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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구별상

호구별상

‘호구별상’은 천연두 즉 마마를 주관하는 신령이다. 매우 심술맞고 변덕도 심하여 무속에서 가장 골치 아프게 생각하는 신이다. 원래 호구별상은 그 자체가 천연두의 다른 이름이었지만 이후 천연두를 주관하는 신령의 이름으로 전화되었다. 즉, 옛날 천연두를 많이 앓던 시절에 아이들이 그 병에 걸리지 않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보살펴 주는 역할을 하던 신령인데, 요즈음은 집안 식구들의 액운을 막아주고 병을 없게 해주는 신으로 상정된다.
천연두는 호구별상 이외에도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흔히 알고 있는 '마마', '시두(時痘)', '두창(痘瘡)'을 비롯하여 '두역(痘疫)', '두신(痘神)', '강남서신(江南西神)', '큰마마', '큰마누래', '손님마마', '역신(疫神)마마', '호귀(胡鬼)마마', '별성(別星)마마', '호구별성(戶口別星)', '강남별성(江南別星)', '호구별성마마', '시두손님', '큰손님', '홍진국대별상(大別相)', '홍진국대별상 서신국(西神國)마누라' 등 외우기 힘들 정도로 수도 많지만 이름도 별스럽다. 천연두는 왜 이렇게 다양한 이름이 붙어 있을까? 이는 천연두가 역사에 끼친 영향이 지대하고 사람들의 공포와 관심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사실 호구별상이라는 이름 자체가 역사적인 것이다. 옛날 온 나라를 불운으로 몰아넣은 재앙이 민중의 머리 속에 지울 수 없는 아픈 기억으로 남게 되고, 그 결과 그것이 의인화되어 신령으로 모셔졌던 것이다. 이러한 전국적인 재앙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13세기 초반에서 14세기 중엽에 걸친 몽고군의 침략과 지배이고, 또하나가 15세기 중엽부터 중국에서 들어온 천연두이다.
몽고군의 고려 침략(1231-1270)은 민중에게 있어서 쓰라린 기억이었다. 근 40년을 끌어온 이 장기 침략은 전 국토를 초토화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보다 더 아픈 일은 전쟁이 끝나고 두 나라 사이에 강화가 체결된 다음부터 몽고군이 고려를 조직적으로 약탈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몽고군은 금, 은, 비단, 곡식, 인삼뿐만 아니라, 고려의 젊은 처녀들마저 마구 징발하여 원나라로 끌고 갔다. 이러한 처녀들의 강제 징발은 그 가족들과 이웃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겨 주었다. 이 상처와 슬픔을 무당은 당연히 함께 느낄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무(巫) 안에 몽고군에 의하여 원나라로 끌려간 처녀들의 수호신으로서 호구(胡口) 또는 호귀(胡鬼)라는 신령이 생겨나게 되었다.
15세기 중엽부터 중국에서 들어온 천연두는 다시 한 번 민중에게 큰 상처와 슬픔을 주었다. 천연두는 병자호란을 계기로 조선의 풍토병으로 자리잡았다. 이능화(李能和)의 『조선무속고(朝鮮巫俗考)』를 보면 천연두는 서양에서 코친차이나(베트남 남부)를 통하여 중국의 양쯔강 이남을 휩쓸고 동북지방을 거쳐서 압록강을 건너 조선에 들어왔다고 한다. 특히 천연두가 강남을 휩쓸고 중원 전체를 휩쓸 무렵 청나라가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중원을 장악하였는데, 병자호란 때 청나라 군사들이 천연두를 몸에 묻히고 조선에 들어왔고 그 이후 전국에서 동시에 창궐하였던 것이다. 천연두에 한 번 걸리면 죽든가 살아도 평생 곰보로 살아야 했기 때문에 이 병에 대한 민중들의 두려움은 매우 컸다. 천연두를 두려워했던 민중들은 이 병의 이름도 직접 함부로 부르지도 못하고 ‘마마’(당상관 이상의 높은 사람을 부르는 말), ‘별성(別星)’(궁을 지키는 수문장), ‘손님’ 등으로 불렀다.
