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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제

천제

1. 천제
천제(天帝)는 글자 의미 그대로는 ‘하늘의 황제’를 뜻한다. 그러나 원문에서 ‘천제’라는 단어의 용례가 사용된 경우는 매우 한정되어 있다. 현재로선 주몽의 아버지 해모수의 아버지가 『삼국유사(三國遺事)』,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등 여러 역사서에서 ‘천제’라고 사용되어 있을 뿐이다.

1.1. 주몽과 해모수, 그리고 천제의 설화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왕 주몽에 관한 신화 중에서 그 본래의 신화적 특성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평가되고 있는 것이 이규보가 지은『동국이상국집』에 실린 주몽의 이야기이다. 『동국이상국집』에 실린 주몽의 신화는 지금은 전하지 않는 『구삼국사(舊三國史)』의 내용을 인용해놓은 것인데, 원문을 그대로 옮겼으리라 생각되기 때문에 원래의 신화 내용에서 새로운 첨가가 있었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특히 이 책에 소개된 주몽신화는 해모수와 하백의 도술 대결, 주몽 탈출 시 유화의 역할, 비류와 송양과의 대결 등등 흥미로운 신화소를 폭넓게 갖추고 있어 고구려의 시조 주몽을 이해하는데 소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그 내용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한(漢) 신작(神雀) 삼년 임술(壬戌)에 천제는 아들 해모수를 부여왕의 옛 도읍터에 내려 보내어 놀게 하였다. 해모수가 하늘에서 내려올 때에는 오룡거(五龍車)를 탔고 종자 백여인은 모두 백곡(白鵠)을 탔으며 채색 구름은 위에 뜨고 음악은 구름 속에 들리었다. 웅심산(熊心山)에 머물러서 십 여일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내려왔는데 머리에는 까마귀 깃으로 된 관(烏羽冠)을 쓰고 허리에는 용광이 빛나는 칼(龍光劍)을 찼다. 아침에 정사(政事)를 듣고 저녁이면 하늘로 올라가니 세상에서 이를 천왕랑(天王郞)이라 하였다.
성북(城北) 청하(靑河)에 하백(河伯)의 세 딸이 아름다웠는데 장녀는 유화(柳花), 차녀는 훤화(萱花), 계녀는 위화(葦花)라고 하였다. 그녀들이 청하로부터 웅심연(熊心淵) 위로 놀러 나가니 신 같은 자태는 곱고 빛났으며 수식한 패옥이 어지럽게 울려 한고(漢皐)와 다름이 없었다. 왕(해모수)은 이들을 보고 좌우에게 말하되 "얻어서 왕비를 삼으면 아들을 두리로다." 하였다. 그녀는 왕을 보자 즉시 물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좌우가 말하기를 "대왕께서는 어찌 궁전을 지어 여자들이 들어가기를 기다렸다가 마땅히 문을 닫지 않으십니까?" 하니 왕이 그렇게 여겨 말채찍으로 땅을 그으니 동실(銅室)이 문득 생기어 장관이었다. 방 가운데는 세 자리를 마련해 놓고 동이술을 두었다. 그 여자들이 각각 그 자리에 앉아서 서로 권하며 술을 마시고 크게 취하였다. 왕은 세 여자가 크게 취하기를 기다려 급히 나가 막으니 여자들이 놀라서 달아나고 장녀인 유화만이 왕에게 붙들린바 되었다.
