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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백

풍백

1. 풍백에 대한 기록

풍백(風伯)은 바람의 신을 부르는 말로 풍사(風師), 기백(箕伯), 비렴(飛廉), 방천군(方天君) 등으로 불리었다. 바람은 주로 새들이 일으킨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풍신과 신조(神鳥)를 연관지어 생각하는 경우가 그런데, 고대에 봉(鳳)이 풍(風)과 같이 쓰였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또한 『산해경(山海經)』에는 북방의 풍신을 원(鵷)이라 하였는데, 역시 새의 한 종류라고 한다.
『산해경』에 의하면 동방을 절(折)이라 했고 동풍을 준(俊)이라했으며 동쪽 끝에서 동풍의 출입을 맡아보는 신을 절단(折丹)이라고 불렀다. 또 남방을 인호(因乎)라 했고 남풍을 호민(乎民)이라 했으며 남쪽 끝에서 남풍의 출입을 맡아보는 신을 인인호(因因乎)라고 부르기도 했다. 은나라 사람들은 이 사방의 풍신들에게 제사를 드렸다. 바람의 신은 그 후 비렴(飛廉)으로 통일해서 불리다가 풍백(風伯)으로 고정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삼국유사(三國遺事)』의 기록을 사료(史料)로서 인용하고, 여기에 더 많은 신빙성을 둔다. 그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옛날 환인의 서자 환웅이 세상에 내려와 인간 세상을 구하고자 하므로, 아버지가 환웅의 뜻을 헤아려 천부인(天符印) 3개를 주어, 세상에 내려가 사람을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이 무리 3,000명을 거느리고 태백산의 신단수(神壇樹)에 내려와 신시라 이르니, 그가 곧 환웅천왕이다. 그는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穀), 명(命), 병(病), 형(刑), 선(善), 악(惡) 등 무릇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맡아서 세상을 다스렸다. 이때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같은 굴 속에 살면서 환웅에게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 환웅은 이들에게 신령스러운 쑥 한 줌과 마늘 20쪽을 주면서 이것을 먹고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된다고 일렀다. 곰과 범은 이것을 먹고, 곰은 37일 만에 여자의 몸이 되고 범은 못 참아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 웅녀(熊女)는 그와 혼인 해주는 이가 없어 신단수 아래에서 아이를 배게 해달라고 축원하였다. 이에 환웅이 잠시 변하여 혼인하여서 아이를 낳으니, 그가 곧 단군 왕검(王儉)이다. 왕검이 당고(唐高:중국의 가장 오랜 역사 고전인 상서 첫머리에 올라 있는 제왕) 즉위 50년인 경인(庚寅:50년은 丁巳이니 틀린 듯하다)에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일컬었으며, 이어서 백악산(白岳山)의 아사달로 옮긴 뒤 그 곳을 궁홀산(弓忽山) 또는 금미달(今彌達)이라 하였다.
단군은 15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고 주(周)나라 호왕(虎王)이 즉위한 기묘년(己卯年)에 기자(箕子)를 조선의 임금으로 봉한 후 장당경(藏唐京:황해도 신천군 文化面)으로 옮겼다가, 뒤에 아사달에 돌아와 숨어서 산신(山神)이 되니 나이가 1,908세였다.

또 풍백에 대한 기록은 『신시본기(神市本紀)』 제삼(第三)에도 나와 있다.

한인은 역시 천신을 말한다. 천(天)이란 대(大)며 일(一)이다.
한웅 역시 천왕이다. 왕이란 황(皇)이다.
단군 역시 천군으로, 제사를 주관하는 우두머리를 말한다.
왕검 역시 무리와 지경(地境)을 감독하는 우두머리를 말한다.
그러므로 하늘에서 광명을 비춰주는 자가 한(桓)이며, 땅에서 광명을 비춰주는 자를
단(檀)이라 한다.

한(桓)은 구황(九皇)을 말한다.
한(韓) 역시 대(大)를 말한다.
삼한(三韓)을 일컬어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라고 한다.

풍백(風伯)은 입법(立法)을 담당하는데, 축일(丑日:소날)에 개머리를 곡문(谷門) 밖에 걸어놓고 제사지내는 우두머리. 이름은 석제라(釋提羅).
우사(雨師)는 행정관(行政官). 입하(立夏) 후 신일(申日:잔나비 날)에 돼지머리를 놓고 제사지내는 우두머리. 이름은 왕금영(王錦營).
운사(雲師)는 사법관(司法官). 이름은 육약비(陸若飛).

