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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

유화
1. 유화
유화의 생년은 알려져 있지 않고, 다만 서기전 24(동명왕 14)년에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왕 주몽(朱蒙)의 어머니이며, 전설에 의하면 수신(水神)인 하백(河伯)의 장녀이다.
고구려 건국설화에 따르면 유화부인은 수신(水神) 하백의 딸로서 아우들과 놀고 있는데 천재의 아들 해모수가 웅신산(熊神山) 아래 압록강가의 집 속으로 꾀어들여 사통(私通)하고 가서 돌아오지 않으므로 부모가 중매 없이 혼인한 것을 꾸짖어서 태백산(太白山) 남쪽 우발수(優渤水)로 귀양보내었다. 여기서 동부여왕인 금와왕(金蛙王)을 만났는데 금와는 유화를 이상히 여겨 방 안에 가두었다. 방 안에 갇힌 유화의 몸으로 햇빛이 비쳐와 몸을 피해도 계속 쫓아와 비추더니 태기가 있어서 알 하나를 낳았다. 왕이 크기가 닷되들이만한 그 알을 버렸으나 동물들이 돌봐주니 다시 그 알을 어미에게 돌려 주고 포대기로 싸서 따뜻한 곳에 두었다. 알을 깨고 한 아이가 나왔는데 그 아이가 바로 주몽이다.
이 사실은 유화부인, 즉 주몽의 신모가 맥류경작(麥類耕作)과 관련된 농업신의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유화부인은 서기전 24년(동명왕 14) 8월 동부여에서 죽었는데, 그 왕 금와(金蛙)는 태후(太后)의 예(禮)로써 장례를 지내고 신묘(神廟)를 세워주었다. 한편, 뒤에 고구려에서는 하백녀(河伯女)가 국가적인 치제(致祭)의 대상으로 섬겨졌다. 고구려인들은 고등신(高登神)으로 받든 주몽과 함께 부여신(扶餘神)으로 섬기며 제사를 지냈다.

2. 유화 설화

유화 설화는 김부식의 『삼국사기』, 일연의 『삼국유사』, 이규보의 『동명왕편』, 이승휴의 『제왕운기』, 그리고 중국의 여러 사서에 실린 기록들을 바탕으로 풀어놓은 것이다.

성북(城北) 청하(靑河)에 하백(河伯)의 세 딸이 아름다웠는데 장녀는 유화(柳花), 차녀는 훤화(萱花), 계녀는 위화(葦花)라고 하였다. 그녀들이 청하로부터 웅심연(熊心淵) 위로 놀러 나가니 신 같은 자태는 곱고 빛났으며 수식한 패옥이 어지럽게 울려 한고(漢皐)와 다름이 없었다. 왕(해모수)은 이들을 보고 좌우에게 말하되 "얻어서 왕비를 삼으면 아들을 두리로다." 하였다. 그녀는 왕을 보자 즉시 물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좌우가 말하기를 "대왕께서는 어찌 궁전을 지어 여자들이 들어가기를 기다렸다가 마땅히 문을 닫지 않으십니까?" 하니 왕이 그렇게 여겨 말채찍으로 땅을 그으니 동실(銅室)이 문득 생기어 장관이었다. 방 가운데는 세 자리를 마련해 놓고 동이술을 두었다. 그 여자들이 각각 그 자리에 앉아서 서로 권하며 술을 마시고 크게 취하였다. 왕은 세 여자가 크게 취하기를 기다려 급히 나가 막으니 여자들이 놀라서 달아나고 장녀인 유화만이 왕에게 붙들린 바 되었다.
하백은 크게 노하여 사자를 보내 말하기를 "너는 어떤 사람인데 나의 딸을 머물게 하였는가?" 하니 왕은 대답하되 "나는 천제의 아들로 이제 하백에게 구혼하고자 한다" 하였다. 하백이 다시 사자를 보내 말하기를 "네가 천제의 아들로 나에게 구혼을 하려 한다면 마땅히 중매를 보내야 될 터인데 이제 갑자기 나의 딸을 붙잡아 둔 것은 어찌 실례가 아닌가?" 하였다. 왕은 부끄럽게 여겨 장차 하백을 가서 보려 하고 방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그 여자를 놓아 주려고 하였으나 여자는 이미 왕과 정이 들어서 떠나 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왕에게 권하기를 "오룡거(五龍車)만 있으면 하백의 나라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였다. 왕이 하늘을 가리켜 고하니 문득 오룡거(五龍車)가 공중으로부터 내려왔다. 왕과 여자가 수레를 타니 풍운(風雲)이 갑자기 일어나며 그 궁(하백의 궁전)에 이르렀다. 하백은 예(禮)를 갖추어 이들을 맞이하고 자리를 정한 뒤에 말하되 "혼인하는 법은 천하에 통용하는 법인데 어찌하여 예를 잃고 나의 가문을 욕되게 하였는가? 왕이 천제의 아들이라면 무슨 신이함이 있는가?" 하니 왕이 말하되 "오직 시험해 볼 따름이다."라고 했다. 이에 하백이 뜰 앞의 물에서 이어(鯉魚)가 되어 놀자 왕은 수달로 변화해서 이를 잡았다. 하백이 다시 사슴이 되어 달아나니 왕은 늑대가 되어 이를 쫓고 하백이 꿩으로 변화하니 왕은 매가 되어 이를 쳤다. 하백이 이 사람은 참으로 천제의 아들이라 여기고 예로써 혼인을 이루고 왕이 딸을 데려갈 마음이 없을까 겁내서 잔치를 베풀고 술을 왕에게 권해서 크게 취하게 한 뒤 딸과 함께 작은 혁여(革輿)에 넣어서 용거(龍車)에 실어서 승천하도록 하였다. 그 수레가 물을 채 빠져 나오기 전에 왕은 바로 술이 깨어서 여자의 황금 비녀를 취해서 혁여를 찌르고 그 구멍으로 홀로 나와 하늘로 올라갔다.
