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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현

기본정보

미륵대원(彌勒大院) 동쪽에 위치한 옛 고개

일반정보

고려시대 미륵대원(彌勒大院)의 동쪽에 위치했던 옛 고개이며 계립령으로 추정된다

전문정보

『삼국유사』 권1 왕력편에서는 입현에 대해 “지금의 미륵대원 동쪽 고개이다(今彌勒大院東嶺是也)”라고 하였다. 허나 현존하는 『삼국유사』의 모든 판본에서는 “입현(立峴)”의 앞 글자가 누락되어 편찬자가 기재한 정확한 명칭이 “입현”이었는지, 혹은 “□입현”이었는지 확인할 수 없다. 다만 『삼국사기』 권2 신라본기2 아달라이사금 3년(156)조에서 “계립령의 길을 열었다(開雞立嶺路)”라고 한 것으로 미루어보아 계립령(雞立嶺)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계립령은 계립현(雞立峴), 마목현(麻木峴)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그 위치에 대해서는 충북 충주시 미륵리에서 수안보 방면으로 넘어가는 지릅재로 보거나 경북 문경시 방면으로 넘어가는 하늘재로 이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미륵리 동·서쪽의 두 고개는 크게 보면 하나의 고갯길(嶺路)로 볼 수 있으므로 양 고갯길 모두를 포함하는 범칭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일 듯하다.(최영준, 1990)

교통면에서 볼 때 계립령로는 개척된 이래로 신라·백제·고구려 삼국이 북진·남하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군사로였으며 통일신라 이후 남북을 오가는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최근까지도 문경읍 관음리 주민들은 수안보나 충주로 가기 위해 이 길을 종종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계립령의 서쪽편인 충북 충주시 미륵리에는 『삼국유사』 권1 왕력편의 기록과 같이 고려시대의 미륵대원(彌勒大院)터가 확인되었다.(청주대학교 박물관, 1993) 따라서 입현은 계립현과 관련된 명칭으로 계립령의 별칭이라 이해할 수 있겠다.

참고문헌

최영준, 1990, 『嶺南大路』,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청주대학교 박물관, 1993, 『중원미륵리사지 5차발굴조사보고서 대원사지·미륵대원지』, 청주대학교 박물관.

관련원문 및 해석

第八阿達羅尼叱今 [又與倭國相 □…□ 嶺 □…□ 立峴今彌勒大院東嶺是也]
제8대 아달라니질금. [ … 또 왜국과 더불어 서로 … 고개 … 입현은 지금의 미륵대원 동쪽 고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