2. 풍백에 대한 해석

2.1. 용의 의인화로서의 풍백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용 2마리가 금성 우물 속에 나타났는데, 소낙비가 쏟아지고 번개가 치며, 성 남문에 벼락이 떨어졌다"는 기록이 있다. 또, 서해 용왕의 아들 이목(璃目)이, 몹시 가물 때, 보양선사(寶壤禪師)의 청으로 제멋대로 비를 내렸다가 하느님(天帝)의 노여움을 샀다는 이야기가 있다.
농경 문화권과 용 신앙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따라서 우리 민족도 일찍이 용 신앙을 가졌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일부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단군신화에, 환웅이 태백산 꼭대기에 강림할 때 동반했던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도 용의 의인화로 보고 있다.

2.2. 관직명으로서의 풍백

일부 학자들은 풍백, 우사, 운사 등을 관직의 이름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풍백, 우사, 운사는 모두 고대의 관명 내지 조직명이었다. 그런데 후대로 내려올수록 이 풍(風), 우(雨), 운(雲)의 글자에 매여서 이들이 신격화된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먼저 백(伯)과 사(師)가 어떻게 관명 내지 관직명으로 사용되었는지를 밝힌다.
‘백(伯)’의 경우 『예기(禮記)』에 나와 있는 바에 따르면 5관(官)의 우두머리이므로 지금의 국무총리격인 것을 알 수 있다. 또 ‘백’을 ‘직방(職方)’이라고 하였기 때문에 지방의 제후를 통솔하는 직관(職官)인 것을 알 수 있다. 백은 지방장관의 뜻으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예를 들면 방백(方伯), 도백(道伯)과 같은 것이다.
이들 학자들은 풍백 역시 이와 같은 ‘백’의 의미와 같은 관직의 이름이었을 것으로 본다. ‘백’자가 붙은 고대직관(古代職官)은 많은데 잘 알려진 것으로는 하백(夏伯), 하백(河伯), 서백(西伯) 등이 있다.
‘사(師)’ 역시 고대직관을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되어 왔다고 한다. 또 ‘사’는 중국 주나라의 군사 제도로서 2,500명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였다. 이 ‘사’가 붙은 옛 관직 이름도 많은데 잘 알려진 것에는 농사(農師), 태사(太師), 공사(工師), 어사(漁師) 등이 있다.
이들 학자들은 『삼국사기』의 기록에 풍백, 우사가 신격화가 되어서 제사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은 후대에 와서 바뀐 의미에 따라 그렇게 된 것으로 본다. 이들에 따르면 신격화는 『주례(周禮)』가 기록되던 때에 이미 이루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이들 기록에서 신격화된 풍백, 우사는 모두 별의 이름으로서, 풍백은 기성(箕星), 우사는 필성(畢星)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문헌에서는 그들의 역사상의 시조를 대개 황제 헌원(軒轅)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인식의 대표는 사마 천이다. 그의 『사기(史記)』에는 우사가 황제 헌원의 관직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은 치우천황(蚩尤天皇)이 황제 헌원과 전쟁할 때의 기록인데, 물론 신격화가 되어 있는 것이기는 하나 이상의 세 기록을 살펴보면, 풍백, 우사, 운사의 관직 이름이 치우천황과 황제 헌원과 관련하여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면, 황제 헌원이 우사의 직관(職官)에 있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한비자(韓非子)』에는 이러한 사실을 완전 중국화하여 기록하고 있다. 이는 중국화된 기록이기는 하지만, 역시 『산해경』처럼 치우천황과 풍백, 우사가 같이 나타나고, 또 황제가 나타나고 있다. 이들 학자는 이러한 기록에서 운사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황제가 운사이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한다.
풍백, 우사, 운사조직의 조직과 기능은 『고기(古記)』를 분석해 보면 잘 알 수 있고, 또 비교조직학(comparative organics)의 입장에서 다른 조직과 비교하여 보면 그 구조와 직능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즉, 『고기』에 ‘환웅이 무리 3,000명을 거느리고 태백산의 신단수(神壇樹)에 내려와 신시라 이르니, 그가 곧 환웅천왕이다. 그는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穀), 명(命), 병(病), 형(刑), 선(善), 악(惡) 등 무릇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맡아서 세상을 다스렸다.’에서 주곡(主穀), 주명(主命), 주병(主病), 주형(主刑), 주선악(主善堊)을 명사로 해석해서 조직명으로 본 것이다. 그리고 풍백, 우사, 운사 뒤에 쓰여진 ‘이(而)’자를 통해 뒤의 5개 조직과 풍백, 우사, 운사의 3개조직의 위상이 다름을 주장하였다.
그에 따르면, 풍백은 국무를 총리하는 중서성(中書省)의 직능을 하였다고 본다. 그것은 풍백, 운사, 우사의 세 조직 중 이름이 가장 먼저 기록되었을 뿐 아니라, 운사, 우사의 ‘사(師)’와는 달리 ‘백(伯)’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현대 이전의 국가 조직에서 국무를 총리한다는 것은 입법-행정-사법의 모든 조직을 다 관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현대 국가 조직으로 치면 입법부의 장이 행정-사법부의 장을 모두 통솔하고 있는 경우와 같은 것이다. 즉 풍백의 고유 직능은 입법이면서 우사, 운사 역시 관장하였다고 본다.
이를 주장하는 학자들은 우사와 운사는 어느 쪽이 행정조직이고 어느 쪽이 사법조직인지 『고기』의 기록만으로는 명확하지가 않으나 『한단고기(桓檀古記)』「태백일사(太白逸史)」에 이와 관련된 기록이 있어 주목한다.