하백은 크게 노하여 사자를 보내 말하기를 "너는 어떤 사람인데 나의 딸을 머물게 하였는가?" 하니 왕은 대답하되 "나는 천제의 아들로 이제 하백에게 구혼하고자 한다" 하였다. 하백이 다시 사자를 보내 말하기를 "네가 천제의 아들로 나에게 구혼을 하려 한다면 마땅히 중매를 보내야 될 터인데 이제 갑자기 나의 딸을 붙잡아 둔 것은 어찌 실례가 아닌가?" 하였다. 왕은 부끄럽게 여겨 장차 하백을 가서 보려 하고 방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그 여자를 놓아 주려고 하였으나 여자는 이미 왕과 정이 들어서 떠나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왕에게 권하기를 "오룡거(五龍車)만 있으면 하백의 나라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였다. 왕이 하늘을 가리켜 고하니 문득 오룡거(五龍車)가 공중으로부터 내려왔다. 왕과 여자가 수레를 타니 풍운(風雲)이 갑자기 일어나며 그 궁(하백의 궁전)에 이르렀다. 하백은 예(禮)를 갖추어 이들을 맞이하고 자리를 정한 뒤에 말하되 "혼인하는 법은 천하에 통용하는 법인데 어찌하여 예를 잃고 나의 가문을 욕되게 하였는가? 왕이 천제의 아들이라면 무슨 신이함이 있는가?" 하니 왕이 말하되 "오직 시험해 볼 따름이다."라고 했다. 이에 하백이 뜰 앞의 물에서 이어(鯉魚)가 되어 놀자 왕은 수달로 변화해서 이를 잡았다. 하백이 다시 사슴이 되어 달아나니 왕은 늑대가 되어 이를 쫓고 하백이 꿩으로 변화하니 왕은 매가되어 이를 쳤다. 하백이 이 사람은 참으로 천제의 아들이라 여기고 예로써 혼인을 이루고 왕이 딸을 데려갈 마음이 없을까 겁내서 잔치를 베풀고 술을 왕에게 권해서 크게 취하게 한 뒤 딸과 함께 작은 혁여(革輿)에 넣어서 용거(龍車)에 실어서 승천하도록 하였다. 그 수레가 물을 채 빠져 나오기 전에 왕은 바로 술이 깨어서 여자의 황금 비녀를 취해서 혁여를 찌르고 그 구멍으로 홀로 나와 하늘로 올라갔다.
하백은 크게 노하여 그 딸에게 말하되 "너는 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나의 가문을 욕되게 했다." 하고 좌우에게 명령해서 딸의 입을 잡아 늘려 그 입술의 길이가 삼척이나 되게 하고 다만 노비 두 사람을 주어 우발수(優渤水) 가운데로 귀양 보냈다.
어사(漁師) 강력부추(强力扶鄒)가 금와왕에게 고하기를 "요즈음 양중(梁中)에 고기를 가져가는 자가 있는데 어떤 짐승인지 알지 못하겠다."고 하였다. 왕은 이에 어사를 시켜서 그물로써 이것을 끌어내게 하였더니 그물이 찢어졌다. 다시 쇠그물을 만들어 끌어내니 비로소 한 여자가 돌 위에 앉아서 나왔다. 그 여자는 입술이 길어서 말을 할 수가 없으므로 그 입술을 세 번 자른 뒤에야 말을 했다. 왕은 천제자의 비(妃)임을 알고 별궁(別宮)에 두었는데 그 여자는 햇빛을 받고 그 때문에 임신을 해서 신작(神雀) 사년 계해(癸亥) 하사월(夏四月)에 주몽(朱蒙)을 낳았는데 울음소리가 매우 크고 골표가 영웅답고 기이했다.
처음 주몽을 낳을 때 왼편 겨드랑이로 한 알을 낳았는데 크기가 닷되[五升]들이쯤 되었다. 왕이 이를 괴이하게 여겨 말하되 "사람이 새알을 낳은 것은 상서롭지 못하다." 하고 사람을 시켜서 이 알을 마목(馬牧)에 버렸으나 여러 말들이 밟지 않았고, 깊은 산에 버렸으나 백수(百獸)가 모두 보호했다. 구름이 낀 날에도 그 알 위에는 언제나 일광(日光)이 있으므로 왕은 알을 가져다가 그 어미에게 보내고 기르도록 했다.
알은 마침내 열리고 한 사내아이를 얻었는데 낳은 지 한 달이 못 되어 말을 하였다. (주몽은) 어머니에게 여러 파리들이 눈을 물어 잠을 잘 수 없으니 어머니는 나를 위하여 활과 화살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그의 어머니가 갈대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주자 이것으로 방거(紡車) 위에 파리를 쏘아서 화살이 날면 모두 맞았다. 부여에서 활 잘 쏘는 사람을 주몽이라고 하였다.
