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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둔

기본정보

한사군의 하나

일반정보

한사군의 하나로서 한나라가 기원전 108년 위만조선을 멸망시킨 뒤에 세웠다

전문정보

『삼국유사』 권1 기이1 고조선조에는 “한서에서는 진번․임둔․낙랑․현도의 4군으로 되어 있고 지금은 3군이라 하고 이름도 같지 않은 것은 무슨 까닭일까(漢書則眞臨樂玄四郡今云三郡名又不同何耶)”라고 하였다.

임둔군에 대해서는 대체로 지금의 함경도 대부분과 강원도의 북단 일부를 영유하여 서로는 낙랑군, 북으로는 숙신(肅愼)에 접하며 동으로는 동해, 남으로는 철원 지방에 접하여 곧 진번에 이웃했다고 파악하는 견해가 있으며 이후 일반적으로 임둔군의 위치를 함경도 지역으로 보고 있다. 이 견해에서는 기원전 82년에 한사군 전체에 걸친 폐합(廢合)을 단행할 때 임둔군을 파하여 서북쪽의 현도군에 합쳤으며, 기원전 75년에는 현도군의 치소를 요녕성 혼하 방면으로 옮길 때 현도군에 합쳤던 임둔군의 옥저 남쪽 지방 7개현은 낙랑군에 속하게 되었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한서(漢書)』 지리지에 있는 낙랑군의 속현이 25개에 달하는 것은 낙랑군이 옛 진번군과 임둔군의 잔현(殘縣)들을 합한 결과라고 파악하였다.(이병도, 1976)

요녕성 금서시(錦西市) 연산구(連山區) 여아가(女兒街) 태집둔(邰集屯) 소황지(小荒地)에서 출토된 “임둔태수장(臨屯太守章)” 봉니(封泥)와 동반유물 등을 검토하여 임둔군을 포함한 한사군의 요서지역 설치 가능성을 제기한 견해가 있다. “임둔태수장(臨屯太守章)” 봉니(封泥)는 그 규격과 서체 및 문장이 전한(前漢) 조정에서 제정한 규격 및 규정과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 중앙에서 보낸 것이며, 그것은 임둔군이 실존했을 뿐만 아니라 이 지역이 임둔군이었을 가능성을 말해 준다고 하였다. 봉니가 수습된 소황지 유적의 문화층 검토 결과 이 지역에는 토착민들이 거주하면서 토착 문화를 발전시켰으나, 전한 시대에 오면 황하 유역 문화 요소가 강하게 자리 잡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전한 초에 위만이 한으로부터 이곳으로 망명하여 위만조선을 세우게 됨에 따라 한의 문화가 들어오게 되었다. 뒤에 위만조선이 멸망하고 한사군이 설치됨에 따라 한의 관리들이 이 지역에 많이 와서 거주하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전한의 지배층 문화가 강하게 자리 잡게 된 것으로 보인다. 즉 한사군은 지금의 요서 지역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 가운데 지금의 금서 지역이 임둔군이었다는 것이다.(복기대, 2001)

참고문헌

이병도, 1976, 『韓國古代史硏究』, 박영사.
복기대, 2001, 「臨屯太守章 封泥를 통해 본 漢四郡의 위치」『白山學報』61.

