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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월성신

일월성신

1. 일월성신

1.1. 일월신장의 의미
일월신장은 낮과 밤을 상징하며 인간에게는 행운과 수명을 내려주는 신령이다. 일신과 월신 두 사람을 그리고 머리의 관 위에 해와 달을 표시하기도 하며 단독의 신장인 경우는 해와 달을 배경으로 그려 놓았다. 해는 붉은색으로, 달은 배색이나 황색을 사용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서울의 동쪽 낙타산에 일월당이라는 신당을 만들어 그 앞을 지나는 사람들이 참배를 하기도 하였다.

2. 일월 설화
2.1. 일월 설화(1)
이 설화는 일본 규슈(九州)지방과 몽고에도 그와 비슷한 설화가 있어 이의 전파로 보고 있다. 여러 지방에 널리 퍼져 있는 해와 달에 관한 설화로서 지방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으나 대개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옛날 아이들 3형제와 어머니가 살았는데, 어머니는 산 넘어 품팔이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그만 호랑이에게 속아서 잡아먹혔다. 호랑이는 그녀의 옷을 입고 집에 와서 아이들을 속이고 막내아이를 잡아먹었다. 이것을 본 큰 아이들은 도망하여 우물가 나무 위에 올라갔다. 호랑이가 거기까지 따라 올라오므로 아이들은 하느님에게 호소하여 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호랑이도 두 아이들과 같이 하늘에 빌자 썩은 동아줄이 내려와서 이에 매달려 하늘로 올라가다가 떨어져 수숫대에 항문이 찔러서 죽고 그 피가 수숫대에 번져 지금도 붉은 점들이 남아 있다고 한다. 하늘에 올라간 두 남매는 각각 해와 달이 되었으며, 해가 된 누이는 낮에 다니는 것이 부끄러워 강한 햇살을 쏘아 사람들이 쳐다보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2.2. 일월 설화(2)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신라 제 8대 아달라왕 때 동해 바닷가에 연오랑, 세오녀 부부가 살았다. 어느 날 바닷가 바위가 연오랑을 싣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왕으로 받들었다. 세오녀는 남편을 찾아나섰다가 바위에 실려 일본으로 건너가서 왕비가 되었다. 이 때 신라에서는 해와 달이 빛을 잃었는데, 일관(日官)이 말하기를 해와 달의 정기가 일본으로 건너가 버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에 왕이 사자를 보냈으나, 연오랑은 하늘의 뜻이라 하여 귀국하지 않았다. 대신 세오가 짠 비단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면 다시 일월이 밝아질 것이라며 사자에게 주었다. 사자가 돌아와 그 비단을 모셔놓고 제사를 올리니 해와 달이 다시 밝아졌다. 제사지낸 곳을 영일현 또는 도가야라 했다.

