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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제왕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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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제왕검

1. 개요

흑제왕검은 『한단고기(桓檀古記)』에 나오는 백제(白帝)로 이해할 수 있으며 북방을 관장한다. 『한단고기』는 한국 상고의 단군조선을 대통일 민족국가로 서술한 역사책으로 계연수가 편집하였으며 1911년 출간되었다.
『한단고기』에 나타난 우주관에서는 삼신(三神)을 천일(天一), 지일(地一),이라 하고 태일(太一)이라고 부른다. 이 중 천일은 조화를 주관하고 지일은 교화를 주관하며 태일은 치화(治化)를 주관한다. 또 삼신 밑의 오제(五帝)는 흑제(黑帝), 적제(赤帝), 청제(靑帝), 백제(白帝), 황제(黃帝)를 말한다. 오제는 동서남북과 중앙의 다섯 방위와 관련이 있다. 흑제는 생명이 다함을 주관하고, 적제는 빛과 열을 주관하고, 청제는 낳고 기르는 것을 주관하고, 백제는 성숙을 주관하며, 황제는 조화를 주관한다고 한다. 또 오령(五靈)은 태수(太水), 태화(太火), 태목(太木), 태금(太金), 태토(太土)라 한다. 태수는 크고 윤택하게 하며, 태화는 녹이고 익히며, 태목은 지어 이루고, 태금은 재량하여 자르며, 태토는 씨 뿌림을 주관한다고 한다.
삼신은 오제를 감독하고 명령하여 각각 넓히고 나타내게 하고, 오령으로 하여금 기르고 이루게 한다. 해가 뜨면 낮이라 하고 달이 뜨면 밤이라 하며, 별의 움직임을 측량하여 춥고 더운 것과 연대를 기록케 한다고 한다.
이 외에도 『한단고기』에는 다섯 가지 방위를 관장하는 신에 대한 언급이 있다. 즉 용왕현구(龍王玄龜)는 선악을 주관하며, 주작적표(朱鵲赤熛)는 목숨을 주관하여, 청룡령산(靑龍靈山)은 곡식을 주관하며, 백호병신(白虎兵神)은 형벌을 주관하여, 황웅여신(黃熊女神)은 병을 주관한다고 언급한다. 이 오방을 감독하고 살피는 자를 천하대장군이라 하고 지하를 감독하고 살피는 자를 지하여장군이라 한다.
또한 재야사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쥬신제국 즉 고조선의 벼슬 중에 오제(五帝)가 있는데 황제(黃帝-大加:中央)를 수석장관으로 하고 현제(玄帝/黑帝-加:北部), 적제(赤帝-狗加:南部), 청제(靑帝-馬加:東部), 백제(白帝-牛加:西部)가 그것이라고 한다. 삼칸(三汗) 아래 전국을 5부로 나누고 각 지방을 다스리게 하는 조직이다. 이들 5부의 대가들은 청(靑), 적(赤), 백(白), 현(玄)의 순서로 매 3년마다 그 임지를 바꾸어 맡는데, 매 12년이 되면 제위에서 은퇴하는 매우 선진적인 공화제도였다고 한다. 따라서 이 주장에 의하면 ꡔ한단고기ꡕ에서 치우천황이 헌원에게 수석장관에 해당하는 황제(黃帝)의 벼슬을 내려준 것은 배달국의 수석 제후국으로 대접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한다.

2. 북방을 관장하는 신들
중국과 한국의 신화와 전설에는 방위에 관련된 신들이 많이 등장한다. 흑제왕검도 그 중 한 가지이기에 북방을 관장하는 다른 신들을 살펴보는 일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2. 1 北의 관념
북쪽은 해가 뜨는 방향에 대하여 왼쪽 방향을 말한다. 지구 자전축의 한 끝을 십이지(十二支)의 자(子)라 하고, 그 반대방향의 한 끝을 오(午)라 하는데, 자가 가리키는 쪽을 북이라 하며, 오가 가리키는 남과는 반대방향이다. 북과 남을 잇는 선은 자오선이라 한다. 전설에서 북방의 신 전욱(頊: 高陽)은 감(坎)을 타고 권(權)을 잡아 겨울을 맡았다 해서 정북을 중심으로 45° 안의 방향을 감방(坎方) 또는 삭방(朔方)이라고 한다. 전욱은 오방신(五方神)의 하나로, 무신(巫神)으로 섬기며 현무(玄武)라고도 한다. 그 상징 색이 흑색이어서 북방을 지키는 장군도 흑제(黑帝)라 한다. 이에 연유하여 북방의 칠성(七星)을 통틀어 현무라 하기도 하는데, 조선시대에는 의장기나 대오방기(大五方旗) 중 북쪽(후문)에 세우는 기는 모두 검은 바탕의 현무기(玄武旗)였다.
