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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기본정보

후백제의 도읍지

일반정보

후백제의 시조 견훤이 도읍한 곳으로 지금의 광주광역시 일대에 해당한다

전문정보

삼국시대에는 근초고왕대 이후 백제의 영역에 포함되었으며, 웅진으로 천도한 다음부터 직접적인 지배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 권37 잡지(雜志)6 지리(地理)4 고구려(高句麗)·백제(百濟) 조를 통해서 』백제 무진주는 혹은 노지라고 불렀다(百濟 武珍州 一云奴只)』라는 기록을 통해 당시에 불리었던 지명을 확인 할 수 있다. 그리고 백제 동성왕 20년(498) 8월 『왕은 탐라가 공물과 조세를 바치지 아니하자 친히 정벌하려고 무진주에 이르렀다. 탐라가 이를 듣고 사신을 보내 죄를 빌었으므로 그만두었다(王以耽羅不修貢賦 親征至武珍州 耽羅聞之 遣使乞罪 乃止 耽羅 卽耽牟羅)』는 기록을 통해 탐라 정벌 때 이 곳까지 왕이 행차하였음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 권36 잡지(雜志)5 지리(地理)3 무주(武州)조에 따르면 『무주는 본래 백제의 땅으로 신문왕 6년 무진주로 삼고 경덕왕이 무주로 고쳤으며 지금의 광주이다.(武州 本百濟地 神文王六年 爲武珍州 景德王改爲武州 今光州)』는 기록이 보인다. 이것을 통해 광주는 신라 영역에 편입 된 뒤 신문왕 6년(686) 무진주라 하였고 경덕왕 16년(757) 무주로 고쳐 현 전라남도지역의 중심 치소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이후 후삼국 시대에는 후백제의 견훤이 이 곳을 근거로 후백제를 세웠다.

참고문헌

『광주시사』, 1979, 광주시사편찬위원회.

관련원문 및 해석

後百濟甄萱 [壬子始都光州] 乙未[萱子神劍纂父自立] 是年國除 [自壬子至此四十四年而亡]
후백제 견훤 [임자에 처음으로 광주에 도읍하였다.] 을미 [견훤의 아들 신검이 아버지의 왕위를 빼앗아 스스로 즉위하였다.] 이해에 나라가 없어졌다. [임자로부터 이에 이르기까지 44년 만에 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