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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신

칠성신

1. 칠성

1.1. 칠성의 개념

칠성(七星)은 북두칠성(北斗七星)을 의미한다. 북두칠성은 그 국자부분이 향한 방향을 통해서 방위뿐 아니라 각 계절을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어두운 밤하늘에서 가장 쉽게 그리고 분명히 볼 수 있는 별자리이다. 이러한 이유로 북두칠성은 예로부터 동양에서 사람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별자리가 되었다. 북두칠성에 있는 삼신 할머니에게 명줄을 받아 태어나고, 삶의 길흉과 화복은 모두 북두칠성이 주관한다고 우리네 사람들은 믿었다.
우리나라에서 북두칠성에 대한 신앙은 매우 오래되었다. 청동기 시대 고조선 사람은 무덤인 고인돌 뚜껑 위에 북두칠성을 새겨 넣었다. 이를 본받은 고구려 사람은 무덤 속에 북두칠성을 그려 넣었으며, 고구려를 이어받은 고려 사람들도 무덤 속에 별자리를 그렸는데 북두칠성을 중요하게 그렸다. 조선시대에는 북두칠성을 새겨 넣은 칠성판을 지고 묻혀야 편안히 저승에 갈 수 있다고 믿었다. 무속과 불교에도 북두칠성에 대한 애정이 남아 있는데, 절마다 지어 놓은 칠성각은 우리 고유의 칠성신앙이 불교에 녹아 들어간 것이며, 무당이 모시는 칠성님이나 우리네 할머니가 정화수를 떠 놓고 치성을 드리는 칠성님도 바로 북두칠성이다.

1.2. 도교에서의 칠성

북두칠성은 천의 후설(喉舌)의 노릇을 하여, 모든 인사(人事)를 주관하는 총책의 구실을 하는 대임을 맡아 민간의 주요한 신앙의 대상으로 전래되고 있다. 그리하여 기자(祈子, 아들을 기원), 복록(福祿), 수명(壽命)에 이르기까지 북두의 위력은 관여하지 않는 바가 없을 정도이다. 일찍이 민간의 칠성 숭배를 흡수한 도교에서는 북두신앙의 경전들이 쏟아져 나와 북두신앙은 도교의 중요한 의례가 되기도 했다. 특히 민간에 많이 유포된 『옥추경(玉樞經)』은 독경하여 재액(災厄)을 물리친다는 도교의 위경(僞經)으로서 칠성숭배의 효능을 강조하고 있다. 『옥추경』을 보면, 북두는 천의 가운데에 거주하여 천(天)의 중심축이 되고 사시(四時)를 주관하며 천지, 오성, 육갑, 이십팔수의 여러 선(仙) 그리고 별자리에 이르기까지, 위로는 천자에서 아래로는 백성에 미치도록 수(壽), 녹(祿), 빈부(貧富), 생사, 화복 의 일이 북두에 관할하에 속하지 않은 바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도교에서는 칠성의 각 별자리에 이름을 부여하고 있는데, 그 명칭은 다음과 같다. 제 1성이 탐랑성(貪狼星), 제 2성은 거문성(巨文星), 제 3성은 녹존성(祿存星), 제 4성은 문곡성(文曲星), 제 5성은 염정성(廉貞星), 제 6성은 무곡성(武曲星) 그리고 제 7성은 파군성(破軍星)이라고 한다. 그리고 각 별의 능이 지닌 의미를 풀이면 다음과 같다.