그런데 당시 의원과 함께 천연두에 걸린 환자를 다루었던 이가 바로 무당이었다. 예로부터 무당이 지녔던 최대의 기능은 병을 고치는데 있었다. 과학과 의술이 발달되지 아니한 옛날 사람들에게 병은 귀신의 작용에 의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따라서 병을 고치는 것은 귀신과 교제하고 그들을 조절할 수 있는 무당들만이 가능한 것으로 믿었다. 무당은 스스로 병자의 생사를 좌우할 수 있다고 믿었고, 무당이 사는 무가(巫家)에는 역신(疫神)이 침범하지 못한다고 믿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병이 나거나 열병이 돌 때엔 무당에게 의지하고자 했다.
천연두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천연두로 인한 민중의 고통은 다시 한 번 무당에게 그대로 전달되었고, 그 결과 천연두신의 관념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천연두가 중국으로부터 왔다는 이유로 ‘호구’라는 신령과 ‘별성’이라는 신령이 혼합되어 ‘호구별성(胡口別星)’이라는 새로운 이름이 생겨난 것이다. 위에서 언급된 천연두의 여러 가지 이름 중 ‘강남별성’도 같은 원리로 만들어졌다. 이후 ‘호구’라는 말은 천연두가 집집마다 유행한다 해서 ‘호구(戶口)’로 한자의 뜻이 바뀌기도 하였다. 또한 ‘별성(別星)’ 이라는 말 역시, 원래 연산군, 광해군, 사도세자와 같이 왕위를 지키지 못했거나 왕위에 오르기 전 비극적인 죽음을 당했던 인물들을 평안과 재수의 신으로 신격화했을 때 사용되었던 ‘별상(別相)’이라는 말로 전화되어 사용되기도 했다. ‘호구별상’이라는 이름은 이러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나타난 것이다.
호구별상을 위한 굿거리는 ‘호구별상거리’(혹은 ‘호구거리’라고도 함)이다. 굿의 기본형은 열두거리로 구성되어 있다. ‘거리’란 제차(祭次)를 뜻하는 말이며, 각 거리는 특정한 신령을 불러 모시고 이에 축원하는 독립된 작은 굿으로 되어 있다. 열두거리에서 모시는 제신(祭神)들 가운데는 수호신, 생산신, 재복신(財福神), 액신(厄神) 등 한국의 대표적인 무신(巫神)들이 망라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열두거리로 되어 있는 굿은 무신(巫神) 전체를 모시고 제사 지내는 하나의 총체적인 무의(巫儀)라 하겠다. 12란 실제 제차(祭次)의 정확한 수효를 뜻하기 보다 12달로써 완전한 한 해가 형성되듯이 완전 또는 총체성을 표시하는 수적 개념이다. 그러기에 실제 열두거리 굿에서는 12를 전후한 제차(祭次)들이 집행되는 것이 상례이다. 열두거리 굿에 등장하는 제신(諸神)들은 다음과 같다. ‘천지신명’, ‘옥황상제’, ‘일월성관’, ‘칠성’, ‘산신’, ‘용왕’, ‘삼불제석’, ‘신장장군’, ‘호구별상’, ‘골맥이서낭대신’, ‘12대신’, ‘조상대감’, ‘팔도명산’, ‘도사신령’, ‘선녀동자명신’ 등등... 이중 호구별상을 위한 굿거리가 바로 ‘호구별상거리’이다.
