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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황상제

옥황상제

1. 옥황상제의 정의

옥황상제는 천신, 즉 하늘의 신령이라는 의미로, 하늘의 중심, 하늘 자체를 신격화하거나 하늘에 있는 초인적인 신격을 믿음으로써 생겨난 개념이다. 옥황상제는 하늘의 중심에서 우주만물을 지배하며 하늘, 땅, 물의 모든 신들로 하여금 우주의 만상을 다스리게 한다. 또한 인간의 무병장수, 길흉화복, 기우를 담당하는 신으로 하늘님, 하느님, 하나님 등의 호칭으로도 불리는 최상의 신이다. 옥황상제라는 명칭은 중국도교의 영향을 입은 것이고, 『삼국유사(三國遺事)』가 보여주고 있듯이 제석(帝釋)이라는 명칭은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원래는 인도의 고대 신령인 인드라(INDRA)가 불교에 수용되고 중국에 와서 제석으로 한역된 것이다. 『가락국기(駕洛國記)』의 황천(皇天) 등의 호칭도 모두 옥황상제를 의미하는 단어들이다.

2. 천신신앙

고구려는 하늘에 제사지내는 ‘동맹(東盟)’ 의례를 치렀고 백제 또한 천지에 제사지내었다는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기록을 참조하자면, 천신신앙의 유래는 이미 부여, 고조선 및 삼한 당대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이라 생각된다. 여기에다 신라의 영성제(靈星祭), 일월제, 오성제(五星祭) 고구려의 영성제 등까지 고려한다면 우리 상고대사회의 하늘신앙은 보다 더 다양하였을 것으로 지적될 수 있다.
하늘신앙 및 천신 신앙의 오래됨은 하늘이 지닌 광대무변(廣大無邊), 즉 상천(上天:하느님)이라 일컬어짐으로써 지니게 되는 절대적인 위엄과 권위, 청명함으로써 지니게 되는 공명정대함, 기상의 무궁한 변화를 포용하고 있음으로써 표상(상징)되는 조화, 그리고 일월의 품으로서 간직하게 되는 신비함 등등의 관념이 어울려서 이룩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천신은 우리 나라 사람에게 가장 완벽한 ‘아버지 상(像)’을 부여하게 된 것이므로, 그것을 한국적인 대부신상(大父神像)의 원형으로 생각하여도 좋을 것이다. 인자함과 엄숙함, 공명함과 조화의 힘, 엄격한 판관의 위엄 등을 고루 갖춘 초월적인 인격체로 인식되는 대부신상은 천신에서 비롯된다. 동시에 그것은 한국적인 ‘초자아(超自我)’의 원형으로 평가될 수도 있다.
우리의 천신 숭앙은 부여, 고구려, 가락, 신라, 고조선 등 상고대 왕국의 시조왕이 나라의 창건주로서 그리고 문화영웅으로서 지상에, 하늘에서부터 내려온 신격적인 존재로 인식됨으로써 구체화된다. 이들 상고대 시조왕들은 예외 없이 하늘에서 내림한 천신이자 지상왕국의 왕으로서 생각되고 섬겨진 존재들이다. 이같이 시조가 하늘에서 내림한 신이라는 관념은 한 씨족의 시조신화에도 비쳐져 있거니와, 신라 육촌(六村)의 시조들에 관한 신화를 그 보기로 들 수 있다.
이것은 김수로왕(金首露王)이나 박혁거세왕(朴赫居世王)이 각기 주어진 왕국의 시조이자 김해 김씨, 경주 박씨의 시조로 섬겨져온 것으로 보아서 매우 자연스러운 신화적 발상이라고 하여야 할 것이다. 상고대 신화에서 또 다른 구체적인 천신상은 부여의 해모수(解慕漱)에 관한 신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해모수는 용거(龍車)를 타고 아침에 지상에 내려와서 인간을 위하여 정사를 보살피다가 해질녘이면 다시 하늘로 되돌아가고는 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하늘에 근원을 둔 초인적 신격으로 해모수가 신앙되고 있음을 헤아리게 되는 것이지만, 이같이 뜻대로 천상과 지상을 내왕하는 천신다운 상은 아들인 주몽(朱夢)과 그리고 손주인 유리(類利, 瑠璃王)에게 까지 이어져 전하여지고 있다. 주몽은 인마(人馬)를 타고 천지를 내왕하였고, 유리는 창틀을 타고는 해의 높이까지 하늘을 날 수 있었다고 전하기 때문이다. 이같이 해모수와 주몽, 그리고 유리 등 조손(祖孫) 3대에 걸친 우주여행의 주지는 시베리아 샤머니즘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이른바 입무절차(入巫節次)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천계여행’의 주지와 대응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 경우, 하늘에서 내림한 환웅(桓雄), 수로, 혁거세 등이 역시 우주여행이 가능한 능력을 갖춘 존재로 부각될 수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상고대사회에서 발견되는 또 다른 천신으로는 평안남도 순천군 북창면 북창리에서 발견된 천왕지신총(天王地神塚)에서 지신과 짝지어져 그려진 천왕이 있다. 상투머리를 하고 긴 깃발을 든 채 봉황을 타고 하늘을 나는 남성상이 곧 천왕이다.
상고대 왕조신화가 천신의 내림굿을 그 기본 줄거리로 삼고 있음과 함께 후대에까지 전하여진 마을공동체의 집단의례인 별신굿 또한 마찬가지로 신의 내림굿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일부 지방의 별신 곧 촌락수호신 가운데서도 천신의 존재가 유추될 수 있을 것이다.
왕국의 시조와 씨족의 시조가 하늘에서 내림한 천신이라는 관념은 지상에 살고 있는 모든 인간에게 주어지는 지엄하고도 지고한 운명이며, 이 법이 하늘에서 유래하고 따라서 지상의 인간은 하늘의 뜻에 순명(順命:천명에 순종함)하여야 한다는 보편적인 명제를 자연스럽게 파생하기에 이른다.
지상의 모든 것을 위한 지상(至上)의 지배자, 관리자로서 천신이 군림하게 되는 것이니, 이 같은 관념은 당연히 ‘하늘이 내린 통치자’, ‘하늘 그 자체인 왕’ 등의 사상을 불러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왕권의 천부설(天賦說:여러 능력은 나면서부터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학설)은 유교를 기다려서만 비로소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그것은 역대 왕자(王者)들의 상(像)을 거쳐서 천도교를 비롯한 후세의 여러 신흥종교 내지 민족신앙에서 보게 되는 상제(上帝) 또는 천군(天君)의 개념, 또는 천운(天運)의 개념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일반 민속신앙에서 막연하게 ‘하나님’이 기축(祈祝)될 적에도 이 오랜 관념들이 영향을 끼쳤다고 여겨진다. 천도교, 시천교(侍天敎), 상제교(上帝敎), 흥종교의 교파이름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여겨진다.
한편, 조선왕조에서는 국가기관인 소격서(昭格署:하늘, 별에 지내는 초재를 맡은 관아)에서 관장하는 태일전(太一殿)에서 칠성제수(七星諸宿)를, 삼청전(三淸殿)에서 옥황상제를 섬기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다른 경우, 예컨대 지신숭앙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천신숭앙에서도 민관(民官) 양분현상이 있었음을 지적할 수 있다. 이토록 유래가 오래된 만큼 오늘날에 이르도록 민간신앙, 속신 또는 이른바 민속신념 등에 걸쳐서 천신은 널리 숭상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3. 옥황상제 관련 설화