풍백은 입약(立約)하고,
우사는 시정(施政)하고,
운사는 행형(行刑)하고……

풍백이 입약한다는 것은 물론 입법기능을 말하는 것이고, 우사가 시정한다는 것은 행정기능을 말하는 것이고, 운사가 행형한다는 것은 사법기능을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로서 풍백은 입법조직이고, 우사는 행정조직이고, 운사는 사법조직임을 뚜렷이 주장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덧붙여 조직논적인 근본 기능은 계획(計劃)-조직(組織)-통제(統制)의 3개의 큰 관리기능이었을 것이라 한다.

3. 운사, 우사, 뇌사

우리나라에서 풍백은 단군신화에 운사, 우사와 함께 등장하기 때문에 풍백을 이해하는 데 있어 운사와 우사를 함께 아는 것이 중요하다. 또 우레의 신, 즉 뇌사(雷師)도 풍백․운사․우사와 깊이 관련되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기본 지식을 습득할 필요가 있다.
환인이 인간세상을 다스리라고 권능의 표시로 아들에게 준 것은 천부인(天符印) 세 개였다. 천부인을 소지한 환웅은 부하 셋(풍백, 우사, 운사)과 무리 3천명을 데리고 태백산 정상에 있는 신단(神檀) 아래로 내려와 도읍지를 열고 신시(神市)라 불렀다.
비의 신인 우사(雨師)에 대한 이른 기록 역시 『산해경』에 보인다. 우사첩(雨師妾)이라는 신의 형상이 검은 몸빛에 양손에 뱀을 한 마리씩 쥐고 있고 왼쪽 귀에는 푸른 뱀을, 오른 쪽 귀에는 붉은 뱀을 걸고 있다고 묘사하고 있다.
우사첩이라는 이름으로 보아 아마 처음에는 비의 신이 여신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우사첩은 은나라 때에 비를 관장하던 신으로 초(楚)나라에서는 병예라고도 불렀다. 구름의 신도 비의 신과 더불어 은나라 때에 숭배의 대상이었다. 갑골문에서 제운(帝雲)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당시 구름의 신을 상당히 존중했음을 알 수 있다. 구름의 신은 초나라에서 운중군(雲中君)으로 이후에는 운사(雲師), 운장(雲將) 등으로 불렸다.
우레의 신은 각국 신화에서 독특한 지위를 차지한다. 공포와 위엄을 상징하기 때문에 주신(主神)의 전유물처럼 되어 있기도 하다. 제우스와 황제(黃帝)는 모두 우레의 신을 겸했다. 중국에서는 뇌신(雷神), 뇌사(雷師) 혹은 뇌공(雷公)으로 불린다. 본래 남신이지만 번개만을 분리해서 여신인 전모(電母)를 숭배하기도 한다.
초나라에서는 풍륭(豊隆)이라고도 불렀는데 이것은 우레 소리를 본 딴 이름이다. 『산해경』에 의하면 뇌택(雷澤)이라는 호수에 뇌신이 살고 있는데, 용의 몸에 사람 머리를 했고 자신의 배를 두드리면 우레 소리가 난다고 했다. 『수신기(搜神記)』에서는 뇌신의 모습이 입술은 붉고 눈은 거울과 같은데 털과 세 치쯤 되는 뿔이 나있고 머리통은 원숭이를 닮았다고 묘사하고 있다.
바람, 비, 구름, 우레 등의 신은 모두 강우(降雨)와 관련돼 있다. 끝으로 이들과 반대의 역할을 하는 가뭄의 신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가뭄의 신은 발(魃)이라고 부르는데 원래 황제의 딸이었다. 그녀는 푸른 옷을 입었고 대머리였다고 한다. 그녀가 두각을 나타냈던 것은 황제와 치우(蚩尤)의 전쟁에서였다.
치우가 풍백, 우사, 운사 등을 시켜 크게 비바람을 일으켜 황제군을 곤경에 빠뜨렸을 때, 천상에 있던 발이 아버지를 돕기 위해 내려왔다. 가뭄의 신이 내려오자 비바람은 곧 걷혔고, 황제군은 치우군을 공격하여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그러나 한번 지상에 내려온 발은 다시 하늘로 올라가지 못했고 계속 지상을 떠돌아야만 했는데 그녀가 이르는 곳 마다 가뭄이 들어 어느 땅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나중에 그녀는 적수(赤水)의 북쪽 먼 땅에 겨우 정착하였지만 심심하면 가끔 그곳을 빠져 나와 가뭄을 일으키곤 했다 한다.
중국의 자연신화에는 우리 고대문화와 상관된 내용이 적지 않다. 대표적기상신(氣象神)인 풍백, 우사, 운사는 치우편에서 환웅천왕(桓雄天王)을 도와 고조선의 개국에 참여하기도 했던 동이계(東夷系) 민족과 관련이 깊은 신이다. 아닌 게 아니라 풍백의 전신인 바람의 신 비렴의 실체에 대한 논의에서 일부 언어학자들은 비렴이 한국어인 ‘바람’의 고대어일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이러한 가설은 사슴의 몸에 새 머리를 한 비렴신이 고구려 무용총(舞踊塚) 벽화에 출현함으로써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후 중국의 풍신에서 더 자세하게 다룰 것이다.

