박은용의 '목도자(木都자)'와 '돗가비'의 합성어란 설이 있다. '목도자(木都자)'에 나오는 '두두리(豆豆里)'는 절구질 할 때의 형상을 나타내는 것으로 농경사회의 방아작업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도깨비 내용이 삽입된 방이설화나 도깨비에게 주는 가장 중요한 제물이 메밀묵에서 알 수 있다.
그리고 '돗가비'설은 '돗+가비'의 합성어로 돗은 불(火)이나 종자(種子)의 의미로 풍요를 상징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단어이고 '아비'는 아버지의 의미로 '장물애비' , '처용아비' 등의 통계로 볼 때 성인남자로 이해된다.
이들 용어는 돗+가비>도ㅅ가비>도까비>도깨비 와 돗+가비>도ㅅ가비>도비>도채비의 발전과정을 보여준다. 위의 예로 보면 농경사회를 배경으로 도깨비는 복(福)을 가져다주는 신격임을 알 수 있다. 우리 민족의 토착 신격 중에 하나로 전승되어 왔음은 분명하다.


4.2. 도깨비의 성격

도깨비의 성격은 귀신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매우 인간과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먹고 마시며, 춤추고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 예쁜 여자를 좋아하고 심술을 부리기도 한다. 도깨비는 이렇게 사람과 흡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반면 조화가 무궁하여 인간이 해내지 못하는 일을 해내는가 하면, 힘이 장사이고 신통력을 가지고 있어 사람을 부자로 만들어주기도 하고 망하게 하기도 한다. 이렇게 신통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우직하고 소박하여 인간의 꾀에 넘어가는 어리석은 면도 있다. 사람의 간교함에 복수를 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사람을 잘되게 도와주는 엉뚱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 결코 해치지 않는다. 착한 사람에게는 부(富)를 주고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괴로움을 준다. 이와 같은 설화나 민담에서 보이는 도깨비는 대체로 인간적이며, 교훈적이다. 또한 '도깨비 방망이'나 '도깨비감투'등을 가지고 있어 현실에서 실현하지 못하는 사람의 욕망을 상상할 수 있게 하기도 한다.
음식 면에서도 사람의 대작물인 메밀로 만든 묵을 도깨비는 최고의 음식으로 삼았다. 수수팥떡을 좋아하고, 시기와 질투도 있고, 멍청하기도 하다. 또 도깨비는 재주가 많고 힘이 세지만 말 피를 제일 무서워하며 언제나 배신당함으로써 인간을 못 당한다.
도깨비도 사람처럼 소외되면 화를 낸다. 노래와 막걸리를 좋아하며 씨름을 즐기고 체면을 중시한다. 도깨비는 실제로 '괴상한 짓'을 많이 하지만, 단순하게 인간에게 해코지만 하는 미물은 아니다.

4.3. 도깨비의 형체

도깨비이야기에서 묘사되고 있는 도깨비의 형체는 대부분이 도깨비불로 상징된다. 특히 도깨비불을 본 사람이 많다는 경험을 바탕으로 불의 형체를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가 있다. 일반적인 불빛은 밝은 색인데 도깨비불은 파란 불빛을 지니고 있다고 제보자들은 인식하고 있으며 아무런 불의 색이 없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하나가 둘이 되기도 하고 둘이 하나가 되고 여러 개로 분리되거나 합쳐지는 등의 변화를 보아면서 도깨비불의 신비성을 간접적으로 강조한다.
이와는 달리 도깨비와 직접 대면하는 이야기의 경우 형체는 사람의 모습과 유사하지만 특이한 체형으로 제시되는 경향이 강하다. 예를 들어 '키가 팔대장 같은 놈', '커다란 엄두리 총각', '다리 밑에서 패랭이 쓴 놈', ‘장승만한 놈', '팔대상 같은 놈' 일반적으로 표현되는 도깨비는 남성이며 이들은 총각이나 젊은 계층으로 나타나고 있다.
도깨비이야기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도깨비의 냄새에 대한 것이다. 도깨비는 일반적으로 노린내가 심하게 난다고 하며 키가 일반인에 비해 훨씬 크고 털보인 경우가 많다.

