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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양간신

외양간신
1. 개요
외양간신은 소중한 소를 키우는 외양간을 수호하는 신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소를 가족으로 여겨서 한 집에서 사는 하인이나 동물처럼 ‘생구’라 불렀다. 고대로부터 소는 하늘의 뜻을 알리는 영물로, 부여에서는 그 발굽으로 점을 치기도 했으며, 소를 가장 존귀한 제물로 생각하였다. 이처럼 귀중한 소를 보호하기 위한 신이 바로 외양간신이다.
소는 신성한 동물로서 하늘에서 내려온 왕자라는 설화도 널리 퍼져 있다. 소에게 세속의 말을 쓰면 부정을 타거니와 죽을 때에는 영특해져서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다고 여겼다. 이렇게 신성하고 존귀한 존재였으므로, 농가에서 소나 송아지를 사는 날을 납우일이라고 따로 불렀다 외양간을 세울 때에도 좋은 날을 가려잡았다.
외양간신은 지방에 따라 여러 가지 모습을 갖고 나타난다. 여러 지방에서는 소의 해산 때 외양간 입구에 금줄을 친다든가, ‘구능장군’이라 부르는 소의 삼신을 섬긴다든가, ‘쇠구영신’, ‘구융신’ 등을 모셔서 소를 보호하고자 하였다. 또한 구유는 풍요를 상징하기도 하여 집터가 구유 모양이면 좋다는 속설이 있으며, 구유에 글을 새겨놓아 소에 잡귀가 들러붙지 않도록 예방하기도 했다.
우리와 달리 중국에서는 외양간에 우왕신(牛王神)의 그림을 붙여서 지킴이로 삼는다. 신은 성난 얼굴에 소 머리모양 모자를 썼고 손에는 몽둥이와 칼을 들었다. 제단 앞에는 소가 누워 있는 형상이다.
2. 가신(집지킴이 신) 신앙
외양간신 역시 가신 중의 하나이다. 가택신 혹은 가신이란 집안의 신으로, 집안의 여러 요처를 각기 분담하여 그곳을 맡아 수호하고 있는 모든 신들을 말하는 것인데 가옥이 안치되어 있는 집안을 지켜주는 집지킴이 신들이다.
가옥의 가장 중요한 요처인 대들보에는 성주신이, 큰방에는 삼신이, 부엌에는 조왕신이 있으며, 뒤꼍 장독대에는 천룡신이, 마당에는 터주신이, 우물에는 용왕신이, 광에는 업신이, 뒷간에는 칙신이, 문간에는 문간대신이, 외양간에는 외양간신이, 안당에는 안당불사가 각각 자리하고 있어 자기 구역 안의 길흉화복을 관장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이들 가신들은 그 가족들의 안식처인 집안에 깃들어 있는 신으로 신의 영력도 그 가족에게만 미치는 한정된 가족 신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웃집의 가택신을 잘 받들고 섬겼다 하여 그 영역의 수혜를 입을 수도 없고 불경했다 하여 벌받지도 않는, 자기 집과 가족만을 지켜주는 고유신인 것이다.
이들 여러 가택신을 모시며 제사하는 사제는 그 집의 주부가 담당한다. 집안의 각 요처에 신체(神體)를 설치하여 모시는 일로부터 제상을 차려 제사를 지내며 비손 축원하는 일체의 제의에 이르기까지 주부가 하며, 다른 가족들은 영력의 혜택을 입으면서도 제사에 직접 참여하는 일은 거의 없다.
제일은 명절일의 아침과 매월 초사흗날이다. 달마다 있는 크고 작은 명절일을 모두 챙겨 제사지내는 것은 아니고 지방에 따라 약간씩 다르긴 하지만 호남지방에서는 설, 정월 대보름, 유두, 칠석, 백중, 추석명절과 구월 구일, 동짓날에 주로 지내며 한식과 단오명절은 잘 지내지 않는 편이다. 그리고 매월 초사흗날 아침은 성주신의 제일이다. 성주신이 집안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신이라서인지, 성주상만 차려 지냄으로써 집안에 재수 있으라고 축원한다.
제상의 제물차림은 명절의 음식물에 밥과 국을 상차림하여 바치는데 숟가락과 젓가락은 놓지 않는다. 조상의 기제사에는 수저와 젓가락이 반드시 놓여지는 것과 대조된다. 조상의 영령은 살아 있는 가족, 또는 인간의 경지로 대접하기 때문이다.