3.1. 독문 바위와 계화공주

한곡리(閑谷里)라는 마을 뒷산에 문바위라 부르는 넓은 바위가 있는데 그 바위 위에는 장수 발자국이라 부르는 몇 개의 우묵한 자취와 그 옆에는 사람 모양을 한, 두 개의 바위가 서 있는데 이 바위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옛날 하늘에 옥황상제가 다스리는 천국이 있었다. 매우 평화로운 천국의 옥황상제는 딸둘을 두었고 황후는 마침 아기를 잉태하고 있었다. 천국에는 갖가지 진기한 보물도 많고 기이한 꽃이 피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나무들이 가득하였다. 그 중에서 계수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이 나무에 꽃이 피면 계화처럼 아름다운 공주를 낳게 될 것이라는 소문이 퍼져 있었다. 그 후 황후는 공주를 낳고 이름을 계화(桂花)라 했는데 이때 천국 재상이 웅인(雄人)이란 이름을 가진 귀여운 아들을 두고 있었는데 어려서부터 남다른 바가 많았다.
계화공주는 항상 웅인과 더불어 놀았으며,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서 웅인은 매우 씩씩하고 용맹스러우며 지혜있는 총명한 총각이 되었고, 계화 공주도 활짝 핀 계화처럼 깨끗하고 아름다움을 지닌 처녀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또다른 천국의 대신 한명이 계화공주를 며느리로 맞아 자신이 임금과 사돈이 되어 권세를 잡고자 하는 야심에 불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를 따르는 무리들과 힘을 합쳐서 착한 재상 웅인의 아버지를 모함하여 급기야는 반역죄인으로 몰아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게 하였다.
옥황상제는 웅인의 아버지와 그의 아들을 벌주기 위하여 인간 세상으로 귀양을 보내게 되었다. 그 때 옥황상제는 웅인이 비범한 인물임을 알고 있었으므로 특히 이르되 “너의 무용은 인간세상에서는 당할자가 없을 것이니 천국에 오를 때까지는 절대로 무술을 쓰지 말라.”하고 명하였다.
계화 공주는 웅인이 떠난뒤 병이 들어 쇠약해져 가고 있었다. 옥황상제는 공주를 사흘동안만 인간세상을 다녀오도록 허락하였다. 그래서 계화공주는 웅인을 찾았지만 그가 청산면 찬곡리 뒷산 기슭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살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러던 어느날 이 동네에 큰 괴물이 나타나서 가축을 닥치는 대로 잡아 가고 사람도 함부로 해치는 일이 생겼다. 이 괴물의 횡포를 보다못해 웅인은 옥황상제의 특명은 있었지만 자신의 무술로 이 괴물을 때려잡으려 했다.
웅인을 당해낼 수 없음을 안 괴물은 도술을 써서 개구리가 되어 바위 밑으로 기어 들어가고 웅인도 도술로 뱀이 되어 뒤쫓았고, 괴물이 새가 되어 나르면 웅인은 매가 되어 쫓았으며, 마침내 지네로 몸바꿈한 괴물은 문바위 속에 있는 제집으로 기어들어갔다. 지칠대로 지친 웅인은 그 바위 위에 올라앉아서 괴물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때 몰래 도망치려던 괴물 지네를 발견한 웅인은 번개처럼 달려들어서 지네를 두 동강이 내고 말았다. 그러나 이 치열한 싸움에서 웅인도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고 이내 쓰러지고 말았다.
웅인을 찾고자 천하를 헤매던 공주는 인간세상에 내려온지 사흘째 되는 날 마침내 이곳 한곡리에 도착하였다. 괴물과 더불어 싸우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공주는 허겁지겁 산으로 을라갔으나 피가 낭자한 현장에 당도하여 보니 괴물은 두동강이 나서 죽어 있고 웅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다만 웅인을 꼭 닮은 바위가 하나 근심스러히 서 있을 뿐이었다.
웅인은 옥황상제의 특명을 어긴 죄로 하나의 바윗돌로 변하고 말았고 공주도 옥황상제에게 부탁하여 바위로 되었는데 지금도 괴물의 돌문이 있었다는 문바위 위에는 계화공주의 눈물자국이 남아 있고 괴물과 싸울때 남긴 웅인의 발자국이 있으며 이 바위옆에는 웅인과 공주가 변하여 되었다는 바위가 두 개가 우뚝 서 있었다.

3.2. 백도 섬
⌈매바위⌋
백도의 수많은 기암괴석에는 애절한 전설이 이어져 내려온다. 옛날 옥황상제의 아들이 아버지의 노여움을 받아 바다에 내려오게 되었다. 그는 바다 용왕의 딸과 친해져 바다에서 풍류를 즐기며 세월을 보냈다. 옥황상제는 아들을 뉘우치게 할 생각으로 바다로 내려보냈으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아들이 그리워졌다.
옥황상제는 신하들을 내려보내 다시 올라오도록 하였으나 신하들까지 올라오지 않고 풍류를 즐겼다. 하나 둘 내려보낸 신하의 수가 일백명이나 되었다. 화가 난 옥황상제는 아들과 신하들에게 벌을 내려 그 자리에서 돌로 변하게 했다. 그것이 오늘날 '백도 군도'라 한다. 백도에는 전설에 따라 이름 지어진 바위가 많다.
상백도에는 형태가 병풍같이 생겼다 하여 이름 붙여진 병풍바위와 옥황상제가 연락을 취하던 나루섬, 하늘에서 내려온 신하 형제가 숨어있는 형제바위, 먹을 양식을 쌓아 놓았다는 노적섬, 옥황상제의 아들과 풍류를 즐기고 새를 낚아채려다가 돌로 변했다는 매바위, 신하가 내려올 때 쓰고 왔다는 갓모양의 탕건여 등이 있다.

⌈서방바위⌋
하백도에는 옥황상제의 아들이 바위로 변했다는 서방바위와 용왕의 딸이 바위로 변했다는 각시바위, 그들의 패물상자였다는 보석바위, 그들이 궁성을 쌓고 지냈다는 궁성바위, 돌부처처럼 우뚝 솟아있는 석불바위, 신하가 내려올 때 가지고 왔다는 도끼여 등도 있다.

3.3. 견우와 직녀(별자리 설화)

음력 7월 7일 은하수를 중심으로 가까워지는 두별에 관한 설화, 즉 견우, 직녀설화는 누구나 한번 쯤은 들은 이야기 일 것이다.