1) 탐랑성은 생명의 기운인 물을 나타내므로 생기(生氣)탐랑이라고 한다.
2) 천을(天乙) 거문성은 하늘의 복주머니 역할을 하는데, 설날 복주머니를 차고 다니는 것은 이 별의 영험한 기운을 받기 위해서이다.
3) 화해(禍害) 녹존성은 인간이 복을 받는 만큼 화(禍)도 함께 받게 하는 별이다.
4) 육살(六殺) 문곡성은 하늘의 권력을 거머쥔 별이다. 문곡성은 경양(擎羊), 타라(陀羅), 화성(火星), 영성(鈴星), 네 살성(殺星)과 천공(天空), 지겁(地劫)이란 두 흉성을 합쳐 여섯 살기를 모아 땅에 내려 보낸다.
5) 오귀 염정성은 북두칠성의 중심을 잡아 주는 별로서 땅의 임금이 권력을 쓸 수 있도록 허락해 준다.
6) 연년(延年) 무곡성은 자미궁의 경호를 책임지는 별로서 일곱 별 가운데 힘이 가장 강력하다. 자미궁 문의 왼쪽에 있는 무곡성은 흉성과 악살을 물리친다. 금빛 갑옷을 입고 머리는 흩어지고, 왼손에는 부리가 크고 발톱이 날카로운 붉은 수리를 잡고 있으며, 오른손에는 천부인(天符印)을 들고 있다. 조서를 내려서 검은 구름을 일으켜 벼락이 치도록 명하며, 하늘의 모든 별을 부릴 수 있는 권능을 지녔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수명을 주관하는 영명함도 지녔다.
7) 파군성은 북두칠성이 내 보내는 기가 통과하는 문이다.

1.3. 불교에서의 칠성

칠성은 불교에도 수용되어 구체적 예배대상으로 불전(佛典)에도 등장하였다. 『북두칠성연명경(佛說北斗七星延命經)』, 『북두칠성염송의궤(北斗七星念誦儀軌)』, 『북두칠성호마비요의궤(北斗七星護摩袐要儀軌)』, 『북두칠성호마법(北斗七星護摩法)』 등이 칠성에 관한 내용을 싣고 있는 대표적 경전들이다. 이들 경전들은 주로 중국에서 번역되거나 찬술된 경전들인데, 모두 칠성이 지닌 능력과 칠성숭배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그 구체적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북두칠성호마비요의궤』라는 경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북두칠성은 일월성신의 정(情)이다. 칠요를 통괄하고 팔방에 임해 위로는 천신을 비추고 아래로는 인간을 바로 이끈다. 그렇게 해서 선악을 담당하고 화복을 분배한다. 별들의 조종(祖宗으)로 만령(萬靈)이 우러러 본다. 만일 사람들이 예배공양하면 장수복귀(長壽福貴)하고 믿고 공격하지 않는 자는 그 운명이 오래되지 못한다. (중간생략) 이러한 연유로 여래가 말세(末世)의 부명(薄福), 단명(短命)한 중생을 위해 이 일자정륜소왕소북두칠성공양호마지의칙(一字頂輪王召北斗七星供養護摩之儀則)을 설하고 공양자를 위해 그 속명성(屬命星)에게 명하여 사적(死籍)을 삭제시키고 생적(生籍)으로 환부(還付)케 하라고 명령하였다. (중간생략) 만일 여러나라의 왕이 자신의 宮에서 만다라를 만들고, 이 법을 호마(護摩), 예배(禮拜), 공양(供養)하면, 북두칠성은 기뻐하여 옹호한다. 그러므로 오랫동안 승위(勝位)에 머무르며 항상 편안하고 은거함을 누린다. 부인과 후궁 그리고 왕자와 삼공백관(三公百官)의 신이 위아래로 화목하고 법 아닌 것을 행하지 않는다. 백성이 성(聖)하며 농사는 풍요롭다. 국가는 안녕하며 재난이 없고 괴이한 일이 나타나지 않고 질병이 사라져 발생하지 않는다. 영토내 원망하는 원적(怨敵)과 군적(群賊)이 자연히 물러난다.