하백은 크게 노하여 그 딸에게 말하되 "너는 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나의 가문을 욕되게 했다." 하고 좌우에게 명령해서 딸의 입을 잡아 늘려 그 입술의 길이가 삼척이나 되게 하고 다만 노비 두 사람을 주어 우발수(優渤水) 가운데로 귀양 보냈다.
북부여 왕 해부루는 늦도록 아들이 없었는데, 하루는 산천에 제사를 지내어 후사를 구하고자 하였다. 이 때 타고 가던 말이 곤연(鯤淵)에 이르러 큰 돌을 보고 마주 대하여 눈물을 흘렸다. 왕이 이를 이상히 여겨 사람들을 시켜서 그 돌을 들추어 내니 거기에 금빛 개구리 모양의 어린 아이가 하나 있었다. 왕이 기뻐하며 ‘이는 하늘이 나에게 아들을 주심이로다.’하고 그 아이를 거두어 기르고 이름을 금와(金蛙)라 하고, 그가 장성하자 태자로 삼았다. 이후 부루가 죽자 금와가 대를 이어 왕이 되었다.
하루는 금와왕이 신하들로부터 강물의 고기를 훔쳐 가는 짐승이 있다는 말을 듣고 어부로 하여금 쇠그물로 잡아내게 하니 마침내 한 여자가 걸려 나왔는데, 입술이 너무나 길어서 말을 하지 못하므로 세 차례나 입술을 잘라버리자 그제야 비로소 말을 할 수 있었다. 금와왕은 유화가 천제의 아들의 부인이라는 말을 듣고 궁궐의 별실에 기거하게 하였는데 햇빛이 늘 그 방을 비췄다.유화가 피해도 햇빛이 따라와 비추더니, 그로부터 태기가 있어 커다란 알 하나를 나았다. 그 크기가 닷되들이 말(斗)만 했다.
왕은 그것을 버려 개나 돼지에게 주려 했으나 모두 먹지 않았다. 그래서 길에 내다버리게 하였더니, 소와 말이 모두 그 알을 피해서 지나갔다. 또 들에 내다버리니 새와 짐승이 오히려 덮어주었다. 이에 왕이 그것을 쪼개보려고 했으나 쪼갤 수가 없어 마침내 그 어머니에게 다시 돌려주었다.
그 어머니는 알을 천으로 싸서 따뜻한 곳에 두었더니 한 아이가 껍질을 깨고 나왔다. 골격과 외양이 영특하고 기이하였다. 아이는 무럭무럭 잘 자라났는데 어려서부터 활을 매우 좋아했고 잘 쏘았다. 파리가 귀찮게 굴어서 잠을 잘 수 없다면서 어머니 유화부인에게 활을 만들어 달라고 하여 유화가 조그만 장난감 활을 만들어 주자 그것으로 파리를 쏘는데 백발백중이었다. 그리고 나이 겨우 일곱 살에 스스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대궐 안팎으로 돌아다니며 보이는 대로 쏘는데 역시 백번 쏘면 백 번 다 맞았다. 이 나이에 주몽은 기골이 준수하니 범인(凡人)과 달랐다.
그 나라의 풍속에 활을 잘 쏘는 사람을 주몽이라 하였는데 이런 연유로 해서 그는 주몽이란 이름을 얻었다. 주몽이 어려서부터 비상하게 빼어난 재주를 보이자 그는 이내 주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 때 금와왕에게는 일곱 아들이 있었는데 무엇을 하고 놀아도 주몽의 발밑에도 미치지 못했다. 맏아들 대소(帶素)가 부왕에게 주몽을 죽이자고 졸랐다. 하지만 금와왕이 여러 부족의 우두머리인 구가(狗加)․저가(豬加)․우가(牛加)․마가(馬加)를 무시하고 독재를 할 만큼 왕권을 확립하지 못했으므로 자기 마음대로 죽일 수 없었기에 주몽에게 왕궁의 마구간에서 말먹이는 천한 일을 시켰다. 그 때 주몽의 나이 열아홉 살이었다.
하루는 어머니 유화부인이 주몽에게 장차 왕자들이 해코지할 터이니 미리부터 방도를 마련해두라 일렀다. 주몽이 어머니의 말씀이 옳다 하고 다른 여러 말은 잘 먹여 살찌게 하고 오로지 준마 한 필만은 바늘로 혀밑을 찔러서 비쩍 마르게 만들었다. 금와왕이 마구간을 둘러보고 주몽에게 말을 잘 돌보았다며 칭찬한 뒤 상으로 가장 여윈 그 말을 주었다.
