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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황제
1. 중국신화에 등장하는 황제
황제는 중국신화에 등장하는 신이다. 고래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중국신화의 내용에 따르면 황제는 중앙부의 상제였으며, 나머지 동서남북의 네 방향에도 각각 그곳을 주관하는 상제가 있었다고 한다. 동방 상제는 태호(太皥), 즉 복희(伏犧)이고 그를 보좌하는 신은 목신(木神)인 구망(句芒)인데, 손에는 콤파스를 들고 있고 봄을 관장한다고 한다. 남방 상제는 염제(炎帝)이며, 보좌신은 화신(火神)인 축융(祝融)이다. 그는 손에 저울을 들고 있으며, 여름을 주관한다. 서방 상제는 소호(少皥)이고, 보좌신은 금신(金神)인 욕수(蓐收)이다. 욕수는 가을을 관장한다. 북방 상제는 전욱(顓頊)이며 보좌신은 수신(水神)인 현명(玄冥), 즉 해신(海神)이자 풍신(風神)인 우강이며 손에는 저울추를 들고 있고 겨울을 관장한다. 황제는 하늘나라의 중앙에 살고 있는데 그의 보좌신은 토신(土神)인 후토(后土)이다. 후토는 손에 끈을 들고 있고, 사면팔방을 모두 관리한다. 신들의 나라 모습이 이러했던 것을 보면 우주의 통치상황이 매우 완벽했으며 또한 상당히 이상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황제의 생김새는 무척이나 이상했다고 한다. 어떤 전설에 따르면 황제가 네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정말 그러했다면 중앙의 상제 노릇을 하고 있는 그로서는 매우 편리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동서남북 사방을 동시에 살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의 눈길을 피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감정적으로 사건을 일으키고 싸움질을 하는 천신들에 대해서 그는 가장 공평한 재판관이었다. 그가 재판관 노릇을 했다는 전설 역시 여러 가지가 전하고 있다.
존엄한 황제, 그는 신들의 나라의 최고 통치자였다. 그래서 누구든지 모두 그의 통치와 명령을 따라야만 했다. 황제 또한 귀신들의 나라도 다스렸는데, 그의 신하인 후토가 바로 귀신 나라의 왕이었다. 황제는 신도(神荼)와 울루(鬱壘) 형제에게 인간세계를 떠도는 귀신들을 다스리게 했다. 이 두 형제는 동해의 도도산(桃都山)에 살았다. 황제가 한번은 곤륜산 동쪽에 있는 항산이란 곳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 그곳 해변가에서 우연히 백택(白澤)이라고 하는 신령스런 동물을 얻게 되었다. 이 동물은 사람의 말을 할 줄 알았고 무척이나 지혜롭고 총명하여 천지간에 있는 귀신들의 일을 모두 알고 있었다. 우주의 통치자인 황제조차도 백택만큼 알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황제는 사람을 시켜 백택이 이야기하는 가지가지의 괴물들을 그림으로 그려내게 하고, 또 그 그림 옆에 설명을 달게 했는데, 그것이 모두 11,520 종류가 되었다. 이 때부터 황제는 이 요괴들을 관리하기가 한결 수월해졌다고 한다.
다른 천제와 마찬가지로 황제에게도 많은 자손이 있었다. 그 중에는 신도 있었고 또 인간세상의 족속도 있었다. 전욱의 얼굴에 새의 몸을 하고 귀에는 두 마리의 누런 뱀을 걸친 바다의 신 우괵(禺虢)은 황제의 아들이었다. 우괵은 우경(禺京)을 낳았는데 그 역시 바다의 신이었으며, 아버지와 함께 각각 동해와 북해를 관리하였다. 이 밖에도 하늘에서 천상의 흙을 훔쳐다가 인간들을 위하여 홍수를 다스린 대신 곤(鯀)은 황제의 손자였고, 전욱은 황제의 증손이었으며, 하늘과 땅의 통로를 끊은 중(重)과 려(黎)는 황제의 5세손이었다. 그리고 견융(犬戎)과 북적(北狄), 묘족(苗族)과 모족(毛族) 등 변방의 민족들 역시 황제의 후손들이었다. 황제는 이렇게 사람과 신의 공통된 조상이었다.
2. 염제와의 전쟁
하지만 중앙 천제로서 황제의 존귀함과 위엄은 그의 형제인 염제, 그리고 염제의 후손인 치우와 치른 격렬한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야 확고히 다질 수 있었으며, 결국 황제는 신들의 나라에서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황제가 염제와 벌인 전쟁에 대해서는 자세한 내용이 전하진 않지만, 그들 간의 알력, 그리고 서로가 다른 관념을 지니고 나름대로의 인도(仁道)를 펼치는 데 있어서의 불가피한 마찰이 결국에 충돌을 일으킨 것이었다.
보통 염제는 화공법을 썼다. 그에게는 불의 신인 축융이 있었고, 또 그 자신이 태양신이었기 때문에, 불을 이용해 적을 궤멸시키는 것이 그에게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하지만 황제는 뇌우의 신이었다. 그는 염제의 화공법을 조금도 염려하지 않았다. 비만 내리면 불 따위는 맥을 추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황제는 신병(神兵)과 신장(神將)들을 거느리고 있었고 또 호랑이, 이리, 곰 등의 사나운 짐승들로 이루어진 용감한 선봉대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수리, 매, 솔개, 사나운 산새 등이 공격의 깃발을 높이 들고 맹렬한 기세로 쳐들어가니, 그 세력이 말할 수 없이 강대하였다. 이러한 상황에 처하게 된 염제로서는 방어에만 급급했을 뿐 공격은 꿈도 꿀 수가 없었고, 결국 승리는 황제에게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 전쟁에서 염제가 포로로 잡혔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그것은 과장된 이야기로 여겨진다. 이 전쟁 이후로 염제는 남방으로 쫓겨 가서 그곳의 구석진 땅에서 천제의 명맥을 이어갔을 뿐이다.