4.4. 잘못 알려진 도깨비의 모습

한국의 도깨비는 중국이나 일본의 귀(鬼)와 공통분모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이런 사실에 대해 현재까지 부분적인 논의가 있기는 했으나, 도깨비의 본래 모습을 확연하게 드러낼 수 있는 노력은 없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도깨비의 본래적 존재양상과 달리 도깨비의 왜곡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왜곡의 면모는 일본의 오니와 결부시켜 도깨비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것은 무분별한 일본 문화의 유입현상과 이를 적극적으로 전파하고 있는 매스미디어의 역할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특히 어린이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하고 있는 도깨비는 일본 오니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어린이들이 이런 도깨비의 모습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물론 문화적 국수주의 입장도 배척되어야 하지만 동시에 있는 그대로의 문화적 모습을 밝히고 이를 수용하려는 노력이 현재에는 더욱 필요하다. 도깨비의 진정한 존재 의미나 생존방식의 본질을 총체적으로 규명하려는 노력이 매우 필요하며 이를 완성시켜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요구된다.

5. 시대별 도깨비 문양

5.1. 도깨비기와의 특징

우리나라 고대미술에서 도깨비 형상은 각기 다음과 같은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우선 고구려 시대의 안악3호분의 팔각석주(八角石柱) 주두에 그려진 귀면(鬼面)을 보면 두 귀가 쫑긋하고 입가에 수염이 털복숭이 모양으로 난 것이 사자 같은 동물형상을 하고 있다. 이 형상은 서역 계통의 성전에서의 사자형상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물론 이 역시 잡신을 막는 벽사(酸邪)의 의미를 지닌 것으로 이는 귀면와당(鬼面瓦當)의 도깨비 형상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귀면와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계속 사용하여 왔는데 그 표현 수법은 시대를 따라 조형양식의 차이가 있다.
도깨비와는 다른 귀면과 다르게 특별히 강조되는 부분이 있으니 그것은 이마에 표현된 양쪽 뿔의 표현이다. 즉 용각(龍角)을 나타낸 것이다. 또한 얼굴 전체를 자세히 보면 일반적인 동물의 얼굴이 아니라 최대한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독특한 얼굴을 나타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기와는 일반적으로 도깨비기와라고 불리고 있지만 실은 용의 앞 얼굴을 나타낸 것이라는 의견이다. 본래 도깨비 얼굴 모양이 궁궐건축이나 무덤에 장식된 것은 주로 맹수의 얼굴로 표현되었으나 점차 불교 의장으로 변화되면서 용의 얼굴로 나타나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점차 시대가 바뀌면서 사람 얼굴에 가까운 도깨비 얼굴이 나타나는데 고려 때의 망와에서는 마치 장승(長生)의 얼굴모습 또는 가면(假面)의 모양이 특징을 이루고 있어서 그야말로 도깨비의 참모습이라 할 수 있는 형상이 일반적으로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일종의 의례적인 표현이라 하겠으니 예로부터 전하던 풍속을 무난하게 표현한 것으로 생각한다.

5.2. 고구려시대의 도깨비

고구려 귀면와는 모두 평양 부근에서 출토된 것이 대부분이며 일부 통구(通構)지방에서 출토된 것이 있다.
고구려 수막새는 원형(圓形)과 반원형(半圓形)이 있고 암막새와 내림막새 등에서 도깨비 형상을 다양하게 찾아볼 수 있다. 고구려 원형 수막새의 도깨비는 눈과 입을 매우 크고 두드러지게 강조하고 있는 반면에 뿔과 네발이 표현되지 않았다. 각선이 뚜렷하고 예리하며 볼륨이 뚜렷해서 신라, 백제의 조형수법과는 다르게 강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반원형 수막새의 도깨비는 네 다리를 모두 표현한 것이 고구려 고분벽화에서의 도깨비 형상과 상통한다.
고구려 내림막새는 출토된 예가 그다지 많지 않으나 큰 눈과 입을 거의 전면에 표현한 조형적 표현방법은 독특하며 융기선의 예리함은 고구려 미술의 특징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5.3. 백제시대의 도깨비

