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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

기본정보

현재 김해시(金海市)의 고려 때 명칭

일반정보

금주(金州)는 현재 김해시(金海市)의 고려 때 명칭이다. 가야의 중심지였으며, 가락국(금관가야)이 신라에 정복된 이후에는 금관소경(金官小京), 김해소경(金海小京) 등으로 불리다가, 고려 태조 23년(940)에 김해부(金海府)로 바뀌었다. 이후 임해현(臨海縣)으로 강등되었다가 다시 임해군(臨海郡)이 되었다. 광종 22년(971)에 금주도호부(金州都護府)로 승격되었고, 성종 14년(995)에 금주 안동도호부(金州安東都護府)로 개칭되었다가, 현종 3년(1012)에 금주(金州)로 개칭되었다.

전문정보

『고려사(高麗史)』 권57 지(志)11 지리(地理) 경상도(慶尙道) 금주조(金州條)에 의하면, 금주(金州)는 원래 가락국(駕洛國)이었다. 신라 법흥왕이 가락국(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의 투항을 접수한 후에는, 그를 귀빈으로 대접하고 가락국의 옛 땅을 식읍(食邑)으로 주었는데, 이것을 금관군(金官郡)이라고 불렀다. 문무왕은 금관 소경(小京)을 설치하였고, 경덕왕은 김해(金海) 소경으로 만들었다.

고려 태조 23년(940)에 전국의 주, 부, 군, 현의 명칭이 고쳐짐에 따라 김해부(金海府)가 되었고, 후에 낮추어서 임해현(臨海縣)이 되었다가 다시 군으로 승격되었다. 광종 22년(971)에 금주도호부(金州都護府)로 승격되었고, 성종 14년(995)에 금주 안동도호부(金州安東都護府)로 고쳤으며, 현종 3년(1012)에 금주(金州)로 개칭되었다.

이후 원종 11년(1270)에 금녕도호부(金寧都護府)로 승격되었고, 충렬왕 19년(1293)에 낮추어져 현이 되었고, 34년(1308)에는 금주목으로 승격되었다. 충선왕 2년(1310)에 전국의 목이 없어짐에 따라 다시 김해부로 되었다.

『삼국유사』왕력편의 “지금의 금주(金州)”라는 기록을 통해, 현재의 김해 지역이『삼국유사』왕력편이 쓰여질 당시에는 금주(金州)라는 명칭으로 불리워졌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삼국유사』왕력편은 금주가 김해부로 개칭되는 충선왕 2년(1310) 이전에 쓰여진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충렬왕 7년(1281)에 편찬된『삼국유사』본문과 비교해 볼 때, 편찬 시기의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기록으로 볼 수 있다.

참고문헌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 2004,『譯註 加耶史史料集成』1.

관련원문 및 해석

駕洛國 [一作伽耶 今金州]
가락국 [혹은 가야라고 하며, 지금의 금주(金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