4. 중국의 풍신

4.1. 풍신 비렴의 탄생과 제풍의식

상고인들은 풍우운뇌(風雨雲雷)와 같은 자연의 여러 현상이 갖고 있는 선악의 양면성으로 인해 때로는 그것을 숭경의 대상으로 삼기도 하였고, 때로는 공포의 대상으로 간주하기도 하였다. 때문에 그들은 자연 현상이 모두 신령에 의해 제어되거나 관장되는 것으로 인식하였으며, 그 결과 각종 자연신이 만들어졌다.
바람도 다른 자연 현상과 마찬가지로 상고인들에게 일찍이 신성(神性)으로 인식되어 중국의 상고 신화에 풍백(風伯)이나 풍사(風師)의 직능을 지닌 비렴(飛廉)과 기성(箕星) 등을 비롯한 여러 풍신이 탄생하였고, 이 중 가장 대표적인 풍신이 바로 비렴이다.
『이아(爾雅)․석천(釋天)』에서는 사방에 따른 바람의 이름을 각각 개풍(凱風), 곡풍(谷風), 양풍(凉風), 태풍(泰風)으로 열거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회남자(淮南子)』「지형훈(地形訓)」에서는 팔방에 따라 각기 염풍(炎風), 조풍(條風), 경풍(景風), 거풍(巨風), 양풍(凉風), 태풍(泰風), 여풍(麗風), 한풍(寒風) 등으로 열거하고 있다.
명명된 바람의 자의를 살펴보면 중국의 상고인들이 춘하추동의 계절과 사방의 방향에 따른 바람의 특성은 물론, 인류에게 끼치는 갖가지 영향에 대해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바람은 종류도 많을 뿐 아니라 변화도 다양하다. 동서남북의 바람이 다르고 춘하추동의 바람도 다르다. 혹한을 몰아내고 만물을 생장케 하는 훈풍이나 남풍이 있고, 혹서를 물리치는 추풍도 있다. 그런가하면 만물을 죽음의 골짜기로 내모는 북풍과 한풍도 있으며, 인류에게 온갖 재난과 폐해를 가져다주는 광풍이나 폭풍도 있다.
즉 상고 선민들에게 바람은 긍정과 부정, 선과 악의 이중적이며 양면적인 이해관계를 가진 존재였다. 때문에 상고 선민들은 자연 현상의 일종인 바람을 신령이 주재하는 것으로 확신하게 되었다. 이러한 숭앙과 외경의 관념으로 인해 바람을 일종의 신성으로 간주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마침내 풍신이 탄생하게 되었으며, 가장 대표적인 풍신이 바로 비렴이다.
풍신을 굳이 ‘비렴’이라고 불렀던 것은 특별한 신화고사에서 유래된 것이 아니라, 단순히 바람 풍(風)자의 중국 상고음인 ‘비렴(飛廉)’이 풍신의 이름으로 굳어진 결과이며, 이는 바람 자체를 신성으로 간주하였기 때문이다.
『여씨춘추(呂氏春秋)』에서 비렴을 풍사라고 한 것이나, 또 동한의 왕일이 『초사장구』에서 「이소」의 ‘망서는 앞에서 길을 열게 하고, 비렴을 뒤에서 달리게 하네’의 비렴을 풍백으로 주석한 것에서 보듯이, 비렴의 직능을 하나같이 바람을 관장하는 것으로 본 것도 모두 바람 자체를 신성으로 인식한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은 은대에 이미 존재하였다. 즉 은인들이 풍신의 직능을 모두 ‘사풍(司風)’, 즉 바람을 다스리듯이 사람에게 길흉화복을 주는 것으로 생각하여 재해를 당하지 않도록 풍신에게 제물을 바치어 바람을 멈추어 달라고 기구하는 제풍의식(풍신에 대한 제사)을 일상적으로 봉공하였음을 말해 주는 다음과 같은 복사(卜辭)의 기록은 중국의 상고인들이 바람 자체를 신성으로 인정하여 숭배하였음을 보여 주는 가장 분명한 증거이다.
은대에 성행하였던 제풍의식의 전통은 전국시대에도 계속되어, 풍신은 사중(司中), 사명(司命) 그리고 우사(雨師)와 더불어 전국시대 초기에 이미 국가의 공적(公的) 제사의 중요 대상 중의 하나가 되었다. 풍신이 전국시대에 이미 국가의 공적 제사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풍우의 신이 농업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므로 중요성을 인정받았던 결과라고 본다.
농업이 중국에서 씨족사회 이래 가장 중요한 국가적 관건 사업 중 하나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주대(周代)에 정전제(井田制)를 실시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농업 생산력을 제고하기 위한 하나의 방책이었으며, 전국시대가 도래한 까닭도 제고된 토지 생산력에 따라 제후들이 토지겸병(土地兼倂)을 위해 일으킨 부단한 전쟁 때문이었다. 그래서 농업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풍우의 신은 시대를 막론하고 농업사회라면 중시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며, 이에 따라 풍신에 대한 제풍의식도 가장 일찍 그리고 가장 오랫동안 계승되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풍신을 ‘비렴’이라고 하였던 것은 바람이 갖는 이해관계의 양면성에 따라 형성된 중국 상고 선민들의 경외와 공포 관념이 일찍이 제풍의식으로 표현되어 유전되었고, 이러한 관념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차츰 바람 자체가 풍신으로 전화되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이에 따라 바람의 신이 곧 비렴이라고 전승된 것이다.

