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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사

운사
1. 운사에 대한 기록
운사(雲師)는 구름을 관장하는 신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운사는 단군신화에 풍백(風伯), 우사(雨師)와 함께 소개된다. 풍백, 우사, 운사는 환웅의 부하로서 환웅이 지상으로 내려올 때 함께한다. 이와 관련된 기록을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옛날 환인의 서자 환웅이 세상에 내려와 인간 세상을 구하고자 하므로, 아버지가 환웅의 뜻을 헤아려 천부인(天符印) 3개를 주어, 세상에 내려가 사람을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이 무리 3,000명을 거느리고 태백산의 신단수(神壇樹)에 내려와 신시라 이르니, 그가 곧 환웅천왕이다. 그는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穀), 명(命), 병(病), 형(刑), 선(善), 악(惡) 등 무릇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맡아서 세상을 다스렸다. 이때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같은 굴 속에 살면서 환웅에게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 환웅은 이들에게 신령스러운 쑥 한 줌과 마늘 20쪽을 주면서 이것을 먹고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된다고 일렀다. 곰과 범은 이것을 먹고, 곰은 37일 만에 여자의 몸이 되고 범은 못 참아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 웅녀(熊女)는 그와 혼인 해주는 이가 없어 신단수 아래에서 아이를 배게 해달라고 축원하였다. 이에 환웅이 잠시 변하여 혼인하여서 아이를 낳으니, 그가 곧 단군 왕검(王儉)이다. 왕검이 당고(唐高:중국의 가장 오랜 역사 고전인 상서 첫머리에 올라 있는 제왕) 즉위 50년인 경인(庚寅:50년은 丁巳이니 틀린 듯하다)에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일컬었으며, 이어서 백악산(白岳山)의 아사달로 옮긴 뒤 그 곳을 궁홀산(弓忽山) 또는 금미달(今彌達)이라 하였다.
단군은 15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고 주(周)나라 호왕(虎王)이 즉위한 기묘년(己卯年)에 기자(箕子)를 조선의 임금으로 봉한 후 장당경(藏唐京:황해도 신천군 文化面)으로 옮겼다가, 뒤에 아사달에 돌아와 숨어서 산신(山神)이 되니 나이가 1,908세였다.
운사에 관한 기록은 『신시본기(神市本紀)』 제삼(第三)에도 나와 있다.
한인은 역시 천신을 말한다. 천(天)이란 대(大)며 일(一)이다.
한웅 역시 천왕이다. 왕이란 황(皇)이다.
단군 역시 천군으로, 제사를 주관하는 우두머리를 말한다.
왕검 역시 무리와 지경(地境)을 감독하는 우두머리를 말한다.
그러므로 하늘에서 광명을 비춰주는 자가 한(桓)이며, 땅에서 광명을 비춰주는 자를
단(檀)이라 한다.
한(桓)은 구황(九皇)을 말한다.
한(韓) 역시 대(大)를 말한다.
삼한(三韓)을 일컬어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라고 한다.
풍백(風伯)은 입법(立法)을 담당하는데, 축일(丑日:소 날)에 개머리를 곡문(谷門) 밖에 걸어놓고 제사지내는 우두머리. 이름은 석제라(釋提羅).
우사(雨師)는 행정관(行政官). 입하(立夏) 후 신일(申日:잔나비 날)에 돼지머리를 놓고 제사지내는 우두머리. 이름은 왕금영(王錦營).
운사(雲師)는 사법관(司法官). 이름은 육약비(陸若飛).
2. 운사에 대한 해석
2.1. 용의 의인화로서의 운사
『삼국사기』에는 "용 2마리가 금성 우물 속에 나타났는데, 소낙비가 쏟아지고 번개가 치며, 성 남문에 벼락이 떨어졌다"는 기록이 있다. 또, 서해 용왕의 아들 이목(璃目)이, 몹시 가물때, 보양선사(寶壤禪師)의 청으로 제멋대로 비를 내렸다가 하느님(天帝)의 노여움을 샀다는 이야기가 있다.
농경 문화권과 용 신앙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따라서 우리 민족도 일찍이 용 신앙을 가졌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일부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단군신화에, 환웅이 태백산 꼭대기에 강림할 때 동반했던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도 용의 의인화로 보고 있다.
