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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할멈

영등할멈
1. 영등할멈의 유래
영등신, 즉 영등할멈은 제주도와 남해안 일대, 특히 제주도에서 널리 섬겨진 외래 여신으로서 본래 해녀채취물의 증식 보호신이었으나, 이후 어로 일반과 농업의 보호 등까지 그 기능이 확대되어온 신이다. 특히 영등굿은 본질적으로 해녀 채취물의 증식을 위한 제사로서 촌락집단제의의 일종으로 보여진다.
조선시대의 기록인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이나 『탐라지(耽羅誌)』 등에 보면 제주의 2월 민속으로 연등(然燈)에 대한 대동소이한 기록이 보이는데, 이 연등이 오늘날의 영등굿이다. 그리고 이 민속이 이미 조선초기부터 문헌화된 것을 보면 상당히 오랜 민속이자 유명하고 성황했던 행사였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영등신앙은 그 역사가 오래되어 변모한 탓인지, 그 신격이나 신앙의 성격이 매우 모호하게 되어 있다.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의하면, 명칭은 “연등”이고, 제사일은 2월 1일부터 15일까지이며, 그 굿은 제주도 일대에서 성행하였다고 한다. 한편 『탐라지』의 기록에 의하면, 이름이 “영등(迎燈)이라 표기되었고, 그 신격이 당나라 상인의 표류된 시체라 밝혔으며, 제사는 여러 무당이 모여 야외에서 거행하고, 신을 떠나보낼 때에는 배 모형을 만들어 포구에 띄운다는 점 등이 나타나 있다. 다음 제주도의 일반 민간에서 전해지는 풍습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① 신의 명칭은 “영등” 또는 “영등할망”이라 하고, 제사명은 “영등굿”이라 한다.
② 영등할망(할머니)은 2월 1일에 들어오고 2월 15일(혹은 20일)에 나간다. 따라서 2월을 영등달이라 칭하며, 무가에서는 “영등 2월”이라 부른다.
③ 2월이 되면 조개의 한 종류인 보말의 속이 다 비는데, 이는 영등할망이 오면서 다 까 먹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④ 영등이 들어오는 날인 2월 1일은 날씨가 추우면 옷 좋은 할망이 온다고 하고, 날씨가 따스하면 옷 벗은 할망이 온다고 하며, 비가 오면 우장을 쓴 할망이 온다고 한다.
⑤ 이 기간엔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선 안 되며, 빨래를 해서도 안 된다. 만일 빨래를 하여 풀을 먹이면 집에 구더기가 생긴다.
⑥ 영등이 들어오는 2월 1일엔 제주도 한림에 있는 영등당에서 환영하는 굿을 3일간 하고, 15일엔 송별하는 굿을 3일간 하는데, 이 때 무당이 점을 쳐서 “미역씨 주머니를 잊어버리고 왔다.”고 하면 미역 흉년이 들고, “미역씨를 바다에 뿌리고 왔다.”고 하면 미역이 잘 나며, “좁씨 등을 가져왔다.”고 하면 그 곡식이 풍년든다 하였다. 그리고 신을 보낼 때는 짚으로 작은 배를 만들어 갖가지 제물(祭物)을 싣고 바다에 띄워 보낸다.
⑦ 옛날 장사다니던 중국 여인이 타고 있던 배가 파손되어 죽어 물귀신이 되었는데, 이 귀신을 영등할망이라 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면, 영등신은 할망(할머니)이라 불리는 여신이며, 당나라 등에서 유래했다는 외래신이고, 춥고 더움, 비바람 등 기상상태와 관련이 깊은 신이며, 해녀채취물이나 어업 및 농업 등과 관련깊은 신임을 알 수 있다.
2. 남신(男神)으로서의 영등하르방
한편, 무당들이 이야기하는 신화나, 그 신화에서 나타나는 명칭 및 직능을 보면 남신과 같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와 관련된 전승들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영등은 할망이 아니라 “하르방(할아버지)”이다. 그는 본래 제주도 한 어촌의 사람으로서 고기잡이였다. 하루는 고기를 잡다가 큰 풍랑이 일어 표류하다가 외눈박이 섬이란 곳에 도착하였다. 외눈박이는 눈이 하나만 달린 괴상한 인간들로 사람을 잡아먹는 종족인데, 그 역시 이들과 함께 살게 되었다. 그 후 제주도의 다른 어촌 사람이 고기잡이 하다가 이 섬에 표착하자, 외눈박이들은 좋은 반찬거리가 왔다고 그 사람들을 묶어 가두고 영등하르방에게 지키게 하였다. 하지만, 그는 그들을 동정하여 묶인 것을 풀어주고 “나를 대신 꽁꽁묶어 피가 흐르도록 때리고 도망가라.”고 살 길을 가르쳐 주었다. 그러면서 제주도에 도착할 때까지 개남보살(관음보살)을 외어야 한다고 하였다. 고향 땅에 거의 다 닿게된 그들은 긴장이 풀려 개남보살 염불하는 것을 그만 잊어버렸다. 그러자 다시 큰 풍랑이 일어 그들은 다시 외눈박이 섬에 도착하게 되었다. 이것을 본 영등하르방은 크게 꾸짖으며, 이번에 문턱에 들어설 때까지 “개남보살” 외우는 것을 잊지 말라고 하고 돌려 보냈다. 사람들이 어떻게 이 은혜를 갚을 수 있겠냐고 하니, 그는 그들을 돌려보낸 죄로 외눈박이 섬에서 죽게 될 것이나, 매년 2월 초하룻날에 그들의 마을에 들를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는 그가 도착하였다는 증거로 조개의 한 종류인 보말을 까먹으면서 갈 것이라고 하고, 만일 보말 속이 비었다면 자신이 도착한 것인줄 알고 제사를 지내달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그 후로 매년 2월에는 보말 속이 비게 되었으며, 영등하르방은 초하루에 와서 보름날에 간다고 하였다.