4.2. 비렴의 형상

신화 속의 신은 언제나 구체적 형상을 통해 인간 앞에 현현하여 자신의 의지를 시전(施展)하거나 아니면 인간의 소망을 접수한다. 풍신 비렴도 예외는 아니다. 『삼보황도』에 따르면 비렴의 형상은 사슴의 몸에 머리는 참새와 같으며, 뿔이 있고 뱀의 꼬리에, 몸에는 표범 같은 반점의 무늬가 있는 괴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역시 비렴이 ‘녹신작두(鹿身雀頭)’, 즉 사슴과 새의 합체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비렴의 형상을 설명하고 있는 여러 문헌의 공통된 요소이다. 응소(應劭)는 비렴을 신령스러운 날짐승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고유(高誘) 역시 비렴에 대해 긴 털에 날개가 있다고 하였다. 이는 비렴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전체적인 형상이 분명 새 모습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특히 새의 몸에 사슴 머리를 한 ‘녹신작두’이다.
그렇다면 상고 중국인들은 왜 하필이면 ‘녹신작두’로 바람의 신 비렴을 형상화했을까? 바꾸어 말해서 사슴과 새는 어떻게 바람의 신 비렴과 특별한 상관관계를 가질까?
먼저 풍신 비렴의 형상의 일부를 새로 충당하였던 이유를 유추하기는 어렵지 않다. 즉 새는 인류가 갖지 못한 하늘을 날 수 있는 특징을 가졌다는 점에서 상고 중국인들에게 일찍부터 신의 사자로 각인되었다. 이는 하계(下界)의 오색 무늬의 새가 중국 신화의 주신인 제준의 제단을 관리한다든가, 아니면 세 마리 파랑새가 하늘의 재앙과 오형을 관장하는 서왕모를 위해 음식을 나르는 『산해경』의 기록이나 또는 『시경』에 보이는 ‘현조생상(玄鳥生商)’ 신화 등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즉 모든 자연 현상은 전부 특정한 신의 의지로 진행되는 것으로 확신하여 숭배하였던 상고 중국인들에게 하늘에서 부는 바람이 바로 이 바람과 같이 하늘을 자유롭게 비상하는 신의 사자인 새에 의해 현현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특히 마치 바람을 타듯 하늘을 나는 큰 새는 그 어떤 지상의 생물보다 풍신을 형상화할 수 있는 가장 용이한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비렴’과 ‘풍(風)’은 곧 지조(鷙鳥)라고 여겨졌으며, 의미는 ‘폭풍(暴風)’의 ‘폭(暴)’과 통하는데 그 이유로는 바람이 ‘사납기’ 때문에 위의 인용문에서 보듯 은인들은 ‘영풍(寧風)’의 제사를 올렸던 것이다. 또한 은나라 사람들은 바람을 봉(鳳) 형태의 새로 표시하여 새 모습의 신으로 추상해 왔으며, 그 결과 복사에서는 풍(風)과 봉(鳳)은 동일하여 모든 형태가 봉조(鳳鳥)의 상형문자와 흡사하며, 그것이 복사에서 절대 다수가 모두 풍(風)자로 차용되었다.
한편, 비련의 몸이 사슴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은 동북아시아 지역에 유행했던 무속(Shamanism)에서 전승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 무속에서 말하는 풍신의 형상이 바로 날개가 달린 순록이며 말의 머리를 지니고 있어 천계(風)와 중계(地)의 융합을 상징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말의 머리와 새의 날개는 순록이 내달리는 신속함이 마치 말이나 새와 같다는 것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종합 토템의 의미도 함께 지니고 있다. 아울러 사슴은 수많은 북방 아시아 민족이 숭배하던 신수(神獸)이자 토템이었다.
또한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권3에 실려 있는 동명왕과 송양(宋襄)에 관한 언급은 사슴이 바로 고구려의 우신(雨神)이었음을 알려 준다.

동명왕이 서쪽으로 순수할 때 우연히 눈빛 고라니(큰 사슴)를 얻었다. 해원(蟹原) 위에 거꾸로 달아매고 감히 스스로를 저주했다. ‘하늘이 비류에 비를 내려 도성과 변방을 표몰시키지 않으면 내가 너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니 너는 나를 도와다오.’ 사슴이 우는 소리 심히 슬퍼 위로 천제의 귀에 사무쳤다. 장마비가 이레를 퍼부었다.

일반적으로 풍우가 상련한다는 점에서 풍신의 신체가 사슴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즉 새와 사슴을 각기 풍신으로 섬기던 동이족의 모 씨족들이 서로 융합하면서 자신들의 풍신들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새와 바람같이 달리는 사슴’의 의미로 마침내 두 풍신이 하나로 합해졌고, 풍신 비렴은 때로는 ‘신금’(응서)으로, 때로는 ‘조신녹두’나 혹은 ‘녹신조두’ 등의 합체로 묘사되었다. 따라서 『초사』「이소」에서 비렴을 ‘난다(飛)’라고 하지 않고 ‘달린다(奔)’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아 굴원의 시대에 비렴은 이미 사슴의 신체를 가지고 있었으리라 추정된다. 아울러 그 형상이 여러 동물의 종합체라고 하는 것은 사회사의 각도에서 보면 최초에는 모두 두 씨족의 연합이거나 혹은 한 씨족의 분화를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4.3. 비렴 신화의 발생지