무속에서 신은 인간들처럼 숟가락과 젓가락질을 하지 않는다고 믿으며 비손축원 때 주술의 말에 ‘쇠숟가락으로 밥을 떠먹는 미련한 인간이 무엇을 알겠습니까’ 하는 말이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무속신은 제물의 음식을 흠향만 할 뿐이지 사람처럼 떠먹지 않는다는 인간과의 차별성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당산제의 제물을 장만할 때처럼 제물의 신성성, 정결성을 위한 갖가지 금기하는 일이 철저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집안이라는 한정된 공간의 신격이어서 당산신과는 격이 한층 낮은 대접을 받고 있는 것 같다.
이들 가신들은 집안의 요처에서 각기 고유한 개성을 가지고 그 가족의 길흉화복과 수명장수를 돕는 기능을 하면서도, 자기들이 돕고 있는 집을 중심으로 조직화되거나 유기적인 관계를 갖지도 않는 독자적이고 고립적인 특성을 보인다. 성주신이 가택을 총괄하는 큰 신이긴 하지만 다른 가신들에게 지시 명령하거나 도움을 주고받지도 않는다.
또 가신들이 집 울타리 안에서 제각기 독자적인 신력으로 자기만의 구실을 하고는 있지만 항상 인간들과 함께 있으면서 그들의 제사를 받아먹으며 지내다 보니 인간적인 면을 풍기기도 하는데, 성주신이 칙간귀신을 첩으로 데리고 있다든가 하는 것이 그런 면이다.
3. 신성한 동물인 소
우리나라는 예부터 소를 가족으로 여겼다. 한 집에서 사는 하인이나 동물처럼 ‘생구(生口)’라 부른 것이다. 강원도 산간지대에서는 설날 먹는 만두를 섣달그믐날 소에게도 먹인다. 함경도에서는 소가 힘을 못 쓰면 주먹만큼씩 뭉친 찰떡을 일주일동안 먹인다. “사람도 인절미를 먹으면 뼛속에 물이 차서 힘이 솟듯이, 소도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풍속은 모두 사람과 소를 하나로 여기는 데에서 나왔다.
또한 소는 하늘의 뜻을 알리는 영물이어서 부여에서는 발굽으로 점을 쳤다. “발굽이 붙어 있으면 좋고, 갈라지면 나쁘다”고 여겼다. 동시에 소는 가장 귀중한 제물이었다. 신령에게 소를 바치며 인간의 소원을 비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경기도 서해안 일대에서는 동제에 소를 쓴다. 조선시대에 임금이 농사신인 신농씨와 후직씨에 제사를 올릴 때에도 소를 바쳤다. 우리는 물론이고 중국 서남부와 동남아시아 일대에서 벌이는 소싸움도, 본디는 싸움에 진 소를 신에게 바치기 위한 행사였다.
옛 사람들은 소를 ‘농가의 조상’이라 일컬었다. 정월의 첫 소날(축일)은 소의 생일이라 하여, 일을 시키지 않고 죽에 콩을 많이 넣어서 잘 먹였다. 또 도마질이나 방아일은 물론이고, 쟁기 따위도 다루지 않았다. 도마질은 쇠고기 다지기를, 방아와 쟁기는 땅을 가는 일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소가 하늘에서 내려온 왕자라는 설화는 널리 퍼져 있다. 이 때문에 백정들은 소를 잡을 때 은어를 썼다. 예컨대 소를 ‘황태자’, ‘어사’, ‘산영감’ 등으로, 도끼는 ‘촛대’로, 힘줄 끊는 칼을 ‘족보’ 따위로 둘러댄 것이다. 소는 신성한 동물이므로, 세속의 말을 쓰면 부정을 타거니와, 죽을 때에는 영특해져서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다고 여긴 것이다.
조선시대 황희 정승의 유명한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그가 젊은 시절에 소를 부리는 농부에게 ‘어느 소가 일을 더 잘 하느냐?’ 묻자 농부는 황희의 귀에 바짝 대고 말하였다. 그 까닭을 물으니 “소도 사람의 마음과 다르지 않아서,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섭섭하게 여길 것”이라 하였다는 내용이다.
4. 외양간신 신앙

