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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춘랑

기본정보

신라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 재위 654-661) 때 활약한 인물.
생몰년 : ?-660

일반정보

장춘랑(長春郞)은 신라 태종무열왕 7년(660) 백제군과의 황산벌 전투에서 파랑(罷郞)과 함께 전사한 인물이다. 이후 신라가 백제를 공격할 무렵 파랑과 함께 무열왕의 꿈에 나타나 신라를 끝까지 수호하기 위해 왕이 힘을 보태줄 것을 청하자, 무열왕이 이들을 위해 한산주(漢山州)에 장의사(壯義寺)를 세워 명복을 빌었다고 한다.

전문정보

장춘랑(長春郞)은 신라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 재위 654-661) 때 활약한 인물이다. 『삼국유사』 권1 기이1 장춘랑파랑(長春郞罷郞)조에 따르면 장춘랑은 황산벌 전투에서 파랑(罷郞)과 함께 사망하였다. 이후 신라가 백제를 공격할 무렵 장춘랑은 파랑과 함께 무열왕의 꿈에 나타나 신라를 끝까지 수호하기 위해 왕이 힘을 보태줄 것을 청하였다. 이에 잠에서 깬 무열왕은 두 사람의 혼령을 위하여 하루 동안 모산정(牟山亭)에서 불경을 강설하게 하고, 한산주(漢山州)에 장의사(壯義寺)를 세워 명복을 빌었다고 한다.

장춘랑과 관련하여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삼국유사』의 기록과 다른 전승이 기술되어 있다. 『삼국사기』 권5 신라본기5 태종무열왕 6년(659)조에 따르면 무열왕이 당에 군사를 요청하였으나 회보가 없어 크게 근심하고 있었는데, 앞서 죽은 신하 장춘(長春)과 파랑(罷郞)의 혼령이 홀연히 나타났다. 둘은 무열왕에게 당 황제가 소정방에게 군사를 이끌고 내년 5월에 백제를 치게 하도록 명했다는 사실을 알려준 뒤 사라졌다고 한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장춘랑 관련 기사는 유사한 모티브를 가지고 있지만 구체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일정한 차이를 보인다. 먼저 『삼국유사』에는 장춘랑과 파랑이 황산벌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하여 그의 사망 시기를 660년으로 기재하고 있으나 『삼국사기』에서는 659년 이전에 사망한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 장춘랑과 파랑의 혼령이 무열왕 앞에 등장한 시기 또한 『삼국유사』는 660년, 『삼국사기』는 659년으로 차이가 있다. 마지막으로 장춘랑과 파랑의 두 혼령이 무열왕에게 신라의 수호를 위해 힘을 보태줄 것을 요청한 『삼국유사』의 내용과 달리, 『삼국사기』에서는 무열왕에게 당군(唐軍)의 출병 소식을 전달해 주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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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원문 및 해석

(『삼국유사』 권1 기이1 장춘랑 파랑)
長春郞 罷郞[一作?]
初與百濟兵 戰於黃山之役 長春郞罷郞 死於陣中 後討百濟時 見夢於太宗曰 臣等昔者爲國亡身 至於白骨 庶欲完護邦國 故隨從軍行 無怠而已 然迫於唐帥定方之威 逐於人後爾 願王加我以小勢 大王驚怪之 爲二魂 說經一日於牟山亭 又爲創壯義寺於漢山州 以資冥援
장춘랑(長春郞)과 파랑(罷郞)[비랑(?郞)이라고도 한다.]
처음에 백제 군사와 황산에서 싸웠던 전투에서 장춘랑과 파랑이 진중에서 죽었다. 후에 백제를 공격할 때 태종의 꿈에 나타나 말하기를 “신 등은 지난 날 나라를 위해 몸을 바쳐 지금 백골이 되었으나, 나라를 끝까지 수호하려고 군대를 따라다니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당의 장수 소정방의 위엄에 눌려 남의 뒤로만 쫓겨다니게 되었습니다. 원컨대 왕께서는 저희에게 작은 힘을 보태주십시오.”라고 하였다. 대왕이 놀라고 괴이하게 여겨 두 혼령을 위하여 하루 동안 모산정에서 불경을 설하게 하고, 또 한산주에 장의사를 세워 (그들의) 명복을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