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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가야

기본정보

함령(咸寧)에 위치했던 것으로 보이는 가야제국(加耶諸國) 중의 하나

일반정보

함령(咸寧)에 위치했던 것으로 보이는 가야제국(加耶諸國) 중의 하나이다

전문정보

『삼국유사』 권1 기이1 오가야조에서는 오가야 중 하나로 고령가야(古寧伽耶)를 언급하였는데 그 위치가 당시 함녕(咸寧)이라고 하였다. 함녕은 지금의 경주 상주시 함창읍에 비정된다.

고령가야의 위치에 대해 『삼국유사』에서는 주를 달아 함녕이라고 하였으나, 그렇게 본다면 다른 가야에 비해 거리가 너무 멀어 경남 진주로 추정하기도 하였다. 곧 진주의 옛 지명인 “거열(居烈)”이 고령과 음이 비슷하여 고령가야로 볼 수 있다고 한다.(이병도, 1976)

그러나 『삼국사기』 권34 잡지3 지리 상주 고령군조의 “고령군(古寧郡)은 본래 고령가야국(古寧加耶國)이었는데, 신라가 빼앗아 고동람군(古冬攬郡)[또는 고릉현(古陵縣)이라고도 하였다]으로 삼았다.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의 함녕군(咸寧郡)이다.(古寧郡 本古寧加耶國 新羅取之 爲古冬攬郡[一云古陵縣] 景德王改名 今咸寧郡)”라고 한 사실에 주목하여, 고령이라는 지명이 경덕왕 이후에 생긴 지명이기 때문에 고령가야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보기도 한다. 함령의 옛 지명은 “고동람(古冬攬)”이고 이것을 신라 제35대 경덕왕(재위 742-765)때에 한자식 지명인 “고령(古寧)”으로 고친 것이기 때문에 원래 이것이 “고령가야”였다는 『삼국사기』 권1 기이1 오가야조의 기록은 모순이라고 보기도 한다.(김태식, 1993)

참고문헌

이병도, 1976, 『韓國古代史硏究』, 박영사.
김태식, 1993, 『加耶聯盟史』, 일조각.

관련원문 및 해석

(『삼국유사』권1 기이1 오가야)
五伽耶[按駕洛記贊云 垂一紫纓 下六圓卵 五歸各邑 一在玆城 則一爲首露王 餘五各爲五伽耶之主 金官不入五數當矣 而本朝史略 並數金官 而濫記昌寧 誤]
阿羅[一作耶]伽耶[今咸安] 古寧伽耶[<今>咸寧] 大伽耶[今高靈] 星山伽耶[今京山 (一)云碧珍] 小伽耶[今固城] 又本朝史略云 太祖天福五年庚子 改五伽耶名 一金官[爲金海府] 二古寧[爲加利縣] 三非<火>[今昌寧 恐高靈之訛] 餘二阿羅星山[同前 星山或作碧珍伽耶]
오가야(五伽耶)[가락기찬(駕洛記贊)을 살펴보면, 한 개의 자색 끈이 내려와 6개의 둥근 알을 주었는데, 그 중 다섯은 각 읍으로 돌아가고 하나는 이 성에 있었다고 한다. 곧 하나는 수로왕(首露王)이 되고 나머지 다섯은 각각 오가야(五伽耶)의 주인이 되었다 하니 금관(金官)이 다섯에 들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본조사략(本朝史略)』에는 금관까지 아울러 헤아리고 또 창녕(昌寧)을 추가로 기록하였으니 잘못이다.]
아라(阿羅)[야(耶)라고도 한다]가야(伽耶)[지금 함안(咸安)], 고령가야(古寧伽耶)[지금 함녕(咸寧)], 대가야(大伽耶)[지금 고령(高靈)], 성산가야(星山伽耶)[지금 경산(京山)이니, 혹은 벽진(碧珍)이라고도 함], 소가야(小伽耶)[지금 고성(固城)]이다. 또 『본조사략(本朝史略)』에 이르길, 태조(太祖) 천복(天福) 5年(940) 경자에 오가야의 이름을 고치니, 첫째는 금관[김해부(金海府)가 되었다], 둘째는 고령[가리현(加利縣)이 되었다], 셋째는 비화(非火)[지금 창녕(昌寧)이니 아마 고령(高靈)의 잘못인 듯하다], 나머지 둘은 아라(阿羅)와 성산(星山)이라 하였다[위와 같다. 성산은 혹은 벽진가야(碧珍伽耶)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