다음으로 『북두칠성염송의궤(北斗七星念誦儀軌)』에는 북두칠성에 관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만일 매일 이 신이한 주문 108편을 염송하면 곧 스스로 및 일체의 권속을 얻게 되어 옹호하게 된다. 만일 오백편을 염송하게 되면 대위신력한 오백유순(五百由旬)이 들어와 두루 에워싸게 되어 일체 마왕 및 모든 마(魔)의 무리들, 일체의 방해물들 그리고 무량(無量)한 아귀들이 감히 가까이에 이르지 못하고 항상 옹호된다. 북두팔녀(北斗八女)와 일체 일월(日月), 천룡(天龍), 약차(藥叉)가 능히 장애와 어려운 일을 일시에 깨뜨린다.

그리고 『북두칠성연명경(佛說北斗七星延命經)』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이때 불(佛)이 문수보살에게 이 경(經)을 설할 바를 알리다. (중간생략) 만약 비구(比丘), 재관(宰官), 거사(居士), 선남자(善男子), 선여인(善女人) 등 귀하거나 천하거나 대소 생명(大小 生命)이 모두 북두칠성의 소관이다. 만일 이 경을 듣고 수지공양(受持供하며 읽고 친구, 친척, 가족에게 권하여 지니게 하면 현세에는 복을 획득하고 후세에는 천상(天上)에서 생명을 얻는다. 만약 선남자(善男子), 선여인(善女人) 혹은 망자(亡者)가 먼저 지옥에 떨어지거나 혹은 종종 고초를 받아도 만약 이경을 듣고 믿고 공경하며 공양하면 곧 망자는 지옥에서 떠나 극락세계에 태어날 것이다.

이상의 경전의 내용을 통해서 보면 불교에서 북두칠성은 온갖 재난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고 그들에게 복을 베풀며 그들의 수명을 연장해 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존재로 숭앙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경전들은 적어도 고려 시대에는 우리나라에 전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에 제작된 <치성광여래주임도(熾盛光如來往臨圖)>는 불전에 보이는 북두칠성에 대한 신앙이 구체적 회화작품으로 나타난 대표적인 예이다.

1.4. 칠성의 기능

앞선 장에서는, 칠성이 숭배받는 이유를 밝히고 그것이 특히 불교와 도교에서는 어떤 식으로 수용되어 신앙의 대상이 되었는지를 간략히 밝혔다. 그러나 칠성에 대한 신앙은 단순히 불교와 도교의 범주에서 신앙의 대상이 된 것에 그치지 않고, 민간에까지 널리 퍼져 대중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었다. 칠성이 이처럼 여러 종교를 초월하여 광범위한 인기를 모을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가진 무한한 능력에 있었는데, (특히 민간에서 믿었던) 그 능력들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비를 비는 신앙과 관련되어, 비를 내리는 신이라 믿어졌다. 둘째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신이라 믿었다. 즉, 칠성은 건강과 장수를 주관하고 특히, 어린아이의 수명을 수호하는 신으로 믿어졌다. 무속에서 칠성신이 가장 숭배를 받는 이유는 이 두 번째 믿음 때문이다. 아래 장에 소개할 두 개의 이야기는 바로 수명을 관장하는 칠성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다음으로 칠성은 재물과 재능에 관한 것을 관장한다고 믿어졌다. 농사나 어업이 잘 되기를 빌거나 재능이 뛰어나서 입신출세하고 과거에 급제하도록 칠성신에게 비는 것은 바로 이러한 믿음 때문이다. 이능화의 『조선무속사』란 책에는, 조선시대 칠성신앙을 소개하는 글에서 “성내 인왕산 칠성암에 신당이 있는데, 기도하는 사람이 연일 계속되지 않았고 선비들도 그 곳에 기도를 잘 드리면 과거에 합격할 수 있다하여 유생들이 종종 기도하기도 했다.”라고 적고 있는데, 이는 바로 칠성이 지닌 두 번째 능력을 보여주는 기사인 것이다. 이와 같이 칠성신은 크게 위의 세 가지의 기능을 가졌던 것으로 믿어졌다. 이처럼 민간에서는 칠성에 대한 이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칠성을 숭배하였던 것이다.

