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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양왕

기본정보

고구려 제18대 왕.
생몰년 : ?-391
재위기간 : 384-391

일반정보

이름은 이속(伊速) 또는 어지복(於只攴) 이다. 아버지는 고구려 제16대 국원왕이고 형은 고구려 제17대 소수림왕이다.

전문정보

『삼국유사』왕력에서는 이름을 이속(伊速) 또는 어지복(於只攴)이라 하였으며 아버지는 고구려 제16대 국원왕이다.『삼국사기』권18 고구려본기6 고국양왕 즉위년조에서는 이름을 이련(伊連) 혹은 어지지(於只支)라 하였다. 그리고 형인 소수림왕이 아들이 없었으므로 즉위했다고 한다.

『삼국사기』권17 고구려본기 6 고국양왕조에 따르면 385년 군사를 내어 요동을 습격하여 후연(後燕)군을 격파하였으며 386년에는 백제를 공격하였다. 391년에는 신라와 우호를 맺어 신라에서 실성을 인질로 보내었다.

국양왕을『삼국사기』에서는 고국양왕이라고 하였다. 소수림왕 혹은 고국양왕대까지의 고구려 왕호를『삼국사기』의 본문계 왕호와 분주계 왕호로 분류하여 각각의 계통성을 지니고 있다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광개토왕대 이후에는 일부 왕호의 경우에는 그 계통성이 이어지지만, 전체적으로는 본문 왕호와 분주 왕호에 별도의 계통성을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고국양왕까지 계통성을 달리하는 왕호의 존재와 광개토왕 이후 왕호의 또다른 양상은 고구려왕의 계보를 정리하는 사서(史書)의 계통성과도 깊이 관련된다고 하였다. 즉 7세기 초 영양왕대에 신집(新集)을 편찬하면서 이제까지의 분주 왕호를 본문 왕호로 바꾸었는데 이는 왕권을 재강화하려는 노력에서 나타난 결과로서, 고구려 자신의 정통성과 자존의식을 고양하려는 역사의식이 뒷받침된 것이라고 하였다.(임기환, 2002)

국양왕은 재위 8년(392)만에 죽었는데 아들 담덕(談德)이 뒤를 이어 고구려 제19대 광개토왕(廣開土王)이 되었다.『삼국사기』권18 고구려본기6 고국양왕 8년조(391)에는 여름 5월에 왕이 죽어 고국양(故國壤)에 장사지냈다고 하였다.

국양왕의 능에 대해서는 중국 길림성(吉林省) 집안(輯安)에 있는 태왕릉(太王陵)을 국양왕릉으로 비정하기도 한다. 태왕릉에서 출토된 「신묘년호대왕명(辛卯年好大王銘)」청동방울을 장례 관련 물품으로 파악하고 이것을 391년 광개토왕이 즉위하고 선왕인 국양왕의 장례용으로 만들었다고 한 것이다. 명문에 있는 신묘년은 391년에 해당하고 호대왕은 광개토왕에 해당하며 청동방울이 장례용품이기 때문에 그것이 출토된 태왕릉은 국양왕릉이라는 것이다.(백승옥, 2005; 이희준, 2006)

참고문헌

임기환, 2002,「고구려 王號의 변천과 성격」『韓國古代史硏究』28.
백승옥, 2005,「“신묘년명(辛卯年銘)” 청동 방울과 태왕릉의 주인공」『역사와 경계』56.
이희준, 2006,「太王陵의 墓主는 누구인가?」『韓國考古學報』59.

관련원문 및 해석

第十八 國壤王 [名伊速 又於只攴 甲申立 治八年]
제18 국양왕 [이름은 이속 또는 어지복이다. 갑신년에 즉위하여 8년간 다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