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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불교사

한국의 불교사를 보면, 불교가 처음으로 전래된 것은 기원 372년 고구려 소수림왕 때 전진(前秦)의 스님 순도(順道)가 불상과 경문(經文)을 가지고 온 시기라고 한다. 삼국시대에 중국에서 전래된 불교는 한국의 천신숭배나 샤머니즘과 융화하며 발전하여 국가로서의 기틀을 다지는 데 이바지하였다.

한국의 불교사를 보면, 불교가 처음으로 전래된 것은 기원 372년 고구려 소수림왕 때 전진(前秦)의 스님 순도(順道)가 불상과 경문(經文)을 가지고 온 시기라고 한다. 삼국시대에 중국에서 전래된 불교는 한국의 천신숭배나 샤머니즘과 같은 토착신앙과 융화하며 발전하여 국가로서의 기틀을 다지는 데 이바지 하였다. 또한 많은 불교학자들이 배출되어 고구려의 삼론학(三論學)을 비롯하여 화엄(華嚴), 법화(法華), 열반(涅槃) 등의 교학과 경전연구가 성행하였다.

한국불교는 통일신라시시기에 이르러 화쟁사상의 원효와 화엄종(華嚴宗)의 시조인 의상(義湘, 625-702) 그리고 원광(圓光, 542-640), 혜초(慧超, 704-787) 등을 배출하여 불교사상 . 문화 . 미술의 황금기를 맞는다. 또 국제적으로 인도, 중국, 일본 등과 더욱 활발히 교류하여 통일신라 후기 우리나라 선종의 기초를 이룬 구산선문(九山禪門)이 성립되었고, 이후 선(禪)과 교(敎)가 융화 발전하여 한국불교의 기반을 다졌다.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고 고려를 세우는 데에는 구산선문과 호족세력이 절대적인 도움을 주었다. 국교(國敎)로서 고려 초의 불교는 개국세력인 선종(禪宗)과 의천(義天, 1055-1101)의 천태종(天台宗)이 대립하며 발전하다가, 무신의 난 이후에는 보조국사 지눌을 중심으로 정혜쌍수의 결사가 유행하여 불교의 새로운 수행기풍을 진작했다. 이는 고려 말 중국 임제종(臨濟宗)의 선풍을 도입한 태고 보우(太古 普愚, 1301-1382)의 간화선풍과 더불어 조선 이래 한국불교의 주류를 형성했으며, 이후 조계종 성립의 토대를 이룩한다. 고려는 대장경을 판각하여 국난극복의 의지를 표하였는데, 이는 거란과 몽골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한 발원이 표현이기도 하지만, 불교국가로서 고려의 위엄을 드높이기 위한 큰 불사이기도 했다. 더 나아가 고려는 목판 및 금속활자 인쇄술을 이용하여 『백운화상초록 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 佛祖直指心體要節), 『자비도량참법집해(慈悲道場懺法集解)』등을 인쇄하였는데, 이 가운데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인쇄된 『백운화상초록 불조직지심체요절』은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본으로 유명하다.

귀족불교의 한 소산인 불교미술 가운데 특히 관음보살상 불화(佛畵)가 발달되었는데, 이는 세계 미술사상 가장 아름다운 작품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성리학(性理學)의 등장은 고려 말의 부패한 귀족불교를 비판하기 시작했고, 억불숭유(抑佛崇儒)를 기조로 하는 조선(朝鮮)이 1392년 건국되기에 이른다. 세종대에 불교의 11개 종단은 선과 교의 양종으로 축소되었다. 세조는 재위 7년(1461) 간경도감(刊經都監)을 설치하여 법화경, 능엄경, 금강경 등을 언해본으로 출간하며 승려의 권익도 보호하였으며, 16세기 명종조에 불교는 문정왕후의 후원아래 일시적 중흥을 누리다가, 임진왜란(1592-1599)에서 승병(僧兵)들의 대활약으로 잠시 나라의 인정을 받았으나, 이내 왕실의 능침관리, 산성의 수비(番僧), 심지어 각종 잡역(雜役)과 양반들의 학대를 받는 등 수행자 집단으로서 불교는 겨우 명맥만 유지해나갈 뿐이었다. 조선 중 후기에는 청허 휴정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선맥(禪脈)이 이어져 내려왔으며, 화엄을 중심으로 하는 강맥(講脈), 그리고 이름 없는 승려들과 신도들이 중심이 된 대중 신앙이 조선불교를 지탱해 왔다. 억불숭유가 조선의 정책기조였지만, 불경언해의 보급이나 왕실의 원찰지정, 화엄사를 비롯한 해인사의 중창에 국가가 자금을 조달해 준 것을 보면, 겉으로는 유학을 숭상하지만 속으로는 불교적 심성을 유지해온 외유내불(外儒內佛)의 왕실불교와 함께, 불교 소설, 불교민요, 승무 등이 대중에 성행하여 한국의 민속 문화로 자리 잡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개화기를 거쳐 조선의 몰락과 함께 일제에게 주권을 빼앗기면서, 한국의 불교는 또 한 번의 시련을 맞는다. 일제는 사찰령(1911)을 내려 한국의 불교를 통제하고 일본의 각 불교종파의 조선 포교를 지원하면서 조선불교의 맥을 끊으려 하였으나, 한국불교의 수행가풍과 신행전통은 끊임없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백용성.한용운 스님 등이 독립운동을 주도하여 민족의 독립정신을 크게 고취시키는 데에 기여하였다. 한국불교는 일제강점기에 사찰령(寺刹令)에 따라 31개 본사와 1,200개의 말사(末寺)로 구분되었고, 3.1운동 때는 많은 승려가 가담하였다. 8.15광복 후 전국불교대회를 열어 교구제(敎區制)를 정하고 중앙에는 총무원, 각 도에는 교무원을 설치, 종헌(宗憲)에 따라 조직을 강화하였다.

6.25전쟁 후에는 파괴된 100여 개의 사찰을 수축하는 한편 불교의 대중화운동을 전개하였고, 고아원의 설립, 동국대학 .해인대학 .경기대학과 해동(海東).용인(龍仁) 등 10여 고등학교 및 20여 개의 중학교를 운영, 문화사업에도 기여하였다. 1954년 이래 비구(比丘).대처(帶妻) 두 파의 분쟁으로 분열된 후 여러 개의 종단으로 갈라졌다. 현재 교육부에 등록된 종파는 조계종을 비롯하여 태고종(太古宗).법화종(法華宗).미륵종(彌勒宗).법상종.보문종(普門宗).일승종(一乘宗).용화종(龍華宗).불입종(佛入宗).원효종(元曉宗).천태종.화엄종.정토종(淨土宗).진각종(眞覺宗).총화종(總和宗).진언종(眞言宗).천화불교(天華佛敎).한국불교법화종 등 30여 종단이 있다. 사찰수는 5,700여 개소이며, 승려가 2만여 명, 신도수 1,300만여 명이라고 알려져 있다. 《불교신문》《현대불교신문》《법보신문》 을 비롯하여 각 종파 .단체들에서 정기간행물도 100여 종이 나와서 한국불교의 중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