3. 치우와의 전쟁
3.1 치우의 거병
염제의 손자인 치우는 황제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할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하고 또 중앙 천제의 자리를 빼앗아 오고 싶어 했다. 황제 시대에 일어난 가장 큰 사건 중 하나가 바로 황제와 치우와의 전쟁이었던 것이다. 치우는 한 때 태산에서 한 무리의 호랑이와 이리떼를 거느리고 황제의 수레를 인도하였으며, 본래는 용맹스러운 한 거인족의 명칭이었다. 이 부족 사람들은 남방에 살았는데, 염제의 자손이라고 한다. 몇몇 기록들에 의하면, 치우에게는 모두 81명, 혹은 72명의 형제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 모습이 모두 유별나게 용맹스러워 보였다. 구리로 된 머리에 쇠로 된 이마, 그리고 동물의 몸을 하고 있으면서 사람의 말을 했다고 한다.
치우는 형상만 기괴했던 것이 아니라 먹는 것도 이상스러웠다. 그는 모래나 돌, 쇳덩이 등을 밥으로 삼아 매일 먹었다. 또 그에게는 여러 가지 무기를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고 한다. 뾰족하고 날카로운 창, 커다란 도끼와 튼튼한 방패, 그리고 가볍고도 빨리 나는 활과 화살 등이 모두 그가 손으로 직접 만들어낸 것이다. 이 밖에도 그는 초인적인 신통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재주가 이렇게 뛰어나다 보니, 점차로 분수를 지키지 않게 되어 존귀한 상제의 자리를 찬탈해 자신이 한번 앉아보고자 하는 야심이 생겨나게 되었다. 황제가 서태산에서 천하의 귀신들을 모두 모이게 했을 때에 치우도 참가하여 복종의 뜻을 나타났다. 하지만 속으로 그는 황제의 실력을 한번 염탐하고자 하였다. 그곳에서 돌아온 뒤 그는 가만히 계산을 해보았다. 황제의 위세가 물론 그리 대단치 않은 것은 아니자만, 한번 무력으로 붙어본다면 자기가 꼭 진다고 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하였다.
치우는 황제에게서 떠나온 뒤 염제에게 황제의 상황을 보고하였다. 지금 황제가 겉에서 보면 기세등등하고 대단한 것 같지만, 사실은 모든 것이 허장성세에 불과하며, 별 것 아니니 지금 군사를 일으켜 다시 황제와 겨루어서 예전의 패배를 설욕하라고 염제에게 설득하였다. 하지만 염제는 이미 늙어 기력이 쇠진한 상태였다. 지금 자신이 머물고 있는 땅에서 그냥 남방 천제 노릇에 만족하며 조용히 살아가고 싶은 생각이었다. 또다시 황제와 패권을 다투는 모험을 하고 싶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는 전쟁이 일어나면 누가 승리하든지 일반 백성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이 엄청나게 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애로운 염제로서 그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었으며, 그래서 그는 치우의 재촉에도 대답하지 않고 입을 다물고 있었다.
치우는 염제가 병사를 일으킬 생각이 없음을 알고 자기 자신이 그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우선 복수의 칼을 갈고 있던 자신의 형제 70~80명을 불러 모았다. 그들은 이미 싸울 태세를 갖추고 있던 터였기 때문에 치우의 부름에 곧바로 응했다. 모두 자신의 최선을 다할 각오로 모였고 치우의 지휘에 따르기로 결정했다.
치우는 또 남방의 묘족을 소집했다. 묘족은 본래 황제의 후손이었으나 황제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인간 세상에 있는 황제의 다른 후손들만큼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그들은 늘 원망의 마음을 품고 있었다. 게다가 치우가 몇 가지 형법으로 그들을 협박하니, 원망과 공포심이 뒤범벅이 된 상태에서 치우를 따라 모반을 일으키는 수밖에 없었다. 이 밖에도 남방의 수풀과 물가에 사는 이매와 망량과 같은 괴물들도 치우의 편에 가담했다. 황제의 신하인 귀신들의 우두머리, 즉 신도와 울루의 삼엄한 감시에 염증을 느끼고 있던 괴신들이 치우의 소문을 듣고 달려온 것이었다. 그들 역시 치우를 도와 황제의 자리를 빼앗고자 하였다.
드디어 치우는 염제의 이름을 빌려 스스로 ‘염제’를 칭하고 정식으로 반항의 깃발을 높이 올렸다. 그는 수많은 군사를 이끌고서 남방에서부터 위풍당당하게 진군하여 순식간에 고대의 유명한 전쟁터 탁록에 도착했다. 곤륜산의 궁정에서 유유히 노닐며 태평한 세월을 보내고 있던 황제는 치우가 군사를 일으켜 쳐들어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뿐만 아니라 치우가 대담하게도 염제의 칭호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바로 염제를 대신해 복수를 하고 중앙 상제의 자리를 빼앗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으니, 황제의 노여움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러나 생각이 깊고 계산이 치밀한 황제는 우선 도덕과 인의를 베풀었다. 그러나 고집불통인 치우는 황제의 감화를 전혀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고 결국 상황은 전쟁으로 귀착이 되고 말았다.