하늘나라의 옥황상제에게는 직물을 잘짜는 직녀라는 공주가 있었다. 하루는 옥황상제가 하늘나라를 이곳 저곳 살펴보고 있었는데 소를 몰아 열심히 농사를 짓는 견우라는 청년을 만나게 되었다. 옥황상제는 그의 성실함을 높이 평가해 자신의 딸인 직녀와 결혼을 시켰다.
결혼을 한 견우와 직녀는 결혼 전의 성실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일은 미루어 놓고 매일 노래하고 춤을 추며 즐기기에 바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옥황상제는 그들을 불러 열심히 일하도록 타일렀지만, 견우와 직녀는 계속 놀기만 했다. 이에 화가 난 옥황상제는 견우를 동쪽별에 직녀를 서쪽별에 유배를 보내고, 은하수 다리를 사이에 두고 매년 7월 7일에 한번씩 만나도록 했다.
서로를 너무 사랑한 견우와 직녀는 이를 어기고 은하수 다리를 건너 서로를 만나러 다녔다. 이를 안 옥황상제는 은하수 다리를 끊어 버렸고 둘은 1년에 한번도 만날 수 없었다. 어느날 하늘나라에 올라갔던 까치와 까마귀는 그들의 슬픈 사연을 듣고 1년에 한번, 7월 7일날 그들을 만나게 하기 위해 끊어진 은하수 사이에 그들의 몸을 이어 다리를 만들었다. 이렇게 하여 견우와 직녀는 해마다 7월 7일이 되면 하늘로 올라온 까치와 까마귀가 만들어준 다리를 건너 사랑의 기쁨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사랑의 회포도 풀기 전에 날이 밝아오고 다시 헤어져야 하기에 그들은 만나면 슬픈 눈물을 흘렸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음날 새벽에 내리는 비를 그들이 흘리는 이별의 눈물이라 말한다. 또한 7월 7일이 지나면 까마귀와 까치가 다리를 놓느라고 머리가 벗겨져서 돌아온다고 하고 이 다리를 오작교라 부른다. 아직까지도 사람들은 음력 7월 7일의 밤이 되면 하늘의 별들 중에 견우성(Aquila자리의 Altair. α)과 직녀성(Lyra자리의 Vega. α)이 유난히 반짝인다고 생각하곤 한다.

3.4. 덕흥리 고분벽화

덕흥리 고분벽화에는 슬픈 전설의 견우, 직녀 이야기를 담은 그림이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견우는 소를 끄는 목동의 모습으로, 직녀는 은하수 너머의 견우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는 모습이다. 이들을 가로막고 있는 은하수에 점점이 박혀있는 검은 얼룩은 다리를 만들어주기 위해 날아온 까마귀떼로 여겨진다.

먼 옛날 하늘의 옥황상제에게는 직녀라는 어여쁜 딸이 하나 있었다. 직녀는 옷감 짜는 여신으로 온종일 베틀에 앉아 옷감에다 별자리, 태양빛, 그림자 등을 짜넣었다. 그런데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하늘을 도는 별들도 그녀가 하는 일을 지켜보기 위해 멈추어 서곤 하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직녀는 자주 일에 싫증을 느끼게 되었다. 때때로 그녀는 베틀의 북을 내려 놓고 창가에 서서 성벽 아래로 넘실거리는 하늘의 강을 바라보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봄날 그녀는 강둑을 따라 궁중의 양과 소떼를 몰고 가는 한 목동을 보게 되었다. 그는 아주 잘 생긴 젊은이었는데 그들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직녀는 그가 자신의 남편감 임에 틀림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직녀는 자신의 마음을 아버지인 옥황상제에게 이야기하고 그 목동과 결혼시켜줄 것을 부탁하였다. 옥황상제는 견우란 이름의 이 젊은 목동이 영리하고 친절하며 하늘의 소를 잘 돌본다는 사실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으므로 딸의 선택에 반대하지 않고 이들을 혼인시켜 주었다.
그러나 혼인한 이들은 너무 행복한 나머지 자신들의 일을 잊고 게을러지고 말았다. 화가 난 옥황상제는 이들에게 몇 번이나 주의를 주었지만 둘만의 행복에 심취된 이들은 곧 다시 게을러지곤 하였다. 마침내 옥황상제의 분노는 극에 달했고 이들을 영원히 떼어놓을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견우는 은하수 건너편으로 쫓겨났고, 직녀는 그의 성에 쓸쓸히 남아서 베틀을 돌려야 했다.
옥황상제는 일 년에 단 한 번, 즉 일곱 번째 달 일곱 번째 날의 밤(칠월칠석)에만 이들이 강을 건너 만날 수 있게 허락하였다. 이들은 음력 7월 7일이 되면, ‘칠일월’이라는 배를 타고 하늘의 강을 건너 만나게 되는데 비가 내리면 강물이 불어 배가 뜨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언덕에서 직녀가 울고 있으면 많은 까마귀떼가 날아와 그들의 날개로 하늘의 다리를 만들어 이들을 만나게 해 준다고 전해진다.