백제시대의 귀면와는 부여 동남리(東南里) 출토 서까래막 새기와가 있을 뿐이다. 여기에서는 상단 좌우에 큰 눈이 있고 중앙부에는 코가, 그 밑으로 날카로운 이빨이 묘사된 입이 있다. 그리고 턱에는 수염이 있고 주먹코같이 생긴 코의 콧등에 방형의 쇠못을 박았던 구멍이 있다. 이 귀면의 도깨비 형상은 고구려제와 유사하나 과감하게 생략하고 또 강조할 곳은 강조하여 매우 입체감이 돋보여 생동감을 불러일으키는 걸작이다. 백제기와에서는 도깨비를 새긴 것이 고구려, 신라의 경우와 다르게 많이 발견되지 않는 것이 다소 의아한 일이지만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문양전에서의 도깨비 형상은 고구려의 도깨비와 일맥상통 한다고 하겠다.

5.4. 통일신라시대의 도깨비

신라의 귀면와도 아직 발견된 예가 없다. 그러나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면 불교문화의 융성과 더불어 서역(西域)의 영향을 받은 동·식물문계 와당과 서수문(瑞獸紋), 서금문(瑞禽紋), 비천문(飛天紋), 가릉빈가문등을 비롯하여 도깨비문양을 새긴 다양하고 우수하며 조형미등을 비롯하여 도깨비문양을 새긴 다양하고 우수하며 조형미 넘치는 화려한 문양와당이 성황을 이룬다. 수막새기와의 도깨비 문양은 얼굴을 위주로 표현하는 형식인데 때로는 연화, 귀갑, 연주문 등이 테두리에 배치되는 경우도 있고, 암막새기와는 출토 예가 그다지 많지는 않지만 대기 융기선으로 표현되어 고구려의 귀면와 형식과 유사하다. 테두리에는 화문(花文), 당초문(唐草文)이 장식되는 등 화려하게 꾸며졌고 간혹 녹유한 것도 발견되는 등 매우 발전된 양상을 띠고 있고 불교의 영향을 엿볼 수 있으며 따라서 통일신라기의 건축이 얼마만큼 화려장엄 하였던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5.5. 고려시대의 도깨비

신라시대 전통적인 양식은 고려시대로 이어져서 고려초기에는 여전히 성행한다. 그러나 문양 자체가 많이 도식화되는 경향이 짙게 나타난다. 고려시대의 문양은 전반적으로 선(線)보다는 면(面)이 강조되고 귀면의 표현에서도 입술이 두껍고 혀를 내밀고 있는 형상을 강조시키고 공간구성이 안정감을 잃고 있다. 암막새기와에서는 마치 가면을 연상케 하는데, 입이 작아지고 수염이 형식적으로 표현되고 문양화 되는 등 전면적으로 치졸하고 섬약해지고 있다.
또 고려시대 후기를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수막새기와와 암막새기와에 표현된 이른바 해무리 무늬라 하는 반구형돌기만 표현된 것이 혹 귀면와의 눈만 암시적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고려시대의 망와(望瓦)에서는 마치 장승의 얼굴 모습을 닮거나 가면을 연상시키는 형상이 특징을 이루고 있는데, 예컨대 고려시대의 나무탈이라 전하는 안동 하회가면과 모습이 너무 흡사한 출토지를 알 수 없는 고려시대 망와가 있어서 흥미롭다.