3.2 전쟁초기 치우의 우세
그 전쟁은 말할 수 없이 격렬했다. 치우 쪽의 군대는 구리 머리에 쇠 이마를 한 70~80명의 형제들과 묘족, 그리고 도깨비 등의 요괴들이었다. 황제의 군대로는 사방의 귀신들과 곰, 호랑이 등의 온갖 맹수들, 그리고 황제를 도와 싸우려 했던 인간 세계의 몇몇 부족들이 있었다. 그들은 그야말로 팽팽한 맞수로서 조금도 지지 않으려 하였다.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에 치우의 군대는 과연 강인하고 용맹스러웠다. 황제에게는 한 무리의 동물 돌격대가 있었고, 사방의 귀신들과 또 인간세계의 용감한 부족들이 와서 도와주었으나 그들은 모두 치우의 적수가 되지 못하였다. 그래서 황제는 연달아 몇 차례의 싸움에 패하게 되자 상황이 무척 난감하였다. 특히 치우에게는 비를 뿌리고 안개를 피우는 신기한 재주가 있었다고 하는데, 바로 그 재주 때문에 황제의 군대는 진중에서 길을 잃고 헤매면서 꼼짝달싹할 수 없었다고 한다.
치우가 통솔하던 군대에는 온갖 도깨비들이 있었는데 이 요괴들에게는 기이한 소리를 내어 사람들을 홀리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사람들이 그 괴상한 소리를 듣게 되면 멍청해져서는 지각을 잃어버리고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걸어가 결국엔 요괴들의 희생물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황제는 이상한 소리를 내어 사람들을 홀리는 이 요괴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바로 용의 소리라는 것을 알아내었다. 그래서 병사들에게 소나 양의 뿔로 나팔을 만들어 낮고 가라앉은 듯한 용의 소리와 비슷한 소리를 내게 하였다. 이 소리가 굽이굽이 퍼져나가 전쟁터에 울려대니 치우가 이끌던 요괴들은 모두가 간담이 서늘해지고 취한 듯이 몽롱하게 되어 다시는 사람을 홀리지 못하였다. 바로 이 틈에 황제의 군대가 진격하니, 황제는 그제서야 비로소 작은 승리를 얻게 되었다.
3.3 황제의 반격
황제는 또한 군대를 따라 함께 온 그의 딸을 불러 자신을 돕게 하였다. 황제의 딸은 이름을 발(魃)이라 하였으며, 그녀는 늘 푸른 옷을 입고 있었는데, 못생긴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몸속에 거대한 불덩이가 들어 있어서 용광로보다 더 뜨거웠다. 그래서 그녀가 전쟁터에 나타나자마자 미친 듯이 휘몰아치던 폭풍우는 순식간에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하늘에는 이글거리는 태양이 떠올라 비가 내리기 전보다 훨씬 더 뜨거웠다. 치우의 형제들은 이런 모습을 보고 모두 놀라워하였다. 황제의 군사들은 이 기회를 틈타 치우 형제 몇 명과 묘족의 일부를 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발은 그녀의 아버지를 돕는 이 전투에 너무 힘을 소모했기 때문인지, 끝내 하늘로 돌아가지 못하고 지상에 머물러 있어야만 했다. 그녀가 사는 곳에는 어디에나 한 방울의 빗물도 구경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끼치는 피해가 컸기 때문에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미워하였고, 그녀를 ‘한발(旱魃)’이라고 불렀다. 그리고는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그녀를 쫓아내려고만 하였다. 이후 한발은 인간세상의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것이 습관이 되어 한곳에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몰래 도망쳐 나와 늘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녀가 가져오는 가뭄의 피해를 입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치우에게는 또 하늘을 날고 험한 산을 넘나드는 재주가 있었다. 비록 몇몇 형제와 묘족들이 희생을 당하기는 했지만, 남아있는 무리와 장수들은 아직 안전하였고 그 기세도 여전히 높았다. 황제는 이 흉악한 반역의 무리에 대해 고민을 계속하며 뾰족한 해결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전쟁이 오래 가게 되자 그의 군대도 사기가 점점 떨어지게 되었다. 그러던 중 황제는 마침내 좋은 방법을 하나 찾아내었다. 그 묘안은 바로 특별한 재료를 사용하여 특수한 북을 만들어 그것을 울려 군대의 사기를 높인 뒤 적을 제압하는 방법이었다. 황제는 기이한 형태를 하고 있던 ‘기’라는 동물을 잡아서 북을 만들었고, 용의 몸에 사람의 머리를 한 ‘뇌신’이라는 신을 잡아다가 죽여서 그의 몸속에서 가장 커다란 뼈를 꺼내어 북채로 삼았다. 그 북소리는 우뢰 소리보다도 커서 500리 밖에서도 그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이 북을 전차에 싣고 연이어 일곱 번을 두드리니 과연 산과 골짜기가 함께 울려 천지가 진동하였다. 그 소리가 울리자 황제 쪽의 군대는 사기가 크게 올랐고 치우의 군대는 혼비백산하여 사기가 떨어져 옴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귀를 멍하게 만드는 이 북소리 속에서 황제의 군대는 적들을 뒤쫓아 큰 승리를 거두었으니, 숱하게 많은 치우의 형제들과 많은 묘족들이 죽었다.
3.4 황제의 승리와 치우의 죽음
치우의 손실은 매우 컸다. 남아있는 군사를 헤아리니 반도 채 못 되었다. 만일 항복하지 않는다면 섬멸당할 것이었으므로 모두들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항복한다는 것은 곧 치욕이었으므로 아무도 항복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 때 어떤 자가 북방의 거인족인 과보(夸父)족에게 도움을 청하자고 제의를 하였는데, 이 제의가 대다수의 동의를 얻었으므로 즉시 북방으로 사람을 보내게 되었다. 과보족은 대신 후토의 자손이었다. 과보족 사람들은 북방에 살았으며, 모두가 몸집이 엄청나게 큰 거인들이었다. 힘도 장사였으며, 귀에는 두 마리의 누런 뱀을 걸치고 있었고, 손에도 노란 뱀 두 마리를 쥐고 있었다. 그러나 성품은 바보스러울 정도로 착하고 온순하였다. 치우의 사신은 과보족을 찾아와 도움을 청하고자 하였다. 과보족은 후토의 자손이고, 후토는 바로 염제의 후손이므로 결국 과보도 치우와 마찬가지로 염제의 후손이었다. 과보족의 대부분은 치우를 돕기로 결정하고 황제와의 전쟁에 뛰어들었다.