그해 10월 제천대회(祭天大會)에서 주몽이 그 말을 타고 사냥대회에 참가했는데 금와왕은 주몽이 혹시 많은 짐승을 잡아 자기 아들들의 기를 죽일까 걱정되어 화살을 한 대밖에 주지 않았다. 하지만 말은 타고난 준마요, 탄 사람은 하늘이 내린 신궁인지라 말 달리고 짐승을 몰아 쏘면 쏘는 대로 명중시키니 주몽 혼자서 화살 한 대로 잡은 짐승이 일곱 왕자가 잡은 짐승을 다 합한 것보다도 많았다. 대소가 참을 수 없는 질투와 분노로 또다시 아우들과 합세하여 주몽을 기어코 죽여 없애려고 달려들었다. 어머니 유화부인이 이를 알고 주몽으로 하여금 한시바삐 먼 곳으로 도망치도록 재촉했다.
그 해에 주몽은 스물한 살이었다. 주몽은 평소 따르던 오이(烏伊)․마리(摩離)․협보(陜父) 세 명의 심복을 거느리고 동부여의 도성을 빠져나와 남쪽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주몽이 도망친 사실을 안 금와왕과 대소 부자가 군사들을 풀어 그 뒤를 추격토록 했다. 그러면서 산 채로 잡아도 좋고 죽여도 좋다는 명령을 내렸다.
주몽 일행이 동부여 군사들의 추격을 받으며 달아나다가 그만 엄호수라는 큰 강물에 앞길이 가로막히고 말았다. 강을 건너려고 했지만 배도 없었고 다리도 없었다. 벌써 저 멀리 추격군의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주몽이 채찍으로 하늘을 가리켜 탄식하며 자신은 천제의 손자요 하백의 외손인데 지금 난을 피해 이곳이 이르렀으며, 자신을 도와달라고 외쳤다.
그렇게 소리쳐 기도한 뒤 활을 들어 강물을 치니 갑자기 수많은 자라들이 수면 위로 떠올라 머리와 꼬리를 이어 다리를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주몽 일행이 건너자 조금 뒤 추격병들이 뒤따라 건너려다가 자라들이 흩어지므로 모두 물에 빠져 죽었다.
강을 건넌 주몽 일행은 큰 나무 아래에 둘러앉아 숨을 돌리고 있었다. 그 때 비둘기 한 쌍이 나무 가까이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주몽이 활을 들어 쏘자 두 마리가 한꺼번에 날살을 맞고 땅에 떨어졌다. 주몽이 비둘기들을 주워들며 이 비둘기들은 어머니께서 보내신 사자(使者)가 틀림없다고 말했다. 주몽이 동부여에서 도망치기 직전에 유화부인이 보리의 종자를 싸주었는데 경황없이 도망치는 중에 잃어버렸던 것이다. 주몽이 비둘기의 부리를 벌리고 보니 과연 입안에 보리씨가 들어 있었다. 주몽이 보리씨를 꺼내고 물을 뿜자 비둘기들이 되살아나 다시 날아갔다.
3. 유화 설화 해석
3.1. 해모수와 유화의 만남과 기이한 출산
해모수와 유화의 관계는 미묘하고도 엉뚱하게 발전한다. 해모수는 늘 하백의 딸들에게 뜻을 두고 있었지만 정당하게 비(妃)로 삼을 수 없었다. 신하들의 조언으로 궁전을 짓고 세 따을 끌어들여 술에 취하게 한 뒤에 그 가운데 맏딸인 유화를 차지하고 얼마 동안 동거하게 된다. 술수로써 유화를 곁에 붙잡아 두는 데 성공하긴 했지만, 그런 방법으로 이룬 혼인이 왕가의 체통에 맞을 리가 없다. 처음부터 빗나간 혼인이다. 게다가 유화는 서하의 신인 하백의 딸이다. 하백이 노하여 꾸짖는 것은 당연하다. 하백의 질책을 듣고 부끄럽게 생각된 해모수는 하백을 찾아가 정식으로 청혼할 생각이 있었으나, 하백이 있는 물의 나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그것은 해모수와 하백의 문화적 세계가 서로 크게 다르다는 사실을 뜻한다. 태양신을 표방하는 해모수와 물의 신을 표방하는 하백의 세계는 그만큼 격절되어 있고, 문화적 교류가 쉽지 않았음을 나타낸다.
마침내 유화의 도움을 얻는다. 유화가 이르는 말에 따라, 해모수는 용의 수레를 타고 하백의 나라인 물 속 궁전으로 들어간다. 해모수가 타고 다녔다는 오룡거는 용이 가지는 일반적 상징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용은 깊은 물 속에 깃들어 살지만 하늘을 자유로이 날아다닐 수 있는 초월적 존재이다. 오룡거는 태양신의 위세를 드러내며 하늘을 날아다니는 탈것이자, 하백의 물 속 궁전 곧 용궁에 이를 수 있는 유일한 탈것이기도 하다. 오룡거와 같은 용수레의 등장은 용신신앙의 반영물이다. 그렇다면 용신신앙은 해모수족과 하백족, 곧 수렵민족과 농경민족 또는 산악족(山岳族)과 하안족(河岸族)이 함께 신앙했던 공동신앙이며, 이 공동의 용신신앙이 매개가 되어 두 세력이 결연을 이루게 되었던 셈이다.