한편 다른 전승도 있는데 역시 비슷한 이야기이다.

영등대왕이 용왕국에 있을 때에 한 어선이 표류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이 어선이 외눈박이 섬으로 표류하는 것을 알고 바위 밑에 숨겼다가 외눈박이들의 눈을 피해 개남보살(관음보살)을 외면서 가라고 가르쳐 주었다. 어부들은 고향의 항구에 거의 다 이르자, 괜찮을 것 같아 외우기를 그치자 다시 폭풍이 일어 외눈박이 섬에 표착하게 되었다. 영등대왕은 다시 훈계하고 살려보내주었는데, 영등대왕은 외눈박이의 손에 죽음을 당하였다. 그리하여 그 후 이 영등대왕의 혼령을 위하여 2월 1일에 영등제를 한다는 것이다.

이 두 전승들에서는 영등신이 “영등하르방” 또는 “영등대왕”이라 불리는 남성신이며, 외래신으로 잠시 왔다가 제사를 받고 가는 신이며, 바다 및 바람과 관계 깊어 어부들을 도와주는 신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제주도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확인되는 영등신의 명칭은 “영동할만네”, “영동할맘”, “영동할마니”, “영동할마시”, “할마시”, “영동바람”, “풍신할만네”, “영동마고할마니” 등이 있는데, 여기에 보면 모두 “할머니”의 이름으로 되어 있으므로, 이것은 제주의 “영등할망”과 같은 것으로 본래는 역시 여신으로 파악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영등하르방은 영등할망이 후대에 부부신으로 발전하면서 생성된 것으로 간주된다. 그리고 영등대왕 운운하는 것 역시 이 신의 위세와 행차 모습을 국왕의 그것에 비교하여 후대에 신격화한 것이라 한다.
또한 제주도내 각지에 분포하는 영등굿의 내용을 종합하면, 영등신은 해녀 채취물인 미역, 소라, 전복 등의 씨를 가져다 주고 어부들의 어선을 보호해주며, 또 여러 가지 곡식의 씨를 준다는 것이다. 즉 어업과 농업을 보호해주는 성격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업, 특히 해녀의 채취물을 증식하고 보호해주는 것이 영등신의 본질적인 직능이며, 이 채취물의 증식이 농경의 파종과 같은 원리로 생각하게 되어 농업의 파종까지 그 기능이 확대된 것이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영등할망은 본래적인 명칭으로 여신이며, 음력 2월 1일에 제주에 들어와 15일(혹은 20일)에 떠나가는 외래신이요, 본래 해녀채취물의 증식 보호신인데, 어로 일반의 보호신으로 또 농업보호신으로까지 기능이 확대되었으며, 바람을 관장하는 신으로서의 성격도 아울러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3. 영등할멈 제사와 풍속