황제는 과보족의 사람들이 전쟁에 가세했다는 사실이 고민스러워 새로운 방도를 찾고자 하였다. 다행히 황제는 사람의 머리에 새의 몸을 한 현녀(玄女)라는 부인을 만났다. 그녀는 득도한 하늘나라의 여신선으로 황제를 찾아와 병법을 가르쳐 주었다. 황제가 현녀의 병법을 전수받아 군대를 움직여 진을 치자 실로 그 변화를 예측할 수 없었다. 게다가 곤오산에서 나오는 불덩이처럼 붉은 구리를 구해 보검까지 만들었다. 이 보검은 다 만들어진 후에 푸른색으로 변하였는데, 차가운 빛을 사방으로 뿜어내었고 또 수정처럼 투명하였다. 이렇게 황제가 병법과 보검을 동시에 얻게 되니 군대의 사기가 순식간에 크게 올랐다. 치우와 과보가 용맹스럽다 하여도 그들은 다만 힘을 지녔을 뿐, 황제의 꾀에 대적할 수 없어 결국에는 패하고 말았다. 최후의 이 전투에서 치우와 과보족의 패잔병들은 황제 군대의 포위망에 겹겹이 둘러싸였다. 결국 치우는 황제에게 사로잡혔다.
황제는 치우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즉시 치우를 죽였다. 치우를 죽일 때 그가 도망칠까봐 손과 발에 수갑과 족쇄를 채워 꼼짝 못하게 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완전히 숨이 끊어진 뒤에야 그의 몸에서 피 묻은 수갑과 족쇄를 풀어내어 버렸는데, 그것들이 후에 단풍 숲으로 변했다고 한다. 황제는 치우를 죽인 후에도 분이 풀리지 않아, 치우와 함께 난을 일으켰던 묘족들을 모조리 죽여 마음속의 울분을 삭여보려 하였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황제는 치우를 살해한 뒤, 전쟁에서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하여 ‘강고곡(棡鼓曲)’이라는 음악을 만들었다. 모두가 전승을 축하하는 음악을 울리며 즐거워하고 있을 때에 말가죽을 걸친 잠신(蠶神)이 하늘에서 천천히 내려오는 것이었다. 그녀는 손에 두 타래의 실을 받쳐 들고 있었는데, 한 타래는 황금처럼 노란빛이었고 또 한 타래는 순은처럼 빛나는 하얀색이었다. 그녀는 그것들을 황제에게 바쳤다. 잠신은 본래 용모가 아름다운 소녀였는데 불쌍하게도 말가죽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 말가죽은 소녀의 몸에 붙어 뿌리를 내린 것처럼 그녀의 몸과 한 덩어리가 되어 어떻게 떼어낼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말가죽의 양쪽 가장자리를 잡아당겨 자신의 몸을 감싸면 그 즉시 말 모양의 머리를 한 누에로 변하였다. 심지어는 그녀가 마음만 먹으면 끝없이 가늘고 긴, 빛을 발하는 실을 입에서 토해낼 수 있었다. 황제가 치우에게 이기고 난 뒤, 잠신은 그녀가 토해낸 실을 황제에게 바쳐 그의 승리를 축하하였다. 황제는 이 아름답고 희귀한 물건을 보자 크게 칭찬하며 사람들을 시켜 이 실로 옷감을 짜게 하였다. 그 실로 짜낸 비단을 가볍고 부드럽기가 하늘의 구름 같기도 하고 또 흐르는 물결 같기도 하여 그 이전의 모시나 삼베 등과는 비교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4. 형천과의 전쟁
황제와 더불어 상제의 자리를 다투었던 자로는 염제와 치우 말고도 형천(刑天)이 있다. 형천은 본래 이름이 없는 거인이었는데 황제와 권좌를 다투다가 결국 황제에게 목이 잘리었기 때문에 형천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형천’이란 바로 목이 떨어졌다는 의미라고 한다.
형천은 염제 신농의 신하였다. 음악을 무척이나 좋아하였으며 염제가 우주를 통치할 때에 염제를 위해 음악을 짓기도 하였다. 그러나 황제가 강력한 무력으로 염제를 패퇴시키니, 염제는 남쪽 지방으로 쫓겨 가서 남방 상제 노릇을 하고 있어야 했다. 어질고 온화하기만 했던 염제는 분노를 삼킨 채 그냥 그곳에 머물며 다시금 황제와 싸워볼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고 있었다. 형천도 치우처럼 염제에게 병사를 일으켜 황제에게 대항해볼 것을 권했지만 염제는 그냥 그 상황에 안주하려고 할 뿐, 그의 권고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 물론 형천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러다가 치우가 거사를 하여 황제에게 대항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니, 그의 가슴 속에서는 희망의 불꽃이 맹렬하게 타오르기 시작하였다. 자기도 얼른 달려가 그 전쟁에 참여하고 싶었다. 그러나 염제는 그를 가지 못하게 막았다. 더구나 치우가 결국엔 패해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는 소식에 접하게 되자 그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혼자서라도 달려가야 했다. 가서 황제와 한판 승부를 가려야 했다.