한국 사람들은 북방에 귀신이 드나드는 귀문(鬼門)이 있다고 믿고, 또한 석가가 입멸(入滅)할 때 그 와법(臥法)이 북침(北枕)이었고 죽은 사람의 머리를 북쪽으로 뉘는 풍습 때문에 북쪽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북쪽에서 들어오는 빛은 대체로 변화가 적어 옛날부터 사찰 등에서는 유창(窓)이라 해서 북쪽에 창을 만들어 그 밑에 문궤(文机)를 놓았다. 오늘날에도 화가들의 아틀리에는 북쪽에서 빛이 들어오도록 꾸미는 예가 많다. 사시(四時)로서의 북은 겨울, 오행(五行)으로서의 북은 물(水)이 된다.
2. 2 중국 신화의 전욱고양
중국신화에서는 반고에 이어 가장 오래된 신화적 세계에 출현하는 세 제왕을 삼황(三皇)이라 부르는데, 누구를 삼황으로 하느냐는 여러 설이 분분하다.
일설에는 천황(天皇), 지황(地皇), 인황(人皇)으로 치는데 이는 물론 천지인 간의 성립을 의인적(擬人的)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합리적 신화다. 그 밖에 복희, 여와, 신농을 삼황으로 하는가 하면, 또 그 중 여와를 축융(祝融) 또는 수인(燧人)으로 대치하는 설도 있다. 『십팔사략(十八史略)』에는 복희, 신농, 황제를 여기에 해당시킨다.
삼황(三皇)에 이어서 천하를 다스리게 된 것은 소호, 전욱, 제곡, 요제, 순제의 오제(五帝)이다. 오제 중 소호는 황제의 아들, 전욱은 황제의 증손, 제곡은 소호의 아들, 요제 는 제곡의 아들, 순제는 전욱의 6세손이라고 하니까 오제는 아마도 황제일가(黃帝 一家)로 보인다. 또 그들이 오제로서 표창(表彰)되는 것은 그들 모두 하나같이 고조(高祖)인 황제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는 덕이 높은 제왕이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전욱고양에 대한 설명을 보면, “남정(南正-관명)의 중(重)에게 명하여 하늘을 관장케 하고 그로써 신(神)을 속하게 했다. 또한 화정(火正-관명)의 여(黎)에게 명하여 당을 관장케 하고 그로써 민(民)을 속하게 하여서 서로 침범하여 모독하지 못하게끔 했다”고 되어 있다.
이를 신화적으로 해석하면, 그 옛날 하늘과 땅은 반고(盤古)에 의해서 상하로 떠밀려져 멀어지긴 했으나, 그 후에도 천지간의 교통은 비교적 자유로웠다. 그러나 하늘과 땅, 그리고 신과 인간의 사이가 너무 헤이해서 우주질서의 확립을 위해서는 유해무익하다고 판단한 전욱은, 힘이 장사인 중(重)과 여(黎) 두 신에게 명하여 하늘과 땅을 힘으로 완전히 격리시켜서 신계질서를 구분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더 나아가 인간세계에 있어서의 계급 사회 및 봉건 질서의 형성도 시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고전을 보면, 그가 예법을 엄정하여 남존여비 제도를 강화했다는 대목도 있다.