5.6. 조선시대의 도깨비

조선시대에 와서는 통일신라기의 정형을 크게 벗어나서 얼굴 모습도 달라지고 뿔 모양이나 소용돌이 모양의 수염도 없어지고 그 날카로운 이빨도 볼 수 없다. 조선조 때의 도깨비는 순박한 우리 민속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하겠으니, 이 귀면들은 결코 무섭거나 위협적이라기보다는 해학적(諧謔的)이고 익살스러우며 순박한 성정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어느 것은 익살스러우며 순박한 성정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어느 것은 봉산 탈 같기도 하고 어떤 것은 송파 산대탈 같기도 하며 또는 장승을 닮거나 제주도 하루방을 닮은 것도 찾아볼 수 있다.
도깨비의 예를 보면 사자의 머리처럼 복슬복슬한 머리털과 우모(羽毛), 쫑긋한 귀, 윗입술 밑으로 날카롭게 뻗은 송곳니, 눈 꼬리를 치뜨고 부라린 눈, 이마에 당초모양의 주름살 등은 전체적으로 고래의 전통적인 모습을 따르고 있으나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슬며시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익살스러움이 엿보인다. 근엄함 표정 속에 어딘지 모르게 구수하고 순박하며 어리석은 듯한 표정은 언뜻 우리 주변에 있는 어느 사람의 얼굴과 너무 닮았다고 느낄 정도로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이 우리 미술 속에 보이는 도깨비 모습이라 생각된다.
세상에는 지금 우리가 믿고 있는 중국 남북조시대 도깨비상이 불교에서 따온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대로 전기(前期) 도깨비 상이 은(殷)나라 때 이루어진 것이고, 그것을 바탕으로 전개된 후기 도깨비상이 불교에서 왔다고는 볼 수 없는 일이다.
근세에 한국고유의 장승이 절간 문 앞에서 수호신 노릇을 하고 있듯이 풍신(風神)이나 뇌신(雷神)도 부처님 앞에 서서 수호신 노릇을 했던 것이다. 연화(連花)위에 발을 벌리고 서있는 백제의 도깨비 모습이나, 천등(天燈)을 쳐들고 있는 일본의 국보 목조각을 살펴보면 불교 이후의 도깨비상을 해득할 것이다. 불교에서는 도깨비 상으로 지옥의 옥졸을 삼았다.

6. 도깨비 설화 모음

6.1. 도깨비 다리

청송군 부남면 화장동에는 '도깨비 다리'라는 신비한 돌다리가 앞 내에 놓여 있다. 이 다리는 아무리 큰 홍수가 지더라도 꼼짝도 않으며 12개의 돌다리로 되어 있다. 다리 돌의 크기는 책상 정도이며 냇바닥의 경사도 20~40도의 경사로서 보통 같으면 약간의 홍수에도 떠내려갈 것 같이 보이나 본자리에서 이동되지 않고 있는 것이 신기한데 마을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홍수가 지면 7~8미터 떠내려가 있는 것을 분명히 보았는데 하룻밤만 경과하면다음 날 아침에 보면 제자리에 되돌아와 있다 하니 도저히 이해치 못할 일이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홍수가 져서 돌다리가 떠내려가면 밤사이에 공동묘지에서 도깨비들이 내려와 본자리에 옮겨 놓는다고 믿고 이것을 '도깨비 다리'라고 부르고 있다.

6.2. 도깨비불

양정공이 아직 소년이었을 무렵, 3형제가 부친을 따라 임지인 경산에 가서 살았다. 어느 날 밤 두 동생과 함께 한방에서 자고 있었는데 밤중에 오줌을 누러 밖으로 나왔다. 문득 앞을 보니 하얀 불덩어리가 현란한 오색 광채를 뿜으며 마치 수레바퀴처럼 공중에서 돌더니 갑자기 그것이 자기 앞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그 빠르기란 마치 번개와 같았는데 형은 깜짝 놀라며 방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방으로 채 들어서기도 전에 불덩어리가 먼저 방안으로 들어섰나 했더니 이내 사라지고 말았다. 순간 맨 구석에서 자고 있던 동생이 벌떡 일어나더니 비명소리를 내며 코와 입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지고 말았다.