호구별상은 ‘호구’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여신(女神)의 성격을 가지고 있고, 역신(疫神)인만큼 심술도 많이 부리고 악한 일도 많이 생기게 하는 신이다. 얼굴이 박박 얽은 곰보의 형상으로 굿거리에서 놀아지며, 탱화에는 홍치마에 의대와 족두리를 쓰고 연지, 곤지를 찍은 여신으로 표현된다. 어떤 무가(巫家)에서는 호구별상을 천연두에 걸려 죽은 처녀신으로 표현한다. 호구별상거리에서 무당은 춤을 추면서 공수(무당이 신탁(神託)을 받아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를 하는데, 특이한 것은 호구보라고 불리는 커다란 보자기나 홍치마를 벗어서 뒤집어쓴 무당이 제가집을 얼른다는 것이다. 얼굴이 천연두를 앓아서 박박 얽었기 때문에 이렇게 뒤집어썼는데 이것을 쓰고 가면 제가집이 답답하니 얼른 벗고 가게 해달라고 한다. 그러면 제가집은 그 얽은 얼굴을 다 가릴 만큼의 분을 사라고 우둔 높은 전량(화장품값)을 부채 위에 얹어주며 사정한다. 이내 그 보자기는 벗겨지고 호구별상 신령은 답답한 너울을 벗고 나니 사방이 다 휘황찬란하다고 하며 제가집이 편안하게 도와 줄 것을 약속하고 춤을 춘다. 옛날에는 천연두 즉 마마에 걸리면 죽든가 살아나도 곰보가 되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호구별상 신령들을 잘 우대하였으나, 현재는 호구별상거리가 있기는 있지만 불사거리나 창부거리 안에서 잠깐 놀고말 뿐이다.
또한 호구별상은 고사를 지내는 과정에서도 등장하였다. 고사에서 사람의 간절한 소망을 명산대천이나 하느님 전에 비는 소리를 ‘비나리’라고 한다. 남사당패의 비나리는 특별한 절차와 순서를 가지고 있는데, 고사선념불과 고사뒷념불로 양분된다.
고사선념불은 절걸립패나 제례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이며, 대체로 자진가락에다 ‘산세풀이’, ‘살풀이’, ‘액맥이’, ‘삼재풀이’, ‘호구별상노정기’ 따위의 사설을 엮어 가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산세풀이는 명기타령과 같은 풍수지리적 관념의 천지생성과 치국잡기로 이어진 후, 인간세상살이에 생겨나는 좋지않은 기운인 살을 풀어내는 살풀이가 이어지며, 이후 인간의 복락에 관계되는 삼재를 푸는 삼재풀이가 이어지면, 마지막으로 사람에게 무서운 전염병이었던 천연두를 일으키는 호구별상 신령이 이 땅에 오는 과정을 흥겨운 호구별상노정기로 형상해서 부른다. 전통적인 질병관과 운명관을 상세하게 보여주는 것이 곧 고사선념불의 주내용이다. 그래서 살을 풀고, 액은 단걸이로 막고, 삼재는 음양오행법으로 풀고, 호구별상의 이동과정을 추겨 세워서 인간에 불행과 병이 없도록 기원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서 고사뒷념불은 축원과 덕담으로 일관한다. 그래서 집안에 온갖 영화가 가득하고, 인간의 수명장수가 한없이 이어지도록 기원한다. 고사선념불에는 낯설고 두려운 것을 쫓아내고 예방하는 말이 우세하다면, 고사뒷념불에는 인간의 말 가운데 좋고 아름답고 순결한 것들을 모두 모아놓았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을 향기롭게 하고, 생애의 온갖 영화를 가득 안겨주려는 기쁨이 찰랑거리며 넘치는 것이라고 고사뒷념불의 사설을 규정할 수 있다.
참고문헌 및 도판
▒ 참고 문헌
赤松智城․秋葉隆(共著), 심우성(譯), 1991 《朝鮮巫俗의 硏究 下》 동문선
柳東植, 1975 《韓國巫敎의 歷史와 構造》 연세대 출판부
조흥윤, 1997 《巫, 한국 무의 역사와 현상》 민족사
황루시, 1988 《韓國人의 굿과 무당》 문음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민족문화대백과사전》
양종승, 1999 〈한국 巫神의 구조 연구〉 《비교문화연구》 서울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