나이가 장대해지자 재능도 겸비하였다. 금와왕에게 아들 일곱이 있었는데 항상 주몽과 같이 사냥하였다. 왕자 및 종자 사십여 인은 겨우 사슴 한 마리를 잡았으나 주몽은 사슴을 쏘아 잡은 것이 아주 많았다. 왕자는 이를 질투해서 주몽을 잡아 나무에 매어 놓고 사슴을 빼앗아 가 버렸는데 주몽은 나무를 뽑아서 돌아왔다. 태자(太子)인 대소(帶素)가 왕에게 말하되 "주몽은 신용(神勇)이 있는 사람이고 눈길이 남다르니 만약 일찍 도모하지 않으면 반드시 뒷근심이 있을 것이다." 하였다. 왕은 주몽에게 말을 기르게 하여 그 뜻을 시험코자 하였다. 주몽은 속으로 한을 품고 어머니에게 말하되 "나는 천제의 손(孫)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서 말을 먹이고 있으니 사는 것이 죽는 것만 못하다. 남쪽 땅으로 가서 국가를 세우고자 하나 어머니가 계시기로 감히 마음대로 못하다." 하였다. 그 어머니가 말하되 "이것은 내가 밤낮으로 속 썩이던 것이다. 내가 듣기로는 먼 길을 가는 사람은 모름지기 좋은 말에 힘입는다고 했으니 내가 말을 골라 주겠다." 하고 드디어 말 기르는 데로 가서긴 말채찍으로 마구 치니 여러 말이 모두 놀라서 달리는데 한 누른 말이 두 길이나 되는 난간을 뛰어 넘었다. 주몽은 그 말이 준마임을 알고 몰래 말 혀끝에 바늘을 찔러 놓았더니 그 말은 혀가 아파서 물과 풀을 먹지 못하고 야위어 갔다.
왕이 마목을 순행하다가 여러 말이 모두 살찐 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며 마른 말을 주몽에게 주었다. 주몽이 이를 얻어서 바늘을 뽑고 더욱 잘 먹였다. 주몽은 오이(烏伊), 마리(摩離), 협보(陜父) 등 삼인(三人)과 같이 남쪽으로 행하여 개사수(蓋斯水)에 이르렀으나 건널 배가 없었다. 추격하는 병사들이 문득 닥칠까 두려워서 이에 채찍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개연히 탄식하되 "나는 천제(天帝)의 손이요 하백의 외손으로서 지금 난을 피해 여기 이르렀으니 황천후토(皇天后土)는 나를 불쌍히 여겨 급히 주교(舟橋)를 보내소서." 하고 활로써 물을 치니 고기와 자라들이 떠올라 다리를 이루어서 주몽이 건널 수가 있었다. 얼마 안 있어 추병(追兵)이 이르렀는데 추병이 물에 이르자 물고기와 자라들의 다리는 곧 없어지고 이미 다리로 올라섰던 자는 모두 몰사하였다.
주몽이 어머니와 이별에 임하여 차마 떨어지지 못하니 그 어머니가 말하되 "너는 어미의 염려는 하지 말아라." 하고 이에 오곡의 씨앗을 싸서 주었는데 주몽은 생이별하는 마음이 간절해서 보리 씨앗을 잃고 말았다. 주몽이 큰 나무 아래서 쉬더니 한 쌍의 비둘기가 날아왔다. 주몽은 "응당 이것은 신모(神母)가 보리씨를 보내는 것이다."라고 말한 후 이에 활을 준비해 이를 쏘아 한 살에 함께 잡아서 목구멍을 열고 보리씨를 꺼낸 다음 비둘기에게 물을 뿜으니 비둘기는 다시 살아나서 날아갔다. 왕(주몽)은 스스로 띠자리 위에 앉아서 임금과 신하의 위계를 정했다.