2.2. 관직명으로서의 운사
일부 학자들은 풍백, 우사, 운사 등을 관직의 이름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풍백, 우사, 운사는 모두 고대의 관명 내지 조직명이었다. 그런데 후대로 내려올수록 이 풍(風), 우(雨), 운(雲)의 글자에 매여서 이들이 신격화된 경향이 있는 것이다. 이들은 먼저 백(伯)과 사(師)가 어떻게 관명 내지 관직명으로 사용되었는지를 밝힌다.
‘백(伯)’의 경우 『예기(禮記)』에 나와 있는 바에 따르면 5관(官)의 우두머리이므로 지금의 국무총리격인 것을 알 수 있다. 또 ‘백’을 ‘직방(職方)’이라고 하였기 때문에 지방의 제후를 통솔하는 직관(職官)인 것을 알 수 있다. 백은 지방장관의 뜻으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예를 들면 방백(方伯), 도백(道伯)과 같은 것이다.
이들 학자들은 풍백 역시 이와 같은 ‘백’의 의미와 같은 관직의 이름이었을 것으로 본다. ‘백’자가 붙은 고대직관(古代職官)은 많은데 잘 알려진 것으로는 하백(夏伯), 하백(河伯), 서백(西伯) 등이 있다.
‘사(師)’ 역시 고대직관을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되어 왔다고 한다. 또 ‘사’는 중국 주나라의 군사 제도로서 2,500명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였다. 이 ‘사’가 붙은 옛 관직 이름도 많은데 잘 알려진 것에는 농사(農師), 태사(太師), 공사(工師), 어사(漁師) 등이 있다.
이들 학자들은 『삼국사기』의 기록에 풍백, 우사가 신격화가 되어서 제사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은 후대에 와서 바뀐 의미에 따라 그렇게 된 것으로 본다. 이들에 따르면 신격화는 『주례(周禮)』가 기록되던 때에 이미 이루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이들 기록에서 신격화된 풍백, 우사는 모두 별의 이름으로서, 풍백은 기성(箕星), 우사는 필성(畢星)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문헌에서는 그들의 역사상의 시조를 대개 황제 헌원(軒轅)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인식의 대표는 사마천이다. 그의 『사기』에는 우사가 황제 헌원의 관직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은 치우천황(蚩尤天皇)이 황제 헌원과 전쟁할 때의 기록인데, 물론 신격화가 되어 있는 것이기는 하나 이상의 세 기록을 살펴보면, 풍백, 우사, 운사의 관직 이름이 치우천황과 황제 헌원과 관련하여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면, 황제 헌원이 우사의 직관(職官)에 있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한비자(韓非子)』에는 이러한 사실을 완전 중국화하여 기록하고 있다. 이는 중국화된 기록이기는 하지만, 역시 『산해경』처럼 치우천황과 풍백, 우사가 같이 나타나고, 또 황제가 나타나고 있다. 이들 학자는 이러한 기록에서 운사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황제가 운사이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한다.
풍백, 우사, 운사조직의 조직과 기능은 『고기』를 분석해 보면 잘 알 수 있고, 또 비교조직학(comparative organics)의 입장에서 다른 조직과 비교하여 보면 그 구조와 직능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즉, 『고기』에 ‘환웅이 무리 3,000명을 거느리고 태백산의 신단수(神壇樹)에 내려와 신시라 이르니, 그가 곧 환웅천왕이다. 그는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穀), 명(命), 병(病), 형(刑), 선(善), 악(惡) 등 무릇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맡아서 세상을 다스렸다’에서 주곡(主穀), 주명(主命), 주병(主病), 주형(主刑), 주선악(主善堊)을 명사로 해석해서 조직명으로 본 것이다. 그리고 풍백, 우사, 운사 뒤에 쓰여진 ‘이(而)’자를 통해 뒤의 5개 조직과 풍백, 우사, 운사의 3개조직의 위상이 다름을 주장하였다.
