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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궁

황궁(黃穹)

1. 『부도지(符都誌)』에서 보이는 황궁의 존재

황궁의 존재는 주로 『부도지』에서 보인다. 『부도지』는 신라시대 인물인 박제상에 의해 지어졌다고 하나 위서(僞書)임에 확실하다. 하지만 황궁의 근거가 『부도지』에서 추출되었고, 또 『부도지』는 나름대로 인류의 기원과 번성에 관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으므로, 『부도지』에 보이는 황궁의 존재에 대하여 언급이 필요하다. 『부도지』에 따르면, 황궁은 궁희에게서 단성생식을 통해 나온 존재이며, 한민족으로 대표되는 동이족의 조상으로 간주되고 있다. 황궁에 대한 내용을 『부도지』로부터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윽고 후천(後天)의 시대가 열렸다. 마고가 실달대성을 옮기어 천수(天水)의 지역에 떨어뜨리니, 실달대성의 기운이 상승하여 물 기운 위를 뒤덮고, 그 결과 실달대성은 평평하게 열리어 물 가운데에서 땅을 여니, 땅과 바다가 나란히 뻗고 산과 강이 널리 뻗어 나갔다. 이에 물의 세계가 변화하여 땅이 이루어져 서로 겹치고 이동하여 돌기 시작하므로, 드디어 시간의 변화가 생겨나게 되었다. 그리고 기(氣)와 화(火)가 서로 섞여서 빛이 밤낮과 사계절을 나누고 초목과 금수를 길러내니 온 땅에 일이 많아지게 되었다.
이에 네 천인은 만물의 본음(本音)을 나누어서 다스리니 토(土)를 맡은 자를 황(黃)이라 하고 수(水)를 맡은 자를 청(靑)이라 하여 각기 궁(穹)을 지어서(황궁과 청궁) 그 직분을 지키고, 기(氣)를 맡은 자를 백(白)이라 하고 화(火)를 맡은 자를 흑(黑)이라 하여 각기 소(巢)를 지어서(백소와 흑소) 그 직분을 지키니, 궁과 소를 각기 그 성씨로 삼았다. 이후로 기(氣)와 화(火)가 같이 밀어서 하늘에는 차갑고 어두운 기운이 없어지고 수(水)와 토(土)가 감응하여 땅에는 더러운 분비물이 생기지 않게 되었다. (『부도지』3장)

이 때에 본음(本音)을 다스리는 자가 비록 여덟이었지만, 만물이 순식간에 생겼다가 없어지곤 하니 조절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마고가 마침내 네 천인과 네 천녀에게 명하여 옆구리를 열어서 생산하게 하므로 네 천인이 서로 네 천녀와 맺어서 각각 3남 3녀를 낳으니, 이가 땅에서 태어난 최초의 인류의 시조이다. 그 남녀가 서로 맺어서 몇 대를 지나는 사이에 족속이 각각 3천 명으로 불어났다. (『부도지』4장)

백소씨족의 지소씨가 여러 사람과 함께 젖의 샘에 젖을 마시러 갔는데, 사람은 많고 샘은 적으므로 사람들에게 양보하고 자신은 마시지 못하기를 다섯 차례나 하였다. 돌아와서 배고픔에 어지러워 쓰러졌다. 귓속에서 미혹하는 소리가 울려서 넝쿨진 포도의 맛을 보게 되었다. 그 맛이 좋았으므로 드디어 여러 사람들이 모두 먹게 되었다. (『부도지』5장)

이에 열매를 먹는 사람들은 모두 치아가 생기고 그 침이 뱀의 독과 같이 되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악해져서 하늘의 성품을 잃게 되었다. (『부도지』6장)

이에 사람들이 원망하고 나무라니 지소씨가 크게 부끄러워 얼굴을 붉어져서 그 무리들을 이끌고 성을 멀리 나가 숨어버렸다. (『부도지』7장)

이후에 성을 나간 사람들 중 잘못을 후회한 자들이 다시 젖의 샘에서 젖을 먹고자 하여 샘을 파헤치니, 샘의 근원이 사방으로 유출되어 샘이 파괴되었다. 그리고 즉시 굳어버려 더 이상 먹을 수 없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모든 사람들이 동요하여 풀과 과실을 다투어 취하므로 혼탁이 극도에 달했다.
이에 황궁씨가 대표자로서 몸을 스스로 묶고 마고의 앞에 사죄하여 스스로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고 근본을 회복할 것을 서약하였다. 물러나서 여러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청정함이 깨어지고 우리의 보금자리가 장차 위험하게 되었으니, 이 일을 어찌할 것인가?”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천인들이 나누어살기로 의견을 모으고 황궁씨가 천부(天符)를 나누어 신표로 삼고 칡을 캐서 식량으로 삼을 것을 가르친 후에 사방으로 나누어 살 것을 명하였다. 이에 사람들은 사방으로 나누어살기로 결정하고 청궁씨는 그 무리를 이끌고 동쪽의 문으로 나가 운해주(雲海州)로 가고, 백소씨도 무리를 이끌고 서쪽의 문으로 나가 월식주(月息州)로 가고, 흑소씨는 남쪽의 문으로 나가 성생주(星生州)로 가며, 황궁씨도 북쪽의 문으로 나가 천산주(天山州)로 떠났다. 그 중 천산주는 매우 춥고 험한 땅이었다. 이는 황궁씨가 자진해서 어려움을 취하여 고통을 이겨내고자 함이었다. (『부도지』8장)

