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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松廣寺)

위치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12번지 조계산(曹溪山) 기슭

소속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

이명

길상사

송광사는 우리나라 삼보사찰의 하나로 신라 말 혜린선사가 길상사로 처음 창건하였는데, 건물이 100여 칸에 달하였고 30-40명의 스님이 상주하였다고 한다. 그 후 고려 중기 1200년(신종 3) 보조(普照) 국사 지눌(知訥)이 정혜사(定慧社)에 옮겨 와 11년 동안 머물며 수많은 대중에게 가르침을 베풀어 큰 수도 도량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하였다.

지눌은 1182년(명종 12) 도반스님과 맹문(盟文)을 지어 정혜결사(定慧結社)를 맺을 것을 기약했다. 그 뒤 1188년 봄 득재(得才)가 팔공산 거조사(居祖寺)에 머물면서 결사 동지들을 모은 뒤 지리산 상무주암(上無住庵)으로 들어가 3년 동안 정진하다가 이 절로 다시 옮겨왔다. 그 뒤 즉위하기 전부터 지눌을 존경했던 희종(재위 1204-1211)은 송광산(松廣山) 길상사를 조계산 수선사(修禪社)로 이름을 고쳐 친히 글을 써서 제방(題榜)을 내렸다.

1210년(희종 6) 지눌이 이 절에서 입적하자 그의 제자 진각 혜심(眞覺 慧諶)이 왕명으로 수선사의 제2세주가 되었고, 이 때부터 조선 초에 이르기까지 15명의 국사가 수선사의 정신을 이어받아 우리나라 선종을 이끌어 왔다. 따라서 송광사는 우리나라 삼보(三寶)사찰 중 승보(僧寶)사찰로 불려지게 되었다.

1592년(선조 25)의 임진왜란과 1597년의 정유재란으로 수각(水閣), 임경당(臨鏡堂), 보조암(普照庵), 천자암(天子庵) 등이 소실되었으며, 왜군의 노략질을 견디다 못한 승려들이 절을 떠나 한 때 폐사가 되다시피 했다. 이에 응선(應善)은 불 탄 건물을 중건한 뒤 지리산에 있던 부휴 선수(浮休善修; 1543-1615)를 모셨다. 선수는 제자 400여 명을 거느리고 이 곳으로 옮겨와 조전(祖殿)과 동행랑(東行廊), 천왕문 등을 새로 짓고 그 외의 건물도 보수했다. 그 뒤 600여 명의 승려들이 선수를 모시고 동안거를 성대히 치름으로써 근세에 이르는 송광사의 명맥을 부활시켰다.

최근세에는 1969년 구산스님을 초대 방장으로 하여 조계총림이 되었고 많은 외국인 스님을 받아들이는 해외포교에도 앞장을 섰으며, 오늘날 승보종찰 이라는 한국의 대표적인 삼보사찰의 하나가 되었다.

송광사에 전해오는 문화재로는 국보 제42호 목조삼존불감, 국보 제43호 고종제서, 국보 제56호 국사전과 대웅전을 중심으로 설법전, 수선사, 상사당(上舍堂), 하사당(下舍堂; 보물 제263호), 응진전, 진영각, 보물 제302호 약사전, 보물 제303호 영산전등 많은 불교문화재를 가지고 있으며 효봉스님, 취봉스님, 구산스님, 법정스님 등 고승들의 활발한 전법과 포교로 승보사찰로서 명성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