2. 민간신앙으로서의 칠성

2.1. 칠성굿

칠성은 민간신앙으로 크게 인기를 얻은 신이었다. 그리하여 각 지역에서는 칠성을 모시는 굿이 있게 마련이었고 그 대표적인 것이 칠성굿이다. 칠성굿은 수명장수 발원을 위하여 행하는 무속의례로 하늘의 북두칠성을 칠성신의 신체로 믿는 민간 신앙의 요소가 강하다. 칠성굿은 제주도를 제외하고는 독립된 굿이 아니라 큰굿의 한 제차로 행하여지는데, 전국적인 전승분포를 보이고 있다.
평안도, 황해도 지역에서는 무당이 장삼을 입고 그 위에 가사를 메고 염주를 건 차림으로 수명장수를 비는 내용의 염불과 덕담을 하고, 바라춤을 추어 불교적 색채를 띤다. 굿의 마지막에는 불로장생할 수 있다는 영약을 파는 약팔이 굿놀이가 따른다.
그밖에 경기도, 강원도 지역의 강신무들은 제석굿이나 불사(佛事)굿을 하는 가운데 칠성신을 함께 모신다. 한편, 세습무권에서는 주로 서사무가가 구연되는데 두 종류의 칠성풀이가 전승되고 있다. 먼저 경기도 남부지역 도당굿에서 구연되는 칠성풀이는 시루말, 시루배달이라고 하는데, 남무(男巫) 화랭이가 장구반주에 맞추어 신화를 창한다. 내용은 천하궁 칠성님이 지하궁 매화부인과 인연을 맺어 선문이, 후문이 두 아들을 낳은 뒤 하늘로 올라가고, 뒤에 장성한 아들들이 아버지를 찾아가 대한국, 소한국을 받는 것으로 되어 있다.
전라도 북부와 충청도 이남에서 전승되는 또 하나의 칠성풀이의 내용을 보면, 지하궁의 임자부인이 천하궁의 칠성님과 혼인한 뒤 불공을 드린 끝에 아들 일곱을 낳는다. 칠성님이 하늘로 올라간 사이 임자부인은 병을 얻어 죽고 일곱 아들은 하늘의 도움으로 장성한다. 후실로 들어온 천하궁 옥녀부인이 시샘 끝에 일곱 아들을 죽이려고 하나, 금사시미로 환생한 임자부인 덕으로 모면한다. 일곱 아들은 각기 칠성신에 봉해져 자손 발복(發福:운이 틔어서 복이 닥침)과 수명장수를 관장하게 된다.
한편, 제주도의 칠성제는 숙명적으로 북두칠성의 수호를 타고난 사람들이 수명장수와 발복을 빌기 위하여 행한다. 반드시 밤에 굿을 하며 일곱개의 송낙(종이고깔)을 접어 신체를 만들어 칠원성군(七元星君)을 모신다.
칠원성군은 불도맞이의 한 제차로도 행해진다. 또한, 독경무(讀經巫)들도 안택굿을 할 때 북두칠성경을 외어 수명장수 발원을 한다. 이와 같이 칠성굿은 민간신앙과 불교적 요소가 융화된 가운데 전국에서 동일한 기능을 가지고 전승되고 있다.

2.2. 칠성 이야기(1)

칠성이 민간에서 널리 인기를 얻으면서 칠성의 능력을 보여주는 많은 설화가 탄생하게 되었다. 이 장에서는 칠성이 관련된 설화를 소개한다.