비류왕(沸流王) 송양(松讓)이 사냥을 나왔다가 왕의 용모가 비상함을 보고 불러서 자리를 주고 말하되 "바닷가에 편벽되게 있어서 일찍이 군자를 본 일이 없더니 오늘날 만나 보니 얼마나 다행이냐. 그대는 어떤 사람이며 어디에서 왔는가?" 하니 왕이 말하되 "과인은 천제의 손으로 서국의 왕이거니와 감히 묻겠는데 군왕은 누구를 계승한 왕이냐?" 하자 송양은 "나는 선인(仙人)의 후예로서 여러 대(代) 왕노릇을 했는데 이제 지방이 아주 작아서 두 왕으로 나누는 것은 불가하니 그대가 나라를 세운 지가 얼마 안 되었으니 나에게 부용(附庸)함이 옳지 않겠느냐?" 하니 왕이 말하되 "과인은 천제를 계승했고 이제 당신은 신(神)의 자손이 아니면서 억지로 왕이라고 하니 만약 나에게 돌아오지 않는다면 하늘이 반드시 죽일 것이다."라고 했다. 송양은 왕이 여러 번 천손(天孫)이라고 일컫자 속으로 의심을 품고 그 재주를 시험코자 하여 말하되 "왕으로 더불어 활쏘기를 하자."고 하였다. 사슴을 그려서 백보 안에 놓고 쏘았는데 그 화살이 사슴의 배꼽에 들어가지 못했는데도 힘에 겨워하였다. 왕은 사람을 시켜서 옥지환(玉指環)을 백보 밖에 걸고 이를 쏘니 기와 깨지듯 부서졌다. 송양이 크게 놀랐다. 왕이 말하되 "나라의 창업을 새로 해서 아직 고각(鼓角)의 위의(威儀)가 없어서 비류국의 사자가 왕래하되 내가 능히 왕례로써 영송(迎送)하지 못하니 이것이 나를 가볍게 보는 까닭이다." 하였다. 종신 부분노(扶芬奴)가 나와 말하되 "신이 대왕을 위하여 비류국의 북을 취해 오겠다." 하니 왕이 말하되 "타국의 감춘 물건을 네가 어떻게 가져오겠느냐?" 하니 대답하되 "이것은 하늘이 준 물건인데 어째서 취하지 못하겠습니까? 대왕이 부여(扶餘)에서 곤(困)할 때 누가 대왕이 여기에 이를 줄 알았겠습니까? 이제 대왕이 만 번 죽을 위태로움에서 몸을 빼내어 요수 왼쪽[遼左]에서 이름을 드날리니 이것은 천제가 명해서 된 것인데 무슨 일이든지 이루지 못할 것이 있겠습니까?" 하였다. 이에 부분노 등 세 사람이 비류국에 가서 고각을 가져왔다. 비류왕은 사자를 보내 고했으나 왕은 고각을 와서 볼까 겁내서 색을 어둡게 칠해서 오래된 것처럼 하였더니 송양은 감히 다투지 못하고 돌아갔다. 송양은 도읍을 세운 선후(先後)를 따져 부용(附庸)시키고자 하므로 왕은 궁실을 짓되 썩은 나무로 기둥을 하니 오래됨이 천년이 된 것 같았다. 송양이 와서 보고 마침내 감히 도읍 세운 것의 선후(先後)를 다투지 못했다.
왕이 서쪽으로 사냥을 가서 흰 사슴을 잡아 이것을 해원(蟹原)에 거꾸로 매달고 주술을 행해 말하되 "하늘이 만약 비를 내려서 비류의 왕도(王都)를 표몰(漂沒)시키지 않으면 나는 너를 놓아 주지 않을 것이다. 이 난관을 면하려면 네가 능히 하늘에 호소하라." 하니 그 사슴이 슬피 울어 그 소리가 하늘에 사무쳤다. 장마비가 칠일이나 와서 송양의 도읍이 떠내려가 버렸다. 왕이 갈대 새끼줄을 가로질러 늘이고 압마(鴨馬)를 타니 백성이 모두 그 줄을 잡았다. 주몽이 채찍으로 물을 그으니 물이 줄어들었다. 6월에 송양은 나라를 들어 와서 항복하였다.