그에 따르면, 풍백은 국무를 총리하는 중서성(中書省)의 직능을 하였다고 본다. 그것은 풍백, 운사, 우사의 세 조직 중 이름이 가장 먼저 기록되었을 뿐 아니라, 운사, 우사의 ‘사(師)’와는 달리 ‘백(伯)’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현대 이전의 국가 조직에서 국무를 총리한다는 것은 입법-행정-사법의 모든 조직을 다 관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현대 국가 조직으로 치면 입법부의 장이 행정-사법부의 장을 모두 통솔하고 있는 경우와 같은 것이다. 즉 풍백의 고유 직능은 입법이면서 우사, 운사 역시 관장하였다고 본다.
이를 주장하는 학자들은 우사와 운사는 어느 쪽이 행정조직이고 어느 쪽이 사법조직인지 『고기』의 기록만으로는 명확하지가 않으나 『한단고기』「태백일사(太白逸史)」에 이와 관련된 기록이 있어 주목한다.
풍백은 입약(立約)하고,
우사는 시정(施政)하고,
운사는 행형(行刑)하고……
풍백이 입약한다는 것은 물론 입법기능을 말하는 것이고, 우사가 시정한다는 것은 행정기능을 말하는 것이고, 운사가 행형한다는 것은 사법기능을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로서 풍백은 입법조직이고, 우사는 행정조직이고, 운사는 사법조직임을 뚜렷이 주장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덧붙여 조직논적인 근본 기능은 계획(計劃)-조직(組織)-통제(統制)의 3개의 큰 관리기능이었을 것이라 한다.
3. 풍백, 우사, 뇌사
우리나라에서 운사는 단군신화에 풍백, 우사와 함께 등장하기 때문에 운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 풍백과 우사를 함께 아는 것이 중요하다. 또 우레의 신, 즉 뇌사(雷師)도 풍백, 운사, 우사와 깊이 관련되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기본 지식을 습득할 필요가 있다.
환인이 인간세상을 다스리라고 권능의 표시로 아들에게 준 것은 천부인(天符印) 세 개였다. 천부인을 소지한 환웅은 부하 셋(풍백, 우사, 운사)과 무리 3천명을 데리고 태백산 정상에 있는 신단(神檀) 아래로 내려와 도읍지를 열고 신시(神市)라 불렀다.
은(殷) 나라 때에는 바람의 신 곧 풍신(風神)에 대한 숭배가 있었다. 갑골문(甲骨文)에 의하면 사방의 바람에게는 각기 고유한 이름이 있었고, 그들을 맡아보는 신들이 있었다.
『산해경(山海經)』에 의하면 동방을 절(折)이라 했고 동풍을 준(俊)이라했으며 동쪽 끝에서 동풍의 출입을 맡아보는 신을 절단(折丹)이라고 불렀다. 또 남방을 인호(因乎)라 했고 남풍을 호민(乎民)이라 했으며 남쪽 끝에서 남풍의 출입을 맡아보는 신을 인인호(因因乎)라고 부르기도 했다. 은나라 사람들은 이 사방의 풍신들에게 제사를 드렸다.
바람의 신은 그 후 비렴(飛廉)으로 통일해서 불리다가 풍백(風伯)으로 고정된다. 『삼보황도(三輔黃圖)』라는 책에 의하면 비렴은 신령스러운 새로 능히 바람을 불러올 수 있는데, 사슴의 몸과 새의 머리에 뿔이 있으며 뱀의 꼬리에 표범 무늬였다고 한다.
비의 신인 우사(雨師)에 대한 이른 기록 역시 『산해경』에 보인다. 우사첩(雨師妾)이라는 신의 형상이 검은 몸빛에 양손에 뱀을 한 마리씩 쥐고 있고 왼쪽 귀에는 푸른 뱀을, 오른 쪽 귀에는 붉은 뱀을 걸고 있다고 묘사하고 있다.
우사첩이라는 이름으로 보아 아마 처음에는 비의 신이 여신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우사첩은 은나라 때에 비를 관장하던 신으로 초(楚)나라에서는 병예라고도 불렀다.
우레의 신은 각국 신화에서 독특한 지위를 차지한다. 공포와 위엄을 상징하기 때문에 주신(主神)의 전유물처럼 되어 있기도 하다. 제우스와 황제(黃帝)는 모두 우레의 신을 겸했다. 중국에서는 뇌신(雷神), 뇌사(雷師) 혹은 뇌공(雷公)으로 불린다. 본래 남신이지만 번개만을 분리해서 여신인 전모(電母)를 숭배하기도 한다.