물의 신 하백은 태양신 천제를 훌륭한 존재로 인정하고 있었다. 다만 해모수가 천제의 아들임을 믿을 길이 없었던 모양이다. 따라서 딸을 주기 전에 천제의 아들임을 확인하고자 그 신이한 역량을 확인하고 싶어 했다. 해모수도 이에 동의하여 신통술 경쟁에 들어간 것이다.
이러한 신통술 겨루기는 신화와 전설 등 우리 옛 이야기에 많이 등장하는 대목이다. 수로왕신화에서도 ‘탈해가 변해서 매가 되자 수로는 변해서 독수리가 되고, 또 탈해가 참새가 되자 수로는 새매로 변했다’고 하여, 수로와 석탈해가 신통술을 겨루어 왕권을 다툰다. 어쨌든 이 시험으로 해모수는 천제의 아들임을 인정받아 정식으로 혼례를 치루게 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도리어 하백의 위세가 꺾이게 되었다. 천제의 아들이 혹 자기 딸을 버리면 어찌하나하는 두려움이 앞서, 하백은 해모수가 딸을 떼어놓지 못하도록 묘안을 짜내었다. 주연을 베풀어 해모수를 취하게 한 다음 딸과 함께 작은 가죽가마에 태우고 오룡거에 실어 승천시키려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오룡거가 물에서 채 나오기 전에 술이 깬 해모수는 유화의 금비녀를 뽑아 가죽가마를 뚫고 혼자서 층천하고 말았다. 결국 해모수는 유화와 간절히 혼인하고자 했으면서도 정작 혼례식을 올리고 정식으로 혼인을 이루게 되자 유화를 버리고 마는 역설적 결과에 이른 것이다. 유화 역시 성혼 이전에는 비록 아버지로부터 걱정을듣는 처지에 있으되 해모수와 동거하며 사랑을 나누었는데, 정작 성혼이 이루어지자 해모수에게도 버림받고 아버지로부터도 쫓겨나서 모든 것을 잃는 절박한 처지가 된다. 결과적으로 혼인의 파탄에 이른 것이다. 그것은 명백히 정상적인 혼인의 장애라 할 수 있다.
흔히 영웅의 출생담에는 혼인의 장애가 끼어들거나 비정상적인 잉태 과정이 등장한다. 아버지가 사람이 아닌 이물(異物)이거나, 또는 어머니가 미혼모(또는 홀몸)로 임신하는 경우가 그렇다. 서동의 어머니는 못가에 살다가 지룡(池龍)과 관계를 하여 서동을 낳고, 견훤의 어머니는 밤에 찾아온 지렁이의 화신과 관계를 하여 견훤을 낳는다. 처녀가 나무 밑에서 오줌을 누다가 나무의 정기를 받아 목도령을 낳고 인류 시조가 되는 이야기도 같은 맥락에 있다. 유화의 몸에 주몽이 잉태되는 과정도 비정상적이다.
해모수가 유화의 입술을 3척이나 되게 잡아늘여 우발수라는 강으로 쫓아버린 부분이나 유화가 강물의 고기를 훔쳐 먹다가 금와왕에게 잡혔는데, 입술이 늘어져 말을 하지 못하다가 세 차례나 입술을 잘라낸 뒤에 비로소 자신의 신분을 밝히게 된 부분은 혁거세 신화에 등장하는 혁거세의 비 알영을 생각하게 된다.
