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문화원형 라이브러리
인쇄 문화원형 스크랩

염라대왕

염라대왕
1. 개요
염라대왕은 명부의 시왕 중 다섯 번째 왕이다. 사람이 죽어서 가는 곳을 명부라 하는데, 명부에서 핵심을 이루는 것이 지장보살과 시왕이다. 시왕은 한자의 의미로만 본다면 ‘열 명의 왕’이라는 단순한 뜻에 지나지 않지만, 불교와 도교에서는 특별히 명부에서 죽은 자의 죄업을 심판하는 열 명의 대왕, 즉 진광왕(秦廣王), 초강왕(初江王), 송제왕(宋帝王), 오관왕(五官王), 염라대왕(閻羅大王), 변성왕(變成王), 태산왕(泰山王), 평등왕(平等王), 도시왕(都市王), 전륜대왕(轉輪大王)을 일컫는 말로 사용된다.
염라대왕은 명부에서 죽은자가 다섯번째 맞이하는 칠일간의 일을 관장하는 관리이다. 야마, 염마 등으로도 불리며, 원래 인도에서는 천상의 교주였다고 하나 지옥신앙이 발달하면서 지하 지옥의 왕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염라대왕을 만나러 가는 모습은 몇몇 경전에 묘사되어 있다. 『시왕생칠경』에서는, 염라대왕 앞에서 죄인이 머리채를 잡힌 채 머리를 들어 업경을 보고 비로소 전생의 일을 분명히 깨닫게 되며, 이 업경에는 죄인들의 생전에 지은 일체의 선행과 악행이 비춰진다고 한다. 『시왕찬탄초』에서는, 염라대왕전에서는 전보다 죄인의 고통이 더욱 심해지고 염라대왕은 호통을 치면서 “네가 여기에 온 것이 옛부터 몇 천만인지 그 수를 모르겠다. 생전에 착한 일을 하여 다시 이 악처에 와서는 안된다고 매번 알아듣도록 얘기했건만 그 보람도 없이 또 오게 되었느냐. 너라는 죄인은 의심이 많고 이치에 닿지 않는 말만 하는구나.” 하고 도깨비와 함께 죄인의 조서를 읽고 죄인의 양손을 되찾아서 아홉면을 가진 업경 앞에 이 죄인을 두니, 하나하나의 거울에 한평생 동안 지었던 죄업이 남김없이 비친다. 옥졸이 머리카락을 잡아채고 얼굴을 잡아당겨 거울에 들이대며 보라고 나무랄 뿐만 아니라, 방망이로 두들겨 패면 처음에는 소리를 내서 울부짖지만 나중에는 숨도 다 끊어지고 몸이 티끌처럼 부서진다고 한다.
시왕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린 것을 시왕도라 하는데, 염라대왕도에는 옥졸이 죄인의 머리카락을 움켜잡은 채 업경대(죄인이 생전에 지은 죄를 보여주는 거울)를 들여다보는 장면, 방아로 죄인을 찧는 장면, 판관이 두루마리에 죄상을 적는 장면이 나온다. 업경대 장면은 염라대왕도에 반드시 나타나는 특징이며 업경대 안에는 보통 긴 몽둥이를 들고 소를 때려 죽이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는데, 이것은 생전에 가축을 도살한 사람의 죄가 업경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염라대왕이 거느린 부하들은 주사빙판관, 대산홍판관, 악복조판관, 도사조판관, 의동최판관, 천조귀왕, 감수귀왕, 낭아귀왕, 대나리차귀왕, 주선동자, 주악동자, 일직사자 등이다.
2. 시왕신앙의 발생