초나라에서는 풍륭(豊隆)이라고도 불렀는데 이것은 우레 소리를 본 딴 이름이다. 『산해경』에 의하면 뇌택(雷澤)이라는 호수에 뇌신이 살고 있는데, 용의 몸에 사람 머리를 했고 자신의 배를 두드리면 우레 소리가 난다고 했다. 『수신기(搜神記)』에서는 뇌신의 모습이 입술은 붉고 눈은 거울과 같은데 털과 세 치쯤 되는 뿔이 나있고 머리통은 원숭이를 닮았다고 묘사하고 있다.
바람, 비, 구름, 우레 등의 신은 모두 강우(降雨)와 관련되어 있다. 끝으로 이들과 반대의 역할을 하는 가뭄의 신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가뭄의 신은 발(魃)이라고 부르는데 원래 황제의 딸이었다. 그녀는 푸른 옷을 입었고 대머리였다고 한다. 그녀가 두각을 나타냈던 것은 황제와 치우(蚩尤)의 전쟁에서였다.
치우가 풍백, 우사, 운사 등을 시켜 크게 비바람을 일으켜 황제군을 곤경에 빠뜨렸을 때, 천상에 있던 발이 아버지를 돕기 위해 내려왔다. 가뭄의 신이 내려오자 비바람은 곧 걷혔고, 황제군은 치우군을 공격하여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그러나 한번 지상에 내려온 발은 다시 하늘로 올라가지 못했고 계속 지상을 떠돌아야만 했는데 그녀가 이르는 곳 마다 가뭄이 들어 어느 땅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나중에 그녀는 적수(赤水)의 북쪽 먼 땅에 겨우 정착하였지만 심심하면 가끔 그곳을 빠져 나와 가뭄을 일으키곤 했다 한다.
중국의 자연신화에는 우리 고대문화와 상관된 내용이 적지 않다. 대표적기상신(氣象神)인 풍백, 우사, 운사는 치우편에서 환웅천왕(桓雄天王)을 도와 고조선의 개국에 참여하기도 했던 동이계(東夷系) 민족과 관련이 깊은 신이다. 아닌 게 아니라 풍백의 전신인 바람의 신 비렴의 실체에 대한 논의에서 일부 언어학자들은 비렴이 한국어인 ‘바람’의 고대어일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이러한 가설은 사슴의 몸에 새 머리를 한 비렴신이 고구려 무용총(舞踊塚) 벽화에 출현함으로써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4. 중국의 운신
4.1. 풍륭
중국 신화에는 두 종류의 운신(雲神)이 있다. 하나는 풍륭(豊隆)이고, 또 다른 하나는 『초사(楚辭)』「구가」의 운중군(雲中君)이다. 먼저 풍륭에 대한 『초사』의 언급을 살펴보면, 풍백 비렴이나 우사 병예와 더불어 주인공의 길잡이 중의 한 신격임을 알 수 있다.
나는 풍륭을 시켜 구름 타고
복비 있는 곳 찾아가노라.

뜬 구름에 말을 전하고파
풍륭을 만나도 들어 주려 하지 않고

풍륭을 불러 길을 인도하라 하여
태미궁(太㵟宮) 있는 곳 찾아 가노라.

묘사의 행간으로부터 구름을 주재하는 운사임을 알 수 있으나, 상당수의 주석가들이 풍륭이 운사와 더불어 뇌사(雷師), 우사 등과 통명되는 신격으로 인정하고 있다. 즉 왕일은 풍륭을 운사나 혹은 뇌사로, 고유는 『회남자(淮南子)』「천문훈」에서 ‘춘삼월이 되면 풍륭이 나타나 비를 내리게 한다’는 구절을 주석함에 풍륭을 벼락(雷) 자체로 간주하였다. 그리고 곽박은 『목천자전(穆天子傳)』의 ‘천자께서 곤륜산에 올라 풍륭의 장사를 지내고 무덤을 만들었다’를 주석함에 있어서 풍륭을 뇌사로 간주하였다.