2. 3 부도지의 황궁
황궁은 신라시대 인물인 박제상에 의해 지어졌다고 하나 위서(僞書)임에 확실한 『부도지(符都誌)』에 보이는 존재이다. 하지만 황궁의 근거가 『부도지』에서 추출되었고, 또 『부도지』는 나름대로 인류의 기원과 번성에 관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으므로, 『부도지』에 보이는 황궁의 존재에 대하여 언급이 필요하다. 『부도지』에 따르면, 황궁은 궁희에게서 단성생식을 통해 나온 존재이며, 한민족으로 대표되는 동이족의 조상으로 간주되고 있다. 황궁에 대한 내용을 『부도지』로부터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윽고 後天의 시대가 열렸다. 마고가 실달대성을 옮기어 天水의 지역에 떨어뜨리니, 실달대성의 기운이 상승하여 물기운 위를 뒤덮고, 그 결과 실달대성은 평평하게 열리어 물 가운데에서 땅을 여니, 땅과 바다가 나란히 뻗고 산과 강이 널리 뻗어 나갔다. 이에 물의 세계가 변화하여 땅이 이루어져 서로 겹치고 이동하여 돌기 시작하므로, 드디어 시간의 변화가 생겨나게 되었다. 그리고 氣와 火가 서로 섞여서 빛이 밤낮과 사계절을 나누고 초목과 금수를 길러내니 온 땅에 일이 많아지게 되었다.
이에 네 천인은 만물의 本音을 나누어서 다스리니 土를 맡은 자를 黃이라 하고 水를 맡은 자를 靑이라 하여 각기 궁(穹)을 지어서 그 직분을 지키고,(황궁과 청궁) 氣를 맡은 자를 白이라 하고 火를 맡은 자를 黑이라 하여 각기 소(巢)를 지어서 그 직분을 지키니,(백소와 흑소) 궁과 소를 각기 그 성씨로 삼았다. 이후로 氣와 火가 같이 밀어서 하늘에는 차갑고 어두운 기운이 없어지고 水와 土가 감응하여 땅에는 더러운 분비물이 생기지 않게 되었다. (『부도지』 3장)
이 때에 本音을 다스리는 자가 비록 여덟이었지만, 만물이 순식간에 생겼다가 없어지곤 하니 조절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마고가 마침내 네 천인과 네 천녀에게 명하여 옆구리를 열어서 생산하게 하므로 네 천인이 서로 네 천녀와 맺어서 각각 3남 3녀를 낳으니, 이가 땅에서 태어난 최초의 인류의 시조이다. 그 남녀가 서로 맺어서 몇 대를 지나는 사이에 족속이 각각 3천 명으로 불어났다. (『부도지』 4장)
백소씨족의 지소씨가 여러 사람과 함께 젖의 샘에 젖을 마시러 갔는데, 사람은 많고 샘은 적으므로 사람들에게 양보하고 자신은 마시지 못하기를 다섯 차례나 하였다. 돌아와서 배고픔에 어지러워 쓰러졌다. 귓속에서 미혹하는 소리가 울려서 넝쿨진 포도의 맛을 보게 되었다. 그 맛이 좋았으므로 드디어 여러 사람들이 모두 먹게 되었다. (『부도지』 5장)
이에 열매를 먹는 사람들은 모두 치아가 생기고 그 침이 뱀의 독과 같이 되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악해져서 하늘의 성품을 잃게 되었다. (『부도지』 6장)
이에 사람들이 원망하고 나무라니 지소씨가 크게 부끄러워 얼굴을 붉어져서 그 무리들을 이끌고 성을 멀리 나가 숨어버렸다. (『부도지』 7장)
이후에 성을 나간 사람들 중 잘못을 후회한 자들이 다시 젖의 샘에서 젖을 먹고자 하여 샘을 파헤치니, 샘의 근원이 사방으로 유출되어 샘이 파괴되었다. 그리고 즉시 굳어버려 더 이상 먹을 수 없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모든 사람들이 동요하여 풀과 과실을 다투어 취하므로 혼탁이 극도에 달했다.