알영은 알영정의 계룡 왼쪽 갈비에서 태어나 얼굴이 아름다웠으나 입이 닭의 부리와 같았는데, 발천(撥川)에 목욕을 시키자 그 부리가 빠졌다고 한다. 알영은 우물과 계룡 곧 물과 용의 배경 속에서 출현했다. 유화도 마찬가지이다. 유화(柳花)라는 이름은 물가에서 자라는 버드나무의 상징으로서 물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뿐 아니라, 그 아버지 하백은 서하라고 하는 강의 신이다. 유화가 있던 강 이름이 우발수라고 하는 것도 알영이 목욕한 발천과 상통한다. 우리는 여기서 물, 또는 우물이나 강이 (하늘이나 태양으로 표현되는 남성의 양성(陽性) 상징에 맞서서) 여성들이 가지는 생식력의 상징, 곧 여성의 음성(陰性) 상징으로 나타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알영의 입과 유화의 입은 서로 통한다. 알영의 입이 닭의 부리와 같아서 발천에 목욕을 하여 빠지게 했던 것처럼, 유화의 입도 길게 늘어나서 세 차례나 베어내야 했다. 용모는 뛰어났으되 한결같이 입이 길어서 새의 부리처럼 생겼다는 데에서 신화적 주인공이 알에서 태어날 조짐임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해모수는 햇빛으로서 별실에 갇혀 있는 유화를 쪼여 잉태시켰는데, 유화는 마침내 닷되들이나 되는 커다란 알을 낳는다. 혁거세 신화에서도 하늘에서 우물가에 번개빛이 비추고 거기에 자줏빛 알이 출현한다. 여성과 물, 빛과 남성, 부리형 입과 발수(또는 발천), 그리고 난생(卵生)이 두 신화의 공통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특히 신화에서 난생의 요소는 ‘영웅의 일생’을 이루는 한 단락으로서, 비정상적인 출생에 해당되는 비정상적인 잉태나 혼인의 애와 같은 차원에서 이해되기 일쑤이다. 이 대목은 주인공이 일정한 시련을 겪게 되나 마침내 이를 극복하고 훌륭한 성취를 이룬다는 영웅성을 입증하기 위한 과정이자, 주인공에게 사람들과 다른 신이성을 부여하기 위한 필수적인 장치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신화 속 난생의 요소에 대해 좀 다른 각도에서 한층 미묘한 해석이 필요할 것 같다. 그것은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바로 부모가 예사 사람이 아니라 신이한 존재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알을 낳을 수 있는 존재는 날짐승 곧 새이다. 지상과 천상을 마음대로 오르내리며 날아다닐 수 있는 새들은 흔히 신령 그 자체로 인정되기도 하고 신령의 매개자로 간주되기도 한다. 태양신이 삼족오와 같은 까마귀라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솟대 끝에 오리와 기러기를 만들어 세우고 섬기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며 혁거세신화에서 하늘을 나는 천마가 출현하고, 김알지 신화에서 흰 닭이 홰를 치며 우는 것도 같은 의식의 지평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하늘의 사자로 등장했다. 그러므로 알은 곧 천상적 존재의 혈통임을 뜻한다.
그리고 알을 낳는 과정도 특이하다. 정상적인 출산이라면 자궁으로 낳아야 마땅한데, 유화는 왼쪽 겨드랑이로부터 알을 낳는다. 마치 알영이 계룡의 왼쪽 갈비에서 태어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여기서 우리는 난생의 비정상적 출산을 재해석할 수 있다. 자궁 출산은 아무래도 출혈과 각종 분비물이 따르게 된다. 자궁 출산의 불결함은 신화적 주인공의 신성한 출산을 보장할 수 없다. 흔히 동제를 지내거나 마을굿을 할 때 출산예정일이 가까운 임신부는 부정탄다 하여 친정으로 보내는 것도 같은 사정이다. 따라서 자궁출산의 부정스러움을 극복하기 위하여 겨드랑이나 옆구리로 출산하는 신이성을 택한 것이다. 석가모니도 마야부인의 옆구리에서 태어나는 신이성을 보인다. 더군다나 알을 낳는 경우는 자궁 출산에 따르는 분비물 같은 것은 아예 없다. 알 자체가 출산의 불결함이나 부정스러움을 소거시킨 정갈한 출산의 양식인 것이다.
또 왼쪽 겨드랑이나 왼쪽 갈비에서 태어났다고 할 때, 왼쪽은 비일상적인 방향이자 신성성을 지니는 방향이다. 그래서 금줄로 사용할 새끼를 꼴 때에도 왼쪽으로 새끼를 꼰다. 금줄 구실을 하는 왼새끼는 곧 성역을 이루는 것이다.
3.2. 빛의 잉태와 버려진 알
유화가 주몽을 잉태하는 과정은 주몽을 알의 형태로 출산하는 사실 못지않게 해모수의 정체를 말해 주는 대목이다. 유화는 아버지 하백으로부터 쫓겨나기 전에 이미 해모수와 오랜 동안 그의 궁전에 머물며 사랑의 관계를 맺어 왔다. 그런데 주몽은 이런 정상적인 상황이 아닌 특수한 상황에서 신이한 방식으로 잉태된다. 유화의 주몽 잉태는 유화가 해모수를 만날 수 없는 상태 곧 금와왕에게 잡혀서 별실에 갇혀 있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유화의 임신을 가능하게 한 것은 방 속으로 쏟아져 들어온 햇빛이다. 햇빛은 해 모습을 자처하는 해모수의 상징이기도 하다.
햇빛은 유화가 자리를 피해도 유화를 비추었는데 이는 누군가의 의지가 작용했음을 암시한다. 따라서 문헌의 어디에도 누구인지는 밝혀져 있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문맥 속에서 해모수로 인정하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학자는 없다. 또 주몽 역시 부여를 탈출하여 도망가다가 엄호수 앞에서 스스로 천제의 아들 또는 천제의 손자임을 자처하면서 다리를 놓아 주도록 하늘에 청하는 대목도 이를 뒷받침한다.