농가에서는 소나 송아지를 사는 날을 ‘납우일’이라 따로 부르고 외양간을 세울 때에도 좋은 날을 가려잡았다. 경기도 포천군 일대에서는 시월 상달에 고사를 지낼 때, 외양간에 시루떡과 함께 북어 한 마리를 차려놓고 힘세고 복 많은 소가 태어나기를 빈다.

강원도 삼척군 일대에서는 외양간 기중에 여러 가지 글귀를 써 붙인다. 예컨대 “소는 한번에 백묘를 갈고 말은 한번에 삼천리를 달린다”, 또는 “소는 남산의 범 같고, 말은 북해의 용 같다”는 따위이다. 외양간 안쪽에서도 여러 가지 입춘첩을 볼 수 있다. “입춘이 되니 크게 복되고, 서울에는 경사가 많다”, “목숨은 산처럼 길고, 복은 바다처럼 많다”, “재앙은 물러가고, 복은 들어온다” 따위의 내용을 붙여서 소가 잘 자라기를 바란다. 이러한 풍속은 마소를 한 식구로 여기는 데서 왔다.

경상남도에서는 소에 해로운 돌림병이 돌 때, 외양간 입구에 딸린 벽에 황토를 바른다. 진흙에는 잡귀를 물리치는 힘이 서려 있기 때문이다. 쇠뿔에 붉은 칠을 하는 충청북도와 강원도 지방의 풍습도 같은 이치이다. 강원도 홍천군 일대에서는 소가 잘 자라지 못하면 외양간의 방향이 틀린 까닭이라 여기고, 날을 따로 받아 다시 돌려세운다. 외양간의 좌향은, 소에게 죽을 쑤는 모습이 보이는 쪽을 으뜸으로 친다. 따라서 부뚜막 건너편에 구유를 거는 함경도와 강원도의 외양간이 가장 이상적이다. 이곳에서는 소의 추위를 더는 외에, 소 자체를 보호하려고 외양간을 부엌 안에 둔다.

강원도 정선군과 고성군 일대에서는 소삼신을 ‘구능장군’ 또는 쇠구영신‘이라 부른다. 고성에서는 외양간 도리에 잡아맨 백지를 신체로 여긴다. 제사를 지낼 때에는 백설기나 쇠고기 한 덩이를 매달아둔다.

경상북도의 해안지역에서도 마루나 마구간에 구능신을 모신다. 신체는 부엌 입구 왼쪽 벽에 매달아놓은 말린 고기다. 신체 대신 못 한 개를 박거나 한지에 실타래를 걸어둔다. 특별한 음식이 생기면 조금씩 떼어서 먼저 구능에 바친다. 이 신을 영둥까꾸리처럼 모시는 집도 있다. 그 날 잡은 고기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을 구능에 걸었다가, 바다신을 위한 당제를 지낼 때 제물로 쓴다. 구능상은 정월 보름에 차린다.