- 칠성제(七星祭)지낸 덕에 목숨건지고 미색(美色)의 딸 얻은 이야기

강남천자국 송피고을 짓너븐밭에 장설용과 송설용이 살았다. 열다섯에 예를 갖추어 혼례를 지냈는데 나이 오십이 되도록 자식이 없어 잘 아는 점쟁이에게 물으니 절에 제사를 드릴 게 아니라 칠성단을 만들어 칠성제를 지내야 한다고 말을 했다. 집으로 돌아온 장설용과 송설용은 장독대 뒤에 칠성단을 만들고 밥도 일곱 사발, 떡도 일곱 쟁반, 천(옷감)도 일곱 벌, 불도 일곱 개를 켜고 잔도 일곱 개를 올려 칠월칠석날까지 일주일간 기도를 했다. 그러자 칠석날 아침에 북두칠성의 일곱 성군이 내려왔다. 이 때 일곱 성군 중의 한 사람인 동성군은 인간 세계에 있었다. 그는 재주가 뛰어났으나 천상에서 죄를 지어 인간세계에 유배를 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 죄를 빨리 용서받기 위해 인간세계에서 아이들을 모아 놓고 글을 가르치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무렵, 마당에 내려서서 천문을 보니, 여섯 성군이 모두 강남천자국 송핏골 짓너븐밭 장씨와 송씨 집으로 가려고 하는 게 보였다. 여섯 성군이 장씨의 집으로 가면서, 죄를 지어 인간세계에 유배를 온 동성군에게 미처 알리지 못했던 것이다. 동성군은 6성군이 자신에게 알리지 않고 장씨의 집에 갔던 사실이 못내 아쉬웠지만, 자신도 곧 6성군의 행렬에 참석해야겠다고 마음먹고선, 가르치는 아이들을 모두 일찍 돌려보내고 청색도포에 의복을 차려 입고 떠날 채비를 했다. 아이들이 모두 기뻐하여 돌아갔는데 똑똑한 수제자 하나가 몰래 숨어 동성군을 따라 왔다. 이윽고, 동성군이 장씨의 도착하니, 여섯 성군은 이미 모두 대접을 받고 문을 나오려 하고 있었다. 늦게 들어간 동성군은 대접을 받지도 못하고 떡 두 덩어리만 주머니속에 숨겨 가지고 나왔다. 스승을 쫓아온 온 수제자는 대문앞 팽나무 위에서 동성군이 하는 일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한편 일곱 성군은 장씨의 집을 나와서 장씨에게 대접을 잘 받았으니 각자 무엇으로 장씨에게 보답할 것인지에 대해 의논을 했다. 먼저 첫째 성군이, “나는 명(命)이나 길게 해 주리다”라고 말했다. 둘째 성군이 뒤를 이어, “난 복이나 주어야 겠소”라고 말했다. 셋째 성군은 “생불꽃을 내어 자식을 선물하겠소”라고 말했고, 넷째 성군인 동성군은, “난 맨 나중에 난 맨 나중에 상을 받았으니 끝에 말하겠소”라고 말했다. 그리고 다섯 번째 성군은 “난 천황(하늘)으로부터 오는 액을 막아주겠소”라고 말했고, 여섯 번째 성군은, “나는 지황(땅)으로부터 오는 액을 막아주겠소”라고 말하였다. 그러니 일곱 번째 성군이 “나는 인황[사람]으로부터 오는 액을 다 막아주리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동성군이 말했다. “난 갈 때 저것들 봉사나 만들어 주고 가겠소” 그러자 다른 성군들이 동성군이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하여 저런 심술을 부린다 싶어 불평을 하며 펄쩍 뛰었지만, 동성군은, “내가 생각이 있으니 나중에 알게 될 것이요”라고 말하며 다른 성군들을 안정시켰고, 일곱성군은 모두 되돌아갔다.
