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문화원형 라이브러리
인쇄 문화원형 스크랩

개국

기본정보

진흥왕(眞興王) 12-28년(551-567)에 쓰인 연호

일반정보

신라 제24대 진흥왕이 사용한 첫 번째 연호로 진흥왕 12년(551)부터 진흥왕 28년(567)까지로 17년간 사용되었다. 개국(開國)은 “나라를 새로 연다”는 뜻이다.

전문정보

개국(開國)은 제24대 진흥왕이 재위 12년(551)에 처음으로 제정하여 독자적으로 사용한 연호이다. 신라에서는 법흥왕이 처음 중국연호가 아닌 독자적 연호를 사용한 이후 중고기 신라왕들이 이를 좇았다. 이것은 5세기 말에서 6세기경의 신라가 대내적으로 국가체제의 정비, 대외적으로 활발한 영역확장 등으로 인하여, 신라 지배층의 대중인식(對中認識)에 대한 자주적 입장이 표방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김영하, 1980)

그리고 그 뜻은 나라를 연다는 뜻이 있으므로 진흥왕의 친정시기와 개국(開國)이라는 연호로 개원(改元)한 시기를 연결시켜 보기도 한다. 진흥왕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즉위시 나이와 태후가 섭정했다는 내용이 전한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삼국사기』권4 신라본기4 진흥왕 즉위년조에 따르면, “그때 나이는 일곱 살이었다…왕이 어렸으므로 왕태후가 섭정하였다(時年七歲…王幼少 王太后攝政)”고 전하며『삼국유사』권1 기이1 진흥왕조에는 “즉위 때 나이 15세이므로 태후가 섭정하였다(卽位時年十五歲 太后攝政)”라고 하였다. 이 두 사료를 살펴보면 즉위시 나이는 차이가 있지만 태후가 섭정한다는 사실은 모두 기록하고 있다.

이 중에서 『삼국사기』에서 서술한 대로 540년 진흥왕의 즉위시 나이를 7세로 보는 입장에서는, 개국(開國)으로 개원하는 진흥왕 12년(551)은 진흥왕이 19세가 되는 때이므로 이때 비로소 진흥왕이 친정(親政)을 시작하였다는 견해가 있다.(이병도, 1976)

참고문헌

이병도, 1976, 「眞興大王의 偉業」『韓國古代史硏究』, 박영사.
김영하, 1980, 「新羅 中古期의 對中認識」『민족문화연구』15.

관련원문 및 해석

第二十四 眞興王 [名彡麥宗 (一)作深□ 金氏 父卽法興之弟立宗葛文王 母只召夫人 一作息道夫人朴氏 牟梁里<英>史伯□之女 終時亦<剃>髮而卒 庚申立 理三十七年] 開國[辛未] 十七 大昌[戊子] 四 <鴻>濟[壬辰] 十二
제24 진흥왕 [이름은 삼맥종 또는 심□라고도 하며 김씨이다. 아버지는 곧 법흥왕의 동생 입종갈문왕이다 어머니는 지소부인이고 식도부인이라고도 하며 박씨이다. 모량리 영사백□의 딸이다. 임종 시에 또한 승려가 되어 죽었다. 경신에 즉위하여 37년간 다스렸다.] 개국[신미] 17년간이다. 대창[무자] 4년간이다. 홍제[임진] 12년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