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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단수

기본정보

환웅이 하늘에서 처음 땅으로 내려온 곳

일반정보

환웅이 하늘에서 처음 땅으로 내려온 곳으로 이곳에 신시(神市)를 열었다.

전문정보

『삼국유사』 권1 기이1 고조선조에서는 환웅이 무리 3천을 거느리고 태백산(太伯山) 정상의 신단수(神壇樹) 아래로 내려왔다고 하였다.

한편 단군신화의 신단수가 박달나무가 아니라면 신단수는 단순히 “신령스러운 나무”로서 특정 종을 가리키지 않게 되며, “단(檀)”은 의미 없는 글자라고 보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박달나무, 즉 한자로는 단(檀)이지만 그것을 나무이름이 아니라 “밝달족(族)=발족(發族)”이라고 하였다. 즉 부족의 명칭이 생기기 이전에 이러한 세분된 식물학적 고유 명사로 되는 나무 이름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즉 박달은 나무가 아닌 고조선을 세운 부족 명칭이라고 하였다.(리상호, 1963)

신단수를 우주산(宇宙山)에 있는 중심의 상징으로서 우주목(宇宙木) 즉 “기적(奇蹟)의 나무”, 세계수(世界樹)로 파악하기도 한다. 이 우주목은 우주산의 가장 중심, 가장 높은 곳에 있으면서 하늘과 땅을 연결해 준다. “대지(大地)의 배꼽”이며 “세계의 기둥”으로서 “성인(聖人)의 현현(顯現)”은 이곳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와 같은 세계수는 나무 자체에 정령이 깃들어 있다고 믿어졌으며 동북아시아 각지에서 신과 동일시하는 수목신앙으로 발전하게 되었다.(김열규, 1976)

신단수라는 표기에서 환웅이 내려온 곳은 다름 아닌 제단과 신수(神樹)가 있는 곳임을 연상케 하고, 『삼국유사』 외에 『제왕운기』에서는 신수를 단수신(檀樹神)이라고도 한다. 이는 수목신앙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데, 이와 같은 신성한 숲을 일러 불(市)이라고 한다. 따라서 『삼국유사』의 신시(神市)는 도시나 국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신성한 숲” 즉 “신불”이라고 읽어야 옳다는 것이다. 그리고 신수(神樹)가 박달나무라는 것에 대해서 수긍하기 어렵다고 하였는데, 이는 박달나무를 신목(神木)으로 섬기는 마을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박달나무를 “밝다”는 뜻으로 보거나 의미가 없는 것으로 파악하기도 한다.(신종원, 2004)

참고문헌

리상호, 1963, 「단군고」『고조선에 관한 토론론문집』, 과학원출판사.
김열규, 1976, 『韓國의 神話』, 일조각.
신종원, 2004, 『삼국유사 새로 읽기(1) -기이편(紀異篇)-』, 일지사.

관련원문 및 해석

(『삼국유사』 권1 기이1 고조선)
古朝鮮[王儉朝鮮]
魏書云 乃往二千載 有壇君王儉 立都阿斯達 [經云無葉山 亦云白岳 在白州地 或云在開城東 今白岳宮是] 開國號朝鮮 與高同時 古記云 昔有桓因[謂帝釋也]庶子桓雄 數意天下 貪求人世 父知子意 下視三危太伯 可以弘益人間 乃授天符印三箇 遣往理之 雄率徒三千 降於太伯山頂[卽太伯 今妙香山]神壇樹下 謂之神市 是謂桓雄天王也 將風伯雨師雲師 而主穀主命主病主刑主善惡 凡主人間三百六十餘事 在世理化時有一熊一虎 同穴而居 常祈于神雄 願化爲人 時神遣靈艾一炷蒜二十枚曰 爾輩食之 不見日光百日 便得人形 熊虎得而食之 忌三七日 熊得女身 虎不能忌而不得人身 熊女者 無與爲婚 故每於壇樹下 呪願有孕 雄乃假化而婚之 孕生子 號曰 壇君王儉 以唐高卽位五十年庚寅[唐堯卽位元年戊辰 則五十年丁巳 非庚寅也 疑其未實] 都平壤城[今西京] 始稱朝鮮 又移都於白岳山阿斯達 又名弓[一作方]忽山 又今彌達 御國一千五百年 周<武>王卽位己卯 封箕子於朝鮮 壇君乃移於藏唐京 後還隱於阿斯達爲山神 壽一千九百八歲 唐裵矩傳云 高麗本孤竹國[今海州] 周以封箕子爲朝鮮 漢分置三郡 謂玄菟樂浪帶方[北帶方] 通典亦同此說[漢書則眞臨樂玄四郡 今云三郡 名又不同 何耶]
고조선[왕검조선]
『위서』에 이르기를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에 단군왕검이라는 이가 있어 도읍을 아사달에 정하고[경에는 무엽산이라고 했고 또 백악이라고도 한다. 백주 땅에 있다. 혹은 개성 동쪽에 있다고 하는데, 지금의 백악궁이 그것이다.] 나라를 창건하여 이름을 조선이라 하니 요임금과 같은 시대이다.”라고 하였다. 『고기』에 이르기를 “옛날 환인[제석을 말한다]의 서자 환웅이란 자가 있어 자주 천하에 뜻을 두고 인간 세상을 구하고자 하였다.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아래로 삼위태백 땅을 내려다 보니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 만한지라 이에 천부인 세 개를 주어, 가서 그곳을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이 무리 3천명을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바로 태백은 지금의 묘향산이다] 신단수 아래 내려와 이를 일러 신시라고 하였으니 그를 환웅천왕이라 한다. 그는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식・생명・질병・형벌・선악 등 무릇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맡아서 세상에 있으면서 다스리고 교화하였다. 이때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있어 같은 굴에 살면서 항상 신령스러운 환웅에게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빌었다. 곰은 신령스러운 쑥 한 타래와 마늘 20쪽을 주면서 말하기를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 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곧 사람의 모습으로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곰과 범은 이것을 얻어먹고 삼·칠일 동안 금기하였는데 곰은 여자의 몸이 되었으나 범은 금기를 못하여 사람의 몸으로 되지 못하였다. 웅녀는 그와 혼인할 사람이 없어 매번 신단수 아래에서 아이를 갖게 해달라고 빌었다. 환웅이 이에 잠시 사람으로 변하여 그와 혼인하여 아이를 임신하여 낳으니 이름을 단군왕검이라고 하였다. 그는 요임금이 즉위한 지 50년인[당나라 요임금의 즉위 원년은 무진년이므로 50년은 정사년이지 경인년이 아니다. 아마 틀린 듯하다] 경인년에 평양성[지금의 서경이다]에 도읍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일컬었다. 또 도읍을 백악산 아사달에 옮겼는데 그곳을 궁[방이라고도 한다]홀산 또는 금미달 이라고도 한다. 1500년 동안나라를 다스렸다. 주나라 무왕이 즉위한 기묘년에 기자를 조선에 봉하니 단군은 이에 장당경으로 옮겼다가 뒤에 돌아와 아사달에 숨어서 산신이 되었으니 나이가 1908세였다.” 라고 하였다. 당의 배구전에는 고려는 본래 고죽국[지금 해주]인데 주가 기자를 봉하여 조선이라 하였고, 한은 3군(三郡)을 나누어 설치하여 현도・낙랑・대방[북대방]이라 하였으며, 통전에도 이 설과 같다.[한서에서는 진번・임둔・낙랑・현도의 4군으로 되어 있고 지금은 3군이라 하고 이름도 같지 않은 것은 무슨 까닭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