다음날 아침, 동성군이 다음날 제자를 모아놓고 글을 가르치는데 수제자가 말했다. “선생님 어젯밤에 어데 갔다 오셨습니까?” 그러자 동성군이 “강남천자국에 제사상 받으러 갔다 왔느니라”라고 말했다. “상은 받으셨습니까?”라고 제자가 물으니 동성군은 곧 “받았다”라고 말했다. 수제자가 어제 스승을 쫓아간 일을 아뢰며 “선생님께서는 늦게 가서 상을 못받지 않았습니까?”라고 옳은 말을 했다. 동성군은 자신의 허락도 없이 자신을 몰래 따라온 제자에게 호통을 쳤으나, 그 제자는 “선생님 가시다가 도적이나 만날까 걱정이 돼서 따라 갔습니다”라는 말로 동성군을 이내 안정시켰다. 어느 정도 화가 가라 앉은 동성군은 다시 점잖은 목소리로, “가서 무엇을 봤느냐”라고 말하자 제자는 “떡 두개를 주머니에 담고 오는 걸 봤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동성군은 “좋다. 그러면 내 옷을 입고 가서 이 떡을 돌려주고 오너라”라고 말했다.
이윽고 수제자가 스승으로부터 받은 떡 두 개를 가지고 송피고을로 향하였다. 마을에 이르니 장설룡의 집에는 금줄이 쳐 있었고, 제자는 거지모양 대뜸 문앞에서 먹을 것을 달라고 소리 질렸다. 한 하인이 나오더니 식사시간이 지났으니 먹을 것을 줄 수 없다면 썩 물러가라고 말을 하였다. 다시 제자가 먹을 것을 달라고 하인과 실랑이를 벌이자, 이윽고 장설룡 내외가 나왔다. 제자는 실랑이를 벌이던 격앙된 목소리를 낮추고 태연하게, “최근, 주인님네 뭐 잃어버린 거 없소”라고 말했다. 그러자 장설용이 송내송 칼내송을 잃었다고 말했다. 수제자가 자신이 갖고 있던 떡 두 개를 내 놓으며 이것이 아니냐고 말하자 장설룡은 수제자에게 고마워하기보다 수제자에게 화를 내며 도둑으로 몰아 세웠다. 수제자도 화가 나서는 장설룡 내외를 향해 떡을 던지고는 도망쳐 버렸다. 떡에 눈을 맞은 장설룡 송설룡 내외는 곧 봉사가 돼 버렸다. 한편 이 일이 있은 지 얼마 못 가 나라에 큰 병란이 일어났다. 부자이면서도 평소 행실이 좋지 못했던 장씨와 송씨는 백성들과 군사들의 표적이 되었고, 곧 백성들과 군사들은 이들을 찾아왔다. 그러나 이미 그들이 살던 큰 집은 부서지고 훼손된지 오래고 장씨 부부는 눈이 멀어 아무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는 백성들과 군사는 장씨 부부를 죽이기로 한 마음을 돌리고 돌아갔다. 이에 장씨 부부는 “우리가 정성을 잘못하여 그 죄로 봉사가 됐지만 죽지않고 살아있는 것만은 성군님네 덕이로구나”라고 하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한편, 칠성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다시 칠성제를 내렸다. 이번에는 일곱성군들이 다 약속한 대로 복을 내려줬다. 두 내외는 눈을 떴고, 송설룡부인은 아기를 배었는데 삼천궁녀가 부럽지 않은 미색의 딸을 낳았다.

