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문화원형 라이브러리
인쇄 문화원형 스크랩

디지털 삼국유사 사전, 박물지 시범개발신시

신시

기본정보

환웅이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 붙인 이름

일반정보

환웅이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 붙인 이름으로 이곳에서 인간 세상을 다스리며 교화하였다

전문정보

신시(神市)에 대해서는 그것을 훈독(訓讀)하여 신이 모인 곳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그리스의 올림포스나 인도 히말라야의 아욕달지(阿褥達池), 불교에서의 도리천이 신들의 거주지라는 점을 고려할 때, 천하의 신인이 높은 산 위에 하나의 세계를 만들고 그 곳이 민족의 영장(靈場)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따라서 신시도 그러한 곳 중 하나라고 하였다.(최남선, 1927)

신시를 고조선 성립 당시와는 명칭, 위치, 성격이 다를지라도 단군신화가 성립되고 내용이 풍부화하는 단계에 해당하는 지배층의 인식, 나아가서는 이들이 경험한 역사적 현실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신시의 “신(神)”은 환웅으로 대표되는 천강족(天降族)이 자신들의 신성성을 나타내기 위해 붙인 것이며, “시(市)”는 환웅의 강림처, 집무처, 웅녀의 기원처로써 설정된 것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고조선 시기에 시가 통치의 중심이면서 국가적 제의가 행해지던 장소였기 때문이며, 그 곳은 신단수처럼 커다란 나무를 중심으로 형성되고 태백산정은 아닐지라도 신성시되던 고지성(高地性)의 공간에 위치했다고 하였다. 즉 고조선 초기의 신시를 정무기능과 제의기능이 혼합된 정교(政敎)의 중심지로 정의하였다.(김창석, 1997)

신시의 명칭에 주목하여 그것이 천상계와 지상계 사이의 왕래와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매개물이며, 두 세계간의 교류가 이루어지게 하는 신성지역이라 보는 견해가 있다. 시는 매매와 교역이 이루어지는 장소, 즉 시장이란 의미로 사용되고 있지만, 그 자형(字形)은 신이 강림하는 나무가 서 있는 성소를 나타낸 것이다. 나아가 중국 고대에서 시는 태양신이 강림하는 곳이자, 태양신의 권위를 바탕으로 정치적 집회가 이루어지던 곳이었다. 교역장소로서의 시란 개념은 이곳에서 신권(神權)을 매개로 한 재화의 집적과 재분배가 행해진 데서 후일 파생되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시의 앞에 “신(神)”이 붙음으로써 이곳에서 환웅이 신권정치(神權政治)를 행했다고 파악하였다.(서영대, 1998)

신시의 “시(市)”를 신단수의 “수(樹)”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파악하여 시를 “저자 시”가 아니라 수풀, 숲과 관련된 말로 풀이하기도 하며 이와 같은 신성한 숲을 일러 불(市)이라고 한다. 따라서 『삼국유사』의 신시는 도시나 국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신성한 숲” 즉 “신불”이라고 읽어야 옳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자의 시(市)가 도시를 의미한 것은 근대 행정제도가 도입된 이후이며, 단군신화의 신시는 고대사회 수목신앙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였다.(신종원, 2004)

참고문헌

최남선, 1927, 「不咸文化論」『朝鮮及朝鮮民族』, 조선사상통신사.
김창석, 1997, 「한국 고대 市의 原形과 그 성격변화」『韓國史硏究』99․100合.
서영대, 1998, 「檀君神話의 意味와 機能」『汕耘史學』8.
신종원, 2004, 『삼국유사 새로 읽기(1)-기이편(紀異篇)-』, 일지사.

