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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서

기본정보

고조선의 단군신화가 실려 있는 중국사서

일반정보

『삼국유사』 기이편에서 단군신화의 출전이라고 인용한 중국의 사서이다. 『위서(魏書)』라는 명칭을 가진 것으로는 조위(曹魏)의 역사를 기록한 『삼국지(三國志)』의 「위서(魏書)」와 북위(北魏) 의 역사를 기록한 위수(魏收)가 편찬한 『위서(魏書)』등 여러 서적이 있지만, 현전하는 책에는 단군신화와 관련된 사실을 전하고 있지 않아 정확히 어떤 책을 지칭하는지 알 수 없다.

전문정보

『삼국유사』권1 기이1 고조선조에서는 고조선 건국에 대하여 『위서』와 『고기』를 인용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이 중 『위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에 단군왕검이라는 이가 있어 도읍을 아사달에 정하고[경에는 무엽산이라고 했고 또 백악이라고도 한다. 백주 땅에 있다. 혹은 개성 동쪽에 있다고 하는데, 지금의 백악궁이 그것이다.] 나라를 창건하여 이름을 조선이라 하니 요임금과 같은 시대이다. (魏書云 乃往二千載 有壇君王儉 立都阿斯達 [經云無葉山 亦云白岳 在白州地 或云在開城東 今白岳宮是] 開國號朝鮮 與高同時)”.

이렇게 일연은 단군신화가 『위서(魏書)』에 실려 있다고 하였지만, 현전하는 『삼국지(三國志)』의 「위서(魏書)」와 위수(魏收)가 편찬한『위서(魏書)』에는 단군신화와 관련된 사실을 전하고 있지 않아 정확히 어떤 책을 지칭하는지 알 수 없다. 이 때문에 일본학자들은 단군신화를 승려가 조작한 것으로 단정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위서(魏書)』라고 불리는 현전하는 사서로는 이 외에도 서진(西晋) 때 왕침(王沈)이 지은 『위서(魏書)』 47권과 위담(魏澹)의 『위서(魏書)』 107권 등이 있다. 또한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 『구당서(舊唐書)』와 『신당서(新唐書)』를 구분하지 않고 『당서(唐書)』라고 지칭하고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당나라 초기에 장태소(張太素)가 편찬한 『후위서(後魏書)』100권과 배안시(裴安時)가 편찬한 『원위서(元魏書)』30권 등도 일연이 말하는『위서(魏書)』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지만, 모두 실전되어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다.

이 중에서 구체적으로 왕침의 『위서』일 가능성을 제기한 의견이 있다. 그 근거는 『삼국유사』의 발해말갈조에서는 『후위서』라고 하여 『위서』와 구별하여 썼고, 또한 『삼국유사』에서 서(書)와 지(志)를 각각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서(書)가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조위(曹魏)의 서(書)로는 왕침의 저작만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정인보, 1946) 그러나 이에 대하여 지(志)와 서(書)는 삼국의 위지(魏志)와 후위서(後魏書)의 약칭으로 볼 수도 있다는 점과 삼국시대에는 왕침의 『위서』 이외에도 하후담(夏候湛)의 『위서』가 있었기 때문에 반드시 왕침의 위서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반론이 있다.(이지린, 1963) 이렇게 『위서(魏書)』가 특정 사서를 지칭한다고 볼 때, 『삼국유사』가 인용한『위서』의 내용에 “지금으로부터 이천년전에(乃往二千載)”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여기서 위(魏)는 진한 이후의 위(魏)를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는 견해가 있다.(이병도, 1976) 그러나 이천년전에(乃往二千載)라는 기록에 주목하여 기원전 2333년에서 2000년을 뺀 기원전 4세기에서 2세기 사이에 편찬된 사서로 보고, 『위서』를 위만조선이나 낙랑군 초기에 위만조선의 역사를 담은 기록 혹은 위만조선의 설화를 후세에 문자화한 것으로 파악하기도 한다.(정중환, 1977)

그러나 『위서(魏書)』를 특정사서로 파악하는 의견에 대하여 『위서(魏書)』를 위나라 때 쓰여진 책을 가리키는 범칭으로 파악하고, 단군신화의 도가(道家)적 성격에 주목하여 『수서(隋書)』 경적지(經籍志)에 기록된 북위(北魏)시대에 편찬된 각종 도가(道家) 서적을 통틀어서 『위서(魏書)』라고 하였을 것이라는 견해가 제시되었다.(방선주, 1988)

최근에는 『삼국유사』 고조선조에 인용된 『위서』를 현전하는 『위서』가 아니라 북위(北魏) 위수(魏收)가 지은 고본(古本) 『위서』일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박대재, 2001)

참고문헌

정인보, 1946, 『조선사연구』, 서울신문사.
이지린, 1963, 『고조선연구』, 과학원출판사.
이병도, 1976, 『韓國古代史硏究』, 博英社.
정중환, 1977, 「三國遺事 紀異編 古朝鮮條에 인용된 魏書에 대하여」『大丘史學』12・13.
방선주, 1988, 「檀君紀年의 考察」『檀君神話論集』, 새문사.
박대재, 2001, 「『三國遺事』 古朝鮮條 인용『魏書』論」『韓國史硏究』112.