3. 고구려 고분벽화에 표현된 해와 달

3.1. 고구려고분벽화에 보이는 해와 달의 표현
해와 달에 대한 신앙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 고구려 고분벽화에 그려져 있는 해와 달의 표현이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는 그것이 조성되기 시작하던 4세기 중반부터 고구려의 멸망으로 고분 벽화의 제작이 중단되던 7세기 중반까지 일월이 그 형식을 약간씩 달리하며 계속해서 그려졌다. 가장 핵심적인 표현은 일중 삼족오(해 안의 세발 까마귀), 그리고 월중섬여(달 안의 두꺼비)이다. 이런 해와 달의 표현의 연원은 중국에 있지만, 고구려에서는 중국의 어떤 왕조보다도 이들 표현을 선호하여 고분 벽화에 수없이 일월을 그렸다.
고구려고분벽화에 보이는 일중삼족오와 관련되는 내용은 세 가지로 분류할 수가 있는데, 첫째가 고분의 천정에 성수(별자리)과 함께 동쪽에는 일중삼족오를, 서쪽에는 월중섬여를 묘사한 ‘일중삼족오 월중섬상’이다. 다음으로 둘째는 복희, 여와 신화에서 볼 수 있는 쌍룡(혹은 뱀)쌍교형(雙龍雙交形, 두 마리 용이 서로 교차하고 있는 형태)의 교미쌍룡(交尾雙龍, 혹은 蛇, 특히 꼬리를 교차하고 있는 형태) 및 양인수일사신(兩人首一蛇身, 머리는 둘인데 뱀의 형태를 띤 하나의 몸)을 묘사한 ‘교미복희여와상’이다. 마지막으로 셋째는 앞 두 개가 결합한 형상으로 인수룡신유우(人首龍身有羽, 사람의 머리에 용의 몸을 하고 날개를 가지고 있는 경우)의 복희씨와 여와씨가 양 손으로 일중삼족오와 월중섬여(혹은 옥토)를 머리 위에 받들고 있는 봉일중삼족오섬여(捧日中三足烏蟾蜍, 받들고 있는 태양안의 까마귀와 두꺼비) 복희여와상, 복희여와상으로 나눌 수 있다.
이와 같은 세 종류의 형상으로 다시 고구려고분벽화에서 찾아보면, 첫째 유형으로는 중국 길림성 집안시 통구 무용총과 각저총 그리고 장천 1호묘를 그 대표적인 유적으로 들 수 있는데, 이들은 말각조정석(사방에 판석을 세우고 천정을 바로 덮지 않고 모서리를 줄여 나가며 천장 부분을 좁혀서 천정에 돌을 덮는 방식, 즉 이 방식으로 조성할 경우 천정 부분은 여러 층의 단이 생기게 마련이고, 고구려 벽화에는 이런 단에 빽빽하게 그림이 그려져 있다.) 측면에 그려진 별자리들에 둘려 동서로 배치되고 있다. 이 밖에 이와 같은 유형으로는 주로 황해도 평안남도와 그 일대에서 발견되고 있는데, 그 예로는 황해도 안악 제 1호분, 제 3호분, 평안남도 강서 태성리연화총 등의 비사신도고분(非四身圖古墳)과 평남지구의 강서 약수리벽화고분, 강서 삼묘리중묘, 용강 쌍영총, 덕화리 제 1․2호분, 평양의 진파리 제 1․4호분 등의 사신도고분의 천정에서 대개 성숙과 함께 발견되고 있다.
둘째 유형으로는 집안 통구 삼실총과 평안남도 순천(順川) 천왕지신총(天王地神塚)을 들 수 있는데, 삼실총의 경우에는 제2실과 제3실의 천정에 각각 교미쌍사상(꼬리를 교차한 두 마리의 뱀)을 그렸으며, 이는 뱀(혹은 용) 두 마리가 몸통을 세 번 감고 꼬리에서 다시 반대로 한 차례 감은 이른바 복교미형(復交尾形)이고 머리는 서로 마주보고 있는 형상으로 이는 중국 고문헌에 보이는 ‘비유(肥遺)’라고 볼 수 있다. 한편 천왕지신총(天王地神塚)에는 주실천정상부(主室天井上部) 제 1단부 북면에 양인수일룡신상(머리 둘에 하나의 용 몸)을 그렸는데 몸은 한 마리의 용의 형상이고 머리와 꼬리에 두상으로 구사하고 있다. 중국 고문헌에는 이를 ‘연유(延維)’라고 했다. 이와 같이 교미쌍사는 일종의 신사(神蛇)로서 역시 중국 고대신화에 자주 보이는 복희씨와 여와씨의 신상(神像)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와 같은 양인수일용신상은 역시 복희씨와 여와씨의 신상이다. 또 이 고분의 현실천정상부 제 2단부 동서에는 일중삼족오를, 서면에는 월중섬여의 일월상이 별도로 그려져 있다. 그러므로 이 형식은 아마 다음 유형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형식이 아닌가 짐작된다.
셋째 유형으로는 집안통구 사신총, 오회분4호묘, 오회분5호묘 등 사신도 주제의 고분의 천정에서 북두칠성 등의 별들과 함께 발견되고 있다. 이 중 5회분 4호묘의 경우를 보면 말각조정의 제 1층석의 동북말각상에는 인수용신봉일월신상(人首龍身捧日月神像, 사람의 얼굴에 용의 몸을 한 존재가 태양과 달을 받치고 있는 형상)을 동남에는 비천과 우수인신상(牛首人身像, 소의 머리를 하고 사람 몸을 한 형상), 서북에는 승룡선인상(乘龍仙人像, 용을 탄 신선의 형상)을, 서남에는 야륜장양인상(冶輪匠兩人像, 철을 만드는 장인의 모습)이 배치되고 있으며, 천장의 덮개돌 아래 면에는 교룡문(交龍紋)이 있다. 4호묘의 동서남북면에는 각각 모두 39마리의 용을 그렸다. 특히 동서말각상에 있는 일월신상을 보면 일신상은 좌측에 있고 남자의 상징으로 깃이 있는 갈색 옷을 입고 허리에는 갈색 두건을 두르고 있으며 양 손으로 갈색의 태양을 머리 위에 받들고 있다. 그리고 태양 안에는 왼쪽을 향한 삼족오를 안배하였다. 월신상은 좌측에 있고 여인상이며 산발을 하고 녹색 우의를 입고 허리에는 갈색 두건을 두르고 있으며 양쪽 손으로 흰색을 달을 머리 위에 받들고 있으며 달 안에는 섬여(두꺼비)를 그려 넣었다. 일신과 월신의 양편과 중앙에는 보리수를 그렸다. 이와 같이 셋째 유형은 인수사신(人首蛇身)의 복희씨와 여와씨만 그려지던 형태와 태양속 삼족오와 달 안 두꺼비만 그려지던 형태가 결합한 신상이다.