이렇게 염라대왕을 비롯한 시왕의 명칭이나 지옥에서의 심판 광경 등은 불교경전인 『예수시왕생칠경』에 근거하여 정립되었다. 일본의 『발심인연시왕생칠경』, 『시왕찬탄초』, 『정토견문집』 등에도 시왕이 명부에서 행하는 심판광경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어 시왕은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에서 널리 믿어졌음을 알 수 있다. 『불설예수시왕생칠경』에 보면, 사람들은 죽어서 명부로 갈 때 처음 7일에는 제1 진광대왕, 두 번째 7일에는 제2 초강대왕, 세 번째 7일에는 제3 송제대왕, 네 번째 7일에는 제4 오관대왕, 다섯 번째 7일에는 제5 염라대왕, 여섯 번째 7일에는 제6 변성대왕, 일곱 번째 7일에는 제7 태산대왕, 백일에는 제8 평등대왕, 일년째에는 제9 도시대왕, 3년째에는 제10 전륜대왕 등 차례로 열 명의 왕 앞을 지나며 재판을 받는다고 한다.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어도 육체만 없어질 뿐 생전에 행한 선행과 악행에 따라 앞으로 어디에 태어날지가 결정된다고 믿는다. 이러한 생각에서 사후심판을 받는다는 시왕 사상이 나오게 되었다. 하지만 불교의 사후심판에 대한 생각이 전해지기 이전부터 이미 옛 중국에서는 장생불사를 믿는 도교에서도 선행과 악행에 따라 수명이 결정된다는 생각이 있었다. 『포박자』라는 책에는, 사람이 짓는 죄의 무거움과 가벼움에 따라 계산을 하는 신이 있어서, 숫자가 자꾸 빠지면 그 사람은 가난해지고 병이 자주 들어 걱정스러운 일을 겪게 되며 숫자가 다 없어지면 죽게 되고, 또 사람의 몸에는 영혼귀신에게 소속된 벌레가 살고 있어서 사람의 행동을 늘 감시하고 하늘에 그 사람의 죄를 보고한다는 내용이 있다. 이처럼 도교에서 죄의 경중에 따라 인간의 수명이 결정된다는 생각이 불교에도 전해져, 매년 정해진 날에 신들이 모여 인간의 선악을 관찰한 후 복을 많이 쌓은 자는 수명을 늘려준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후 이러한 생각이 발전하여 염라대왕은 지옥의 천자로서 부하들을 거느리고 지옥을 지배하며 나아가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처럼 명부에도 인간세계의 위계질서가 있고 인간의 선악을 감시한다는 생각이 널리 퍼졌고 그 위계질서로서 시왕의 체제가 생겨났다. 시왕이 가진 각각의 이름이 어디서 나왔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염라대왕은 고대 인도 신화의 야마왕, 태산왕은 중국 도교의 태산부군까지 그 유래가 거슬러 올라간다고 생각된다.

이처럼 저승의 명부에서는 시왕이 죽은 사람을 심판한다는 생각이 자리잡게 되고 『불설예수시왕생칠경』이라는 시왕에 관한 경전도 생겨나 사람들이 시왕이 그려진 지옥그림을 그려 숭배하게 되었다. 이것을 ‘시왕도’라 부르는데 시왕이 각각 책상 앞에 앉아 있고 목에 칼을 찬 죄인들이 심판과 지옥벌을 받고 있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이처럼 시왕에게 심판받는 장면을 그린 시왕도는 중국, 한국, 일본에서 많이 그려졌다.

불교의 시왕신왕과 함께 도교의 시왕신앙도 상당히 성행하여 사람들 사이에 널리 믿어졌다. 사람이 매일매일 행하는 선악은 신들에 의해 천상에 보고된다고 믿어졌고, 시왕을 청하여 죄를 사죄하는 의례도 행해졌다. 도교에서는 불교의 시왕 명칭과 달리 독자적인 명칭을 사용하였는데, 제1 태소묘광진군, 제2 음덕정휴진군, 제3 동명보정진군, 제4 현덕오령진군, 제5 최승요령진군, 제6 보숙소성진군, 제7 등관명리진군, 제8 무상정도진군, 제9 비마연경진군, 제10 오화위덕진군과 같이 불렀다.

도교에서의 시왕신앙은 『옥력보초』라는 책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책은 저승에서 죽은 자를 심판하는 시왕의 심판 광경에 대해 묘사한 책이다. 여기에서 옥력이란 옥황상제가 사람들에게 악을 경계하고 선을 닦도록 하기 위해 천상계에서 감찰한 것을 공개한 선악기록부이다. 이 책에는 저승에서 죽은 자를 심판하는 시왕의 재판 광경을 그린 그림이 덧붙여져 있는데 불교에서 그리는 시왕도와 매우 비슷하다.