일반적으로 비렴을 모두 고대 초국의 풍신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는 비렴이 등장하는 최초의 문헌이 『초사』「이소」라는 점에서 비롯된 견해이다. 그러나 비렴과 초국의 관계를 규명하는 데 있어 「이소」외에 어떠한 문헌자료도 현재까지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사실상 풍신 비렴의 형상이 새와 사슴의 합체인데 사슴이 동북아시아 지역에 유행했던 무속에서 전승된 순록에서 전화되었고, 또 그것이 새와 사슴의 합체라는 점, 그리고 은대 복사에 바람이 모두 새로 표시된 것을 보면 비렴 신화의 발생지가 남방 초국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동방의 동이 은족의 고토였던 중국의 동북부지역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추정되는데 이에 관한 몇 가지 방증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비렴에 관한 고고 문물 유적이 고구려 고토에 현존하고 있다. 즉 손작운(孫作雲)은 ‘길림성 집안현 통구에 남북조 초기의 고구려 고분인 무용총이 있다. 주실 천장의 우사인 병예(屛翳)의 뒤 인두조신(人頭鳥身)인 왕자교(王子喬) 앞에 사슴과 같은 짐승이 있는데, 뿔이 있고 날개가 있어 앞으로 달려간다. 나는 바로 풍신 비렴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고구려 고분 벽화는 우리의 조상으로 태어나 활동을 하다가 세상을 떠난 고분의 주인공이 유계(幽界)에서 영원히 편안하라고 기원하기 위해 그려진 것이며, 당연히 당시의 실생활이 반영되었을 수밖에 없다. 또한 무용총의 벽화는 당시의 생활상을 가장 잘 보여 준다고 인정되고 있으며, 비렴에 관한 벽화가 무용총에 남아 있다는 것은 바로 비렴 신화가 고구려 지역에서 발생하여 널리 전승되었을 가능성을 보여 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다음 ‘풍(楓)’과 ‘비렴’이 가지고 있는 음운학적인 어원의 인과관계를 살펴보면, 이 비렴 신화가 우리 민족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증명할 수 있다. 즉 비렴의 고합음(古合音)이 ‘풍’이라는 것은 이미 강량부가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이 ‘풍’의 고음이 중국 일군의 언어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바로 『계림유사(鷄林類事)』에서 말하는 발람(孛纜)으로 영문으로 표기하면 Plam 혹은 Brum, 즉 우리말의 ‘바람’인 것이다. 그 변화의 연관관계는 비렴-발람-Plum-Brum 해서 바람 ‘풍’을 구성하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풍’의 어원은 우리의 고어 ‘바람’에서 근원한 것으로 ‘비렴’은 곧 ‘바람’의 음운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 고음이 중국의 음을 가차해 온 것인지, 아니면 중국의 고음이 우리 고음을 빌려서 사용한 것인지, 음운 변천 과정에서 선후 문제가 제기된다. 이에 대해 유민(兪敏)은 고한어 또한 조선어로부터 ‘풍(風)’이라는 말을 빌려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유민의 이러한 어원전래설에 따르면, 동이 은족이 황하를 따라 서진해 감에 따라 ‘바람’을 의미하는 ‘비렴’ 혹은 ‘발람’이라는 독음이 친연관계를 가지고 있었던 연해 여러 부족에게 전해졌을 것이고, 당시 하남(河南) 서부에 분포되어 있었던 각 부족에게까지 차츰 전래되어 마침내 바람을 관장하는 ‘비렴’ 풍백 신화가 형성되었다고 추측된다.
종합하면 비렴의 형상은 새와 사슴으로 대표되는데, 이 새와 사슴이 바로 동북지역의 대표적 신앙인 무속에서 전승한 것이라는 점, 그리고 고구려 무용총에 비렴의 벽화가 존재한다는 점, 또 ‘풍’의 고음인 비렴이 바로 우리말 바람에서 전화되었을 가능성 등은 비렴 신화의 발생지가 초국이 아니라 동이 은족 특히 우리 고구려 계통의 신화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4.4. 비렴과 기타 풍신의 관계