분거한 여러 족속이 각 지역에 도달한 지 어느덧 천 년이 되었다. 예전에 성을 먼저 나간 사람들의 후예들이 각지에 잡거하면서 그 세력이 심히 강성하였다. 그래서 근본을 거의 망각하고 성격이 몹시 흉악하게 변하여 분거한 족속들이 새로 오는 것을 보면 무리를 지어 추적해서 그들을 해쳤다. 결국 여러 족속이 정착해서 안주하니 바다와 산으로 막혀서 왕래가 거의 단절되었다. (『부도지』9장)

황궁씨가 천산주에 도달하여 미혹을 해소하며 근본을 회복할 것을 서약하고 뭇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수양할 것에 힘쓰게 하였다. 그리고 큰 아들 유인(有人)씨에게 명하여 인간세상의 일을 밝히도록 하고 둘째와 셋째로 하여금 각 지역을 순방하게 하였다. 마침내 황궁씨가 천산으로 들어가 돌로 변하고, 이에 유인씨가 계승하였다. (『부도지』10장)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부도지』와 같은 재야사학계에서 신봉되는 몇몇 위서류(僞書類)들은 황궁의 후손으로 유인, 그리고 유인의 후손으로 환인, 환웅, 단군, 임검 등을 설정하여 현재 한민족과 계보로 연결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부도지』에서도 11장부터는 유인 이하의 존재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2. 황궁, 청궁, 백소, 흑소의 관계

황궁, 청궁, 백소, 흑소 사이의 관계 역시 부도지와 같은 위서류에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비록 학계에서는 여전히 이러한 견해를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이를 정확한 역사의 기록이라기보다는 고래로 전해져 내려온 민간전승에서 나타나는 창세 신화류와 같이 인류의 기원에 대한 독특한 하나의 견해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에 아래의 내용은 부도지의 내용에 기반하여 황궁, 청궁, 백소, 흑소 등에 대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부도지』에 따르면, 궁희와 소희에게서 나온 네 천인은 만물의 근본을 나누어서 다스리니, 궁희에게서 나온 두 천인 가운데 토(土)를 맡은 자는 황(黃)이라 하고(황궁) 수(水)를 맡은 자는 청(靑)이라 하였으며,(청궁) 소희에게서 나온 두 천인 가운데 기(氣)를 맡은 자는 백(白)이라 하고,(백소) 화(火)를 맡은 자를 흑(黑)이라 하여(흑소) 각기 그 성씨로 삼았다고 한다. 또한 마고의 출현 이래로 그 이후 사건의 전개는 모두 태극사상이 그 핵심을 이룬다고 하여 우선 마고가 있었으며, 태극이 음양을 생성하듯 마고가 궁희와 소희를 낳은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음양이 태극과 분리되어서 존재할 수 없듯이 마고와 궁희, 소희도 항상 함께 존재하였다고 한다.
백소씨족의 일원인 지소가 포도열매를 먹게 된 이후, 현재의 인류보다 한 차원 높이 존재하던 신적 존재였던 인류의 선조는 다른 생명을 먹음으로 말미암아 피조물과 같이 되었으며, 지구는 약육강식과 적자생존 및 약탈경제의 현장이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 몸도 그렇게 변하여 음식을 먹지 않고는 단 몇 일도 생명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이후 마고대성은 극심한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지소는 파미르의 북쪽, 즉 시베리아 지방으로 갔으며, 바이킹이나 슬라브 족과 같은 북방 백인 족속의 선조가 되었다. 한편 황궁씨는 그 족속을 이끌고 가서 정착한 곳이 천산지역이었다. 그리고 중국 본토의 황하유역과 양자강 일대에는 청궁씨가 이주하였다.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의 코카서스 지역에는 백소씨족이 정착하였으며,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북쪽 문명도 역시 백소씨에 의해 주도되었다. 파미르의 남쪽 인도 북부의 인더스 평원지대에는 흑소씨족이 정착하였으며, 그들은 인더스 문명을 건설하였다. 메소포타미아의 남쪽과 이집트에 건설된 문명 역시 흑소씨에 의해 이룩된 것이다. 따라서 흑소씨족의 후예는 아시아 남부에서 아프리카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에 거대한 문명권을 형성하였다. 그리고 백소씨족의 후예와 메소포타미아 일대에서 충돌하기도 하였다.

결국, 부도지에서는 황궁, 청궁, 백소, 흑소의 존재를 현존인류의 인종적 구분과 연결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구분의 기초 위에 인류 최초의 문명발상이 이루어졌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 중에서 황궁을 현재 한민족의 직계 선조로서 언급하고 있어 흥미롭다.

참고문헌 및 도판

▒ 참고 문헌
김은수 번역 및 주해, 『부도지』, 한문화, 2002.
임승국 번역 및 주해, 『한단고기』, 정신세계사, 1986.
대야발, 『단기고사』, 출판사 불명, 19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