이에 황궁씨가 대표자로서 몸을 스스로 묶고 마고의 앞에 사죄하여 스스로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고 근본을 회복할 것을 서약하였다. 물러나서 여러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청정함이 깨어지고 우리의 보금자리가 장차 위험하게 되었으니, 이 일을 어찌할 것인가?”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천인들이 나누어살기로 의견을 모으고 황궁씨가 천부(天符)를 나누어 신표로 삼고 칡을 캐서 식량으로 삼을 것을 가르친 후에 사방으로 나누어 살 것을 명하였다. 이에 사람들은 사방으로 나누어살기로 결정하고 청궁씨는 그 무리를 이끌고 동쪽의 문으로 나가 운해주(雲海州)로 가고, 백소씨도 무리를 이끌고 서쪽의 문으로 나가 월식주(月息州)로 가고, 흑소씨는 남쪽의 문으로 나가 성생주(星生州)로 가며, 황궁씨도 북쪽의 문으로 나가 천산주(天山州)로 떠났다. 그 중 천산주는 매우 춥고 험한 땅이었다. 이는 황궁씨가 자진해서 어려움을 취하여 고통을 이겨내고자 함이었다. (『부도지』 8장)
분거한 여러 족속이 각 지역에 도달한 지 어느덧 천 년이 되었다. 예전에 성을 먼저 나간 사람들의 후예들이 각지에 잡거하면서 그 세력이 심히 강성하였다. 그래서 근본을 거의 망각하고 성격이 몹시 흉악하게 변하여 분거한 족속들이 새로 오는 것을 보면 무리를 지어 추적해서 그들을 해쳤다. 결국 여러 족속이 정착해서 안주하니 바다와 산으로 막혀서 왕래가 거의 단절되었다. (『부도지』 9장)
황궁씨가 천산주에 도달하여 미혹을 해소하며 근본을 회복할 것을 서약하고 뭇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수양할 것에 힘쓰게 하였다. 그리고 큰 아들 유인(有人)씨에게 명하여 인간세상의 일을 밝히도록 하고 둘째와 셋째로 하여금 각 지역을 순방하게 하였다. 마침내 황궁씨가 천산으로 들어가 돌로 변하고, 이에 유인씨가 계승하였다. (부도지 10장)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부도지』와 같은 재야사학계에서 신봉되는 몇몇 위서류(僞書類)들은 황궁의 후손으로 유인, 그리고 유인의 후손으로 환인, 환웅, 단군, 임검 등을 설정하여 현재 한민족과 계보로 연결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부도지』에서도 11장부터는 유인 이하의 존재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황궁, 청궁, 백소, 흑소 사이의 관계 역시 『부도지』와 같은 위서류에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비록 학계에서는 여전히 이러한 견해를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이를 정확한 역사의 기록이라기보다는 고래로 전해져 내려온 민간전승에서 나타나는 창세신화류와 같이 인류의 기원에 대한 독특한 하나의 견해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에 아래의 내용은 부도지의 내용에 기반하여 황궁, 청궁, 백소, 흑소 등에 대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부도지에 따르면, 궁희와 소희에게서 나온 네 천인은 만물의 근본을 나누어서 다스리니, 궁희에게서 나온 두 천인 가운데 土를 맡은 자는 황(黃)이라 하고(황궁) 수(水)를 맡은 자는 청(靑)이라 하였으며,(청궁) 소희에게서 나온 두 천인 가운데 기(氣)를 맡은 자는 백(白)이라 하고,(백소) 화(火)를 맡은 자를 흑(黑)이라 하여(흑소) 각기 그 성씨로 삼았다고 한다. 또한 마고의 출현 이래로 그 이후 사건의 전개는 모두 태극사상이 그 핵심을 이룬다고 하여. 우선 마고가 있었으며, 태극이 음양을 생성하듯 마고가 궁희와 소희를 낳은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음양이 태극과 분리되어서 존재할 수 없듯이 마고와 궁희, 소희도 항상 함께 존재하였다고 한다.