3.5. 백중이

옥황상제가 천지운행과 일기를 좌우하였지만 비를 내리는 것은 용왕들의 권능이었다. 그래서 비를 내릴 때가 되면 옥황상제가 용왕들에게 요청을 하여야만 비가 내리곤 했다. 사해(四海)에 용왕이 모두 있었는데 동쪽 바다에는 광덕(廣德)용왕, 서쪽 바다에는 광신(廣神)용왕, 남쪽 바다에는 광청(廣靑)용왕, 북쪽 바다에는 흑(黑)용왕이 살았다. 옥황상제의 지시는 밤에 내려지는데 그 말을 매번 용왕의 사자인 거북이 부원군이 용왕에게 전달하곤 했다.
거북사자는 바다일을 관장하여 어선이나 운반선 각종 배의 운을 좌우했고 잠수들의 바닷일을 도와 궂은 일이 있게도 하고, 막아주기도 했으며 일하는데 편하게 물길을 터주기도 하는가하면 바다에 빠져 죽는 자의 영혼을 인도하기도 했다. 거북사자는 위엄을 보이기 위해 배 앞에 임금 왕(王)자를 새기고 등뒤에는 날 용(勇)자를 달고 다닌다. 그러나 모습은 의젓한데 머리는 작아서 가끔 멍청한 짓을 하기가 일쑤였다.
그 때 인간세상에는 백중이라는 목동이 살고 있었다. 낮에는 산에서 소, 말들을 방목하고 밤에는 바닷가로 내려와 가축들을 지키곤 했다. 어느 날 밤 그 날도 백중이는 바닷가에 내려와 있다가 우연히 옥황상제가 용왕의 사자 부원군에게 비를 내리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말았다. “용왕, 용왕!” 옥황상제가 바다를 향해 용왕을 부르니 ‘부원군’이 나타났다. 그러자 “이 마을에는 비를 다섯자 오치를 주어 흘러넘치게 하고, 저 들판에는 햇빛이 쨍쨍하여 날이 좋도록 하시오.” 백중이가 가만히 엿듣자니 자기가 있는 마을에 큰 비가 내려 다 죽게 될 판이었다. 다섯자 오치의 비가 내리면 사람, 집, 곡식, 말 모두가 물에 잠겨 버리고 말 터였다. 꾀를 낸 백중이는 옥황상제가 올라가기를 기다려 그 목소리를 흉내내어 용왕을 다시 불렀다. “용왕, 용왕” 용궁 깊은 곳으로 돌아가던 거북사자 부원군이 왠일인고 하여 다시 물 위로 돌아왔다. “아까는 내가 잘못 말했소. 저 들판에는 다섯자 오치 풍우대작(風雨大作)하고 이 마을에는 날도 좋고 시절도 좋게 하시오.” 원래 어눌한데다 어두워서 잘 볼 수 없었던 거북이는 옥황상제가 말하는 줄만 알고 그대로 용왕에게 고했다.
다음날 먼 들에는 폭풍우가 치고 바람이 불어 큰 물난리가 났지만 마을 인근에는 날이 맑고 시절이 좋았다. 밤에 바닷가를 지키던 백중이가 옥황상제가 마을로 피해를 주려고 할 때마다 저지를 하니 마을에 육축은 번성하고 사람들은 난리를 겪는 일이 없이 평안히 살았다.
이런 일이 계속되다보면 들통이 나게 마련이다. 옥황상제가 지상을 내려보다가 번번히 자기가 말하는 것과는 반대로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부는 것을 알게 됐다.
화가 난 옥황상제가 용왕을 불러 야단을 쳤으나 용왕도 영문을 알지 못했다. 그 날 밤 옥황상제는 다시 내려와서 부원군에게 “비를 내리라.” 하고 지시를 하고는 올라가는 척 하면서 몰래 숨어서 봤다. 그러자 목동인 백중이가 엿보고 있다가 나와 자신의 말을 거꾸로 하는 게 아닌가. “허, 거 몹쓸 놈이로고.” 옥황상제는 벼락장군을 불러 번개를 쳐서 백중이를 처벌하도록 했다.
사람들은 백중이의 죽음을 슬퍼하여 매해 제사를 지내게 됐다. 백중이가 음력 7월 보름날 벼락을 맞아 죽었기 때문에 제사는 그 전날인 7월 14일에 지내 백중이의 혼을 위로하고 우마의 번성을 기원하여 목축신으로 섬겼다.
이에서 비롯되어 백중날 밤에는 바닷가에서 수영을 하고 물맞이를 가는 풍습도 생겼다. 말을 목장에서 방목하는 사람들은 이날만은 목장으로 올라가서 말들의 건강상태를 살피고 백중이가 썼던 말고삐를 제삿상 위에 올려 제사를 지내곤 했다. 마을에서 지내는 백중제의는 많이 남았으나 목장에서 지내는 백중제의 전통은 오랜 세월을 흘러 내려오고 있으나 지금은 거의 없어져서 제주(濟州)시 회천(回泉)동 등 일부 마을의 공동목장에서만 희귀하게 최근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3.6. 고성 덕명리 고생물화석 산출지

고성군 하이면 덕명리에 가면 층암단애 깊숙히 암굴이 뚫려 있는데 이곳이 바로 상족암(床足岩)이라 불리는 곳이며 이 상족암에는 애틋한 이야기가 전하여 온다.

하늘의 옥황상제께서는 새로운 옷을 즐겨 입기를 좋아 하셨는데 하루는 지상의 세계를 내려보고 계시다가 상족암의 절경에 감탄하여 저곳에서 베를 짜서 옷을 입으면 양질의 옷이 될 것이라 하시면서 선녀들을 하강시켜 상족암에서 베를 짜라 하시고 베틀과 함께 지상으로 내려보냈다. 선녀들은 옥황상제께서 내려주신 베틀로 하루도 쉬지 않고 옥황상제가 입으실 금의를 짜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옥황상제는 하루에 한벌씩 금의를 갈아입으시기 때문에 선녀들의 손으로는 매우 힘든 일이었다. 선녀들은 옥황상제의 엄중한 명령에 베틀의 바로 옆에 여러개의 웅덩이를 파서 목욕을 하면서까지 열심히 금의를 짰다. 선녀들은 옥황상제의 명령에 의하여 1년에 한번씩 교대로 금의를 짜서 옥황상제께 상납하였다는 전설이 전하여 내려오고 있다. 지금도 상족암 암굴 안에는 그 당시의 베틀로 보이는 석직기(石織機)의 형상이 남아 있다


3.7. 옥녀봉

강경읍 복오리에는 80여m의 야산이 있다. 이 산 정상에 오르면 사면이 확트여 강경읍내와 산 아래로 굽이치는 강의 경치가 한눈에 들어 온다. 옛날에는 이 산아래 흐르는 강물이 어찌나 맑았던지 고기가 지나가는 것도 보였고 물속에 깔려있는 조약돌들이 손에 잡힐 듯 보였다 한다.
강물을 아래로 하고 위에 서있는 산은 숲으로 우거져 있었고 사방으로 끝없이 펼쳐진 넓은 들이 있어 그 경치가 더없이 좋았다. 그래서 하늘나라에서는 달밝은 보름달 밤이나 그 다음날 밤엔 선녀들이 Ep를 지어 이 산마루에 내려와 경치의 아름다움을 즐겼고 맑은 강물에 목욕을 하며 놀았다.
그러나 이곳에 한번 다녀간 선녀들이 이처럼 선망하고 자랑을 하였지만 옥황상제의 딸은 한번도 내려오지 못하였다. 어찌나 선녀들이 자랑을 하는지 꼭 가보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해 팔월 보름날밤 옥황상제의 딸은 옥황상제의 허락을 받아 이곳에 내려오게 되었다. 많은 선녀들에 둘려 쌓여 이곳에 내려온 옥황상제의 딸은 정말 듣던대로 아름다운 절경에 놀랐다. 물속에 몸을 담그고 앉아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휘영청 밝은 달빛이 어찌나 밝은지 이곳이야말로 참으로 별천지 같았다. 얼마나 절경에 심취하여 놀았던지 올라갈 시간조차 잊을 정도였다. 한편 하늘나라에서는 이들이 올라오지 않자 옥황상제는 “어찌하여 딸과 선녀들이 올라올 시간이 되었는데도 올라오지 않느냐?” 하며 노발 대발하면서, “어서 올라오도록 나팔을 불어라.” 하였다. 하늘나라에서 들려오는 나팔소리를 듣고서야 그녀는 부랴부랴 옷을 갈아 입고 하늘나라로 올라가려고 서둘렀다. 그녀는 하늘나라로 올라갈 시간이 너무나 촉박하여 옷도 제대로 입지 못했다. 그래서 한쪽 가슴을 보인채 하늘나라로 올라가고 있었다. 하늘나라에서는 옥황상제가 그들이 올라 오는 것을 바라보고 있던 옥황상제는 “여봐라, 저기 앞가슴을 내놓고 올라오는 자가 누구냐. 당장 저자를 올라오지 못하도록 하고 영원히 그땅에서 살도록 떨어뜨려라.” 하며 노하여 말하였다. 그녀는 하늘나라에 올라가지 못하고 이땅에 홀로 떨어져서 살게 되었다.
그후로 그녀는 이땅에서 머무르면서 매일 산위에 올라가서 “아바마마. 죄많은 이 소녀를 용서해 주십시오. 제발 하늘나라에 올라갈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하며 울면서 애원하며 기도를 올리곤 하였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그녀는 눈물로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한번의 실수로 하늘나라에 오르지 못하고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한스럽기도 했다. 땅에서 살게되면서 이름도 옥녀라고 불렀다. 언제나처럼 옥녀는 산위에 올라가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아버지이신 옥황상제님! 애타게 부모를 그리고 있는 저를 부모님 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여 주소서.” 옥녀가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기도를 드리는데 옥녀의 앞에 거울이 하나 떨어졌다. 옥녀는 그 거울을 주워 들여다 보았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그 거울속에는 옥녀가 그렇게도 그리던 하늘나라의 궁궐이 보였고 옥황상제인 아버지의 모습도 보였다. 그리고 자기를 아끼던 시녀들이 가끔 사람이 사는 세상을 내려다 보며 애처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옥녀의 마음은 안타깝기만 했다. 자기의 실수를 후회도 해보았지만 옥황상제의 엄명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 옥녀는 매일 아침이면 하루도 쉬지 않고 산에 올라가 기도를 드리고 거울을 쳐다보고 궁궐을 보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 옥황상제인 아버지께서 이제나 부를까 저제나 부를까 하고 계속 기도를 올리며 아버지의 노여움이 풀리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좀처럼 하늘나라에서는 부르지를 않았다. 끝내 옥녀는 거울을 들여다보다가 하늘나라에 올라가지 못하고 땅에서 죽고 말았다. 지금도 이 산위에는 그녀가 하늘나라의 부름을 기다리다가 죽었다는 봉우리가 있는데 이곳을 후세 사람들은 옥녀가 죽은 자리라 하여 옥녀봉이라 부르고 그녀가 들여다 보던 거울은 바위로 변하여 용영대가 되었다고 전하여 온다.

