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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희왕

기본정보

가락국(금관가야) 제7대 왕

생몰년 : ?-451
재위기간 : 421-451

일반정보

가락국(금관가야)의 제7대 왕으로, 재위기간은 421~451이다. 취희왕의 또 다른 표기로는 김희(金喜), 질가(叱嘉)가 있다. 왕비는 진사각간(進思角干)의 딸 인덕(仁德)이고, 질지왕(銍知王)을 낳았다.

전문정보

가락국(금관가야)의 제7대 왕으로, 재위기간은 421~451이다. 취희왕의 또 다른 이름을『삼국유사』왕력에서는 김희(金喜)로,『삼국유사』권2 기이2 가락국기에서는 질가(叱嘉)로 표기하였다. 왕비는 진사각간(進思角干)의 딸 인덕(仁德)이고, 질지왕(銍知王)을 낳았다.

『삼국유사』권2 기이2 가락국기(駕洛國記)에서는, “취희왕(吹希王)은 질가(叱嘉)라고도 하며, 김씨(金氏)이다. 영초(永初) 2년에 즉위하여, 치세는 31년 동안이었고, 원가(元嘉) 28년 신묘(辛卯 451) 2월 3일에 죽었다. 왕비는 진사각간(進思角干)의 딸 인덕(仁德)이며, 왕자(王子) 질지(銍知)를 낳았다.”고 기록되었다.

여기서 만약 질가(叱嘉)가 가질(嘉叱)의 오기(誤記)라고 한다면, 질(叱)은 실(實)·실(悉)과 서로 통음(通音)되어 가실(嘉實)·가실(嘉悉)과 동음이 되고, 또 왕력편에 보이는 김희(金喜)의 희(喜)가 가(嘉)의 잘못이라면, 취희왕(吹希王) 즉 가질왕(嘉叱王)은 『삼국사기』권32 잡지1 악조(樂條)에 보이는 가야국 가실왕(嘉實王)과 관계가 있을 수도 있다. 이에 따라, 제7대 취희왕(吹希王), 제8대 질지왕(銍知王), 제9대 겸지왕(鉗知王)이 같은 왕이면서 다른 명칭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도 한다.(홍순창, 1983)

참고문헌

홍순창, 1983,「金官國의 世系에 대하여」『三國遺事硏究』上,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관련원문 및 해석

(『삼국유사』 권1 왕력)
第七 吹希王 [一云金喜 父坐知王 母福(壽) 辛酉立 治三十年]
제7 취희왕 [혹은 김희(金喜)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좌지왕이고, 어머니는 복수(福壽)이다. 신유년에 즉위하여, 30년 다스렸다.]

第八 銍知王 [一云金銍 (父)(吹)希 母仁德 辛卯立 治三十六年]
제8 질지왕 [혹은 김질(金銍)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취희이고, 어머니는 인덕(仁德)이다. 신묘년에 즉위하여, 36년 다스렸다.]

(『삼국유사』 권2 기이2 가락국기)
駕洛國記[文廟朝大康年間 金官知州事文人所撰也 今略而載之]
… 坐知王 一云金叱 義熙三年卽位 娶傭女以女黨爲官 國內擾亂 雞林國以謀欲伐 有一臣名朴元道 諫曰 遺草閱閱 亦含羽 況乃人乎 天亡地陷 人保何基 又卜士筮得解卦 其辭曰 解而<拇> 朋至斯孚 君鑑易卦乎 王謝曰 可 擯傭女 貶於荷山島 改行其政 長御安民也 治十五年 永初二年辛酉五月十二日崩 王妃道寧大阿干女福壽 生子吹希 吹希王 一云叱嘉 金氏 永初二年卽位 治三十一年 元嘉二十八年辛卯二月三日崩 王妃進思角干女仁德 生王子銍知
… 좌지왕(坐知王). 김질(金叱)이라고도 한다. 의희 3년(407)에 즉위하였다. 용녀(傭女)를 부인으로 맞이하고, 그 무리를 관리로 등용하니 나라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계림국(雞林國)이 그 틈을 이용하여 치고자 하였다. 이때에 박원도(朴元道)라고 하는 신하가 간언하기를, “시든 풀도 많이 모이면 비를 머금는데, 하물며 사람의 경우야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다면, 사람이 어느 터전인들 보존할 수 있겠습니까? 이번에 복사(卜士)가 점을 쳐서 해괘(解卦)를 얻었는데, 그 말에 ‘엄지손가락을 풀면 벗들이 와서 성의껏 돕는다.’고 하였으니, 왕께서는 주역의 괘를 살피옵소서.”라고 하였다. 이에 왕이 사례하며 “옳다.”하고, 용녀를 내쳐서 하산도(荷山島)로 귀양을 보내었다. 그리고 정치를 고쳐서 행하여 길이 백성을 편안하게 다스렸다. 치세는 15년이며, 영초(永初) 2년 신유(辛酉, 421) 5월 12일에 죽었다. 왕비는 도령(道寧) 대아간(大阿干)의 딸인 복수(福壽)인데, 아들 취희(吹希)를 낳았다. 취희왕(吹希王). 질가(叱嘉)라고도 한다. 김씨이다. 영초(永初) 2년(421)에 즉위하였는데, 치세는 31년이며, 원가(元嘉) 28년 신묘(辛卯, 451) 2월 3일에 죽었다. 왕비는 진사(進思) 각간(角干)의 딸인 인덕(仁德)으로 왕자 질지(銍知)를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