관련원문 및 해석

(『삼국유사』 권1 기이1 고조선)
古朝鮮[王儉朝鮮]
魏書云 乃往二千載 有壇君王儉 立都阿斯達 [經云無葉山 亦云白岳 在白州地 或云在開城東 今白岳宮是] 開國號朝鮮 與高同時 古記云 昔有桓因[謂帝釋也]庶子桓雄 數意天下 貪求人世 父知子意 下視三危太伯 可以弘益人間 乃授天符印三箇 遣往理之 雄率徒三千 降於太伯山頂[卽太伯 今妙香山]神壇樹下 謂之神市 是謂桓雄天王也 將風伯雨師雲師 而主穀主命主病主刑主善惡 凡主人間三百六十餘事 在世理化時有一熊一虎 同穴而居 常祈于神雄 願化爲人 時神遣靈艾一炷蒜二十枚曰 爾輩食之 不見日光百日 便得人形 熊虎得而食之 忌三七日 熊得女身 虎不能忌而不得人身 熊女者 無與爲婚 故每於壇樹下 呪願有孕 雄乃假化而婚之 孕生子 號曰 壇君王儉 以唐高卽位五十年庚寅[唐堯卽位元年戊辰 則五十年丁巳 非庚寅也 疑其未實] 都平壤城[今西京] 始稱朝鮮 又移都於白岳山阿斯達 又名弓[一作方]忽山 又今彌達 御國一千五百年 周<武>王卽位己卯 封箕子於朝鮮 壇君乃移於藏唐京 後還隱於阿斯達爲山神 壽一千九百八歲 唐裵矩傳云 高麗本孤竹國[今海州] 周以封箕子爲朝鮮 漢分置三郡 謂玄菟樂浪帶方[北帶方] 通典亦同此說[漢書則眞臨樂玄四郡 今云三郡 名又不同 何耶]
고조선[왕검조선]
『위서』에 이르기를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에 단군왕검이라는 이가 있어 도읍을 아사달에 정하고[경에는 무엽산이라고 했고 또 백악이라고도 한다. 백주 땅에 있다. 혹은 개성 동쪽에 있다고 하는데, 지금의 백악궁이 그것이다.] 나라를 창건하여 이름을 조선이라 하니 요임금과 같은 시대이다.”라고 하였다. 『고기』에 이르기를 “옛날 환인[제석을 말한다]의 서자 환웅이란 자가 있어 자주 천하에 뜻을 두고 인간 세상을 구하고자 하였다.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아래로 삼위태백 땅을 내려다 보니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 만한지라 이에 천부인 세 개를 주어, 가서 그곳을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이 무리 3천명을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바로 태백은 지금의 묘향산이다] 신단수 아래 내려와 이를 일러 신시라고 하였으니 그를 환웅천왕이라 한다. 그는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식・생명・질병・형벌・선악 등 무릇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맡아서 세상에 있으면서 다스리고 교화하였다. 이때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있어 같은 굴에 살면서 항상 신령스러운 환웅에게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빌었다. 곰은 신령스러운 쑥 한 타래와 마늘 20쪽을 주면서 말하기를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 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곧 사람의 모습으로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곰과 범은 이것을 얻어먹고 삼·칠일 동안 금기하였는데 곰은 여자의 몸이 되었으나 범은 금기를 못하여 사람의 몸으로 되지 못하였다. 웅녀는 그와 혼인할 사람이 없어 매번 신단수 아래에서 아이를 갖게 해달라고 빌었다. 환웅이 이에 잠시 사람으로 변하여 그와 혼인하여 아이를 임신하여 낳으니 이름을 단군왕검이라고 하였다. 그는 요임금이 즉위한 지 50년인[당나라 요임금의 즉위 원년은 무진년이므로 50년은 정사년이지 경인년이 아니다. 아마 틀린 듯하다] 경인년에 평양성[지금의 서경이다]에 도읍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일컬었다. 또 도읍을 백악산 아사달에 옮겼는데 그곳을 궁[방이라고도 한다]홀산 또는 금미달 이라고도 한다. 1500년 동안나라를 다스렸다. 주나라 무왕이 즉위한 기묘년에 기자를 조선에 봉하니 단군은 이에 장당경으로 옮겼다가 뒤에 돌아와 아사달에 숨어서 산신이 되었으니 나이가 1908세였다.” 라고 하였다. 당의 배구전에는 고려는 본래 고죽국[지금 해주]인데 주가 기자를 봉하여 조선이라 하였고, 한은 3군(三郡)을 나누어 설치하여 현도・낙랑・대방[북대방]이라 하였으며, 통전에도 이 설과 같다.[한서에서는 진번・임둔・낙랑・현도의 4군으로 되어 있고 지금은 3군이라 하고 이름도 같지 않은 것은 무슨 까닭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