3.8. 만경다리와 옥황상제 바위전설

만경다리는 일만경치가 다 보인다고 하여 만경다리라고 한다.

옛날 하늘나라 옥황상제는 금강산이 천하명승이라는 말을 듣고 금강산에 내려왔다. 옥황상제가 금강산을 돌아보니 그 경치야말로 하늘나라와는 비길 수 없이 아름다운 황홀경이었다. 비로봉을 거쳐 구룡연계곡에 내려온 옥황상제는 수정같이 맑은 물을 보자 삼복더위를 참지 못하고 체면도 돌볼 새 없이 관과 옷을 벗고 담소 뛰어들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목욕을 하였다.
그러다가 그만 옥황상제는 금강신에게 들키고 말았다. 금강신은 옥황상제에게 “이 물은 신령약수로서 사람들이 즐겨마시는 것인데 그 물에서 목욕을 하고 있으니 천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고 하면서 옥황상제의 관을 들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다. 이에 옥황상제는 관을 쓰지 못하여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세존봉중턱에 맨머리인채로 굳어지게 되었다. 때로는 부끄러운 듯 안개와 구름 속에 숨기도 하지만 맑은 날이면 그대로 앉아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 듯하다.

3.9. 무룡산의 선녀(仙女)와 용(龍)

무룡산은 울산의 진산(鎭山)이다. 멀리 강원도 태백산맥이 남으로 뻗으면서 그 한줄기가 경주 토함산을 이루고 그 남쪽에 동대산맥(東大山脈)을 형성하면서 우뚝 솟은 준령이다. 무룡산이란 춤출 무(舞)자와 용 룡(龍)자, 뫼 산(山)자로서 용이 춤을 추던 산이라 한다. 이 산은 많은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한가지 전설은 다음과 같다.

옛날에는 이 무룡산 꼭대기에 넓다란 연못이 있었다고 한다. 이 연못에는 일곱마리의 용들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중에 한마리는 눈이 멀어서 함께 사는 용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한번은 하늘의 옥황선녀들이 여기 이 연못에 내려와서 목욕을 하게 되었다. 갑자기 하늘에서 오색구름이 찬란해지더니 일곱색깔 무지개가 쭉 뻗어 무룡산정의 연못에 뿌리를 박은 것이다.
이 무지개를 타고 옥황선녀 일곱이 연못으로 내려왔다. 칠선녀와 칠룡이 상봉하게 된 것이다. 선녀와 용들은 한데 어울려 물장구를 치며 목욕하고 놀았다. 그런데 칠선녀 가운데 마음씨 착한 선녀 하나가 있었다. 선녀들은 하늘에서 내려와서 칠룡을 만났는데 아무도 장님 용과는 놀지 않으려고 하였다. 장님 용은 서러워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때 마음씨 착한 선녀가 다가왔다. “장님 용, 나하고 짝을 지어 놀아요.” 하였다.
장님 용은 기뻤다. 눈물을 거두고 마음씨 착한 선녀와 어울려서 놀았다. 여섯 선녀와 여섯용들은 장님 용과 어울려 노는 선녀와 용을 놀려댔다. 그러나 마음씨 착한 선녀는 개의치않고 따로 떨어져서 마냥 즐겁게 놀았다.
목욕을 마친 선녀들은 하늘로 올라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선녀들과 용들은 서로 정이 들어 떨어질 수가 없었다. 용들과 선녀들이 모두 함께 하늘로 오르기로 하였다. 그러나 장님 용은 하늘로 오를 수가 없었다. 장님 용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마음씨 착한 선녀는 마음이 아팠다. 차마 가엾은 장님 용을 홀로 두고 하늘로 오를 수가 없었다. 마음씨 착한 선녀가 말했다. “애들아 너희들은 먼저 하늘로 올라가거라, 나는 이 가엾은 장님 용을 두고 떠날 수가 없구나. 하늘에 올라 가거던 옥황상제께 내가 너희들과 함께 올라가지 못하는 사정을 잘 말해다오.” 다른 선녀들이 까르르 웃는다. “야 이 못난것아, 넌 그 바보같은 장님 용이 뭣이 그리 좋아서 못간다는 거니?”
“애들아! 장님 용이 좋아서가 아니라 너무 가엾어서 그러는 거야.”
“맘대로 하려무나. 넌 그럼 영영 하늘나라로 올라 올 생각일랑 아예 말아라.”
이렇게 해서 여섯선녀와 여섯마리의 용은 쌍쌍이 짝을 지어 무지개를 타고 하늘나라로 훨훨 날아 올라가고 말았다. 용과 선녀들이 하늘로 올라갈 때 하늘에는 오색구름이 영롱하고 서기가 충천하였다.
선녀와 용들이 하늘로 오르던 그날부터 시꺼먼 먹구름이 일고 천지를 진동시키는 천둥이 치며, 장대같은 비가 일주일이나 퍼부었다고 한다. 하늘의 옥황상제가 노발대발한 것이다. 일곱이 같이 내려 갔으면 사이좋게 놀다가 함께 올라올 것이지 왜 하나는 두고 왔으며 또 여섯 용들은 승락도 받지 않고 뭣 때문에 데리고 올라 왔느냐는 것이었다. 선녀들은 옥황상제 앞에서 용서를 빌고 또 빌었지만 용서받지 못했다.
옥황상제는 여섯 선녀와 여섯 용을 도로 지하로 내려보내서 귀양을 살게 하였다.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고 여섯선녀와 여섯 용들은 무룡산 연못으로 내려와서 귀양살이를 하게 되었다. 한편 눈먼 장님 용과 마음씨 착한 선녀는 옥황상제의 부름을 받고 하늘나라로 득천을 했다. 눈먼 용은 하늘로 올라가서 옥황상제의 조화로서 눈을 뜨게 되었고, 마음씨 착한 선녀와 짝지워 배필이 되었다.
무룡산으로 내려와서 귀양살이하던 여섯 선녀들은 날마다 수심에 잠겨 하늘나라만 쳐다 보는데 그것도 모르는 용들은 선녀들과 함게 살게된 것 만이 행복스러워서 날마다 춤을 추었다고 한다. 그런지 얼마 후에 옥황상제의 노여움은 풀어져서 선녀들과 용들을 하늘로 불러올리니 선녀와 용들은 춤추고 기뻐하면서 하늘로 득천했다고 한다.

