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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건릉

기본정보

지정명 : 현릉(顯陵)
지정번호 : (북한) 국보 문화유물 제179호
위치 : 개성시 개풍군 해선리

일반정보

고려 태조 왕건의 능으로, 943년에 조성되었으며 개성시 개풍군 해선리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의 이름은 현릉(顯陵)이다.

전문정보

고려 태조 왕건이 능은 943년에 조성되었으며 현재 개성시 개풍군 해선리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의 이름은 현릉(顯陵)이며 부인 신혜왕후(神惠王后)를 함께 묻은 단봉 합장릉(單峰合葬陵)으로 능의 크기는 직경 11.56m, 높이 6.26m이다.

능은 12각으로 병풍돌을 돌리었고 그 밖으로 역시 12각의 난간돌을 돌려 네 귀에는 돌짐승을 배치하였다. 무덤에 쓴 돌은 모두 화강석이다. 면돌 중심에는 12지신상을 조각하였는데 모두 입상(立像)이며 긴 소매의 관복을 입고 홀을 들었다. 난간돌은 병풍돌에서 약간 밖으로 떨어져서 세웠는데 그 기둥은 방형이다. 망주석은 무덤분지 정면 난간돌 모서리에서 떨어져 있다. 상석은 난간돌 멀리 세워졌으며 상석 받침돌 앞에는 한 쌍의 비둘기 조각이 있다. 상석 앞에 석등이 한 개 있고 석등 밖으로 양 끝에 문인석 한 쌍이 놓여 있다. 정자각은 앞면 3칸, 옆면 2칸이며 단익공이고, 모루단청으로 장식하였다.

무덤 정면에는 정자각과 그 앞 동쪽에 비각 두 채, 서쪽에는 재실(齋室) 한 채가 있다.(문화성·물질문화유물보존사업소, 1999)

참고문헌

문화성·물질문화유물보존사업소, 1999,『북한의 주요 유적』, 한국문화사.

관련원문 및 해석

第五十六 敬順王 [金氏 (名)傅 父孝宗伊干 追封神興大王 祖官□角干 (追)封懿興大王 母桂娥(大后) (憲)康之(女) 乙未納土歸于(大祖) 陵(在)□□□東向洞 自五鳳甲子至乙未 合九百九十二年]
제56 경순왕 [김씨이며 이름은 부이다. 아버지는 효종 이간으로 신흥대왕으로 추봉되었다. 조부는 관□각간이니 의흥대왕으로 추봉되었고 어머니는 계아태후로 헌강왕의 딸이다. 을미년에 영토를 바치고 태조에게 귀순하였다. 능은 □□□동향동에 있다. 오봉 갑자년으로부터 을미년에 이르기까지 합하여 992년이다.]

太祖 [戊寅六月裔死 太祖卽位于鐵原京 己卯 移都松岳郡 是年 創法王 慈雲 王輪 內帝釋 舍那 又創天禪院[卽普濟] 新興 文殊 (圓)通 地藏 前十大寺 皆是年所創 庚辰乳岩下立油市 故今俗利市云乳下 十月創大興寺 或系壬午 壬午又創日月寺 或系辛巳 甲申 創外帝釋 神衆院 興國寺 丁亥創妙寺 己丑 創龜山 庚寅安] 丙申 統三
태조 [무인년 6월에 궁예가 죽으니 태조가 철원경에서 즉위하였다. 기묘년에 도읍을 송악군으로 옮겼다. 이 해에 법왕(法王), 자운(慈雲), 왕륜(王輪), 내제석(內帝釋), 사나(舍那) 절을 세우고 또 천선원(天禪院) [즉 보제(普濟)], 신흥(新興), 문수(文殊), 원통(圓通), 지장(地藏) 절을 세웠으니 앞의 10대 사찰은 모두 이 해에 창건되었다. 경진년에 유암(乳岩) 아래에 유시(油市)를 세웠다. 이 때문에 지금 항간에서는 이시(利市)를 유하(乳下)라고 한다. 10월 대흥사(大興寺)를 창건하였는데 혹은 임오년의 일이라고 한다. 임오에 또 일월사(日月寺)를 창건하니 혹은 신사년의 일이라고도 한다. 갑신년에 외제석(外帝釋), 신중원(神衆院), 흥국사(興國寺)를 세우고 정해년에는 묘사(妙寺)를 세웠다. 기축년에는 귀산(龜山)을 세우고 경인년에 안 (이하 미상)] 병신년에 삼국을 통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