음력 2월 1일 영등환영제를 지내고 15일에는 환송제를 지내 영등신을 떠나보낸다. 영등제를 지내기 전까지는 아무도 밭을 경작하거나 물고기를 잡지 못했다. 2월1일부터 15일까지는 '영등달'이라고 하여 바다에 어로작업을 나가지도 않으며 축제를 벌인다. 빨래나 집안일도 하지 않았다. 이 기간에 빨래해서 밖에 널면 옷에 벌레가 생긴다고 하며 농사를 지으면 흉년이 든다 하고, 장을 담그면 구더기가 생긴다고 한다. 이 기간에는 해산물도 잡지 않았다. 보말이나 소라를 잡으면 속이 텅텅비어 영등대왕이 오면서 잡아먹기 때문이라는 속설이 전해진다. 영등이 나가는 15일 무렵에는 흔히 대왕의 죽음을 슬퍼하는 비가 내린다. 이 기간이 지나고 나면 제주섬은 확연한 봄이 된다.
2월 초하룻날 새벽에 영등을 받을 때에는 부엌에 하얀 종이와 빨강, 노랑, 파랑의 헝겊을 단 대나무를 놓고, 그 옆에 밥, 떡, 나물, 물을 차려 놓는데, 밥은 새 바가지에 담고 숟가락을 여러 개 꽂아 놓으며, 떡은 시루떡, 쑥떡 등을 한다. 그리고 명주실도 함께 차려놓는데, 이는 그 해 농사의 풍년과 목화 풍년을 기원하기 위함이다. 동네에 초상이 나고 마을이 깨끗하지 않으면 강너머의 물을 떠놓기도 하는데, 먼저 물을 뜨기 위해 새벽에 일찍 일어난다. 영등을 잘 모시지 못하면 탈이 난다 하므로 특히 조심하는데, 개나 쥐가 물에 입을 대면 그 즉시 죽어버리고, 부부가 합방하면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특히 영등을 모시다가 모시지 않으면 눈병이 생기며 탈이 난다고 한다. 집안의 화평과 자식들의 무사고, 동서남북 어디를 가더라도 재수있게 해달라고 빈다.
영등은 초하룻날 영등을 받아 모시고 9일 저녁에 큰 손을 올리는데, 영등할미가 며느리나 딸을 데리고 내려온다 하므로 음식을 많이 장만한다. 영등할미가 며느리나 딸을 데리고 인간 세상을 보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올 때에 만약 딸을 데리고 내려오면 바람이 불고 며느리를 데리고 오면 비가 온다. 이것은 며느리를 데리고 올 때는 비에 처마가 젖어서 며느리가 못나 보이게 하기 위함이며, 딸을 데리고 올 때는 바람이 불어 딸의 치마자락이 바람에 날려 예쁘게 보이기 위함이라고 한다.
영등할미에게 제사를 올리는 것은 한 해의 풍어(豊漁)와 농사의 풍년(豊年)을 기원하기 위해서이다. 전설에 의하면, 영등할미가 음력 2월 초하루날에 얼어 죽었다 하기도 하고 또는 영등할미가 있어 해마다 2월 초하루날이면 인간세상에 내려와 세상을 돌아보고 그 달 20일께 상천(上天)한다고 전해지고 있다. 특히 영등할미는 세상에 내려올 때 딸을 데리고 내려오면 그 해 날씨도 좋고 만사 평온, 풍년과 풍어가 들지만 며느리를 데리고 오는 해는 반대현상이 나타난다고 전해지고 있다. 영등할미가 세상에서 천상으로 올라갈 때까지 사람들은 부엌에다 대나무 막대기의 끝을 쪼개 받침대를 만들어 세우고 그 위에 종지를 얻고 정화수(井華水)를 올리기도 했으며 대를 꽂은 땅에는 황토를 뿌리고 동백나무 가지를 꽂았다.
영등할미는 세 사람으로 10일에는 상등할미가 올라가고 15일에는 이등할미가, 20일에는 하등할미가 상천하며 세 번째의 마지막 할미가 상천할 때는 대부분의 가정마다 제를 지내 안택(安宅)과 풍연을 기원했다. 거제를 비롯한 통영 고성 등 남해안 일대 지역에서는 이때를 ‘할만네’라고 부르며 영등할미가 상천하는 날 마다 팥밥을 해 먹기도 했다. 특히 마지막 영등할미가 상천하는 날 정성껏 저녁상을 차리고 종이를 불살라 올리는 등 분신제를 지냈으며 특히 통영지역은 명정동 충렬사 앞마당에서 합동분신제를 지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때 여자들은 동백가지를 담은 물동이에 샘물을 길러 머리에 이고 충렬사 앞마당을 돌았으며 이 때만은 유일하게 가정의 규수들과 총각들의 어울림도 허락돼 남녀가 함께 어울려 마당을 돌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기도 했다. 이 때 부르던 노래들은 영등할미를 우리의 삶과 연계시켜 소박한 소원을 비는 내용이었다.