3.10. 옥황상제에게 벌 받은 토끼

옛날 옛적, 금강산이 천하절경이라는 소문이 하늘나라에까지 퍼졌다. 그 소문은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을 하기 시작하고부터 더욱 널리 퍼져 나갔다. 그리하여 하늘나라에서는 누구나 금강산 구경 한 번 가는 게 소원처럼 되어 버렸다. 하루는 성미 급한 토끼가 그 소문을 듣고 안달이 나, 달에 가서 더 이상 절구를 찧을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단 한 번만이라도 금강산 구경을 하고 와야 일이 손에 잡힐 것 같았다. 그래서 토끼는 참다 못해 옥황상제를 찾아가 자기의 절절한 소원을 아뢰었다. “옥황상제님, 듣자온데 금강산이라는 소문난 명승지가 있다고 하온 즉 이 못난 토끼도 한 번 보고 왔으면 평생 소원이 없겠사옵니다. 바라옵건데 단 한번만이라도 땅에 내려 보내 주옵소서.” 옥황상제는 토끼의 소원이 하도 간절한 것 같아 쾌히 승낙해 주었다. 그러나 보름이 되기 전에 반드시 돌아와야 된다고 다짐을 해두었다.
옥황상제의 승낙을 얻은 토끼는 너무 좋아서 동네방네 뛰어 다니며 자랑을 하였다. 다음 날 토끼는 모두에게 환송을 받으며 금강산에 내려왔다. 제일 먼저 외금강 입구에 도착한 토끼는 세존봉 줄기를 타고 기어오르다가 금강문 근처에 이르러 완전히 어리둥절해 버리고 말았다. 눈 앞에 펼쳐진 경치가 너무나 아름다워 혼절할 지경이었다. 천화대, 옥류폭포, 무봉폭포, 비봉폭포, 은사류, 구룡연 등 어느 것 하나도 가면 갈수록, 보면 볼수록 하늘나라에서는 보지도 못했고 상상도 못한 절경이었다. 그것은 어디를 가도 매한가지였다. 마침내 황홀경에 도취된 토끼는 날짜 흘러가는 것도 잊어버리게 되었다.
어느날 밤 토끼가 동해바다 위를 보니 휘영청 둥근 보름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제야 토끼가 ‘아차!’하고 정신이 퍼뜩 들었으나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그때 하늘에서부터 옥황상제의 노기 띤 목소리가 울려 왔다. “요 괘씸한 토끼야! 너는 예전에 달리기에서 거북이에게 지더니 또 거북이보다도 느리게 행동했구나. 그러니 너는 그 벌로 앞으로 아예 거북이가 되거라!” 옥황상제의 명이 떨어지자 토끼의 몸뚱이는 서서히 거북이로 변해갔다.
그러나 토끼는 옥황상제의 처벌이 두렵지도 않았고 싫지도 않았다. 오히려 달에서 절구질이나 하고 있는 것보다 이 아름다운 금강산에서 실컷 구경하며 사는 게 낫다고 생각되었다. 그러자 토끼는 금강산 절경에 감탄하고 있는 모습 그대로 점점 돌로 굳어져 갔다. 나중에 보니 몸은 거북이요, 머리는 토끼가 되어 있었다. 이 바위는 전망 좋은 세존봉 중턱에 있다고 한다.

3.11. 선녀폭포

천문봉의 북쪽에는 산골짜기를 끼고 악화림이 있다. 이 악화림속에 들어서면 우렁찬 폭포소리가 들려온다. 이 폭포가 바로 선녀폭포이다. 사람들의 발자국이 별로 닿지 않는 이 폭포의 높이는 50여m이다. 한줄기로 날아내리던 폭포는 20m가량 되는 곳의 불쑥 솟은 바위에 부딪쳐서 억만개의 물구슬로 부서지며 확산된다. 멀리서 보면 이 광경은 마치도 하얀 치마자락이 바위에 걸리어 바람에 나붓기는 것만 같다.