관련원문 및 해석

(『삼국유사』 권1 기이1 고조선)
古朝鮮[王儉朝鮮]
魏書云 乃往二千載 有壇君王儉 立都阿斯達 [經云無葉山 亦云白岳 在白州地 或云在開城東 今白岳宮是] 開國號朝鮮 與高同時 古記云 昔有桓因[謂帝釋也]庶子桓雄 數意天下 貪求人世 父知子意 下視三危太伯 可以弘益人間 乃授天符印三箇 遣往理之 雄率徒三千 降於太伯山頂[卽太伯 今妙香山]神壇樹下 謂之神市 是謂桓雄天王也 將風伯雨師雲師 而主穀主命主病主刑主善惡 凡主人間三百六十餘事 在世理化時有一熊一虎 同穴而居 常祈于神雄 願化爲人 時神遣靈艾一炷蒜二十枚曰 爾輩食之 不見日光百日 便得人形 熊虎得而食之 忌三七日 熊得女身 虎不能忌而不得人身 熊女者 無與爲婚 故每於壇樹下 呪願有孕 雄乃假化而婚之 孕生子 號曰 壇君王儉 以唐高卽位五十年庚寅[唐堯卽位元年戊辰 則五十年丁巳 非庚寅也 疑其未實] 都平壤城[今西京] 始稱朝鮮 又移都於白岳山阿斯達 又名弓[一作方]忽山 又今彌達 御國一千五百年 周<武>王卽位己卯 封箕子於朝鮮 壇君乃移於藏唐京 後還隱於阿斯達爲山神 壽一千九百八歲 唐裵矩傳云 高麗本孤竹國[今海州] 周以封箕子爲朝鮮 漢分置三郡 謂玄菟樂浪帶方[北帶方] 通典亦同此說[漢書則眞臨樂玄四郡 今云三郡 名又不同 何耶]
고조선[왕검조선]
『위서』에 이르기를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에 단군왕검이라는 이가 있어 도읍을 아사달에 정하고[경에는 무엽산이라고 했고 또 백악이라고도 한다. 백주 땅에 있다. 혹은 개성 동쪽에 있다고 하는데, 지금의 백악궁이 그것이다.] 나라를 창건하여 이름을 조선이라 하니 요임금과 같은 시대이다.”라고 하였다. 『고기』에 이르기를 “옛날 환인[제석을 말한다]의 서자 환웅이란 자가 있어 자주 천하에 뜻을 두고 인간 세상을 구하고자 하였다.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아래로 삼위태백 땅을 내려다 보니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 만한지라 이에 천부인 세 개를 주어, 가서 그곳을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이 무리 3천명을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바로 태백은 지금의 묘향산이다] 신단수 아래 내려와 이를 일러 신시라고 하였으니 그를 환웅천왕이라 한다. 그는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식・생명・질병・형벌・선악 등 무릇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맡아서 세상에 있으면서 다스리고 교화하였다. 이때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있어 같은 굴에 살면서 항상 신령스러운 환웅에게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빌었다. 곰은 신령스러운 쑥 한 타래와 마늘 20쪽을 주면서 말하기를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 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곧 사람의 모습으로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곰과 범은 이것을 얻어먹고 삼·칠일 동안 금기하였는데 곰은 여자의 몸이 되었으나 범은 금기를 못하여 사람의 몸으로 되지 못하였다. 웅녀는 그와 혼인할 사람이 없어 매번 신단수 아래에서 아이를 갖게 해달라고 빌었다. 환웅이 이에 잠시 사람으로 변하여 그와 혼인하여 아이를 임신하여 낳으니 이름을 단군왕검이라고 하였다. 그는 요임금이 즉위한 지 50년인[당나라 요임금의 즉위 원년은 무진년이므로 50년은 정사년이지 경인년이 아니다. 아마 틀린 듯하다] 경인년에 평양성[지금의 서경이다]에 도읍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일컬었다. 또 도읍을 백악산 아사달에 옮겼는데 그곳을 궁[방이라고도 한다]홀산 또는 금미달 이라고도 한다. 1500년 동안나라를 다스렸다. 주나라 무왕이 즉위한 기묘년에 기자를 조선에 봉하니 단군은 이에 장당경으로 옮겼다가 뒤에 돌아와 아사달에 숨어서 산신이 되었으니 나이가 1908세였다.” 라고 하였다. 당의 배구전에는 고려는 본래 고죽국[지금 해주]인데 주가 기자를 봉하여 조선이라 하였고, 한은 3군(三郡)을 나누어 설치하여 현도・낙랑・대방[북대방]이라 하였으며, 통전에도 이 설과 같다.[한서에서는 진번・임둔・낙랑・현도의 4군으로 되어 있고 지금은 3군이라 하고 이름도 같지 않은 것은 무슨 까닭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