강원도 홍천군에서는 송아지가 태어나면 외양간 입구에 사흘 동안 금줄을 친다. 인제군에서는 송아지를 낳을 때, 안산을 위해 점쟁이를 불러 ‘우마대장경’을 읽힌다. 또 정선군에서는 가정의 태평을 위해서 소신을 섬긴다. 강원도 삼척군과 경기도 양주군과 포천군 일대의 외양간신은 가운데에 자연적으로 구멍이 난 돌이다. 이를 새끼에 꿰어 외양간 도리에 걸고 삼신으로 받드는 것이다.

경기도 안성지방에서는 마구를 지키는 신을 ‘우마살대장군’, 경상남도 밀양에서는 ‘마대장군’, 강원도 삼척군의 서부지역에서는 ‘산’이라 한다. 우리는 흔히 외양간을 마구라고도 하므로, 이들도 소의 건강이나 송아지의 생육과 연관이 있다.

산의 신체는 네모로 접은 한지이다. 마구 옆이나 앞 벽에 대못을 치고 꽂아둔다. 이웃에서 특별한 음식이나 고기를 가져오면 먼저 바치고, 베를 짤 때에도 수지조각을 걸어둔다. 소가 병들거나 시끼를 낳으면 산 앞에 물을 떠놓고 빈다. 봄에 산메기를 올릴 때에는 산으로 가져가며, 집안에는 새로 접은 한지를 꽂는다.

강원도의 산간지방에서는 ‘쇠구영신 모시기’나 ‘산치성’ 또는 ‘조상 보기’행사를 치른다. 해마다 정월의 첫 말날이나 대보름날, 산신에게 집짐승의 번성과 가정의 태평무사를 비는 제례이다. 산신제와 달리 가족 중심으로 치르며 깊은 산 속의 일정한 소나무를 제단으로 삼는다. 나무 주위에 금줄을 둘러치고 채소, 과일, 어물, 메, 시루떡 따위를 차린 다음 축원을 올린다. 때로 무당이 집짐승의 안전을 빌며, 마지막에는 제물을 흩뿌려서 산신에게 먹인다. 이 행사를 거르면 소가 산에서 구르거나 크게 다친다고 여긴다.

강원도에서는 외양간뿐만 아니라 구유에도 신이 있다고 믿는다. ‘구융신’이 그것이다. 구유에서는 여러 가지 신비스런 일이 일어난다. 정선군에서는 소가 더위를 먹었을 때, 구유에 진흙을 바르고 흙물을 먹인다. 그래도 낫지 않으면, 구렁이를 둥글게 감아 구유에 붙여둔다. 소가 진흙 사이로 흘러나오는 구렁이 썩은 물을 핥으면 건강해진다는 것이다. 어린아이가 아플 때에도 구유머리에 물을 떠놓고 빌며 주문을 외운다. 이웃집에서 쇠고기를 가져왔을 때, 구유머리에 들고 가서 ‘여봐 꿍’하고 먹으면 탈이 나지 않는다. 소 키우는 집에서 쇠고기 먹기를 꺼리는 데에서 나온 민속이다. 충청남도에서는 소를 잃었을 때, 구유에 소댕을 뒤집어 놓으면 도둑의 발이 저려서 멀리 달아나지 못한다고 여긴다.

인천시 옹진국 백령도에서는 구유머리 양쪽에 새끼를 수박처럼 둥글게 엮고 쌀을 담아서 소의 병귀를 쫓는다. 충청남도에서는 소에 잡귀가 들러붙는 것을 막으려고, 돌구유 양쪽에 임금 왕자를 거꾸로 새겨둔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타던 준마 여덟 필 가운데 유린청이 죽자, 그는 슬퍼한 나머지 돌구유를 만들어 함께 묻어 주었다. 저 세상에서도 배불리 먹으라는 뜻이다.