옛날에 이 고장은 아름다운 곳이어서 하늘의 선녀들이 내려와 노는 놀이터였다고 한다. 여기 와서 꽃도 따고 새소리도 듣고 사슴도 구경한 선녀들은 지상이 천당보다 더 경치가 좋고 아름답다고 하였다. 선녀들은 자기들끼리 노래까지 지어부르면서 지상세계를 찬양하였다. 어느날 그들의 노래소리를 들은 옥황상제는 신하를 불러들이었다. “어디서 이런 노래소리가 울려오는고?” 하니 “아씨들이 부르옵니다.” 하자 “다시는 부르지 못하게 하여라. 그리고 걔들도 다시는 백두산놀이터로 내려가지 못하게 하여라.” 하였다. 신하는 그 자리로 선녀들한테 달려가서 옥황상제의 엄명을 전하였다. “노래도 부르지 말라. 놀러도 다니지 말라. 그럼 우린 뭘 하란 말인가?” 천중에만 붙박혀 있자니 선녀들은 갑갑하여 견딜 수 없었다. 그럴수록 백두산이 더욱 그리웠다. “우리 모두 백두산에 가만히 가서 놀다 올까?” “옥황상제가 알면 어쩔래?” “죽이기야 하겠니?” “그럼 가볼까?” 하여 옥황상제의 명을 어기고 말았다.
그들이 한창 흥겹게 놀때 천상에서는 옥황상제가 그 사실을 알고 노여워하며, “얘들이 또 지상으로 내려갔구나. 구름신에게 말해 소나기를 퍼붓도록 하여라.” 하였다. 구름대신은 먹장구름을 몰고 백두산에 와서 소나기를 퍼부었다.
선녀들은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에 어찌할 바를 보르고 헤매었다. 번개는 정수리를 칠 듯이 번쩍거리였고 광풍이 휘몰아치고, 우레는 귀청을 쨀 듯이 울부짖었다. 선녀들의 놀이터는 눈깜짝 할 사이에 황폐해졌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바람에 눈도 제대로 뜰 수 없었던 선녀들은 서로 부르며 갈팡질팡하였다.
홀연, 쏴-하고 시커먼 흙탕물이 성난 사자마냥 포효하며 흘러내려왔다. 선녀들은 피할 사이도 없이 홍수에 휘감겨 들어갔다. 모두들 언덕으로 오르려 애썼지만 한 선녀만은 그냥 홍수에 감겨서 살려달라고 소리질렀다. 물재주가 없는 선녀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쩔 바를 몰라하였다. 이때 꽃사슴 한 마리가 물에 빠진 선녀를 향하여 헤엄쳐갔다. 꽃사슴을 만난 선녀는 사슴의 목을 끌어안고 겨우 등허리에 올라탔다. 선녀를 실은 꽃사슴은 사나운 물결을 가르고 언덕으로 헤엄쳐 나왔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선녀의 치마가 없어졌던 것이다. 선녀들은 가슴을 치며 안타까와 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치마가 없으면 하늘로 날아올라갈 수 없었던 것이다. 이때 한 선녀가 "근심말아, 내가 가서 치마를 가져오겠어!" 말을 마친 선녀는 하늘에 올라가서 치마를 가져왔고 그들은 함께 하늘로 올라가게 되었다.
물살을 타고 떠내려가던 선녀의 치마는 악화나무에 걸리였다. 아우성치며 흐르던 산홍수는 줄어들면서 산을 타고 흘러내리다가 선녀의 치마폭을 타고 넓다랗게 퍼지었다. 오랜 세월이 흐르자 선녀의 치마는 썩어서 없어졌으나 물줄기는 선녀의 치마모양과 같은 폭포로 되었다. 사람들은 이 폭포가 선녀의 치마 때문에 생겼다면서 선녀폭포라고 불렀다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 폭포가 악화림속에 있다고 악화폭포라고 부르기도 한다.