백소씨족의 일원인 지소가 포도열매를 먹게된 이후, 현재의 인류보다 한 차원 높이 존재하던 신적 존재였던 인류의 선조는 다른 생명을 먹음으로 말미암아 피조물과 같이 되었으며, 지구는 약육강식과 적자생존 및 약탈경제의 현장이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 몸도 그렇게 변하여 음식을 먹지 않고는 단 몇 일도 생명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이후 마고대성은 극심한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지소는 파미르의 북쪽, 즉 시베리아 지방으로 갔으며, 바이킹이나 슬라브 족과 같은 북방 백인 족속의 선조가 되었다. 한편 황궁씨는 그 족속을 이끌고 가서 정착한 곳이 천산지역이었다. 그리고 중국 본토의 황하유역과 양자강 일대에는 청궁씨가 이주하였다.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의 코카서스 지역에는 백소씨족이 정착하였으며,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북쪽 문명도 역시 백소씨에 의해 주도되었다. 파미르의 남쪽 인도 북부의 인더스 평원지대에는 흑소씨족이 정착하였으며, 그들은 인더스 문명을 건설하였다. 메소포타미아의 남쪽과 이집트에 건설된 문명 역시 흑소씨에 의해 이룩된 것이다. 따라서 흑소씨족의 후예는 아시아 남부에서 아프리카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에 거대한 문명권을 형성하였다. 그리고 백소씨족의 후예와 메소포타미아 일대에서 충돌하기도 하였다.
결국, 『부도지』에서는 황궁, 청궁, 백소, 흑소의 존재를 현존 인류의 인종적 구분과 연결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구분의 기초 위에 인류 최초의 문명 발상이 이루어졌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 중에서 황궁을 현재 한민족의 직계 선조로서 언급하고 있어 흥미롭다.
2. 3 불교의 다문천왕
불교에서 북쪽을 지키는 다문천왕은 달리 비사문천(毘沙門天)이라고도 한다. 범어로는 "Vaisravana"라고 한다. "Vai"는 두루, "Sravana"는 듣는다는 뜻으로 두루 많이 듣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수미산 중턱 북쪽의 수정타(水精타)에 머물면서 언제나 부처의 도량을 지키면서 설법을 듣는다고 하여 '다문'이란 이름이 붙었다. 그가 맡은 역할은 암흑세계의 사물을 관리하는 것이며, 불교에 귀의한 뒤 한 때 광명신(光明神)이 되었다가 다시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수미산' 북쪽을 지키는 '천왕'이 되었다고 한다. 몸은 흑색 계통이며 왼손으로 비파를 잡고 오른손가락으로 비파의 줄을 퉁기는 모습을 취하고 있다. 백옥 같은 이빨을 드러낸 채 환한 미소를 띠면서 비파를 타고 있는 모습은 마치 진리를 다문(多聞)함으로써 샘솟는 법열(法悅)을 모든 중생에게 나누어 주고자 하는 의지가 깃들어 있는 듯하다.
다문천왕은 권속으로 야차, 나찰을 부리는데, 야차는 행동이 민첩하고 가벼우며 음악과 환락, 음식, 오락, 바람을 주관하며 숲 속이나 묘지, 골짜기에 산다고 하며, 나찰은 '두려운 존재'라는 뜻으로 혈육을 먹고 탐내는 존재라고 한다. 다문천왕은 불교에 흡수되면서 야차와 나찰을 부하로 부리면서 부처님의 설법을 가장 많이 듣고 불법을 수호하는 존재로 변화된 것이다.
다문천왕의 지물에 대해 말하자면, 『다라니집경(陀羅尼集經)』에는 왼손에 창을 잡아 땅을 짚고 오른손에는 불탑을 든다고 한다. 『일자불정륜경(一字佛頂輪經)』에는 왼손에 창, 오른손에 금강저를 든다고 하고, 『약사여래유리광칠불본원공덕경(藥師瑠璃光七佛本願功德經)』에는 왼손에 막대, 오른손에 탑을 든다고 하며, 어둠 속을 방황하는 중생을 제도한다는 뜻으로 얼굴이 검은색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참고문헌 및 도판
▒ 참고 문헌
강우방,「四天王寺址出土彩釉四天王浮彫像의 復原的考察」,『美術資料』25, 1979.
김은수 번역 및 주해, 『부도지』, 한문화, 2002.
문명대,「新羅四天王像의 硏究」,『佛敎美術』 5, 1980.
노명신,「朝鮮後期 四天王像에 대한 考察」,『美術史學硏究』 202, 1994.
______,「朝鮮後期 四天王圖의 考察」,『講座美術史』 7, 1995.
임승국 번역 및 주해, 『한단고기』, 정신세계사,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