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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경

기본정보

가락국(금관가야) 초기의 관직명

일반정보

가락국(금관가야) 초기의 관직명으로, 원래 중국 고대 이상적인 물가 조절 관청의 관직명이다

전문정보

가락국(금관가야) 초기의 관직명으로 나오고 있는 천부경(泉府卿)은 원래 중국 고대의 관직명이다. 천부(泉府)는 『주례(周禮)』 지관(地官)2 천부조(泉府條)에 의하면, 주(周)나라 시대에 시세(市稅)를 받는 일과 공비(公費)로 시장에서 팔리지 않는 물품을 사들여 다시 그것을 원가로 파는 일을 맡아 물가를 조절하던 관아(官衙)를 가리킨다(泉府 掌人以市之征布 斂市之不售貨之滯於民用者 以其賈買之 物楬而書之 以待不時而買者).

이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어느 나라 관직에도 보이지 않는 것이며, 언급되는 관직이나 사람의 이름에 중국계가 지나치게 많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의하면, 수로왕이 신라식의 고위 관제에 이어 그 아래의 관료를 주관(周官)과 한의(漢儀) 제도로 나누어 정하였다거나, 신보(申輔)와 조광(趙匡)의 관직이 천부경(泉府卿)과 종정감(宗正監)이었다는 점도 그러하다.

이러한 관직의 본 뜻을 살펴볼 때, 완전한 고대국가가 아니었던 가야에 천부(泉府)라는 이상적인 물가 조절 관청이 있었을 리도 없고, 수로왕의 일족도 아니고 허왕후의 시종(侍從)에 지나지 않는 사람이 종정(宗正)의 직임을 맡았을 수도 없다. 종정감(宗正監)의 종정(宗正)은 주(周) 관제의 소종백(小宗伯)으로, 진(秦) 때에 종정(宗正)이라고 하였고, 후한(後漢) 이후에는 종정경(宗正卿)이라고 하였으며, 황족의 일을 담당하고 모두 황족으로 그 직에 임명하였다고 한다. 천부경(泉府卿)은 물론, 종정감(宗正監), 사농경(司農卿)과 같은 중국계 관직명(官職名)은 실제로 가락국에서 사용되었다고 보기는 극히 어렵고, 아마도 7세기 중엽 이후 신라와 당나라 사이의 관계가 긴밀해지면서 중국 관제에 대한 이해가 심화된 이후에 부회된 것으로 여겨진다.(김태식, 1998)

한편, 천부경이나 종정감에 임명되었던 신보나 조광을 허황후 집단 내에서 활동한 남계(男系) 수장의 위치에 있었던 인물로 해석하면서, 이들이 가졌던 천부경이나 종정감 등을 허황후 집단 내의 제의나 의례를 관장하는 관직으로 보기도 한다.(김두진, 1999)

참고문헌

김태식, 1998, 「駕洛國記 所載 許王后 說話의 性格」『韓國史硏究』 102.
김두진, 1999, 『韓國 古代의 建國神話와 祭儀』, 일조각.

관련원문 및 해석

第三 麻品王 [父居登王 母泉府卿申輔之女<慕>貞夫人 己卯立 理三十二年]
제3 마품왕 [아버지는 거등왕이고, 어머니는 천부경(泉府卿) 신보(申輔)의 딸 모정부인(慕貞夫人)이다. 기묘년에 즉위하여, 32년 다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