형천은 슬며시 남방 하늘나라를 떠났다. 왼손에는 방패, 오른손에는 도끼를 들고서 기세등등하게 황제의 나라를 향해 달려갔다. 물론 그의 앞길은 험난했다. 황제의 나라를 지키는 수많은 수문장들과 싸워야 했지만 그들은 모두 그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파죽의 기세로 그는 마침내 황제의 궁전에 도착했다. 황제는 형천이 자기와 싸우기 위해 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제하기 어려웠다. 황제는 보검을 움켜쥐더니 바로 뛰쳐나가 형천과 싸우기 시작했다. 구름 속에서 그들은 각각 칼과 도끼를 든 채 목숨을 건 싸움을 벌였다. 긴 시간을 그렇게 싸웠지만 승부는 나지 않았고 어느새 그들은 인간세계로 내려와 서방의 상양산 부근까지 이르게 되었다. 상양산은 본래 염제가 태어난 곳이었는데, 거기서 북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황제의 자손들이 모여 사는 헌원국이 있었다. 헌원국 사람들은 얼굴에 뱀의 몸을 하고 있었고, 꼬리가 머리를 휘감고 있었다. 황제와 형천은 각각 자기들의 근거지에 가까이 왔기 때문에 더욱 격렬하게 싸웠다. 그러다가 황제가 형천의 허를 찔러 갑자기 그의 목을 향해 칼을 내리쳤다. 작은 동산처럼 커다란 형천의 머리가 목에서 떨어져 나와 산기슭으로 굴러갔다.
형천은 자기의 머리가 없어진 것을 깨닫자 마음이 몹시 급해졌다. 그래서 오른손에 쥐고 있던 도끼를 왼손에 쥐고 구부리고 앉아 땅을 더듬기 시작했다. 주위의 산을 모조리 더듬으며 그는 자신의 머리를 찾으려 했다. 하늘을 찌를 듯한 거대한 나무와 기암괴석들도 형천의 손이 닿기만 하면 잘라지고 부서져 버렸다. 산에는 자욱한 흙먼지가 가득 차고 부러진 나무와 돌덩이들이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그 모습을 본 황제는 걱정되었다. 만일 형천이 자기의 머리를 찾아 다시 목에 붙이기라도 한다면 분명히 또 황제를 찾아올 것이어서 그야말로 골치 아픈 일이 될 것이었다. 그래서 황제는 보검을 들어 상양산의 가운데를 내리쳤다. 산이 반으로 갈라지니 깊은 골짜기가 생겼고 형천의 머리는 그 갈라진 틈으로 떨어져 버렸다. 그리고 그 산은 다시 붙어 하나가 되었다. 땅에 쪼그리고 앉아 자기의 잘려진 머리를 찾던 형천은 잠시 동작을 멈추었다. 그는 자신의 머리가 이미 땅속에 묻혀 다시는 찾을 수 없음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가만히 앉아 있던 그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한 손에는 도끼를, 한 손에는 길다란 방패를 들고 하늘을 향해 휘두르기 시작하였다. 눈앞에 있을 보이지 않는 적을 향해 죽음을 무릅쓴 결투를 계속하는 것이었다. 상반신의 옷을 벗은 형천은 자신의 젖꼭지를 눈으로, 커다란 배꼽을 입으로 삼았다. 비록 머리는 잘려졌으나, 그의 몸은 머리를 대신할 수 있었다. 끊임없는 전의에 불타는 거인의 위용은 그야말로 대단한 것이었다. 가슴에 달린 두 눈에서는 분노의 검은 불꽃이 타오르는 듯했고, 배에 달린 큰 입에서는 적을 저주하는 말들이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그는 결코 진 것이 아니었다. 그저 그 음모의 칼날에 우연히 머리가 잘려진 것뿐이었다. 그는 절대로 지지 않았다. 그에게는 여전히 싸울 수 있는 힘과 용기가 있었다. 비록 그의 적인 황제가 일찌감치 그곳을 떠나 하늘나라로 돌아가버렸을지라도, 머리가 잘리어진 형천은 여전히 상양산 부근에서 무기를 휘두르며 싸우고 있었다.
5. 황제의 신하들
치우를 이긴 황제에 대하여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만들어내었다. 황제와 그의 신하들이 발명해 낸 것들에 관한 전설도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황제가 수레를 만들어서 헌원씨(軒轅氏)라고 불린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고, 또 면류관을 만들었다든가 밥을 짓는 솥이나 시루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한 새나 짐승들이 다니는 것을 보고 그것들을 잡기 위해 함정을 팠으며, 백성들에게 집짓는 법을 가르쳐 주기도 했고, 공차기 놀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비록 이것들이 황제 자신이 한 일이라면, 그의 신하들이 발명해 내었다고 하는 것은 더욱 많다. 옹보는 절구를 만들었으며, 공고와 화적은 배를 만들었다고 한다. 휘는 활을, 모이는 화살을, 호조는 면류관을, 백여는 의상을, 이는 북을, 윤수는 거울을, 그리고 어측은 신발을, 무팽은 의료기술을, 무함은 쇠북을, 만들어 내었으며, 이 밖에도 영윤은 악률을, 대요는 갑자를, 이수는 산수를, 용성은 조력을, 저송창힐은 글을, 사황은 그림을 만들어 내었다고 하는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이렇게 보면 중국 문화의 서광은 황제의 시대에 이미 찬란하게 그 빛을 발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으며, 또한 황제는 많은 것들을 발명해 낸 고대의 만물박사였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황제의 시대에 가장 유명했던 인물은 역시 사황(史黃)의 칭호를 갖고 있던 창힐(蒼頡)이었다. 그는 황제의 신하였다고 한다. 그 역시 탄생부터 범상치 않았다. 