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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 역사의 새벽을 열다

줄거리

① 원효 부모의 집이 본래 밤골[栗谷] 서남쪽에 있었다.
② 그의 어머니가 원효를 잉태할 때 유성이 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으며, 그를 낳을 때는 오색의 구름이 땅을 덮었다고 한다.
③ 그 어머니가 이미 만삭이었는데, 마침 이 골짜기에 있는 밤나무 밑을 지나다가 갑자기 해산기가 있었다.
④ 너무 급한 나머지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남편이 옷으로 나무에 천막식으로 걸어서 그 속에서 어머니가 아기를 낳았기 때문에 이 나무를 사라수(裟羅樹)라고 하였다.
⑤ 그 아기의 이름을 처음에는 서당(誓幢, 또는 사례思禮)이라고 했다.
⑥ 그후 아기가 태어난지 7일만에 어머니는 산후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⑦ 그 아기가 태어난 밤나무의 열매를 사라율(裟羅栗)이라고 하는데,“오래 전에 사찰주지가 절의 하인 한 사람에게 하루 저녁 끼니로 밤 두 알씩을 주었다. 하인이 ‘적다’고 관청에 호소하자 관리는 괴상히 여겨 그 밤을 가져다가 조사해 보았더니 한 알이 바리 하나에 가득 찰만큼 컸기 때문에, 도리어 ‘한 알씩만 주라’고 판결했다”라는 설화가 있다.
⑧ 원효 탄생설화는 부처님 탄생설화의 동아시아적 확산이다.

공간

제석사

시간

원효 1세 (617, 진평왕 39년)

인물

주인공 : 원효
보조자 : 원효 아버지 원효 어머니

의의

원효의 탄생 설화는 부처님 탄생 설화의 동아시아적 확산으로 원효를 부처님과 같이 존경하고 흠모하는 후대의 경향이 반영된 것이다.

시나리오
등장인물

원효, 원효부친, 원효모친

배경

밤나무 골짜기 숲

시나리오

S1_원효모친 친정집 근처 늦은 오후

원효모친 (친정집을 바라보며)
원효부친 (한손에는 짐을 들고 다른 손으로 아내의 손을 잡으며) 여보, 그만 갑시다. 벌써 해가 지고 있어.

S2_밤나무 골짜기 숲

초저녁

원효부부 (천천히 뒤돌아서며 밤나무골짜기를 향함)

저녁

원효부부 (밤나무 골짜기 숲을 천천히 걸어감)
원효모친 (걸음을 멈추며) 여보, 잠시만, 잠시만 쉬었다 가요.
원효부친 (조금 앞서가다 걸음을 멈추고 아내를 바라보며) 두어시간만 가면 되는데…
원효모친 (갑자기 배를 움켜지며) 여보! 여보, 배가…아이가…

해설보기
해설

성사(聖師) 원효(元曉)의 속성(俗姓)은 설씨(薛氏)이다. 설씨의 내력은 신라 유리왕(儒理王) 9년(32)에 6부의 이름을 고치고 이어 성(姓)을 하사하였는데, 명활촌(明活村)을 습비부(習比部)로 삼고 설씨의 성을 하사하였다. 그래서 경주 설씨는 신라 유리왕 때의 사람인 설지덕(薛支德)을 시조로 삼는다. 그의 후손 곡(嚳)은 습비후(習比侯)에, 곡의 아들 교(喬)는 대아찬(大阿餐)에 이르렀다. 원효의 조부는 잉피공(仍皮公, 또는 적대공赤大公, ?~633, 50대 중반)인데, 지금 적대연(赤大淵) 옆에 잉피공의 사당이 있다. 아버지는 담날내말(談捺乃末, 또는 이금伊琴, ?~628, 20대 중반)이었다.
부모의 집은 본래 율곡(栗谷; 밤골)의 서남쪽에 있었다. 순창설씨족보에 따르면, 원효가 태어나기 전에 원효의 형인 설을신(薛乙臣, 원효보다 2~4살 정도 많았음)이 있었다.
어느 날 어머니(浦含 趙氏; 娑羅夫人, ?~617, 20대 중반)의 꿈에 별이 떨어져 방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는데, 그 뒤에 임신하였다. 그 어머니가 태기가 있어 이미 만삭일 때에 위인의 서조(瑞兆)로 갑자기 오색서광이 땅 위를 가득 덮었다. 그런데 부모가 마침 율곡(栗谷)의 밤나무 밑을 지나다가 갑자기 해산하였으므로 몹시 급해서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남편의 옷을 나무에 걸고 그 속에서 아기를 낳았다. 그 아기의 이름을 처음에는 서당(誓幢, 또는 사례思禮)이라고 했다.
그 후 아기가 태어난 지 7일 만에 어머니는 산후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사라율(裟羅栗)이라 한 이야기는 ‘옛날 사찰주지가 절의 종 한 사람에게 하루 저녁 끼니로 밤 두 알씩을 주었다. 종이 “너무 적다”고 관청에 호소하자 관리는 괴상히 여겨 그 밤을 가져다가 조사해 보았더니 한 알이 바리 하나에 가득 차므로 도리어 “한 알씩만 주라”고 판결했다’고 한다.

원전

聖師<元曉>, 俗姓<薛>氏, 祖<仍皮公>, 亦云<赤大公>, 今<赤大淵>側有<仍皮公>廟. 父<談捺>乃末. 初, 示生于<押梁郡>南[今<章山郡>] <佛地村>北, <栗谷><娑羅樹>下. 村名<佛地>, 或作<發智村>[俚云<弗等乙村>]. 娑羅樹者, 諺云, 師之家本住此谷西南, 母旣娠而月滿, 適過此谷栗樹下, 忽分産, 而倉皇不能歸家, 且以夫衣掛樹, 而寢處其中, 因號樹曰<娑羅樹>. 其樹之實亦異於常, 至今稱<娑羅栗>. 《古傳》, 昔有主寺者, 給寺奴一人, 一夕饌栗二枚, 奴訟于官. 官吏怪之, 取栗檢之, 一枚盈一鉢. 乃反自判給一枚, 故因名<栗谷>. 師旣出家, 捨其宅爲寺, 名<初開>, 樹之旁置寺曰<娑羅>. 師之行狀云: “是京師人, 從祖考也”. 《唐僧傳》云: “本<下湘州>之人”. 按, <麟德>二年間, <文武王>割<上州> <下州>之地, 置<歃良州>, 則<下州>乃今之<昌寧郡>也, <押梁郡>本<下州>之屬縣, <上州>則今<尙州>, 亦作<湘州>也. <佛地村>今屬<慈仁縣>, 則乃<押梁>之所分開也. 師生小名<誓幢>, 第名<新幢>[幢者俗云毛也]. 初母夢流星入懷, 因而有娠, 及將産, 有五色雲覆地, <眞平王>三十九年, <大業>十三年丁丑歲也.( 『三國遺事』 卷4, 義解, 「元曉不覇)

참고자료

「高仙寺誓幢和尙碑文」, 『宋高僧傳』 卷4(『大藏經』제50책), 「唐新羅國黃龍寺元曉傳」『三國遺事』 卷4, 義解, 「元曉不覇」, 『海東文獻總錄』釋家類, 『東京雜記』, 『五洲衍文長箋散稿』卷43,「元曉義湘辨證說」, 『東師列傳』제1,「元曉國師傳」, 『五洲衍文長箋散稿』 卷43, 「元曉義湘辨證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