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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구

기본정보

가락국(금관가야) 제3대 마품왕의 왕비.
생몰년 : 미상.

일반정보

가락국(금관가야) 제3대 마품왕의 왕비로, 종정감(宗正監) 조광(趙匡)의 손녀이며, 제4대 거질미왕을 낳았다

전문정보

가락국(금관가야) 제3대 마품왕의 왕비로, 종정감(宗正監) 조광(趙匡)의 손녀이며, 태자 거질미(居叱旀)를 낳았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의하면, “잉신 천부경 신보와 종점감 조광 등은 나라에 도착한 지 30년 뒤에 각기 두 딸을 낳고 부부가 한 두 해를 넘기지 않고 모두 세상을 떠났다. 그 나머지의 노비들은 온 지 7-8년간 아직 자식을 낳지 못하여 고향을 그리는 슬픔을 품고 모두 머리를 고향 언덕쪽으로 두고 죽으니, 그들이 살던 빈관은 텅 비어 사람이 없었다(媵臣泉府卿申輔 宗正監趙匡等 到國三十年後 各産二女焉 夫與婦踰一二年 而皆挽信也 其餘臧獲之輩 自來七八年間 未有玆子生 唯抱懷士之悲 皆首丘而沒 所舍賓館 闃其無人)”라고 하였다.

이는 가야 왕력과의 연관성을 고려하여 신보(申輔)와 조광(趙匡)이 각기 두 딸을 낳고 죽었다고 해둔 것이다. 곧, 『삼국유사』 왕력편과 가락국기에서 제3대 마품왕비는 종정감 조광의 손녀 호구로, 태자 거질미를 낳았다고 하였다.

그런데 위에서 살펴본 기록상으로는 조광에게 딸만 있었던 것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호구는 조광의 외손녀겠지만 그것은 분명하지 않다. 오히려 가락국기에는 호구가 조광의 손녀로 분명하게 나와 있다. 조광에게 손녀가 있었다면, 분명 그의 아들이 있어야할 것인데, 딸만 있는 것으로 기록된 것이다. 이는 허황후 집단이 왕비족으로서의 위치를 강하게 가졌기 때문이며, 조광이나 신보는 허황후 집단 내에서 활동한 남계(男系) 수장의 위치에 있었던 인물로 해석하기도 한다.(김두진, 1999)

이를 통해서 보면, 허황옥이 왕비가 된 데 이어 2대 거등왕비와 3대 마품왕비까지 250년 동안 허황후 집단이 왕비를 독점적으로 배출하는 등 가락국 조정에 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백승충, 2001)

참고문헌

김두진, 1999, 『韓國 古代의 建國神話와 祭儀』, 일조각.
백승충, 2001,「가야 건국신화의 재조명」『한국 고대사 속의 가야』, 혜안.

관련원문 및 해석

第四居叱旀王 [一作今勿 父麻品 母好仇 辛亥立 治五十五年]
제4 거질미왕 [혹은 금물(今勿)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마품이고, 어머니는 호구(好仇)이다. 신해년에 즉위하여, 55년 다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