중국 신화에는 문헌상 최소한 3종류 이상의 서로 다른 풍신이 나타나 있다. 『주례』「대종백」과 『서경』「홍범」등에 보이는 풍사 기성(箕星)과 『산해경』에 나타나는 각종 풍신, 그리고 『초사』의 비렴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들 사이의 연관관계를 규명할 수 있는 자료가 현재로선 없기 때문에 이들의 직능상 상호관계가 어떠한지, 또는 발생지가 어디인지 등을 규명하기는 매우 어렵다.
먼저 『산해경』에는 바람의 출입을 관장하는 풍신에 관한 기록이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동방의 풍신은 절단(折丹)이요 남방의 풍신은 인호(因乎)로서 각기 방위별로 바람의 출입을 관장하는 직능을 갖고 있다. 아울러 같은 『산해경』의 「대황서경」과 「대황동경」에도 제각기 서방과 동방의 방위신 및 바람의 이름이 거명되고 있다.
『산해경』의 기록에서 특이한 점은 서방과 북방의 방위신은 신이 아니라 사람이며 바람을 관장하는 것이 아니라 해와 달의 운행을 관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명확한 이유는 찾을 수 없지만 일반적으로 중국의 선진 고적 중에서 자연 현상을 언급한 대부분의 기록이 일월성신과 풍우를 서로 연관시키는 것으로 보아, 지방에 따라서는 동일신이 풍우와 일월을 동시에 관장하는 신화적 직능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단지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복사에 사방에서 부는 바라의 명칭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서 『산해경』의 사방 풍신이 이로부터 유래된 것으로 보이나, 그것이 『초사』의 비렴과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를 규명할 만한 명확한 문헌 자료가 현재로서는 없다. 요컨대 중국의 넓은 토지를 생각해 보면 지방에 따라 풍신도 각기 다르게 불렸다고 추측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동일한 『산해경』에 다음과 같이 산휘(山揮)라고 부르는 또 다른 풍신이 언급되고 있는 점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풍사 기성에 관해서는 먼저 응소의 『풍속통의』의 기록을 들 수 있는데, 그는 앞서 열거한 『주례』「대종백」의 풍사를 기성으로, 그리고 『초사』의 비렴을 풍백으로 각기 직능을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풍사와 풍백의 신화상 직능을 구별하여 밝힌 문헌은 없다. 또한 『여씨춘추』에서는 비렴을 풍사로 적고 있고 또 채옹(蔡邕)의 『독단(獨斷)』에서는 기성을 풍백으로 주석하고 있어 전적에 따라 풍백과 풍사가 아무런 구별 없이 혼용되고 있다. 실제로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따르면 자의상 ‘백(伯)’은 장자(長子)에서 발전하여 우두머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사(師)’는 대중의 의미에서 발전하여 ‘주관하여 가르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양자가 모두 바람을 관장하는 직능을 가지고 있으므로 풍백과 풍사는 신화 직능상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응소의 주장에 따르면 풍신이 전국시대에 이미 풍백 비렴과 풍사 기성으로 분리되어 전승되었고, 비렴보다는 오히려 풍사 기성이 국가적 제사로 받들어지는 중요한 신격임을 알 수 있다. 