6.3. 괴수도깨비

한 사람이 길을 가고 있었다. 산속에서 해가 져서 갈 데가 없을까 하고 사방을 둘러보다가 먼 곳에 기와집이 있는 것을 보고 그곳으로 찾아갔다. 그 집에는 처녀 하나가 살고 있었는데, 밤마다 도깨비가 나타나서 그 집의 식구를 하나씩 모두 잡아 죽이고 그 처녀 하나만이 남았는데, 오늘밤에는 그 처녀가 잡혀갈 판이라 하여 다른 곳으로 가서 자라고 말했다. 이 사람은 이런 말을 듣고 나서 처녀를 방안에 가두어두고 대청에 불을 훤히 밝힌 다음 무서운 탈을 쓰고 긴 담뱃대를 물고 대청에 버티고 앉아 있었다. 한밤쯤 되자 도깨비 떼가 나타났다. 괴수도깨비가 가장 낮은 졸개도깨비보고 처녀를 잡아오라고 명령했다. 졸개도깨비는 대청으로 올라가다가 무서운 사람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기겁을 하여 도망쳐 와서 괴수도깨비에게 무서운 사람이 대청에 버티고 있어서 처녀를 잡아오지 못했다고 했다. 괴수 도깨비는 좀 센 도깨비를 보냈다. 이 도깨비도 무서워서 도망쳐 왔다.
나중에는 괴수도깨비 자신이 갔다. 대청에 무서운 사람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도깨비는 그 앞에 꿇어앉아서 살려 달라고 빌었다. "너희는 어째서 이 집 사람들을 다 잡아 죽였느냐'고 괴수도깨비에게 물었다. 괴수도깨비는, "저희들은 이 집에 파묻혀있는 돈인데, 하도 오랫동안 묻혀 있었으므로, 파내어 세상 바람 좀 쐬게 해달라고 부탁하려고 오면 그만 이집 사람들은 기절해서 죽고 또 죽고 했다. 그러니 대장님은 저의 소원을 들어 주시면 다시는 사람이 죽는 일이 없을 것이다."하고 말했다. 다음날 그 사람은 묻혀 있던 돈 항아리를 파내어 수많은 돈을 바깥바람을 쐬게 해 주었다.

6.4. 성번중의 이야기

성번중의 집안에 항상 괴기한 사건이 있었다. 어둠이 깔릴 무렵이면 이상한 물체가 서쪽 숲 속에서 나타나 돌을 던지거나 불을 지피거나 하면서 집으로 다가와 하녀를 겁탈했다. 이로 인해 하녀는 임신이 되었는데 그 뒤로도 계속 그런 일이 있어서 주인인 번중은 그것을 퇴치하려고 술을 먹고 밤새 지키고 있었다. 그날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 '이젠 안심이다'하고 발걸음을 떼는 순간 무엇인가가 냉수를 끼얹는 듯 하더니 누가 던진 것인지도 모르게 발밑에 자갈이 쌓여 있었다.

6.5. 대낮 귀신

창손은 정승을 30년이나 지낸 당대에 있어서 대단한 세도가였다. 그런데 그의 나이가 90이 되었을 때 어느 날 그의 집에서 홀연히 요괴가 나타났다. 이 요괴는 대낮에 나타나 돌을 던지곤 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누구나 그것은 요괴의 장난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과거에는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세도가였던 창손이 “아무리 늙었지만 요괴 따위에게 겁을 먹을쏘냐!”하며 크게 격분하여 재빨리 지붕 위로 올라가 꼭대기에 있는 도깨비기와를 불에 태우고 말았다. 그 후 소문이 자자했던 그 요괴의 장난은 가라앉고 말았다. 사람들은 반드시 후환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 후 아무런 후환도 없었고 창손은 변함없이 건강했다 한다.

6.6. 도깨비의 죽음

대동강 옆 보통문은 온 나라의 도깨비가 모이는 곳이다. 한 번은 온 나라의 도깨비가 모여들었는데, 괴수도깨비는 도깨비들을 일일이 불러서 점고를 했다. 그런데 그중에서 도깨비 하나가 대답이 없었다. 아무개 도깨비는 왜 없느냐고 문자, 한 놈이, 아무개 도깨비는 어느 너절한 사람과 친구가 되어 같이 어울려 다니다가 그 사람이 끓던 개장국을 퍼부어서 개장국에 데어 죽어서 안온 것이라고 대답했다.