3. 우리나라의 시왕신앙

3.1. 통일신라시대
본래 중국에서 형성되었던 시왕신앙이 우리나라에 언제 들어왔는지는 불확실하지만 삼국통일 전후한 때쯤에는 명부에 관한 생각이 전해져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삼국유사』에 보면 망덕사의 승려 선율이 돈을 시주하여 불경을 만들려다가 아직 다 이루기도 전에 갑자기 저승에 잡혀가 지옥에 이르렀으나 곧 다시 풀려나 열흘만에 소생하게 되었는데, 스님이 명부에서 돌아오는 길에 어떤 여인을 만나 부모의 죄로 인해 자신이 지옥고를 받고 있으니 이를 청산해 줄 것을 부탁하여 그 소원을 들어주니 지옥의 고통에서 벗어났다는 내용이 있다. 다시 말해서, 죄를 지으면 고통을 받는다는 지옥사상과 함께 경전을 쓴 공덕으로 명부에서 환생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위에서 보았듯이 내용 속에 명부, 황천 등 사후세계에 관련된 용어가 등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적어도 지옥에는 죽은 자를 심판하는 재판관이 있으며, 사람들은 현세에서의 죄의 무게에 따라 사후 지옥에서 명부 판관의 판결에 의해 벌을 받는다는 인과응보에 관한 생각이 이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이 설화에서는 명부의 판관이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밝혀져 있지 않지만 이때는 중국에서도 아직 시왕사상의 체계가 확립된 시기가 아니므로 아마도 지옥의 구주인 염라대왕을 지칭하고 있다고 보인다. 선율 스님이 환생하는 길에 지옥고를 받고 있는 여인의 청에 의해 공양을 하고 복을 빌었더니 그 여인이 지옥고를 벗어났다고 하는 점으로 보아 죽은 사람을 위해 산 사람이 좋은 일을 하면 죽은 사람이 좋은 곳에 태어난다는 불교적인 생사관이 반영되어 있으며, 이러한 생각은 이후 49재로 이어졌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이 기록 외에는 시왕에 대한 자료나 유물이 전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시왕에 대한 신앙은 고려에 가서야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듯하다.

3.2. 고려시대
고려시대에 이르러 사람들은 시왕에 관해 더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믿게 되었다. 『고려사』에는 궁성의 서북쪽 모퉁이에 시왕사라는 절을 세웠는데 그곳에 있었던 시왕도의 모양이 기괴하여 이루 형용하기 어려웠다는 기록이 있다. 이로 보아 삼국통일 무렵에 명부에 대한 생각이 전해져 통일신라시대를 거치면서 시왕을 점점 신앙하게 되고 고려시대에 들어서는 이미 시왕을 모시는 사찰이 건립될 정도로 사람들이 시왕을 많이 믿게 되었다고 보인다. 이에 따라서 시왕과 심판모습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게 되었을 것인데, 지금은 남아있지 않지만 모양이 기괴하여 이루 형용하기 어려웠다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참혹하고 끔찍한 지옥의 광경이었을 것이다. 이 밖에도 1102년 흥복사에는 시왕당이 건립되어 왕과 왕비, 세자가 함께 그곳이 축하하러 갔다든가, 1146년 왕의 병이 위독하여 시왕사에서 기도를 올렸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이와 같이 고려 초기에 이르러서는 사람들이 시왕을 믿게 되고 시왕의 심판모습을 그림으로도 그리게 되었다. 합천 해인사에는 고려시대 작품이라 생각되는 『예수시왕생칠경』의 목판그림이 있는데, 그 중에는 시왕이 탁자에 앉아 심판하고 있고 그 옆에 동자․판관․옥졸 등이 서 있으며 아래에는 죄인들이 심판받고 있는 광경이 그려져 있는 것이 있다. 또 지장보살을 그린 고려불화 속에도 지장보살 옆에 원유관을 쓴 왕의 모습을 한 시왕들이 늘어서 있다.