아울러 ‘기성’ 신화의 출현은 당시 사람들의 오랜 기상 관측 경험에 의거하여 형성된 것으로 보이는데, 선진 고적 중 『서경』「홍범」에도 별과 풍우가 일정한 관계가 있음을 유추할 수 있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와 관련된 『서경』「홍범」의 구절은 비록 일반 민중과 천자와 경대부 등을 별과 일월에 비유하여 언급한 기록이긴 하나, 중국 고래로 별과 풍우가 불가분의 관계로 인식되어 왔음을 알려 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아울러 이 기록은 풍신 비렴과 기성이 중국의 광활한 지역적 특성으로 인해 각각 다른 지방에서 발생하여 제각기 다른 명칭으로 불렸던 서로 독립된 신화 전승임을 인식시켜 주는 방증이라고 할 수 있다. 『산해경』에 여러 풍신이 동시에 등장하는 것도 이와 똑같은 이유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상고 중국인들은 그 다극성과 인류에 대한 이해관계의 양면성으로 인해 일찍이 바람 자체를 신성으로 인식하였다. 그 결과 비렴을 비롯하여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른 여러 풍신이 탄생하였다. 이와 함께 풍신에 대한 제풍의식도 성행하여 전국시대 초기에 이미 가장 중요한 국사 중의 하나가 되었다.
‘녹신조두’로 대표되는 비렴의 형상은 새를 풍신의 사자나 바람의 화신으로 여기던 은인들의 관념과 동북아시아의 무속에서 사슴을 신수로 숭배하는 풍속이 합성되어 비롯된 결과이다. 또한 이러한 비렴의 형상이 모두 중국의 동북방 동이 은족의 관념과 무속에서 유래한다는 것은 고구려 무용총의 비렴 벽화 및 바람의 어원, 그리고 역사화된 비렴의 기록이 모두 공통되게 은족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는 것과 더불어 비렴 신화가 지금까지 알려진 대로 남방 초국의 신화가 아니라 고구려를 위시한 동이 은족의 신화임을 증명하는 결정적인 증거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중국의 풍신 비렴은 중국 동북부 동이 은족에서 기원한 신화이다. 그 시원은 바람 자체를 신성으로 간주한 데서 비롯되었으며, 동이족의 이동에 따라 차츰 연해 지방은 물론 중국의 하남과 서남부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에 전승되어 중국의 대표적인 풍신으로 간주되었다. 마침내 굴원에 의해 「이소」에 인용되고 또한 괴이한 형상 때문에 「천문」의 발문(發問) 대상이 됨으로써 무의식중에 초국의 대표적인 풍신으로 인식되는 오해를 낳게 된 것이다. 그리고 중국 신화에 비렴 외에 기성 등 여러 풍신이 함께 등장하는 것은 오로지 광활한 중국의 지역적 특성으로 인해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른 풍신이 생성되어 독립적으로 후세에 전승된 결과일 따름이다.
참고문헌 및 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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