그런데 해모수가 유화에게 주몽을 잉태시키면서 왜 하필 햇빛이라고 하는 비정상적인 방법을 택했을까? 적어도 건국시조신화의 주인공이 예사 사람들의 잉태 과정처럼 남녀의 성적 결합을 거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점을 든다면, 햇빛을 쪼이는 방법 역시 주인공의 신성성을 높이기 위한 잉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잉태하여 태어난 태양신 해모수의 아들 주몽은 동쪽에서 새로 솟아오르는 아침해나 다름없다. 주몽을 두고서 동명(東明)이라 하는 까닭도 그 때문일 것이다. 해모수와 동명은 모두 태양신을 표방하는 상징성을 지닌 이름이다. 그러므로 태양신의 정통성은 해모수에서 동명성왕 주몽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주몽의 신이한 잉태는 신이한 출생으로 이어진다. 알로 태어난 까닭에 주몽은 버려지는 시련을 겪는다. 영웅이나 신화의 주인공이 어릴 적에 거치는 시련의 과정은 부모로부터 버려지는 것이다. 버려진 영웅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시련을 겪지만 으레 새와 짐승들로부터 보호받고 구원자에 의해 양육되어 비범한 인물로 성장하게 된다.
주몽도 마찬가지이다. 알의 상태로 태어난 주몽은 개와 돼지에게 던져지는 신세가 되기도 하고 길거리와 들판에 내버려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개와 돼지가 먹지 않았고 길에서는 소와 말이 피해갔으며, 들에서는 새와 짐승들이 오히려 알을 보호해 주었다. 금와왕이 직접 나서서 알을 깨뜨리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자 마침내 어머니 품으로 되돌아가게 되었다.
사람의 몸에서 알이 태어났다고 하여 그 알이 버려지지만 그럼으로써 오히려 알의 신이한 정체가 밝혀지는 것이다. 모든 짐승과 조류들이 알을 피하여 오히려 보호했다는 것은 이 알이 예사 알이 아니라 태양신 해모수의 신이한 혈통임을 입증하는 훌륭한 증거가 되는 까닭이다. 더군다나 구름이 끼어 날씨가 흐린 날에도 유독 알 위에만 햇빛이 계속 내리비췄다는 사실은 어머니의 품을 떠난 태아를 보호하기 위하여 해모수가 햇빛의 형태로 직접 보호의 손길을 뻗쳤음을 말한다.
어머니 유화가 마치 계란으로 병아리를 부화시키듯이 알을 싸서 따뜻한 곳에 두었더니 주몽이 알을 깨고 나온다. 유화의 입이 지닌 형상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났듯이 새가 알을 품는 과정과 비슷하다. 유화가 강의 물고기를 훔쳐 가는 존재로 지목받아 쇠그물에 잡히게 되었다는 사실도 유화는 오리나 학과 같이 물고기를 잡아 먹는 조류의 속성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주몽이 알의 형태로 태어나는 데에는 태양신을 표방하는 천제의 아들 해모수의 ‘해 모습’, 곧 햇빛이 남성 상징의 양기로서 공격적으로 작용하고, 물의 신 하백의 딸 유화는 버드나무꽃 또는 물새와 같이 여성 상징의 음기로서 받아들이는 작용을 하였던 것이다.
흔히 주몽을 동명왕이라고 하는데 이는 햇빛의 남성적 양기만을 드러냈을 따름이다. 사실 그는 동쪽 태양의 햇빛과 서쪽 강물의 물빛이 지닌 남성과 여성, 또는 음과 양, 해와 물, 동쪽과 서쪽의 대립적 조화에 의해 출현한 존재이다. 주몽은 곧 동광(東光)과 서수(西水)를 포괄한 인물인 것이다. 그것은 천상과 서하, 천제와 하백, 해모수와 유화의 결합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므로 주몽은 하백의 역량까지 수렴함으로써, 해모수의 정통성을 더 건강하게 발전적으로 이어 나갈 수 있었다.
3.3. 주몽의 모계인 유화
해모수가 천부(天父)라면 유화는 지모(地母)이다. 지모신으로서의 유화는 농경생활의 뿌리가 되는 씨앗을 주몽에게 준 사건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이 사건은 꽤 상징적이다. 주몽이 부여를 떠날 때 그 어머니가 오곡의 씨앗을 싸서 주었는데, 이별의 슬픔이 간절하여 씨앗주머니를 잊어버린 채 떠났다. 그런데 주몽이 무사히 부여를 빠져나갔을 때 어머니는 한 쌍의 비둘기를 통해서 씨앗을 보낸다. 주몽이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활을 쏘아 비둘기를 떨어뜨린 다음 목을 가르고 모래주머니에서 보리씨를 꺼낸다. 그리고는 물을 뿜어 비둘기를 소생시킨 뒤에 날려 보낸다.