그는 넓적한 용의 얼굴을 하고 있는데다가 네 개의 눈에서는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아직 어린 아이일 때부터 붓을 들고 여기저기 휘갈겼는데 가만히 바라보면 그것이 모두 나름대로의 의미를 지니고 있어서 사람들이 그런 그의 행동을 미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커가면서 그는 머리를 써서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한 답을 구하곤 했다. 그로서는 천지만물의 변화가 참으로 신기한 것이어서 연구해 보아야 할 대상이었으니, 그는 늘 머리를 들어 하늘의 별들을 살폈고 머리를 숙여 땅 위의 모든 것들을 바라보았다. 거북이 껍질의 무늬, 새들의 깃털에 그려진 문양, 산의 능선과 시냇물의 완만한 흐름, 그런 대자연의 모습들을 늘 자신의 손바닥에 그려보았고, 그런 과정을 거쳐 드디어 문자를 만들어내었다. 창힐이 문자를 발명해낸 것은 그야말로 보통 일이 아니었으니, 하늘과 땅이 놀란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늘에서는 좁쌀이 빗방울처럼 쏟아져 내렸고, 귀신도 놀라서 한밤중에 흐느껴 우는 소리를 내었다. 사람들이 이제 자신들의 본분인 농사짓는 일을 소홀히 여기고 송곳 따위로 글자를 새기는 것에만 몰두할 것이니,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먹을 양식이 없어지지 않겠는가? 그래서 우선 좁쌀비를 내리게 하여 앞으로 일어날 기근에 대비하려 함이었으니 그것이야말로 사람들에게 경고가 되는 것이었다. 또한 문자가 생기면 사람들은 그것을 사용해서 귀신들을 탄핵할 것이니, 귀신들 역시 울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문자의 발명은 그야말로 천지를 놀라게 하고 귀신들까지 겁먹게 하는 굉장한 사건이었음을 설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6. 황제의 승천
한편 황제는 치우와의 전쟁에서 이긴 뒤, 풍후(風后)와 상백(常伯) 두 신하에게 책과 보검을 짊어지게 하고서 표표히 각지를 떠돌아다니며 여행을 했을 뿐이었다. 황제는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면서도 한편으로는 사람들을 시켜 수산(首山)의 구리를 캐오게 하여 형산(荊山) 기슭으로 옮겨 거대한 솥을 주조하였다. 그것은 황제가 치우에게 이긴 기념으로 만든 것이었다. 그 솥을 만들 때에는 호랑이와 표범, 하늘의 날짐승들이 모여들어 화로와 그 불꽃을 지켰다. 이것은 상당히 거대한 솥으로 높이가 자그마치 한 길 세 자이며 용량 역시 곡식 열 섬을 담는 항아리보다 컸다. 솥의 둘레에는 구름을 뚫고 날아오르는 용의 모습이 조각되었다. 황제는 이 솥을 형산 기슭에 전시하고 그곳에서 솥의 완성을 축하하는 잔치를 벌였다. 잔치에는 하늘나라의 신들과 사면팔방의 백성들이 모두 참가했다. 그야말로 인간과 신들이 모두 모인 잔치로서 무척이나 떠들썩했다. 잔치가 한창 성대하게 진행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금빛 찬란한 비늘로 뒤덮힌 신룡 한 마리가 구름 속에서 몸뚱아리를 반쯤 내밀었다. 그리고 그의 턱수염을 솥 위까지 늘어뜨리는 것이었다. 황제는 자신을 데리고 하늘로 돌아가려는 사자가 왔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자신과 함께 인간세계에 내려왔던 70여 명의 천신들과 같이 구름 속으로 들어가 신룡의 등에 타고 천천히 높은 하늘로 올라갔다. 황제가 용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있던 인간세계의 국왕과 백성들은 황제와 함께 올라가려 했으나 모두가 다 용의 등에 올라 탈 수가 없었기 때문에 앞 다투어 용의 수염을 붙잡았다. 용의 수염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잡아당기는 통에 그만 땅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 때 수염에 걸려 있던 황제의 활도 함께 떨어졌다. 땅 위에 떨어져버린 인간세계의 국왕들과 백성들은 서로 황제의 활을 잡으려 하고 또 용의 수염도 가지려고 비명을 지르며 울고 야단들이었다. 후에 그 활은 오호(烏號)라 불렸고, 그것이 떨어진 곳은 정호(鼎胡)라고 하였다.
7. 오방대제
7.1 동방 복희
중앙의 신 황제와 남방의 신 신농이 대륙의 주도권을 두고 라이벌 관계였다면 동방, 서방, 북방을 다스렸던 신들은 누구인가? 먼저 동방을 다스렸던 신은 복희(伏犧)라고 부른다. 복희는 문헌에 따라 복희(宓犧) 혹은 포희라고 쓰여져 있기도 하다. 복희는 용의 몸에 사람 머리를 하고 있으며, 천상과 지상을 매개로 하는 무당과 같은 존재로 보인다.
중국의 먼 동쪽 변방에는 화서씨(華胥氏)라는 종족이 살고 있는 아름다운 나라가 있었다. 어느 날 이 나라의 왕녀가 뇌택(雷澤)이라는 숲에 놀러 갔다가 거인의 발자국을 발견하였다. 왕녀는 호기심에 큰 발자국에 자기의 작은 발을 살짝 디뎌보았다. 순간 그녀는 마치 감전이라도 된 듯이 몸에 무언가가 느껴졌다. 이후 그녀는 임신을 하였고 마침내 복희를 낳았다. 복희의 아버지라 할 뇌택의 거인은 뇌신(雷神)이었다. 뇌신은 용의 몸에 사람의 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그 혈통이라서 그런지 복희는 용의 몸 혹은 뱀의 몸에 사람의 머리였다고 한다. 복희는 인류를 위해 큰일을 많이 하였다고 한다. 끈으로 그물을 짜서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쳤고 그를 보좌하는 신인 구망(句芒)도 그물을 만들어 새 잡는 법을 가르쳤다. 복희는 농업을 발명한 신농에 비해 조금 일찍 등장한 수렵시대의 문화영웅이었다.
