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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와 다구

차가 발견된 뒤 사람들은 갖가지 궁리를 하게 되었다. 이미 2천 년 전 행다의 시원을 연 왕포의 동약에도 다기를 갖추고 차를 달이고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것이 바로 행다의 출발이었다. 이를 행다법이라고도 하는데 중국은 일찍이 차우라는 법도가 다예(茶藝)로까지 발전했다.

다구란 차를 끓여 마시는데 필요한 여러 가지 기구(器具)를 말한다. 다구는 차를 맛있게 우려내기 위한 실용적인 것일 뿐 아니라 차생활의 오묘한 운취를 더하게 하고 차실의 분위기를 고아하게 해주는 예술품이기도 하다. 때문에 똑같은 차라 할지라도 다구에 따라 맛과 향 그리고 멋이 전혀 달라진다. 우리나라 시대별로 다구의 변천과정을 약술해 보면, 제다법(製茶法)과 전다법(煎茶法)의 변천에 따라 다구도 시대별로 큰 차이를 보인다. 신라에서는 국산차와 당나라의 떡차[餠茶]를 마셨으므로 전다도구(煎茶道具)도 당나라 육우(陸羽)의 《다경(茶經)》에 적혀 있는 24종의 다기가 준용되었으나, 다구의 소재와 형태는 고유한 것이었다.

신라에서는 국산차와 당나라의 떡차(餠茶)를 마셨으므로 전다도구(煎茶道具)도 당나라 육우의 다경(茶經)에 나오는 24종의 다기가 준용되었으나 다구의 소재와 형태는 달랐었다. 고려시대에는 연고차(硏膏茶)를 가루낸 말차(抹茶)를 마시기 위하여 차맷돌(茶磨)이 사용되었다. 이 차맷돌은 마찰열로 인한 차의 변질을 막기 위해 천천히 돌렸었다한다. 물을 끓일때는 풍로에 탕관(湯罐)을 얹고 불을 지폈는데 이탕관의 종류에는 돌솥, 쇠솥, 탕솥, 탕병, 쇠병, 은병, 돌남비, 귀솥, 철관등이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잎차[葉茶]를 탕수에 담갔다 다기(茶氣)를 우려 마시는 엄다법(淹茶法)으로 바뀌어 다구도 바뀌었다. 잎차와 탕수를 융합시키는 그릇으로는 차병(茶甁:茶壺) ·다관(茶罐) ·전다기(煎茶器) 등이 사용되었다.

다관에는 은 ·구리 ·도자기가 사용되었는데, 손잡이는 횡수형(橫手型)이 많다. 이러한 다구에는 은, 구리, 도자기 등이 사용되었는데 찻잔에는 다종(茶鍾) ·찻보시기[茶甫兒]가 사용되었는데, 백자 찻잔을 사용한 것은 연두빛 찻물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