3.3 조선시대
조선 초기에는 강력한 불교탄압정책으로 불교가 압력을 받게 되면서 앞 시대의 귀족적인 신앙형태에서 벗어나 한층 민간신앙적인 면모를 갖게 되면서 한국적인 불교로 변화했다. 사찰내에는 산신각이나 칠성각 등 민간신앙적 성격의 전각이 건립되었고, 이와 함께 죽은 자를 좋은 곳에 가도록 빌어주는 명부전 역시 많이 만들어졌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큰 전쟁을 치르면서 불안과 고통을 겪게 된 사람들은 내세에 대한 열망과 지옥고를 벗어나고자 하는 바램을 갖게 되었다. 죽고 난 후뿐 아니라 생전에 미리 좋은 일을 하고 재를 지내둠으로써 사후에 지옥에 떨어지는 형벌을 면하려는 생각에서 명부의 구주인 지장보살과 시왕에 대한 신앙이 더욱 크게 성행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이처럼 시왕의 심판을 두려워하는 백성들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사간원에서 세종에게 아뢰는 내용에서는 승려들이 시왕도라는 괴상한 그림을 그려놓고 사람들을 현혹하는데 그 잔인하고 참혹한 형상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으며 그러한 그림을 만들어 절에 걸어두고 어리석은 백성을 울리고 겁을 준다고 말하면서, 겁먹은 백성들이 생계를 돌보지 아니하고 재산을 털어넣다가 굶주림과 추위를 면하지 못할까 걱정되니 이를 수색하고 단속하여야 한다고 청하는 내용이 나온다. 이를 보아 시왕과 지옥심판을 참혹한 형상으로 그린 그림이 성행하였고 백성들이 두려워하며 재를 지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시왕과 지옥광경을 그린 그림 외에도 조선시대에는 불교가사를 통해서도 시왕신앙이 널리 퍼져 있었다. 『한국불교가사전집』을 보면 지옥의 고통과 형벌, 시왕의 재판 광경 등을 묘사한 가사가 많이 있다. 『회심곡』류는 특히 유행하였는데 그중 하나인 『별회심곡』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이 시왕전을 그려내고 있다.

“제1전에 진광대왕, 제2전에 초강대왕, 제3전에 송제대왕, 제4전에 오관대왕, 제5전에 염라대왕, 제6전에 변성대왕, 제7전에 태산대왕, 제8전에 평등대왕, 제9전에 도시대왕, 제10전에 전륜대왕, 열시왕의 부린 사자 일직사자 월직사자, 열시왕의 명을 받아 한손에 철봉 들고 또 한손에 창검 들며, 쇠사슬을 빗겨차고 활등같이 굽은 길로 살대같이 달려와서, 닫은 문을 박차면서 뇌성같이 소리해도 성명 삼자(姓名三字) 불러내어, 어서가자 바삐가자 뉘 분부라 거역하며 뉘 영이라 지체할까. 실낱같은 이내 목에 팔뚝같은 쇠사슬로 결박하여 끌어내니, 혼비백산 나죽겠네. 여보시오 사자님네, 노자도 갖고 가세, 만단개유 애걸한들 어느 사자 들을쏜가...열시왕이 좌개하고 최판관이 문서 잡고 남녀 죄인 잡아들여 다짐받고 봉초할 때, 어두귀면(魚頭鬼面) 나찰들은 전후좌우 벌어서서 기치 창검 삼열한데 형벌기구 처려놓고 대상호령 기다리니 엄숙하기 측량없다. 남녀 죄인 잡아들여 형벌하며 하는 말이, 이놈들아 들어봐라. 선심하여 발원하고 인간세에 나아가서 무슨 선심 하였는가 바른대로 아뢰어라...죄목을 물은 후에 온갖 형벌 하는구나. 죄의 경중 가리어서 차례대로 처결할새 도산지옥(刀山地獄), 화산지옥(火山地獄), 한빙지옥(寒氷地獄), 검수지옥(劍樹地獄), 발설지옥(拔舌地獄), 독사지옥(毒蛇地獄), 아침지옥(牙針地獄), 거해지옥(鉅解地獄) 각처 지옥 분부하여 모든 죄인 처결한 후 대연(大宴)을 배설하고 착한 여자 불러들여 공경하며 하는 말이, 소원대로 다 일러라. 선녀 되어 가려느냐...선심하고 마음 닦아 불의행사 하지 마소. 회심곡을 업신여겨 선심공덕 아니하면 우두형상 못 면하고 구렁배암 못 면하네. 조심하여 수신하라. 수신제가 능히 하면 치국안민 하오리니 아무쪼록 힘을 쓰오. 적덕(積德)을 아니하면 신후사가 참혹하니, 바라나니 우리 형제 자선사업 많이 하네. 내생길을 잘 닦아서 극락으로 나아가세. 나무아미타불, 나무관세음보살.”