7월에 검은 구름이 골령을 덮어 사람은 그 산을 볼 수 없고 오직 수천 명의 사람 소리만 들리며 나무 베는 소리만 들렸다. 왕이 말하기를 "하늘이 나를 위해 성을 쌓는다."고 하더니 칠일 만에 구름과 안개가 스스로 걷히고 성곽과 궁대(宮臺)가 스스로 이루어졌다. 왕은 하늘에 절하고 나아가 살았다.
추구월(秋九月)에 왕은 하늘로 올라가고 다시 내려오지 않으니 그 때 나이가 사십이었다. 태자(太子)는 왕이 남긴 옥편(玉鞭)으로써 용산(龍山)에 장사를 지냈다.
유리(類利)는 어려서부터 기절(奇節)이 있었다. 어렸을 때 새를 쏘아 잡는 것으로 업을 삼더니 한 부인이 인 물동이를 보고 쏘아 맞추었다. 그 여자는 노해서 욕하기를 "아비도 없는 아이가 내 동이를 쏘다니. 미천한 것."이라고 했다. 유리는 크게 부끄러워 진흙 탄환으로 동이를 쏘아 구멍을 막아 옛것같이 하고 집에 돌아와 어머니에게 나의 아버지는 누구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유리가 나이가 어리므로 희롱해서 말하되 너에게는 정해진 아버지가 없다고 하였다. 유리는 울면서, "사람이 정해진 아버지가 없다면 장차 무슨 면목으로 다른 사람을 보리오?" 하고 드디어 자결하려고 하였다. 어머니는 크게 놀라 이를 말리며 말하기를 "앞의 말은 희롱이다. 너의 아버지는 바로 천제의 손자이고 하백의 외손자이며 부여의 신하됨을 원망하고 남쪽 땅으로 도망가서 처음으로 국가를 세웠으니 너는 가서 뵈옵지 않겠느냐?"고 하니 대답하기를 "아버지는 다른 사람의 임금이 되었는데 아들은 다른 사람의 신하가 되니 제가 비록 재주는 없으나 어찌 부끄럽지 않겠습니까?" 하였다. 어머니가 말하되 "너의 아버지가 떠날 떄 말을 남긴 것이 있으니 '내가 일곱 고개 일곱 골짜기 돌 위 소나무에 물건을 감춘 것이 있으니 이것을 얻은 자라야 나의 아들이라' 하였다."고 했다. 유리는 스스로 산골짜기로 다니면서 찾았으나 얻지 못하고 지치고 피로해서 돌아왔다. 유리는 집 기둥에서 슬픈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보니 그 기둥은 돌 위에 소나무였고 나무의 몸은 일곱 모였다. 유리는 스스로 이를 해석하되 일곱 고개 일곱 골은 일곱 모요 돌 위에 소나무는 곧 기둥이라 하고 일어나서 가 보니 기둥 위에 구멍이 있어서 부러진 칼 한 조각을 얻고 매우 기뻐했다. 전한(前漢) 홍가(鴻嘉) 4년 하사월(夏四月)에 고구려로 달아나서 칼 한 조각을 왕에게 바치니 왕이 가지고 있던 칼 한 조각을 꺼내어 이를 맞추자 피를 흘리며 이어져서 하나의 칼이 되었다. 왕이 유리에게 말하되 "네가 실로 나의 아들이라면 어떤 신성함이 있는가?" 하니 유리는 소리에 응해서 몸을 들어 공중으로 솟으며 창을 타고 해에 닿아 그 신성의 기이함을 보였다. 왕은 크게 기뻐하며 세워서 태자를 삼았다.

『삼국유사(三國遺事)』‘제 1권 기이편 고구려조’에도 주몽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러나 그 전반적인 이야기는 『동국이상국집』에 실린 것과 유사하므로 여기서는 주몽이 자신이 천제(天帝)의 후손임을 내세우는 부분만을 언급하기로 하겠다.