4. 무속에서의 일월신

4.1. 일월신
일월신앙은 해와 달을 영혼이 있다고 믿어 홍수나 가뭄의 피해가 없이 일년 농사의 풍작을 비는 원시신앙의 한 형태이다. 『삼국유사』에 보면, 신라에서는 해마다 문열림(文熱林)에게 제사를 지냈다. 또 『동국여지승람』에 보면 경주 지방에서 설날에 해와 달의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농사를 주업으로 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옛날부터 일월성신의 자연숭배 신앙이 많았다. 무속에서는 일월성신을 옥황천존(玉皇天尊)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문제를 해결해주며, 특히 부부에게 좋은 금술을 가져다 주는 신으로 여긴다.

4.2. 일월맞이굿
일월맞이굿은 가족의 행운과 수명장수를 비는 굿을 말한다. 특히 좁게 말하자면 동해안 별신굿의 두 번째 거리를 말한다. 세존굿 혹은 중굿이라고도 한다. 이 굿은 별신굿 진행에서 둘째 번에 행해지는데, “해 돋아 일월맞이, 달 돋아 월광맞이굿을 올린다.”는 사설로 시작하여 만사형통의 축원으로 끝난다. 그런데 이 일월맞이굿을 달리 세존굿 혹은 중굿이라고 하는 이유는 일신이나 월신, 세존이 모두 천상에서 내려온 신이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 근원은 청배무가(請拜巫歌)로 부르는 당금애기 풀이에서 찾을 수 있다. 즉, 당금애기가 태몽을 꾸는데, “한 짝 어깨에는 해가 돋구, 한쪽 어깨에는 달이 돋구, 하늘의 별 세 낱이 입으로 들어가구.” 한 것이 삼형제로 태어나며, 이들이 훗날 “삼제석(三帝釋)”이 된다. 이것은 풍습에서의 꿈풀이와도 연관이 된다. 또, 황해도의 무속에서도 이러한 일월맞이를 볼 수 있는데, 여기서는 일월대를 세운다. 이 일월대는 큰 소나무에 일월과 칠성의 무늬가 있는 일월명두(日月明斗)를 달고, 옥황선녀를 위한 치마 저고리와 일월성신을 위한 도포를 매단다. 그리고 “해는 따다 일월명두, 달은 따다 소슬명두.”로 사설을 시작하여 자손 만대의 부귀 영화를 축원한다. 이 같은 굿의 내용으로 보아, 우리의 무속에서는 태양이 신으로서 인간에게 복을 가져다주는, 기복의 상징적 대상이었음을 알게 한다. 민간의 주술적 치료방법에서, 아이들이 눈에 삼이 들었을 때 아침에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보게 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무녀는 먼저 굿을 하는 장소와 해마다 올리는 별신굿임을 알리고, “이번 모시는 성황님을 삼한 세준님네를 모십니다. 해 돋아 일월맞이, 달 돋아 월광맞이 굿을 올리는데, 어쩌다 세준님네의 도움을 빌어 자손만대 번창하고, 어업을 하는 분네들이나 농사를 짓는 분네들 소원대로 재수 해시오”하며 축원하였다. 굿이 30마디로 이루어진다면 보통 사설(辭說)은 10마디에, 축원(祝願)이 20마디로 이루어진다. 축원을 끝낸 다음 잠시 풍악에 맞춰 춤을 춘다. 풍악이 멈추면 제단을 향해 두 번 절을 하고 나서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서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조는 시늉을 한다. 그러다가 기지개를 켜고 하품을 하며, 눈을 뜨고 옆구리․엉덩이․가슴 등을 긁고, 이를 잡아서 먹는 시늉을 하고, 물을 퍼서 양치질을 하고 세수하는 노승의 흉내를 낸다. 다음에는 활옷 띠를 풀어 발에 걸고 짚신 삼는 시늉을 하다가 다시 일어나서 풍악에 맞추어 바라춤을 춘다.
참고문헌 및 도판
▒ 참고 문헌
김부식, 정구복 외 4명 번역, 『역주 삼국사기』2, 4 (정신문화연구원, 2003)
일연, 이재호 번역, 『삼국유사』1, 2, (솔, 2002)
조흥윤, 『한국의 무』(정음사, 1984)
윤열수, 『한국의 무신도』(이가책, 1994)
『한국민속대사전』(민중서관, 2000)
『민족문화대백과 사전』
『한국문화상징사전』

▒ 참고 도판
김태곤 (편), 韓國巫神圖, 열화당, 1993, 75~78면(도판).
김기웅, 고분, 대원사, 1991, 101(아래 도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