또한 복희의 가장 큰 공적은 팔괘(八卦)를 만든 것이다.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에 의하면 복희는 위로 하늘의 천체를, 아래로는 땅의 지형을 살피고 사물의 빼어난 모습을 고려하여 팔괘를 만들었는데 이것으로 신의 원리와 통하고 만물의 이치를 설명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걸 보면 복희는 천상과 지상을 매개하던 무당과 같은 존재가 아니었던가 싶다. 팔괘는 음과 양의 두 가지 기운을 표시하는 ‘--’과 ‘―’의 부호에 의해 하늘, 땅, 물, 불, 산, 천둥, 바람, 늪의 8가지 자연현상을 각기 다르게 표현한 것이다. 결국 팔괘는 우주 만물의 모든 현상을 상징하는 부호이다. 고대 중국인들은 팔괘가 배합되어 나타난 점괘를 읽으면 인간의 길흉화복을 모두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 복희의 자손은 주로 서남쪽의 파(巴)라는 종족이 되었다. 파국(巴國)의 시조 늠군이 복희의 후예이기 때문이다. 복희의 딸 복비(宓妃)는 낙수(洛水)를 건너다 물에 빠져 죽었는데 낙수의 여신으로 거듭 태어났다. 복희가 중국의 동쪽 먼 나라 출신이고 동방을 주관하는 신이라는 내용 때문에 한국의 일부 사람들은 복희가 고대 한국 출신이라고도 생각한다. 그러나 『산해경(山海經)』과 같은 오래된 문헌에서는 복희보다 오히려 신농과의 관련성을 시사하는 대목이 많다.
7.2 서방 소호
소호의 후손들 가운데에는 명신(名臣)의 후손들이 다수 배출되었다. 서방의 신 소호(少昊)의 탄생신화는 아주 문학적이다. 그 이야기는 4세기경 왕가(王嘉)라는 도인이 지은 소설집 『습유기(拾遺記)』에 실려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소호의 어머니는 황아(皇娥)라고 불렸다. 그녀는 천상의 선녀로서 밤에는 길쌈을 하고 낮에는 배를 타고 놀았다. 그 때 백제(白帝)의 아들이라고 하는 잘생긴 젊은이가 강에 와서 함께 어울렸다. 두 사람은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며 즐거움에 빠져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잊었다. 그들은 배 위에 나란히 앉아 거문고를 타고 놀았는데 황아가 거문고에 맞춰 노래를 부르면 청년이 답가를 하곤 했다. 그 후 황아는 소호를 낳게 되었다.
소호는 처음에는 동방의 신이었다. 『산해경(山海經)』에 의하면 그는 황제의 손자라고도 하는데 동해의 바깥 먼 곳에 그의 나라가 있었다고 한다. 그의 왕국은 온갖 새들이 다스렸다. 집비둘기, 수리, 뻐꾸기, 매, 산비둘기 등이 각기 나라 일을 맡아 다스렸다. 가령 수리는 용맹하여 군사 관계 일을 담당하고 산비둘기는 잘 울어서 조정의 언론을 담당하는 식이었다. 고대 중국의 동쪽 해안 지역에 거주하던 동이계(東夷系) 종족은 새를 토템으로 숭배하였는데 어떤 학자들은 소호의 새의 왕국 신화가 바로 이러한 동이계 종족의 새 토템 신앙을 반영하는 것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동방의 신이었던 소호는 언젠가부터 동방을 떠나 아들인 가을의 신 욕수와 더불어 서방을 다스리게 된다. 그는 서쪽으로 지는 해의 운행 상태를 주로 살폈다. 『산해경』에 의하면 서방의 장류산(長留山)이라는 곳에 소호의 궁궐이 있었다고 한다. 소호의 후손들 중에는 유명한 인물들이 많다. 아들 반(般)은 처음으로 활과 화살을 만들었으며 요(堯) 임금의 명신이었던 고요(皐陶), 우(禹) 임금의 치수(治水) 사업을 돕고 『산해경』을 지었다는 백익(伯益) 등도 소호의 후예라고 한다. 궁기(窮奇)라는 아들은 호랑이처럼 생겼는데 착한 사람을 벌 주고 나쁜 사람을 상 주는 이상한 행동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이 밖에 북방에 사는 외눈박이 일목국(一目國) 사람도 소호의 후예였다.
7.3 북방 전욱
북방의 신 전욱은 중앙의 신 황제(黃帝)의 증손자라고 한다. 그의 아버지 한류(韓流)는 모습이 괴상하였다. 길쭉한 머리에 작은 귀, 사람의 얼굴에 돼지 주둥이, 비늘 돋힌 몸에 통뼈로 된 다리, 돼지의 발을 하고 있었다 하니, 가히 엽기적인 생김새라 할 만하다. 전욱은 어려서 숙부인 소호의 양육을 받았다. 그는 거문고를 잘 탔다 한다. 그는 성장해서 북방의 신이 되었는데 다른 신들과는 달리 과격한 정책을 폈다. 우선 신하인 중(重)과 려(黎)를 시켜 하늘과 땅의 통로를 끊어 버렸다. 사람들이 하늘을 자유로이 왕래하던 통로를 단절시킨 것은 신과 인간 사이의 영역을 확실히 구분 지으려는 의도에서였다. 이 일 이후 전욱은 중으로 하여금 하늘의 일, 즉 신들의 일만을, 려로 하여금 땅의 일, 즉 백성들의 일만을 맡아보게 하였다.