농가에서는 마구에서 냄새가 나면 비가 올 것이라 한다. 기압이 낮으면 더 풍기기 때문이다. 송아지가 태어난 지 이레 안에 송장을 본 사람은 외양간에 가지 않는다. 부정을 막기 위함이다. 경상남도 합천군에서는 송아지가 태어날 때 소반에 정화수를 떠놓고 빈다. 경기도 이천시 일대에서는 송아지를 낳으면 키에 밥과 미역국을 놓고 소삼신에게 “미련한 인간 아무개 집 소, 젖 잘나게 도와주시오” 축원한다. 대문에는 고무신 한 짝을 꿰어 놓은 금줄도 걸어둔다.

옛날 제주도에서는 신부를 태울 말이 떠나기 전, 석 자 다섯 치의 말머리수건에 제물을 차려놓고 고사를 지냈다. 이 음식은 마부 노릇을 하는 하인만 먹었다. 혼례식에 간 하인들은 방에 들이지 않고 마구간에 앉혔다. 마구에 나무로 깎은 남성의 성기를 달아매고 새끼가 많이 태어나기를 바란다. 이처럼 마구간은 신성한 공간이다.

5. 중국과 일본의 외양간신

중국에서도 외양간신을 받들며 우왕신의 그림을 붙여둔다. 그는 성난 얼굴에 소머리꼴 모자를 썼으며, 손에는 몽둥이와 칼을 들었다. 주위에 둘러선 네 명의 부하 가운데, 둘은 흰 소와 검은 소의 얼굴을 하고 손에는 창과 삼지창을 들었다. 그리고 신을 위한 제단 앞에는 소가 누워 있다.

마구간에 원숭이 한 마리를 함께 두면 말이 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믿는다. 원숭이에게는 잡귀를 물리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서유기』의 주인공인 오승이, 손오공에게 피마온(避馬瘟)이라는 관직을 준 것도 이와 연관이 깊다.

일본에서도 소를 귀하게 여긴 나머지 소제사를 지냈다. 대표적인 것이 교토시에 있는 광륭사 제사이다. 신라에서 건너간 진(秦)씨를 받드는 이 절에서는 해마다 10월 12일에 제사를 올린다. 흰 탈을 쓰고 특이한 복장을 한 채 크고 검은 소를 탄 마다라신과 붉고 푸른 탈을 쓰고 창과 징, 북 따위를 가진 네 사람이 벌인다. 절을 한 바퀴 돌고 나서 소에서 내린 신은 네 귀신을 이끌고 단에 오른다. 그리고 국가의 안녕과 오곡의 풍년, 질병퇴치를 위한 제문을 읽는다. 절차가 끝나면 구경꾼들은 탈을 벗기려고 덤비며, 이들은 집안으로 달아난다.

일본의 마구간에서는 성인이 태어나기도 했다. 『일본서기』에 보면 궁중 시찰을 마친 성덕태자의 어머니는 마관(馬官)까지 왔다가, 마구간 문에 부딪쳐 쓰러졌다. 그러나 큰 사고 없이 출산을 하였고, 태어난 아기는 곧 말을 하였으며, 성인과 같은 슬기까지 갖추었다.

일본에서도 외양간의 부정을 씻는 행사에 원숭이를 이용하였고, 입구에 원숭이가 마소를 이끄는 그림도 붙인다. 원숭이를 마구의 수호신으로 삼아 함께 기르기도 한다. 또 마구의 안전을 바라는 뜻에서 원숭이의 춤판을 벌이기도 하였다. 이 일을 직업삼아 돌아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집짐승이 잘 자라기를 바라는 노래나 축원도 늘어놓는다.
참고문헌 및 도판
▒ 참고 문헌
김광언, 『우리문화가 온 길』, 민속원, 1998.
김광언, 『한국의 집지킴이』, 다락방, 2000.
김종대, 『민간신앙의 실체와 전승』, 민속원, 1999.
김태곤, 『한국민간신앙연구』, 집문당, 1981.
김형주, 『민초들의 지킴이 신앙』, 민속원, 2002.
장주근, 『가신신앙』, 한국민속대관 3, 고려대학교민족문화연구소, 1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