관련원문 및 해석

(『삼국유사』 권1 기이1 고조선)
古朝鮮[王儉朝鮮]
魏書云 乃往二千載 有壇君王儉 立都阿斯達 [經云無葉山 亦云白岳 在白州地 或云在開城東 今白岳宮是] 開國號朝鮮 與高同時 古記云 昔有桓因[謂帝釋也]庶子桓雄 數意天下 貪求人世 父知子意 下視三危太伯 可以弘益人間 乃授天符印三箇 遣往理之 雄率徒三千 降於太伯山頂[卽太伯 今妙香山]神壇樹下 謂之神市 是謂桓雄天王也 將風伯雨師雲師 而主穀主命主病主刑主善惡 凡主人間三百六十餘事 在世理化時有一熊一虎 同穴而居 常祈于神雄 願化爲人 時神遣靈艾一炷蒜二十枚曰 爾輩食之 不見日光百日 便得人形 熊虎得而食之 忌三七日 熊得女身 虎不能忌而不得人身 熊女者 無與爲婚 故每於壇樹下 呪願有孕 雄乃假化而婚之 孕生子 號曰 壇君王儉 以唐高卽位五十年庚寅[唐堯卽位元年戊辰 則五十年丁巳 非庚寅也 疑其未實] 都平壤城[今西京] 始稱朝鮮 又移都於白岳山阿斯達 又名弓[一作方]忽山 又今彌達 御國一千五百年 周<武>王卽位己卯 封箕子於朝鮮 壇君乃移於藏唐京 後還隱於阿斯達爲山神 壽一千九百八歲 唐裵矩傳云 高麗本孤竹國[今海州] 周以封箕子爲朝鮮 漢分置三郡 謂玄菟樂浪帶方[北帶方] 通典亦同此說[漢書則眞臨樂玄四郡 今云三郡 名又不同 何耶]
고조선[왕검조선]
『위서』에 이르기를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에 단군왕검이라는 이가 있어 도읍을 아사달에 정하고[경에는 무엽산이라고 했고 또 백악이라고도 한다. 백주 땅에 있다. 혹은 개성 동쪽에 있다고 하는데, 지금의 백악궁이 그것이다.] 나라를 창건하여 이름을 조선이라 하니 요임금과 같은 시대이다.”라고 하였다. 『고기』에 이르기를 “옛날 환인[제석을 말한다]의 서자 환웅이란 자가 있어 자주 천하에 뜻을 두고 인간 세상을 구하고자 하였다.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아래로 삼위태백 땅을 내려다 보니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 만한지라 이에 천부인 세 개를 주어, 가서 그곳을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이 무리 3천명을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바로 태백은 지금의 묘향산이다] 신단수 아래 내려와 이를 일러 신시라고 하였으니 그를 환웅천왕이라 한다. 그는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식・생명・질병・형벌・선악 등 무릇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맡아서 세상에 있으면서 다스리고 교화하였다. 이때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있어 같은 굴에 살면서 항상 신령스러운 환웅에게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빌었다. 곰은 신령스러운 쑥 한 타래와 마늘 20쪽을 주면서 말하기를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 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곧 사람의 모습으로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곰과 범은 이것을 얻어먹고 삼·칠일 동안 금기하였는데 곰은 여자의 몸이 되었으나 범은 금기를 못하여 사람의 몸으로 되지 못하였다. 웅녀는 그와 혼인할 사람이 없어 매번 신단수 아래에서 아이를 갖게 해달라고 빌었다. 환웅이 이에 잠시 사람으로 변하여 그와 혼인하여 아이를 임신하여 낳으니 이름을 단군왕검이라고 하였다. 그는 요임금이 즉위한 지 50년인[당나라 요임금의 즉위 원년은 무진년이므로 50년은 정사년이지 경인년이 아니다. 아마 틀린 듯하다] 경인년에 평양성[지금의 서경이다]에 도읍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일컬었다. 또 도읍을 백악산 아사달에 옮겼는데 그곳을 궁[방이라고도 한다]홀산 또는 금미달 이라고도 한다. 1500년 동안나라를 다스렸다. 주나라 무왕이 즉위한 기묘년에 기자를 조선에 봉하니 단군은 이에 장당경으로 옮겼다가 뒤에 돌아와 아사달에 숨어서 산신이 되었으니 나이가 1908세였다.” 라고 하였다. 당의 배구전에는 고려는 본래 고죽국[지금 해주]인데 주가 기자를 봉하여 조선이라 하였고, 한은 3군(三郡)을 나누어 설치하여 현도・낙랑・대방[북대방]이라 하였으며, 통전에도 이 설과 같다.[한서에서는 진번・임둔・낙랑・현도의 4군으로 되어 있고 지금은 3군이라 하고 이름도 같지 않은 것은 무슨 까닭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