중요한 것은 주몽의 어머니가 농경신으로서 씨앗을 소중히 여겼을 뿐 아니라, 비둘기와 같은 새를 통해서 씨앗을 전달했다는 사실이다. 비둘기에게 씨앗을 보냈다는 것은 비둘기를 일종의 곡모신(穀母神)으로 여긴 것이다. 일반적으로 신화적 사고에서는 새를 곡모신으로 여기기 일쑤이다. 조류의 모래주머니 속에는 소화되지 않은 곡식의 씨앗들이 보관되어 있는 까닭이다. 단군신화와 견주어 때 주몽신화에는 ‘농업’ 및 ‘곡모신’에 관련된 내용이 뚜렷하게 드러나 있다. 씨앗을 싸서 주고, 씨앗을 보내고, 씨앗을 꺼내는 등 씨앗에 관한 기록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단군의 고조선시대에 비하면 해모수와 주몽의 부여 및 고구려시대에 한층 체계적인 농업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씨앗을 전달해 준 비둘기는 오리과에 속하는, 물에 사는 몸집이 큰 새이다. 물고기와 조개 따위를 먹고 사는 물새이므로 곡모신으로 적절하지 않은 새이다. 그럼에도 비둘기가 씨앗을 전하는 곡모신 구실을 하는 것은 유화의 정체와 연관되어 있다. 유화는 물의 신 하백의 딸이면서 입이 길게 늘어져 새 부리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일종의 물새와 같은 상징성을 지닌 인물이 유화이다. 주몽이 비둘기를 보고서 곧장 어머니가 보낸 새임을 알아차리는 까닭도 기록의 문면에는 자세히 나타나 있지 않지만, 이러한 연관성 때문일 것이다. 비둘기에게 물을 뿜으니 다시 소생되어 날아갔다고 하는 것도 물과 친연성을 맺고 있는 물새였을 뿐 아니라 물의 신 어머니가 보낸 사자였기 때문이다.
주몽의 부계인 해모수는 수렵민족의 무인적 기질이 강하다. 태양신을 표방한 해모수계의 신앙체계나 주몽이 나면서부터 활을 잘 쪼고 사냥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는 사실이 이러한 가능성을 드러낸다. 그러나 주몽의 모계인 하백은 물의 신이다. 농경에는 태양도 중요하지만 상대적으로 물이 더욱 중요하다. 물이 씨앗을 싹트게 하고, 태양은 농작물을 성장시키는 데 작용한다. 유화는 곧 그러한 농경문화 세력으로서 주몽에게 씨앗을 주어 농사법을 가르쳐 주고, 또 말을 기르는 것과 같은 가축사육법도 일깨워 준 셈이다. 주몽이 졸본천에 이르러 다른 곳에 터잡지 않고 굳이 ‘비수’라고 하는 물가에 집을 짓고 정착하여 나라를 일으켰던 것도 물의 신이자 농경 세력인 모계의 영향을 입은 결과라 할 수 있다.
결국 주몽이 본디 아버지의 성을 따라 ‘해’씨라 일컬어야 마땅하지만, 굳이 ‘고’씨로 성을 삼은 데에는 그만한 까닭이 있는 것이다. 천제의 아들로서 햇빛을 받고 낳았다 하여 ‘고’씨라 하였다고 내력을 밝힘으로써 그 자신이 태양 자체가 아니라 태양의 아들인 햇빛에 지나지 않음을 핑계삼고 있지만, 사실은 어머니 유화의 모계를 염두에 두고서 부계의 성을 일방적으로 따르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부계와 모계 어느 한쪽으로 편벽되게 치우치지 않은 주몽의 합리적 객관성이 고구려의 시조가 될 수 있는 바탕이었으며, 이에 따라 주몽은 태양신계의 수렵문화와 수신계의 농경문화가 지닌 문화적 차별성을 순조롭게 극복하고 조화롭게 수렴함으로써 고구려라고 하는 새로운 국가를 일으킬 수 있는 문화적 역량을 축적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해돋이 동명성왕 주몽의 찬란함 뒤에는 그 빛을 받아 무지개를 형성하는 보이지 않는 수신(水神)의 기운이 흠뻑 배어 있었다고 해야 마땅할 것이다.
3.5 유화와 금와왕과의 관계
금와왕이나 태자 대소의 처지에서 보면 나라의 마굿간을 지키는 임무를 띤 주몽이 이를 어기고 몇몇 신하들과 공모하여 나라를 탈출하였을 뿐 아니라, 그 뒤를 쫓던 병사들마저 물 속으로 빠뜨려 죽게 하였으니 그 죄가 적지 않다. 그런데 주몽을 잡지 못해 그 죄를 물을 수 없으니 주몽의 탈출을 도운 주몽의 어머니 유화부인이 공범자로서 응징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비록 유화가 주몽의 탈출을 도와 주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반역행위를 한 주몽의 가족이라면, 나라에서는 주몽 대신 그 가족들을 치죄하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와왕은 유화부인에게 특별한 응징 조치를 내리지 않았다. 그것은 뒤에 유화부인이 죽자 금와왕이 국장으로 성대하게 장례를 치뤄 주고 사당까지 지어 주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금와왕이 이처럼 주몽의 어머니 유화부인을 너그럽게 받들어 예우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이는 북부여에서 유화부인을 어떤 존재로 인식했는가 하는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금와왕이 유화부인을 처음 보았을 때 그녀가 ‘천제의 아들인 해모수의 부인임을 알고 별실에 거처하게 하였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유화부인의 정체를 이 정도로 알았다면 그녀가 서하의 주인인 하백왕의 맏공주라는 사실도 알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유화에게 별실을 따로 마련하여 특별히 거처하게 하는 예우를 베푸는 일은 자연스럽다. 왕이 궁전에다 별실을 마련하여 특정 여성을 거처하게 했다는 것은 거의 왕후의 예로써 대한 것이라 해도 좋겠다.