이처럼 회심곡에는 주로 죄지은 사람이 겪게 되는 고통과 시왕이 다스리는 지옥 장면, 사후세계의 준엄함 등을 제시함으로써 악한 행위를 경계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끝부분에는 결국 착한 마음으로 공덕을 많이 쌓아 극락왕생할 것을 장려하고 있다. 현재 전하는 옛 가사집 중에는 회심곡을 수록한 문헌이 가장 많아 이 곡이 매우 널리 불려졌음을 알 수 있으며, 불교가사의 유행과 함께 시왕신앙도 사회전반에 퍼져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불교에서뿐 아니라 도교에서도 시왕신앙이 널리 성행하였다. 『용재총화』에 의하면 소격서에서 중국 도가의 행사와 비슷하게 칠성과 여러 별들, 옥황상제 등을 제사지냈고 안팎의 모든 단에는 신장명부시왕 등의 신을 위패에 이름을 써놓고 모셨다고 하여 불교 사찰에서뿐만 아니라 도교의 소격서에서도 명부시왕을 예배한 사실을 전하고 있다. 시왕의 기원이 도교에서 영향받았음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4. 무속과 습합된 예

우리나라에서 시왕신앙은 불교를 중심으로 발달하기는 했으나, 무속과 습합되어 신앙되기도 하였다. 무속의 내세 형태는 불교에서 보고 있는 극락과 지옥 형태와 같은 점으로 보아 이것은 불교의 영향을 받아서 변질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무속적인 시왕신앙의 예로 제주도 무당굿인 ‘시왕맞이’를 들 수 있다. ‘시왕맞이’는 시왕(十王)을 맞아들여 기원하는 굿인데, 중환자의 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하는 경우와 죽은 영혼의 생시죄보(이승에서 지은 죄값)를 사하여 저승의 좋은 곳으로 보내 주도록 기원하기 위하여 하는 경우가 있다. 후자의 경우는 망인의 대상(大祥)을 전후하여 시행한다. 어느 경우든지 큰굿의 한 제차(祭次)로 행하기도 하고 단독제로 행하기도 한다.

무속에서도 시왕은 저승을 차지하고 있는 열 왕으로 생각되고 있는데, 저승의 도산지옥(刀山地獄)부터 흑암지옥(黑暗地獄)까지 10개의 지옥을 각각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승에 살고 있는 사람의 목숨을 그 생갑(生甲)에 따라 관장하고 있다고 한다. 시왕 밑에 다시 지장대왕(地藏大王), 생불대왕(生佛大王), 좌두대왕(左頭大王), 우두대왕(右頭大王), 동자판관(童子判官) 등이 있어 그 직능을 보좌하고, 그 밑에 사자(使者)인 차사(差使)가 있는 것으로 되어 있는 것도 불교와 비슷하다.

시왕은 저승에서 각각 차지하고 있는 생갑의 인간들의 명부(冥簿)를 가지고 있어 정명(定命:타고난 목숨)이 다 되면 차사를 시켜 잡아오게 하고, 생시의 업보에 따라 지옥 또는 극락으로 심판하여 보낸다고 한다. 그래서 중환자의 경우는 시왕이 데려가기 위한 병으로 보고 정명을 연장하여 주도록 비는 것이고, 망인의 경우는 죄를 사하여 극락으로 보내 주도록 비는 것이다.

시왕맞이는 마당의 큰대 앞에 시왕맞이 제상을 차려서 하며, 제상은 이층으로 만들어 위에는 시왕상, 아래에는 사자상을 마련하고, 그 앞에 영혼상, 차사상, 공싯상, 보답상, 대령상 등 여러 가지 작은 상을 차려 놓는다. 굿은 소무가 치는 북, 설쇠, 징 등의 장단에 맞추어 정장한 수심방이 노래와 춤으로 진행해 간다. 그 순서는 ① 초감제, ② 방광침, ③ 차사본풀이, ④ 시왕도 올리고 석살림, ⑤ 액막이, ⑥ 낙가도전침, ⑦ 삼천군벵(군병)질침, ⑧ 질침, ⑨ 메어듬으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

시왕맞이는 다른 맞이굿에 비하여 길고 복잡한데, 이는 시왕의 하위신인 차사와 원혼들을 위하는 제차와 죽은 영혼의 저승길을 치워 닦아 맞이하여 그 심회를 듣고 위무하여 저승으로 보내는 질침(차사영맞이라고도 함)행사 등 부수 제차가 끼어들기 때문이다.

