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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려가 되는 과정

승려의 삶은 어떤 권위나 조직의 힘에 의한 직무가 주어지는 삶이 아니다.
그들은 남이 시키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초월하여 열반이라는 새로운 세계로 갈 것을 목표로 삼고 수행하는 삶을 산다. 그래서 불교의 승려는 각자가 스스로 위대한 주체가 되기를 염원한다.

손에 잡히는 것 없이 그저 까칠까칠하기만 한 머리를 잘도 깎아 내리는 것을 보면, 입산하면서부터 줄곧 해 오던 손놀림이라 그런 모양이다. 삭발하는 동안에 막 출가하여 긴 머리카락을 툭툭 잘라 내던 시절을 되돌아보며 아련한 기분에 피식 웃는 스님네도 있겠고, 대야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보름 동안의 수행을 읽는 도반도 있으리라.

삭발을 할 때에 솜씨가 좋다는 말을 들으려면 머리카락을 얼굴에 묻히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머리카락이 억센 스님도 있고, 부드러운 스님도 있는데, 이렇게 저마다 다른 모발의 성질에 따라 칼의 높이를 잘 조절할 줄 알아야 풋내기 햇중이란 소리를 듣지 않는다.
어릴적 밤송이처럼 자란 머리를 빡빡 깎으면 허옇게 비듬이 드러나곤 했는데, 게으름이 비듬으로 드러난 것 같아서 부끄럽던 그 때처럼, 지금도 나태와 방일의 흔적이 머리에 드러날 때면 귓불이 뜨거워 온다. 수행자에게 머리는 자기 수행의 거울이니, 머리를 통해 심전을 일구는 모습도 조금쯤은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날마다 매만져야 하는 부지런함이 따라주어야 하고 또 유행과 계절의 변화에 따라 가끔씩 바꾸어 주면서 신경을 쓰는 것이 머리모양이다. 어떤 사람들은 머리를 깎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곧잘 하지만 대부분 삶의 넋두리로 그치고 마는 것은 머리처럼 송송한 세상의 인연에 얽혀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이 왕궁을 나와 처음으로 하신 일이 정성스레 가꾸어 오던 머리를 자르는 일이었다. 그래서 불문에 귀의하는 첫 번째 의식은 삭발에서부터 시작된다. 삭발은 먼저 세연을 거두는 작업이고, 번뇌와 집착을 뿌리로 하여 자라난 거친 무명초를 잘라내는 법도이다. 지금껏 길들여진 세속의 습관을 버리고 출가의 삶을 시작하는 발의 심장이다.
끊임없이 피어나는 망상은 마음의 잡초, 때도 없이 불쑥불쑥 고개를 내민다. 날마다 조금씩 자라나는 머리카락처럼 어느새 마음을 까맣게 차지하고 만다.


스즈끼 선사의 <선심초심(禪心初心)>에 이런 말이 있다. “마음에 지닌 잡초에 오히려 감사해야 한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여러분의 수행을 풍성하게 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번뇌와 장애가 많을수록 공부가 잘 된다는 뜻이다. 역설적이지만 옳은 말이다.
무상한 세월 앞에서는 젊음도 여지없이 무너져 간다는 사실을 삭발하는 날에 한번쯤 아찔하게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방종과 안일에서 벗어나 늘 깨어 있도록 칼날을 더욱 예리하게 세울 일이다.
종종 삭발한 머리에서 내 수행을 본다. 그래서 출가 본분사를 잊고 지낼 때면 소리없이 자괴심이 일기도 한다. 수행자로서 머리를 깎는 일은 자신을 바로 챙기는 일이다. 그러므로 수행자의 머리가 까맣게 자라 있다는 건 그리 마음 개운한 일이 아니다.
삭발은 놓을 수 없는 수행의 한 부분이며 늘 챙겨야 하는 화두 같은 것이다. 얼렁뚱땅 살고 싶을 때마다 한번씩 머리를 만지면서 다짐하고 나를 일깨운다.

“그렇지, 나는 욕락을 버리고 출가한 사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