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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華嚴寺)

위치

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산 12번지 지리산 남쪽 기슭.

소속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

화엄사는 544년(백제성왕22)연기(緣起)조사가 창건하여 화엄학을 널리 선양한 곳으로 신라 경덕왕 때(742-765) 창건했다는 설과 신라 진흥왕 5년(544)에 창건했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새롭게 <<화엄경>> 사경에 의하면 "연기는 황룡사(皇龍寺)의 승려로서 754년(경덕왕 13) 8월부터 <<화엄경>> 사경을 만들기 시작하여 이듬해 2월 완성시켰다"는 기록에 근거해 경덕왕 때 창건설이 유력하다.

그후 1세기가 지나 의상대사가 머물면서 화엄사는 화엄의 대도량이 되었다고 한다. 화엄사는 신라 말 도선(烟起 道詵; 827-898)이 크게 확장했다. 특히 신라 말 화엄학이 남악(南岳)과 북악으로 나뉘어 대립할 때, 후백제 견훤(甄萱; -936)의 복전(福田)인 관혜(觀惠)는 이절을 중심으로 고려 왕건(王建)의 복전인 해인사의 희랑(希朗)과 대립된 학파를 형성했다.

이어 고려 숙종 때(1095-1105)에는 왕사 조형(祖衡)이 대대적인 보수를 했으며, 인종(재위 1123-1146)은 왕사 정인(定仁)으로 하여금 중수하게 하고 도선 국사의 비를 세우도록 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1424년(세종 6) 선종대본산(禪宗大本山)으로 승격되었지만,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을 겪으며 완전히 불탔다.

이에 벽암 각성(碧巖 覺性)이 1630년(인조 8) 중건을 시작하여 1636년 대웅전을 비롯한 약간의 건물을 이룩했고, 이듬해 선종대가람(禪宗大伽藍)으로 승격시켰다. 1702년(숙종 28) 각성의 뜻을 이어 받은 계파 성능(桂坡 性能)이 장륙전을 중건했는데, 숙종은 이를 각황전(覺皇殿)이라 사액하고 선교양종대가람으로 격을 더욱 높였다.

화엄종의 중심적인 역할을 맡아온 이 절에는 창건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큰스님들이 머무르면서 화엄사상의 구현에 애써 왔다. 화엄사는 지리산 자락을 바탕으로 지리산을 오르는 사람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며 국가문화재로는 국보 12호 석등, 국보 제35호 사사자삼층석탑, 국보 제67호 각황전, 국보 제301호 영산괘불탱, 보물 1040호 화엄석경 등 많은 보물을 지니고 있는 지리산의 명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