① 초감제는 다른 맞이굿의 초감제와 마찬가지로 굿하는 날짜와 장소, 굿을 하는 사유를 신에게 고하고 군문을 열어 신의 하강하는 길의 사(邪)를 쫓는 절차를 하고, 신을 청해 들이는 신청궤를 하는 것이 같다. 다만 그 사이에 악기가 잘 울려 주도록 악기신(樂器神)을 대접하는 ꡐ도레둘러맴ꡑ이라는 소제차가 더 끼어드는 것이 다를 뿐이다.
② 방광침은 시왕에게 병을 거두어 낫게 해주도록, 또는 망인의 죄를 사하여 지옥에 떨어지지 말게 하고 극락으로 가게 해주도록 간절히 비는 제차이다.
③ 차사본풀이는 차사의 신화를 노래하고 망인을 구박하지 말고 저승까지 고이 데려가주도록 비는 제차이다.
④ 시왕도 올리고 석살림은 시왕에게 올라가실 때가 되었음을 알린 뒤 폐백을 드리고 소지를 올려 기원하고 즐겁게 놀리는 제차이다. 여기까지로써 시왕과 차사에 대한 기원이 일단 끝난 셈이 된다.
⑤ 액막이는 차사에게 잘 대접하여 빌고, 사람 목숨 대신 닭을 잡아가도록 닭을 죽여 던짐으로써 액을 막는 제차이다.
⑥ 낙가도전침은 시왕과 사자에게 대접하는 의미로 술잔을 들어 춤추다가 올리고 시루떡을 들어 춤추다가 올린 뒤, 지장본풀이를 하여 축원하고, 전란 때 죽은 모든 원혼들을 대접하여 범접하지 않도록 달래는 제차이다.
⑦ 삼천군벵질침은 여러 가지 전란에 비명사(非命死)한 사령(死靈)이나 억울하게 죽은 사령 등 잡신을 대접하여 쫓은 후, 무조신(巫祖神)을 대접하는 행사를 하여 끝낸다.
⑧ 질침은 일명 차사영맞이라 하는 제차로, 저승길을 치워 닦아 차사와 죽은 영혼을 맞아들이고, 망인의 심회를 말하는 ꡐ영개울림ꡑ을 들은 뒤, 저승의 열두 문을 열어 영혼을 위무하여 저승으로 보내는 행사다. 굿당에 댓가지로 저승의 열두 문을 만들고 저승길을 치워 닦는다. 그 순서는 길을 돌아보고 그 길에 무성한 잡초 목을 베고, 그 그루를 따비로 파고, 흙을 발로 밟아 고르고, 나뒹구는 돌멩이를 치우고, 밀대로 밀어 지면을 고르게 하고, 일어나는 먼지를 비로 쓸고, 물을 뿌리고, 젖은 데에 띠를 갈고 하는 세밀한 길닦기 작업을 노래와 상징적인 춤으로 실연한 뒤, 영혼을 맞아들여 영혼의 이야기를 듣는다. 심방이 울면서 대변하는 영혼의 이야기(영개울림)가 끝나면 시왕에게 빌면서 댓가지로 만든 저승문을 하나하나 열면서 영혼을 통과시켜 저승으로 보내는 것이다.
⑨ 메어듬은 마당의 시왕맞이상의 신들을 집안의 기본 제상으로 옮겨 모시는 과정인데, 큰굿 때에는 이 제차를 하여 옮겨 모시지만, 단독제로 할 때에는 도진을 하여 신들을 돌려보냄으로써 끝을 맺는다.
참고문헌 및 도판
▒ 참고 문헌
김정희, 『조선시대 지장시왕도 연구』, 일지사, 1996.
김정희 외, 『지옥계 불화』,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3.
김태곤, 『무속과 영의 세계』, 한울, 1993.
이기선, 『지옥도』, 대원사, 1992.
이재운, 『한국인의 사후세계관』, 전주대학교 출판부, 2001.
현용준, 「제주도무속의례연구」, 『제주대학교논문집』7, 1976.
현용준, 『제주도무속자료사전』, 신구문화사, 1980.
홍윤식, 『고려불화의 연구』, 동화출판공사, 1984.
홍윤식, 『한국불화의 연구』, 원광대학교출판국, 1980.

▒ 참고 도판
이기선, 지옥도, 대원사, 1992, 90면(도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