또한 수신 공공(共工)과의 전쟁도 있다. 공공은 남방의 신 신농(神農)의 신하로서 황제에게 패한 주군의 원한을 갚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 이 싸움에서 비록 전욱은 황제의 편을 들어 승리했으나 전쟁의 여파로 지상은 크게 파괴되었다.
모든 일에 권위적이었던 전욱은 인간의 예법에도 간여하였다. 그는 심하게 남녀를 차별하였는데 길을 가다가 남자를 보고 피하지 않는 여자는 요기(妖氣)가 있다고 간주하여 붙잡아다가 네거리에서 푸닥거리를 치르게 했다. 전욱의 자손 역시 매우 많고 다양한 개성들을 지니고 있다. 아들 중에서 노동(老童)과 태자장금(太子長琴)은 모두 아버지를 닮아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다. 노동은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녔고 태자장금은 좋은 노래를 작곡했다 한다. 그러나 아버지의 과격하고 독한 성품을 이어받은 아들도 있어서 학질 귀신이 있는가 하면 도올이라는 흉악하기 그지없는 괴물도 있었다. 전욱에게는 또 궁선(窮蟬)이라는 아들도 있었는데 그는 부뚜막 신이 되어한 집안의 숭배를 받으며 살았다. 전욱의 후손들은 중국 변경 각지에 나라를 세웠다. 남방의 계우국, 서방의 숙사국(淑士國) 등이 그것이다.
7.4 오방신들의 위치변화
한편, 오방의 신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중국의 신들은 이름이나 역할, 기능 등이 고정되지 않고 중복되거나 자리바꿈을 한다. 홍수 남매혼 신화에서의 소년 복희는 신성한 동방의 신이 되는가 하면 서방의 신 소호는 동방의 신이기도 했고 북방의 신 전욱이 중앙의 신 황제의 노릇을 한다. 이러한 혼란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첫째로 고대의 중국 대륙에는 수많은 종족들이 함께 살고 있었기 때문에 일관된 신화계통이 존재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지배적인 종족이 바뀌면 그에 따라 신들의 지위도 바뀌게 마련이었다.
둘째로 고대의 중국은 거주 지역이 지금보다 훨씬 좁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영역이 넓어지자 방위 개념도 바뀌었다. 이에 따라 신들의 관할에도 변화가 생긴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리스 신화가 로마 제국에 수용되면서 신들의 성격이나 직능에 다소 변화가 생겼다. 그러나 중국 신화가 훨씬 변화의 폭이 큰 것은 그리스나 로마보다 더 많은 종족이 광대한 영역에서 다양한 계통의 신화를 갖고 각축했기 때문일 것이다.
7.5 재야사학자들이 주장하는 오방대제
재야사학자들이 추종하는 위서류(僞書類) 가운데 오제(五帝)에 관한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북방(北方)을 맡아 다스리는 자를 태수(太水)라 한다. 그를 흑제(黑帝)라 하며, 그 호는 현묘진원이라 한다. 그를 보좌하는 이를 환인(桓仁)이라 하고, 그는 소유(蘇留)의 하늘에 있다. 이를 대길상(大吉祥)이라 한다. 동방(東方)을 맡아 다스리는 자를 태목(太木)이라 한다. 그를 청제(靑帝)라 하며, 그 호는 동인호생(同仁好生)이라 한다. 그를 보좌함을 대웅(大雄)이라 하고, 그는 태평(太平)의 하늘에 있다. 이를 대광명(大光明)이라 한다. 남방(南方)을 맡아 다스리는 자를 태화(太火)라 한다. 그를 적제(赤帝)라 하며, 그 호는 성광보명(盛光普命)이라 한다. 그를 보좌함을 복희(伏犧)라 하고, 그는 원정(元精)의 하늘에 있다. 이를 대안정(大安定)이라 한다. 서방(西方)을 맡아 다스리는 자를 태금(太金)이라 한다. 그를 백제(白帝)라 하며, 그 호는 청정견허(淸淨堅虛)라 한다. 그를 보좌함을 치우(治尤)라 하고, 그는 구화(鉤和)의 하늘에 있다. 이를 대희리(大喜利)라 한다. 중방(中方)을 맡아 다스리는 것을 태토(太土)라 한다. 그를 황제(黃帝)라 하며, 그 호를 중상유구(中常悠久)라 한다, 그를 보좌함을 왕검(王儉)이라 하며, 그는 안덕(安德)의 하늘에 있다. 이를 대예락(大豫樂)이라 한다.
그리고 또한 다음과 같은 내용도 있다.
오방(五方)에는 각기 맡아 다스리는 것이 있다. 하늘에 있는 것을 임금(帝)이라 하고, 땅에 있는 것을 대장군(大將軍)이라 한다. 오방(五方)을 감독하고 살피는 것을, 천하 대장군(天下大將軍)이라 하고, 땅속을 감독하고 살피는 것을, 지하 여장군(地下女將軍)이라 한다. 용왕현구(龍王玄龜)는 선악을 주관하며, 주작적표는 명령을 주관하며, 청룡영산(靑龍靈山)은 곡식을 주관하며, 백호병신(白虎兵神)은 형벌을 주관하며, 황웅여신(黃熊女神)은 병을 주관 한다.<
참고문헌 및 도판
▒ 참고 문헌
위앤커 저, 전인초․김선자 역, 『중국신화전설』1, 민음사, 1999.
전인초 외, 『중국신화의 이해』, 아카넷, 2002.
이인택, 『중국신화의 세계』 풀빛, 2002.
선정규, 『중국신화연구 : 신화로 본 고대 중국인의 사유체계』, 고려원, 1996.
홍금주, 『중국신화의 단편성 연구』서울대 석사학위논문,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