이토록 풍륭의 직능이 풍, 우, 뇌, 운의 통명으로 간주되었던 것은 우사 병예와 마찬가지 이유로 야기된 혼란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바람, 비, 구름, 벼락 등의 자연 현상 자체가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풍륭의 신화적 직능이 후세 사람들에게 명확하게 인식되지 못한 결과인 것이다. 그러나 『초사』에서 풍륭이 ‘승운(乘雲)’이나 ‘부운(浮雲)’ 등 구름과 밀접한 관계인 것으로 보아 적어도 『초사』에서만은 풍륭이 운사, 즉 구름을 관장하는 신임을 알 수 있다.
구름은 인간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자연 현상이다. 구름이 있어야 비로소 비가 내리게 되고, 우량의 과다, 강우의 시기 등은 곡식의 생장과 수확에 결정적으로 관련되어 인간 생활에 직접 영향을 끼쳐 왔다. 그래서 은나라 사람들은 구름을 매우 중시하여 자세히 관찰함으로써 구름을 이운(二雲), 삼운(三雲), 사운(四雲), 육운(六雲), 낙운(烙雲) 혹은 각운(各雲) 등으로 구별하여 점을 치고, 운신에게 제사를 지내 풍년을 기구하였다. 계유일에 점을 치고 또 육운에게 다섯 마리 돼지와 다섯 마리 양을 잡아 제사지냈다.
그러나 인간과 구름의 관계란 결국은 간접적일 수밖에 없어 반드시 비의 중개를 거쳐야만 하는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운신에 대한 숭배도 점점 희박해지기 시작하였으며 운신에 관한 신화도 차츰 상실되어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또한 구름의 신 풍륭은 『초사』에서 항시 비렴, 병예 그리고 뇌사와 상응하여 언급되고, 『초사』「구가」에는 초나라 고유의 운신인 운중군에 대한 별도의 송가가 전해지고 있으며, 상술한 대로 은인의 구름에 대한 중시와 그에 따른 제사의 행사 등을 볼 때, 풍륭 또한 동방 민족인 동이의 신화라고 추정할 수 있다.
4.2. 운중군
운중군은 중국 신화 가운데 근근히 남아 있는 운신 중의 하나로, 그의 신화적 직능에 대한 문헌자료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오직 『초사』의 「구가․운중군」편에 초나라 인들의 운중군에 대한 융숭한 제례 상황과 함께 형상 및 그에 대한 흠모와 그리움을 묘사하고 있을 뿐이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초사』주석가들은 운중군을 운신으로 인식해 왔으며, 왕일은 운중군을 운신일 뿐만 아니라 바로 풍륭과 일체이며 우신 병예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운(雲)’자로서 연상할 수 있는 것 외에 운중군과 풍륭이 일체라는 확실한 근거는 현재로서는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상술한 대로 『초사』에 두 차례나 직접 풍륭을 제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운중군과 풍륭은 결코 일체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특히 「구가․운중군」이 초나라 사람들의 제가라는 데 이의가 없는 이상, 동방 은나라 사람들의 운신 풍륭과 운중군이 일체일 가능성은 전혀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왕일이 운중군을 운신으로 규정한 이래, 대다수 『초사』주석가들이 왕일의 운신설을 답습하여 이의가 없었다. 그러나 몇 사람에 의해 운중군이 운신이 아닌 월신, 우사, 수신, 홍신(虹神), 수한지신(水旱之神), 전신(電神) 그리고 뇌신(雷神)으로까지 주장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아직 많은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에는 명확한 증거가 부족하다.
최소한 운중군이 운신이 아니라는 명확한 증거가 제시되지 않는 한 운신인지 월신인지 아니면 뇌신인지 아직 확언할 방법이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자료에 따르면 우중군은 초인들에 의해 처음으로 창조된 ‘높고도 안락하며 일월과 함께 빛나는 수궁(壽宮) 속에 안주하고 있는’ 운신인 것만은 분명하다.
종합하여 말하면, 『초사』의 운신으로 풍륭과 운중군을 들 수 있는데 풍륭은 비렴이나 병예 등 다른 자연신과 마찬가지로 동방 은족의 운신이고, 운중군은 초나라 고유의 성대하고 융숭한 제사를 받는 운신이다.
참고문헌 및 도판
▒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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