2.2. 칠성 이야기 (2)

외아들을 둔 사람이 있었는데, 한 선승이 집에 들어와서 아이의 상을 보고선 열아홉을 넘기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남자는 선승에게 자신의 외아들을 살릴 방도를 선승에게 애걸하게 된다. 선승은 겨우 말하며 남산 꼭대기에 올라가 두 중이 바둑을 두고 있을 테니 어떤 구박을 하더래도 살려 주십사고만 빌어 보라고 말하였다. 이에 아이는 곧 남산 꼭대기에 올라갔는데 마침 두 중이 바둑을 두고 있었다. 한 중은 얼굴이 고왔고 다른 한 중은 매우 추했다. 아이가 계속해서 비니 고운 얼굴의 중이 추한 얼굴의 중에게 불쌍하니 살려주자고 권한다. 추한 중은 거듭 반대하다가 결국은 아이의 수명을 늘려주기로 했다. 고운 얼굴을 한 중은 남두칠성이고 추한 얼굴을 한 중은 북두칠성이었다. 북두칠성은 품에서 사람의 명부를 끄집어 내어 소년의 정해진 수명이 19세인 것을 99세로 고쳤다.

2.3. 칠성 이야기 (3)

조선시대의 인물인 북창 정렴의 친구 한 명이 위독하여 여러 가지 방도를 썼으나 나을 방도가 없자 그 친구의 아버지가 정렴이 신이한 사람됨을 알고 자신의 아들의 살릴 방도를 구했다. 북창은 그 아버지의 거듭되는 부탁에 할 수 없이 자신의 명을 감하여 그의 아들에게 줄 수밖에 없다며 명을 늘릴 방도를 알려 주었다. 그러면서 한밤에 남산 꼭대기에 올라가면 거기에 붉은 옷을 입은 노인과 검은 옷을 입은 노인이 마주 앉아 있을 것이니, 그 앞에 가서 아들의 수명을 늘려 달라고 애걸해 보라고 말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곧 남산에 올라가 그 두 노인을 보고 어떤 구박을 받더라도 견뎌내며 아들의 수명을 늘려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러니 그 때 붉은 옷을 입은 노인이 검은 옷을 입은 노인에게 그의 부탁을 들어 줄 것을 권하자 검은 옷을 입은 노인이 소매 속에서 단자를 꺼내어 그 아들의 수명을 십년을 더 늘여 주었다. 대신에 정렴의 수명은 10년을 감했다.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은 남두성이고,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은 북두성이라고 한다.

3. 회화에서의 칠성신

3.1. 불화에서의 칠성

칠성에 대한 신앙은 고려시대 이후 각종 문헌에서 숱하게 나오지만 그것이 구체적인 신앙의 대상으로 인격화되어 표현되기 시작하는 것은 고려시대 이후이다. 물론 북두칠성은 고려 시대 이전에도 신앙의 대상이 되었던 모양으로 고조선 시대에 제작된 고인돌의 두깨돌에 북두칠성이 새겨져 있으며, 고구려 시대에는 많은 고분 벽화의 상단에 북두칠성이 뚜렷하게 그려져 있다. 이를 통해 보면 칠성은 고려 시대 이전부터 이미 당시 사람들로부터 널리 사랑을 받았던 별자리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칠성이 하나의 인격적 존재로 표현되며 그 신앙의 정도가 확고해진 것은 고려시대 이후인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국 보스턴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치성과여래왕임도(熾盛光如來往臨圖)>는 칠성이 인격화된 모습으로 표현된 가장 오래된 불화이다. 이 불화는 북극성을 상징하는 치성광여래가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으며, 치성광 여래 주변에 북두칠성과 28수를 비롯한 각종 성수가 나열되어 있는 구도를 가지고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이 그림에서 칠성이 머리가 긴 여성의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북두칠성의 모습은 북두칠성을 도해한 중국의 경전에 나타나는 칠성의 모습과 유사하여 중국의 영향인 것으로 보인다. 이 그림이 그려진지 약 2세기 후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현재 경도 고려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1569년작 <치성광불제성강임도(熾盛光佛諸星降臨圖)>에도 칠성이 등장하고 있다. 이 그림은 고려시대 제작된 <치성과여래왕임도>와 거의 비슷한 구도와 형식을 지니고 있는 불화로, 붉은 바탕에 금으로 그린 매우 화려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 불화에서도 칠성은 본존인 치성광 여래에 비하면 매우 작은 크기로 화면의 오른쪽 상단에 한데 모인 채로 표현되어 있다. 16세기 이전까지 칠성이 표현된 불화는 현재 앞서 언급한 두 개의 불화가 유일하다.
이처럼 16세기 이전의 불화에서 칠성은 모두 긴 머리를 가진 여인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런데 18세기에 이르러 칠성은 달리 표현되기 시작한다. 현재 17세기에 제작된 칠성을 표현한 불화는 없는 실정이며 18세기에 제작된 불화가 두 점 전하고 있다. 1749년 제작되어 전남 구례 천은사에 소장되어 있는 <천은사칠성탱(泉隱寺七星幀)>과 1739년 제작되어 호암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태안사 성기암칠성탱(太安寺 聖祈庵七星幀)>이 바로 그들 불화이다. 이들 불화에서 칠성은 화려한 도복을 입고 있으며 홀을 쥔 채 합장한 모양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칠성은 역시 인격화된 다른 성수와 달리 수염도 없고 관도 쓰지 않은 중성적인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단정한 여성 같기도 하고 또는 아직 성인에 약간 이르지 못한 꽃미남의 남자 같기도 한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19세기 이후에 제작되는 거의 모든 불화에서 칠성이 관을 쓰고 수염을 길게 기르고 있는 모습과는 분명히 차이를 드러내는 모습이다. 아마도 16세기 이전 여성으로 표현되었던 칠성이 19세기 남성으로 표현되는 그 중간 단계의 과도기적 모습이 18세기 칠성불화에서 나타난 것이 아닌가 살펴 볼 수 있다. 또한 이들 불화에서는 칠성이 16세기 이전에 제작된 불화에 비해 화면에서 매우 큰 비중을 가지며 불화에 등장하였다. 칠성은 치성광여래보다는 여전히 작지만, 그 차이는 그 이전보다 훨씬 줄어든 것이다. 이는 아마도 칠성이 민간에서 본격적으로 유행하는 당시의 상황과도 밀접하게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19세기에 이르면 칠성은 전국 거의 모든 사찰에서 칠성각이 마련되고 그 안에 칠성을 그린 칠생탱이 봉안될 정도로 큰 인기를 모으게 된다. 이들 칠성은 대개 비슷한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머리에는 관을 쓰고 손에는 홀을 쥐거나 발(鉢)을 봉양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수염이 길고 엄숙한 표정을 하고 관직에 있는 관리의 모습을 생각나게 한다. 그러나 칠성은 칠성탱에서 가장 주요한 구성원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북극성을 상징하는 치성광여래 혹은 자미대제를 좌우에서 협시하고 있으며, 28수나 삼태 육성과 같은 다른 별자리와 함께 표현되어 있다.