“영등 영등 할마시야 한바구리만 캐어다오/ 두바구리만 캐어주소 영등 영등 할마시야/ 비나이다 비나이다 이갯물이 많이나서/ 두바구리 캐고나면 바다물이 들어오소/ 비나이다 비나이다 영등할마시 비나이다.(『한국구비문학대계』 8-1. 8-2 수록)”
“영등 영등 할마시 한바구리만 캐어주소/ 두바구리만 되어주소/ 영등 영등 할마시/ 비나이다 비나이다/ 영등 할마시 비나이다/(영등할마시 나물캐는 민요, 제보자: 거제시 사등면 성내리 신만순, 1926년생)”
“영등 영등 할마시야 봄나물을 캐러왔소/ 많이도 하지말고 적기도 하지말고/ 한바구리만 불아주소/ 영등 영등 할마시야(제보자:거제시 거제면 내간리 박또악. 1910년생)”

특히 나물캐던 노래는 찢어지게 가난했던 우리네 살림살이에서 아낙네들이 이른 봄 나물을 캐며 아직 자라지 않은 나물들이 제대로 캐어지지는 않고 캔 나물들이 햇빛에 시들어 오히려 줄어들 때 나물캐던 칼을 땅에 꽂아두고 그 앞에 앉아 안타까운 마음에 바구니를 돌리면서 불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 노래마저 채록(採錄)되지 않은 채 뇌리에서 사라져 완벽한 곡조조차 알길이 없어졌고 영등할만네의 세시풍속은 전설 속으로 묻혀가고 있다.
참고문헌 및 도판
▒ 참고 문헌
현용준, 「제주도의 영등굿」『한국민속학』1, 한국민속학연구회, 1969.
서대석, 『한국신화의 연구』, 집문당, 2001.
김열규, 『한국의 신화』, 집문당, 1997.
한상수, 『한국인의 신화』, 문음사, 1980.
김인회, 『한국무속의 종합적 고찰』, 고대 민족문화연구소, 1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