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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려의 일상생활

붓다가 되기 위해 수행하는 사문들은 석가모니 당시부터 반드시 공동체 생활을 하였는데, 그 공동체의 이름을 'samgha'라고 불렀다. 'samgha'라는 말은 당시 정치적으로는 '공화국'이라는 의미로, 경제적으로는 '조합'이라는 의미로 사용 되었다.

붓다가 되기 위해 수행하는 사문들은 석가모니 당시부터 반드시 공동체 생활을 하였는데, 그 공동체의 이름을 ‘samgha’ 라고 불렀다. ‘samgha’라는 말은 당시 정치적으로는 ‘공화국’이라는 의미로, 경제적으로는 ‘조합’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니, 이 용어를 사용한 것을 보면 석가모니는 수행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결속력이 굳은 공동체생활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samgha’는 ‘승가(僧伽)’로 음역하였는데, 중국에서는 ‘붓다(佛陀)’를 ‘불(佛)’로 약칭하듯이 한자의 특성상 한 글자인 ‘승(僧)’으로 약칭하였다. 그러다보니 한자문화권에서는 ‘僧’이라는 글자에 ‘사람인 변’이 있는 관계로 수행자 한 사람 한 사람을 가리키는 의미로도 쓰였다. ‘승려(僧侶)’ 또는 ‘승도(僧徒)’라는 낱말은 이 ‘僧’을 이용하여 다시 중국식 조어법(造語法)으로 만든 낱말이다. 또 비구를 ‘僧’으로, 비구니를 ‘尼’로 약칭하기도 하였다. 한편 우리나라의 ‘스님’이란 낱말은 ‘스승님’의 준말로서, 승려를 인간과 천상계 중생들의 스승으로 여기는 불교의 정신을 잘 표현한 순우리말이다.

승려의 일상생활은 크게 자신이 붓다가 되기 위해 수행을 하는 삶과 남을 붓다가 되도록 도와주기 위해 교화를 하는 삶 즉, 자각각타(自覺覺他)의 삶으로 나뉜다. 그리고 이 두 방면의 삶은 공동체생활을 통해 구현해 나가는 것을 기본으로 삼았다. 따라서 공동체 승가에는 여러 가지 규칙이 필요하였다. 율장(律藏)이라고 부르는 승단의 계율집에는 불교의 이념을 구현하는 데 필요한 계율도 많이 있지만 공동체생활에 필요한 생활규범 또한 많이 들어 있다.

승려의 일상생활은 인도에서부터 내려오는 승가의 전통적인 관습과 그것에 관계된 율장이라는 기록에 의하여 수천 년간 커다란 변화 없이 지속하였다. 그런데 인도 승가의 규율과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승가의 규율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자연환경이 다르고 그에 따른 문화적 토양도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숲을 중심으로 기거하는 인도의 승가와는 달리 중국과 한국의 승가는 대규모의 집을 짓고 살았기 때문에 일상생활의 규범 또한 인도의 그것과는 어느 정도 다를 수밖에 없다. 탁발에만 의지하여 끼니를 해결하던 인도불교의 방식과는 달리 중국불교는 세속화한 거대권력으로 군림한 시절도 잦았고, 선종이 중국불교의 대종을 이루면서 부터는 승가가 탁발에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력으로 노동을 하면서 의식주를 해결하도록 권하기도 했다. 종단에 따라서는 사원이 여러 가지 사업을 경영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중국불교에서는 인도에서부터 전해지던 규범 위에 그것을 현실적으로 재해석하여 적용한 규범이 더해져서 일상생활의 규칙이 만들어졌고, 한국불교의 경우는 다시 중국불교의 규범을 바탕으로 했지만 역시 독특한 규범과 관습을 지니기도 한다. 다만 중국의 불교는 근대에 이르러 정치적 환경 탓으로 피폐해진 나머지 전통적인 생활규범은 물론 수행방법조차 사라지자 최근 중국불교의 승려들은 우리나라 사찰에 와서 수행법과 일상규범을 배워가는 상황이다.

현재 남아 있는 중국의 규범집 가운데 가장 오래 된 것으로는 송(宋) 숭녕(崇寧)2년(1103년)에 종색(宗) 스님이 간행한 선원청규禪苑淸規가 있다. 이것은 백장회해(百丈懷海 749-814) 스님이 만든 선종사찰의 청규를 바탕으로 하고 그 위에 다른 절들에서 행해지던 청규들을 모아서 간행한 것인데, 수계(受戒) 호계(護戒) 상당(上堂) 염송(念誦) 등 선종 승려의 기본일과에서 시작하여 감원(監院) 유나(維那) 전좌(典座) 수좌(首座) 지객(知客) 고두(庫頭) 욕주(浴主) 등 대중생활에 필수적인 각종 직역(職役)이 구분되어 있고, 여기에다 여러 가지 의례문(儀禮文)을 싣는 등 모두 89조로 되어 있다. 이 규범집의 내용은 중국불교의 큰 흐름이 선종으로 확립된 다음 만들어진 것이고, 우리나라의 불교 또한 고려조 이후 선종을 표방하였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이 청규를 기본으로 삼아서 내려왔다. 요즘 조계종의 일상생활에 관계된 의례는 정화운동이 일어난 다음에 정착된 것이 대부분인데, 기본적으로는 조선시대의 전통의례를 따르고 있다. 그 하나의 예로 ‘입측의례(入?儀禮)’를 들어보면 아래와 같다.