『삼국유사』1권 기이편 고구려조의 기록.

(중간생략) 주몽의 어미가 왕의 다른 아들들이 여러 장수와 함께 장차 주몽을 해치려 함을 알고 이르되, “이 나라 사람들이 장차 너를 해치려 하니, 너의 재주와 계략으로 어디를 간들 안 되겠느냐. 속히 일을 도모하여라”라고 하였다. 이에 주몽이 오이(烏伊) 등, 세 사람의 벗과 엄수(淹水)에 이르러, “나는 천제의 아들이요(天帝孫)이요, 하백의 손자다. 오늘 도망가는 길인데 뒤쫓는 자가 거의 뒤따라오니 어찌하면 좋겠는가?”라고 고하였다. 이에 고기와 자라들이 몸으로 다리를 이루어 놓아 건너갔다. 그 강을 건너자 다리는 사라지고 쫓아오던 군사들은 감히 건너지 못하였다. (중간생략)

1.2. 천제와 해모수의 의미
주몽의 아버지 해모수는 천제(天帝)의 아들로서 천제의 명령에 따라 서기전 58년 오룡거(五龍車)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와 인간세상을 다스렸는데, 세상에서는 그를 천왕랑(天王郎)이라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고구려 건국신화를 전하는 가장 오래된 자료인 광개토왕릉비나 『위서(魏書)』에는 해모수가 등장하지 않는다. 해모수는 현재 고구려의 북쪽 지방에서 고구려보다 앞선 시기에 건국되어 위세를 떨친 북부여의 시조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므로 『삼국유사』나 『동국이상국집』에 주몽의 아버지로서 등장하는 해모수 이야기는, 고구려가 북부여를 몇 세기간에 걸쳐 압박을 하다 마침내 멸망을 시킨 이후(5세기말 이후) 부여인의 반발을 무마시키기 위해 부여의 시조와 고구려의 시조를 연결시켜 만든 신화내용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천제의 의미는 해모수의 아버지로서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겠는데, 그가 역사적으로 어떤 인물인지를 가늠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지금 현재 부여가 어떤 다른 지역에서 이동해온 유이민 집단이 건국한 나라라는 설이 정설이므로 천제는 해모수로 대표되는 유이민 집단의 근원을 이루는 세력의 지배자로 보인다.
그러나 『삼국유사』나 『동국이상국집』에서 주몽에 의해서 끊임없이 강조되는 ‘천제’는 바로 주몽집단의 정통성을 확보하고 다른 세력집단을 자신의 세력범위 안에 포섭할 수 있는 하나로 이데올로기로 작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다른 건국영웅의 신화에서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어 고대신화체계의 일면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삼국유사』에서 박혁거세는 하늘에서 내려온 백마가 낳은 자손이고, 김수로왕은 하늘에서 떨어진 황금빛 알에서 태어난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이들 신화는 모두 각 건국시조가 하늘로부터 내려온 인물들이란 것을 강조하고 있고 이를 통해 그들에게 정권(왕국 건국)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음을 자세히 알 수 있다. 결국 천제는 역사적으로는 북부여의 근원을 이루는 세력의 지배자이며, 신화적으로는 한 통치 집단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설정된 이데올로기로 파악할 수 있다.

참고문헌 및 도판

▒ 참고 문헌
김기흥, 『고구려 건국사』, 창작과 비평사, 2002
서대석 편, 『구비문학』, 해냄출판사, 1997.
서대석, 『한국 신화의 연구』, 집문당, 2001
이복규, 「주몽신화의 문헌기록 검토」,『국제어문』1, 1979
임재해, 『민족신화와 건국영웅들』, 천재교육, 1995
정상균, 「주몽신화 연구」,『서울시립대전통어문연구』10, 1998
천관우, 『인물로 본 한국 고대사』, 정음문화사, 1982
최희수, 「조선 설화와 민족 설화 연구」,『한민족』4,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