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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大興寺)

위치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799번지 두륜산(頭輪山) 자락

소속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

이명

대둔사(大芚寺)

대흥사는 514년(신라법흥왕1년)에 아도화상이 세웠다는 설과 426년(백제 구이신왕 7년)에 신라의 정관존자가 창건했다는 설, 그리고 875년(신라 헌강왕 1) 연기 도선(烟起 道詵)이 당나라에서 귀국하여 500개의 절을 짓는 것이 좋겠다고 상소해 창건했다는 설 중에서 도선의 창건설이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다.

창건이후 고려시대의 연혁은 전혀 기록에 없으며 1592년(조선 선조 25) 이전에는 아직 큰 절의 면모를 갖추지 못했으나, 서산(西山) 대사 청허 휴정(淸虛 休靜)이 1604년(선조 37) 이 절에 자신의 의발(衣鉢)을 전할 것을 부촉한 뒤부터 많은 인재를 배출하는 선교양종(禪敎兩宗)의 대 도량으로 면모를 일신하게 되었다.

그 뒤 1665년(현종 6) 심수(心粹)가 대웅전을 중창했고, 1669년(현종 10) 표충사(表忠祠)를 건립했다. 1811년(순조 11) 천불전이 불에 타자 1813년(순조 13) 완호 윤우(玩虎 倫佑)와 제성(濟醒)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흥사에서 배출한 대표적인 인물로서 해동화엄종의 중흥조로 존경 받았던 풍담 의심(楓潭 義諶; 1592-1665)과 정약용의 친구이자 다선일미 사상으로 이름난 초의 의순(草衣 意恂)선사를 비롯하여 13대 종사와 13대 강사를 배출하여 조선 후기 불교계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특히 대흥사의 말사인 일지암은 한국의 다성이라고 불리는 초의 스님이 머물면서 다신전(茶神傳), 동다송(東茶頌)등의 다서를 집필한 곳으로 조선후기의 차문화를 중흥시킨 차인의 고향이자 차의 성지이기도하다.

대흥사 입구에는 웰빙시대를 맞이하여 초의선사의 동상이 자리하여 차의 성지의 면모를 갖추었고, 눈앞에 보이는 표충사(表忠祠)는 서산대사, 사명당, 처영스님 등 세분의 영정을 모시고 매년 제례와 추모 행사가 받들어지며 호국정신을 기리고 있으며 정조대왕, 추사 김정희, 다산 정약용, 이광사의 명필등 조선시대의 문물전을 방불케 하는 많은 문화유산을 간직한 사찰로 이름이 높다.

대흥사에 전하는 문화재로는 보물제48호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 보물 제 301호 보물 제320호 삼층석탑등 많은 국가 문화재와 전남 유형문화재 제52호 천불상, 전남 유형문화재 제93호 용화당(龍華堂, 전라남도 기념물 제19호 표충사, 서산대사부도 등과 명필 이광사(李匡師)가 쓴 대웅보전 현판, 추사 김정희(金正喜)가 쓴 무량수전(無量壽殿) 편액등이 전해져 보는 이의 즐거움을 더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