3.12. 금방울전

성남 조계촌에 김삼랑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처 막씨의 얼굴이 곱지 못하다고 여자를 취하여 돌아오지 않았으나 막씨는 조금도 서러워하는 일이 없이 노모(老母)를 봉양하였다. 집이 가난하므로 남의 집 고용살이가 되었다. 시어머니가 죽자 막씨가 밤낮으로 애통해하며 장사를 극진하게 차려 선산(先山)에 안장(安葬)한 후, 묘 앞에 초막을 짓고 밤이면 수직(守直)하기를 십여 년에 걸쳐 한결같이 하니 천고(千古)에 효부(孝婦)가 많으나 막씨에게 미칠 사람이 없었다.
하루는 초막에서 막씨가 꿈을 꾸니, 몸이 공중에 올라 정처없이 헤매다 한 곳에 이르니 경치가 매우 뛰어난 곳이었다. 막씨가 바라본 즉 백발 노옹(白髮老翁)이 동서남북에 앉아 있거늘, 감히 나아가지 못하고 주저할 즈음에 동자(童子)가 나와 이르되, “우리 사부께서 옥황상제의 명을 받자와 전하려 하시니 바삐 나아가 뵈오라.” 하거늘, 막씨가 나아가니, 노인이 각각 방위(方位)에 따라 앉아 있다가 박씨에게 말하기를, “그대의 커다란 절개와 지극한 효성을 옥황상제께서 아시고 극진히 표창하라 하시어 자식으로 점지하려 했더니, 그대의 남편이 난중(亂中)에 죽었다 하는지라. 옥황상제께 이 사연을 아뢴즉 옥황상제께서 좋을 도리로 점지하라 하시더니, 남해 용녀와 동해 용자가 어린 나이에 원통하게 죽어서 옥황상제의 탑하(榻下, '자리의 아래'란 뜻)에서 원수 갚을 것을 발원(發願)한즉 옥황상제께서 우리로 하여금 선처하여 보응(報應, 인광 다라 갚음을 받는 것)하게 하라 하신고로, 명을 받들어 동해 용자는 마침 좋은 곳이 있어 처리하였으나 용녀의 거처를 정하지 못하여 이제 데려와 그대에게 주나니 16년 후에 얼굴을 볼 것이니 이제 보았다가 후일 의심이 없게 하라.” 하고 소매에서 오색 비단을 내어 주며 말하기를,
“16년 후에 찾을 때가 있을 것이니 그 때 도로 보내라.” 하고 또 청의선관(靑衣仙官)이 부채를 주며 말하기를, “이것을 가지고 있으면 하루에 능히 천 리를 갈 것이니, 쓰고 즉시 전하라.” 하고 백의선관(白衣仙官)이 붉은 부채를 주며 말하기를, “바람과 안개를 부리는 것이니 찾는 때에 전하라.” 하고 또 흑의선관(黑衣仙官)이 웃으며 말하기를, “나는 줄 것이 없으매 힘을 빌려 주노라.” 하고 검은 기를 주거늘, 선녀가 다 받아 가지고 막씨를 한 번 돌아보며 공중으로 가려 할 때, 학의 울음소리 나며 황의선관(黃衣仙官)이 내려와 자리에 앉으며 말하기를, “막씨의 표창을 어찌 하였으며 용녀의 보응을 어찌 마련하였느냐?” 여러신선이 여차여차(如此如此) 점지하였노라 대답하니, 황의선관이 눈썹을 찡그리고 말하기를, “이렇게 하면 이름 없는 자식이 될 것이니 효부의 바라는 바가 아니라, 여차여차하면 하늘의 뜻 세상이 알 것이오. 모녀는 윤기(倫紀, 윤리와 기강)를 알리라.” 하니, 모두 옳다 하고 각각 채운을 타고 흩어지거늘, 막씨가 아련히 돌아서서 사면을 바라보매 시선의 자취가 구름 밖으로 사라지고 만장폭포(萬丈瀑布, 매우 높은 데서 떨어지는 폭포)의 흐르는 물소리뿐이라. 무료(無聊)해져서 돌아올 때 얼음판에서 발을 잘못디디다 깨달으니 남가일몽(南柯一夢, 허망한 꿈)이라. 꿈 속의 일을 기억하매 남편이 죽은 줄 알고 허위(虛位, 시신 없이 위패만 모신 자리)를 배설하고 슬퍼함을 마지아니하더라.
하루는 막씨가 일만 가지 시름을 띠고 앉아 있더니, 갑자기 한바탕 음산한 바람이 일어나며 초막 밖에 한 사람이 서 있었는데 남편, 삼랑이었다. “그대가 나를 버리고 나간 지 이미 수십 년이라. 간 곳을 몰라 의심하고 염려하더니 신령이 이르기를 난중에 죽었다. 하매 꿈을 믿을 것이 아니로되 역력히 들었으므로 영연(靈筵)을 배설하였더니 의심컨대 살아 서로 보는 것입니까? 어찌 깊은 밤에 거취가 분명하지 아니합니까?”
삼랑이 목이 메어 이르되, “과연 그대의 숙녀지덕(淑女之德, 교양과 예의를 갖춘 정숙한 여인의 덕)을 모르고 탕자(蕩子, 방탕한 사내)의 마음을 걷잡지 못하여 그대를 박대한 죄로 천앙(天殃, 하늘에서 내리는 재앙)을 받아 난중에 죽으매 후세에가도 또한 죄인이라. 비록 깨달으나 가히 미치지 못할 바이오, 귀신의 무리에도 참예(參預, 참여)하여 섞이지 못하고 음풍(陰風)에 다니더니 그대가 나를 위하여 지극히 제사 지내니 어찌 부끄럽지 않으리오? 비록 유명(幽明, 저승과 이승)이 다르기는 하나 그 감격함을 사례하고자 하노라.” 하고, 생시(生時)와 다름이 없이 수작하다가 돌아간 후 자주 왕래하여 몽중(夢中)에 친밀함이 있더니 막씨가 갑자기 배가 아프며 마치 태에 아이가 노는 듯하여 배가 점점 불러 오거늘, 심히 이상하게 여겨 행여 남이 알까 근심하였더니, 열 달에 이르러서는 해산 기미가 있어 초막에 엎드려 있다가 해산하고 돌아보니 아이는 아니고 금방울 같은 것이 금빛에 찬란하였다.
막씨가 크게 놀라 이상하게 여기며 손으로 누르되 터지지 아니하고 돌로 깨쳐도 깨지지 아니하거늘, 이에 집어다가 멀리 버리고 돌아보니 금방울이 굴러 따라오는지라. 더욱 의심하여 집어다가 깊은 물에 던지고 돌아오니, 금방울이 물 위에 가벼이 떠다니다가 막씨가 가는 것을 보고 여전히 굴러 따라오는 것이었다.
막씨가 헤아리되, ‘나의 팔자가 기구하여 이 같은 괴물을 만나니 다른 날에 이로 인하여 반드시 큰 화근(禍根)이 되리로다.’ 하고 불을 땔 때에 아궁이에 던져 두었다가 닷새 후에 헤쳐 보니, 금방울이 뛰어나오되 상하기는 커녕 금빛이 더욱 거룩하고 향내가 진동하거늘, 막씨가 하릴없어 두고 보니, 밤이면 품 속에 들어와 자고 낮이면 굴러다니다, 날아가는 새도 잡고 나무에 올라 과실도 따가지고 와서 막씨 앞에 갖다 놓는 것이었다.
하루는 막씨가 엄동설한(嚴冬雪寒)에 남의 방아를 찧어 주고 저녁에 초막으로 돌아오니 방울이 굴러 초막에서 내달아 반기는 듯 뛰놀거늘, 막씨가 추위를 견디지 못하여 초막 속으로 들어가니 그 속이 놀라울 정도로 따뜻하였고 방울이 빛을 내어 밝기가 낮과 같았다. 막씨가 기이하게 여기고 남이 알까 두려워하여 낮이면 초막 속에 두고 밤이면 품 속에 품고 자더니, 금방울이 점점 자라매 산에 오르기를 평지같이 다니며 진 데와 마른 데 없이 굴러다니되 몸에 흙이 묻지 않았다. 이렇듯 시간이 흐르니 자연히 사람들이 알아 저마다 구경하고자 하였다. 집어 보매 빛이 찬란하고 부드러워 향이 코를 감싸고, 그 중 사나이들이 집어 보려 하면 땅에 박혀 떨어지지 않을 뿐 아니라 그 몸이 불덩이 같아 손댈 길이 없으매 더욱 신통히 여기더라.
동리에 재산은 많았으나 욕심많고, 인륜을 모르는 목손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목손은 막씨 가 없는 사이를 틈타 가만히 방울을 도적하여 집에 돌아가 처자에게 자랑하고 집에 감추었다. 그런데 그 날 밤에 난데없이 온 집안에 불이 나, 목손이 놀라 미처 옷을 입지 못하고 알몸으로 뛰어 나왔으나 그 많은 재물이며 세간을 다 재를 만들어 목손의 부부는 실성통곡(失性痛哭)하며, 그 중에도 그 방울을 잊지 못하여 불붙은 터에 가서 재를 헤치고 방울을 찾더니, 재 속에서 방울이 뛰어 내달아 목손의 처의 치마폭에 들어왔다. 이날 밤 목손의 처가 계속 추위에 떨며 말하기를 “이 방울이 전에는 덥더니 지금은 차기가 얼음 같고, 아무리 떼려 하여도 살에 박힌 듯하여 떨어지지 아니한다.” 하였다. 목손이 달려들어 잡아 떼려 하니 도리어 뜨겁기가 불같아 손을 대지 못하자, 그 처를 꾸짖으며 말하기를 “끓는 듯하거늘 어찌 차다 하느뇨?” 라며 서로 다투더라.

(하략....)

5. 맺으며

옥황상제는 하늘의 중심이 되는 신으로, 천신, 하나님, 하늘님, 하느님 등 여러 가지 다른 이름으로 불려져왔다. 위의 여러 가지 설화에서도 보았듯이 옥황상제가 등장하지 않는 설화가 드물 정도로 우리의 옛이야기에는 옥황상제가 주연이든, 조연이든 빠짐없이 등장하고 있다. 위의 12가지 설화에서도 옥황상제가 대부분 벌을 주는 인물로 나오고 있는데 모두 매우 엄한 모습이다. 하늘의 중심에 서서 만물을 주관하는 위치에 있으므로 하나같이 엄한 존재, 절대자의 상징으로 묘사되고 있는 듯하다.
우주만물을 지배하는 옥황상제를 고구려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고대국가에서는 제사를 지냈는데 동맹, 영성제, 일월제, 오성제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국가 주재의 제사에서 옥황상제가 모셔졌다는 것을 통해 옥황상제가 얼마나 중요하게 모셔졌었는지 중요성을 새삼 실감할 수 있다.
참고문헌 및 도판
▒ 참고 문헌
《參考文獻》
金仁會외, 韓國巫俗의 綜合的考察, 高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1982
張籌根, 韓國의 鄕土信仰, 乙酉文化社, 1979
金烈圭, 韓國民俗과 文學硏究, 一潮閣, 1982
韓國民俗大觀 3-民間信仰·宗敎-, 高麗大學校民族文化硏究所, 1982
朴桂弘, 韓國民俗槪論, 螢雪出版社, 1983

▒ 참고 도판
김태곤 (편), 韓國巫神圖, 열화당, 1993, 176~177면(도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