그리고 유화의 아들인 주몽이 늘 금와왕의 일곱 왕자들과 더불어 사냥을 다니며 함께 행동했을 뿐 아니라 태자 대소가 왕위 계승의 위협을 느껴 금와왕에게 주몽을 없애자고 요청한 것을 보면 금와왕은 주몽을 서왕자(庶王子)로 여겼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주몽이 왕자들과 동등하게 어울릴 수도 없을 뿐 아니라 태자가 왕위계승의 위협을 느껴 그를 해치려 할 까닭도 없다. 뒤에 유화부인이 죽자 북부여에서 국모로 예우하여 장례를 치뤘다는 사실이 이를 결정적으로 뒷받침한다. 결국 유화는 금와왕의 후비 노릇을 하였으며, 왕자들 또한 그녀를 서모로 받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4. 유화신앙
고대에 유화를 신으로 섬기고 모시는 전통이 있었음이 문헌기록에 나타난다.『삼국사기』권 제32「잡지」제1 제사편 고구려조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온다.
“『고기』에 이르기를, 동명왕(東明王)14년 가을8월에 왕의 어머니 유화(柳花)가 동부여에서 세상을 떠나므로 그 나라의 왕 금와(金蛙)가 태후의 예절을 갖춰 장사지내고 드디어 신묘(神廟)를 세웠다. 태조왕(太祖王)69년 겨울 10월에 왕이 부여에 가서 태후사당에 제사를 지냈고, 신대왕(新大王)4년 가을 9월에 왕이 졸본으로 가서 시조 사당에 제사를 지냈다. 고국천왕(故國川王) 원년 가을 9월과 동천왕(東川王)2년 봄2월과 중천왕(中川王)13년 가을 9월과 고국원왕(故國原王)2년 봄 2월과 안장왕(安臧王)3년 여름4월과 평원왕(平原王)2년 봄 2월과 건무왕(建武王)2년 여름 4월에도 모두 전례와 같이 시조사당에 가서 제사를 지냈으며, 고국원왕9년 봄3월에 국사(國社)를 세웠다.”
『삼국사기』는 이에 앞서 중국의 사서에 실린 기록도 다음과 같이 차례로 소개하고 있다.
『후한서』에 이르기를, 고구려는 귀신과 사직과 영성(零星)에 제사지내기를 좋아하여 10월에 하늘에 제사지내는 큰 모임을 동맹(東盟)이라고 하며, 그 나라 동쪽에 큰 굴이 있는데 이름을 수신(隧神)이라 한다. 역시 10월에 그 신을 맞이하여 제사를 지낸다.
『북사』에 이르기를, 고구려는 해마다 10월에 하늘에 제사지내며 함부로 만든 신당이 많다. 두 개의 신묘가 있는데, 하나는 부여신(夫餘神)이라 하여 나무를 조각하여 부인의 상을 만들었고, 다른 하나는 고등신(高登神)인데 이가 바로 시조 부여신의 아들이라고 한다. 이 두 곳에 모두 관서를 설치하고 사람을 보내 수호했는데, 대체로 하백(河伯)의 딸과 주몽(朱夢)을 가리키는 것이다.
『양서』에 이르기를, 고구려는 왕궁 왼평에 큰 집을 지어놓고 귀신에게 제사를 올렸으며, 겨울에는 영성(零星)과 사직에 제사를 지냈다.
『당서』에 이르기를, 고구려의 풍속에는 함부로 만든 사당이 많은 바 영성과 해(日)․기자(箕子)․합한(可汗: ‘가한’이 아니라 ‘합한’으로 발음한다고 『용비어천가』에 나와 있다.) 등 신에게 제사지내며, 나라의 왼쪽 지방에 큰굴이 있는데 그것을 신의 굴이라 하여 해마다 10월에 왕이 친히 제사를 지냈다.“
『예기』에 이르기를 ‘천자는 천지에 제사를 올리고, 제후는 사직에 제사를 지낸다’고 했다. 이 같은 기준으로 볼 때 대왕이 친히 천지신명에게 제사를 올린 고구려는 중국의 제후국도 아니요 변방의 소국도 아니라, 동아시아의 종주국이며 천하의 중심국이라는 강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진 당당한 천자의 나라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가 소개한 기록뿐만 아니라 『삼국지』와 『주서』 같은 중국의 사서에도 고구려가 하백의 딸 유화를 부여신으로, 유화의 아들 주몽을 고등신으로 섬겨 국동대혈(國東大穴), 곧 나라 동쪽의 큰 굴에 신상을 모셔두고 해마다 10월 동맹에 대왕이 몸소 제사를 올렸다고 전한다.
참고문헌 및 도판
▒ 참고 문헌
동명왕편
삼국유사
김철준, 「동명왕편에 보이는 신모의 성격」, 『유홍렬박사화갑기념논총』, 지식산업사, 1971
이옥, 「주몽연구」, 『한국사연구』7, 1972
임재해, 『민족신화와 건국영웅들』, 천재교육, 1995
황원갑, 『한국사를 바꾼 여인들』, 책이 있는 마을,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