3.2. 민화에서의 칠성

칠성이 표현된 불화를 칠성탱이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불교에서 제작된 칠성탱에는 단지 칠성만이 등장하지 않는다. 중앙에 치성광여래라고 하는 본존을 중심으로 28수나 삼태육성과 같은 별자리가 항상 칠성과 함께 표현되는 것이다. 그런데 반해 민간에서 널리 그려져 유포되었던 것으로 보이는 칠성도에는 칠성만이 그려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 그림은 대부분 조선 후기에 그려진 것들로 조선후기에 민간에서 널리 펴졌던 칠성신앙을 그대로 보여주는 실례라고 볼 수 있다. 이들 칠성도에서 칠성은 19세기 이후의 칠성탱에서 표현되는 칠성과 거의 유사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머리에는 관을 쓰고 관복을 입고 있으며 손에는 홀 따위를 쥐고 있다. 그러나 민화에서의 칠성은 엄숙하게 묘사되어 있는 칠성탱의 칠성과는 달리 신체비례가 맞지 않고 익살스럽게 표현되는 경우도 많아 당시 민중들이 상상했던 칠성의 일면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참고문헌 및 도판
▒ 참고 문헌
강소연, 『朝鮮時代의 七星幀畵』,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대학원 석사 논문, 1998)
안상현, 『우리별자리』(현암사, 2000)
차재선, 「朝鮮王朝 七星幀畵의 硏究」, 『고고미술』186호, (한국미술사학회, 1991)
최운식, 『생명을 관장하는 북두칠성』(한울, 1992)
최삼용, 「古小說에 나타난 星宿의 性格 考察」, 한국도교사상연구회 편, 『도교사상의 한국적 전개』한국도교사상연구총서Ⅲ(亞細亞文化社, 1989)
김태곤, 『한국무속사』, (열화당, 1993)
『민족문화대백과 사전』

▒ 참고 도판
김태곤 (편), 韓國巫神圖, 열화당, 1993, 106~113면(도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