입측의례(入?儀禮)의 예를 보면 아래와 같다.

입측의례란 측간(?間), 즉 ‘근심을 푸는 곳’이라는 뜻으로 해우소(解憂所)라 불기우기도 하는 변소나 뒷간에 출입할 때의 의례를 말한다. 해우소는 또한 정랑(淨廊), 즉 ‘깨끗한 복도’라 불리기도 하는데, 옛 사원구조에서 정랑은 청결한 회랑(回廊: 복도)의 일부분에 위치하였기 때문이다. 지금의 해우소는 대부분이 절의 외진 곳에 배치되어 있다.
변소, 즉 해우소는 침묵을 지켜야 하는 세 곳이라는 뜻의 삼묵당 가운데 하나에 속한다. 승당(僧堂)과 욕실(浴室), 변소(便所)를 삼묵당이라 하는데, 여기서는 일체 언행을 삼가며 침묵 속에 자신의 행위와 위의를 관(觀)하라는 것이다. 해우소 건물로는 승주 선암사의 ‘뒤?’이 유명하다.

한편 교계신학비구행호율의에서는 “대소변을 보려고 할 때는 마땅히 제 때에 바로 가야 한다. 때에 임해서 위의[則]를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설령 대소변을 볼 경우에도 가사(袈裟)를 몸에 가까이해야 한다”는 등 상측법(上?法) 항목에서는 무려 20개 내용으로서 변소에서의 행법을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이에 청규 입중일용(入衆日用) 역시 입측의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행하고 있는 바, 변소에 갈 때 오조가사(五條袈裟)를 입어야 하며, 신발을 갈아 신고 일을 마친 후 산가지를 사용해 밑을 닦고, 왼손 작은 두 손가락으로 닦고 난 후 물로 씻고, 재와 흙으로 손을 문질러 씻은 다음 세제를 사용해 손을 씻어야 할 것 등의 위의를 말하고 있다.

한편, 해우소에서 일을 보는 데는 다음의 진언을 외움으로써 입중수지(入衆須知)에서는 “(뒷간에 가는 자는) 모름지기 입측(入?)ㆍ세정(洗淨) 등 진언(眞言)을 외우라.”고 규정하고 있다. 변소에 들어설 때 ‘입측진언’을, 손으로 변을 씻을 때 ‘세정진언’을, 물로 손을 씻을 때 ‘세수진언’을, 씻은 물을 버릴 때 ‘거예진언’을, 변소에서 나올 때 ‘정신진언’을 외운다. 현재 위 규범에 따라 총림(叢林) 등에서는 재래식 해우소에 갈아 신을 신발이며 재[灰] 등을 마련해 놓기도 하는데, 변소를 출입할 때 석문의범의 규범에 따른 다음과 같은 ‘입측오주(入?五呪)’ 및 ‘입측게(入?偈)’를 외우게끔 하고 있다.

“입측진언(入?眞言): 옴 하로다야 사바하
세정진언(洗淨眞言): 옴 하나마리제 사바하
세수진언(洗手眞言): 옴 주가라야 사바하
거예진언(去穢眞言): 옴 시리예바혜 사바하
정신진언(淨身眞言): 옴 바아라 놔가닥 사바하
무병수진언(無甁水眞言): 적엽연화지(摘葉蓮華枝) 환동해상파(還同海上波) 차처무병수(此處無甁水) 청정 유리계(淸淨琉璃界) 옴 정체혜체 사바하

대소변시(大小便時) 당원중생(當願衆生)
기탐진치(棄貪瞋癡) 견제죄업(?除罪業)”

한편 위 석문의범의 ‘입측오주’와는 달리 근래에는 다음과 같은 한글 입측의례문(文)이 사용되기도 한다. 입측 오주와 입측게의 내용은 스님들이 대소변을 보는 일도, 좌선이나 염불과 같이, 자신의 해탈을 위한 수행과정이며, 나아가 온 누리의 모든 생명체의 해탈을 기원하는 대자비심의 표현임을 보여주고 있다.

입측진언(入?眞言)(화장실에 들어가서)
버리고 또 버리니 큰 기쁨일세
탐ㆍ진ㆍ치 어둔 마음 이같이 버려
한 조각 구름마저 없어졌을 때
서쪽에 둥근 달빛 미소지으리
옴 하로다야 사바하(세 번)

대소변을 보며
"대소변시(大小便時) 당원중생(當願衆生)
기탐진치(棄貪瞋癡) 견제죄업(?除罪業)"
‘대소변 시에
오직 원하옵건대, 모든 중생들
탐ㆍ진ㆍ치 삼독(三毒)을 버리고
죄업을 맑혀 제거케 하여지이다.’

세정진언(洗淨眞言)(뒷물하면서)
옴 하나마리제 사바하(세 번)

세수진언(洗手眞言)(손을 씻으면서)
옴 주가라야 사바하(세 번)

거예진언(去穢眞言)(더러움을 버리고)
옴 시리예바혜 사바하(세 번)

정신진언(淨身眞言)(몸이 깨끗해지고)
옴 바아라 놔가닥 사바하(세 번)

그러면 어느 절에서나 대개 비슷한 우리나라 스님들의 일상생활을 살펴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