6.7. 과부와 도깨비

과부 한 사람이 도깨비하고 친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도깨비가 좋아한다는 메밀묵을 쑤어서 놔두었다. 밤이 이슥해지자 도깨비가 와서 메밀묵을 먹었다. 과부는 도깨비를 자기 방으로 불러들였고 드디어 친해졌다. 과부는 도깨비더러 돈이며 금은보화를 갖다 달라고 했다. 도깨비는 과부가 원하는 대로 돈이며 보물을 얼마든지 갖다 주었다.
부자가 되자 과부는 도깨비가 귀찮고 싫어졌다. 그래도 도깨비는 자꾸 찾아왔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과부는 도깨비더러, 무서운 것이 무엇인가하고 물었다. 그건 왜 묻느냐고 도깨비는 되물었다. 도깨비가 무서워하는 것을 못 오게 하고, 그런 것을 모두 치워 버리려고 그런다고 대답했다. 도깨비는 과부가 자기를 위해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자기가 무서워하는 것은 말의 피(말대가리)라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과부는 자기의 집 삽짝에 말대가리를 걸어 놓았다. 밤이 되어 도깨비가 마음 놓고 여자의 집에 찾아오다가 말피(말대가리)를 보고 그만 기겁을 하고 도망쳤다. 도망치면서 도깨비는 "여자에게 속 주지마소. 여자란 못 믿을 것이오."하고 외쳤다고 한다.

6.8. 남자와 도깨비

어떤 사람이 도깨비와 친해져서 도깨비가 가져다준 돈으로 논밭을 많이 사 놓았다. 그 사람은 얼마만큼 잘 살 게 되자 도깨비와 사귀기가 싫어졌다.
그래서 하루는, 도깨비더러 너는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무어냐고 물었다. 도깨비는 말피(말대가리)라고 대답했다. 도깨비는 사람보고 너는 무엇이 제일 무서우냐고 물었다. 그 사람은 돈이라고 대답했다.
그 후 그 사람은 대문에다 말대가리를 매달아 놓았다. 어느 날 도깨비가 이 집에 찾아 왔다가 대문에 말대가리가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이놈이 나를 배신했구나하고 괘씸하게 생각하고, 그 사람이 제일 무섭다고 한 돈을 마구 그의 집에다 집어던졌다.
그 사람은 무서워하는 체하면서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면서 죽는 시늉을 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그것은 거짓이었고 오히려 더 좋아하고 있었다.
도깨비는 이 사람을 못살 게 하겠다고 그 사람의 논을 떼어 가려고 논의 네 귀퉁이에 말뚝을 박고 큰 동아줄로 얽어매고 영치기 영차 영치기 영차 하고 힘주어 끌고 있었다.

6.9. 남자와 도깨비(2)

한 사람이 밤에 냇물에서 게를 잡고 있었다. 도깨비가 나타나서, 메밀묵을 쑤어주면 게를 많이 잡게 해 주겠다고 말했다. 이 사람은 메밀묵을 쑤어 줄 테니 우선 게를 많이 잡게 해달라고 말했다. 도깨비가 게를 많이 떠내려 보내주어서 이 사람은 게를 많이 잡게 되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당초의 약속을 어기고 메밀묵을 쑤어다 주지 않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메밀묵을 갖다 주지 않으므로 도깨비는 화가 나서 말똥을 떠내려 보냈다. 말똥을 게인 줄 알고 잡았던 이 사람은, 그놈의 도깨비가 날 속였다고 투덜댔다고 한다.
참고문헌 및 도판
▒ 참고 문헌
김영주,『조선시대불화연구』, 지식산업사, 1986.
김종대,『민담과 신앙을 통해 본 도깨비의 세계』, 국학자료원, 1997
김정희,『신장상』, 대원사, 1989.
이승희,「조선후기 신중탱화 도상 연구」, 홍익대 석사학위 논문, 1998
정팔복 ․ 정이상 편,『전통문양의 응용과 전개』, 창지사,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