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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단군릉

기본정보

고조선의 시조인 단군의 능이라고 추정되는 무덤

지정명: 단군릉
지정번호: 현재 북한의 국보 제174호
위치: 평양특별시 강동군 강동읍 문흥리 대박산 소재

일반정보

고조선의 시조인 단군의 능으로 전해지는 무덤으로서 북한의 평양특별시 강동군 강동읍 문흥리 대박산 기슭에 위치한다. 1993년에 북한에 의해 발굴되었다. 고구려양식의 석실봉토분(石室封土墳)으로 전자상자성공명을 이용한 검사 결과 출생연대가 5011±267년(1993년 기준)으로 밝혀진 남녀유골이 발견되었다. 북한은 이를 근거로 단군이 실존 인물이라고 주장하지만 연대추정방법의 문제점과 북한의 단독발굴조사였다는 점 등을 들어 회의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전문정보

고조선의 시조인 단군의 능으로 전해지는 무덤으로서 북한의 평양특별시 강동군 강동읍 문흥리 대박산 기슭에 위치한다. 1530년에 완성된『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이 무덤에 대한 기록이 보인 후, 조선의 역대 왕들의 보호를 받았고, 일제시대에도 수축한 일이 있었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오랫동안 단군을 신화적 존재로만 인식하였기 때문에 1993년에 이르러서야 발굴되었다.(이형구, 1994)

단군릉은 돌로 쌓은 고구려양식의 석실봉토분(石室封土墳)이다. 반지하에 만들어 놓은 무덤칸은 무덤칸(玄室)과 무덤안길(羡道)로 이루어진 단실묘(單室墓)이고, 서쪽으로 약간 치우친 남향이다. 관을 안치한 무덤칸은 가로 2백73cm, 세로 2백76cm이고, 천장높이는 1백60cm이다. 무덤칸의 바닥에는 3개의 단으로 삼각고임(末角天井을 하고 그 위에 뚜껑돌을 덮었다.(박진욱, 1994)

무덤은 일제시대 때 일본인들에 의해 도굴돼 특별한 유물은 없었지만, 가장 주목되는 것은 86개에 달하는 두 사람분의 인골이 발견된 것이다. 그 중 42개가 남자의 뼈이고 12개는 여자의 뼈이며, 나머지 32개는 분류하기가 모호하다. 무덤에서 발굴된 유골을 검사한 결과 북한측은 이 남자의 출생연대가 5011±267년(1993년 기준)이라고 발표했다. 이것은 두개의 연구기관에서 전자상자성공명이라는 연대측정방법을 사용해 6개월에 걸쳐 54회 측정한 결과라고 한다. 유골이 오랫동안 보존될 수 있었던 이유로 석회암지대에 매장되어 있었고 매장된 지점의 토양이 뼈를 삭히지 않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장우진, 1994)

단군릉이 고구려양식인 것에 대해서는 고구려사람들이 고조선의 계승자라고 자처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구려시기에 단군릉을 개축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아울러 단군은 고구려에서 동명왕과 함께 숭배하였다고 하였다.(박진욱, 1994) 북한은 이를 근거로 단군이 1993년 10월 '단군릉발굴보고'를 통하여 종래에 신화적·전설적 인물로 간주되어 온 단군이 5,011년 전의 실존 인물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평양은 단군이 태어나고 도읍을 건설하고 죽은 곳이라고 하여, 그동안 북한학계의 공식적인 고조선의 재요동설을 부인하고, 평양설을 주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북한측이 인골 측정에 이용한 전자상자성공명법은 만년 단위 이상의 연대를 측정하는데 의미를 가지나 그 이하에는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그 측정결과가 확실하지 않으며,(이선복, 1997) 북한측은 단군의 무덤을 고구려 때 개장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단군릉의 무덤양식과 유물로 보아 고구려 때의 왕족이나 지배층의 무덤으로 파악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노태돈, 2000) 나아가 이것은 1인 숭배로 흐르는 북한에서 통치자의 권위를 역사적 인물에 대비하려는 정치적 목적에서 나온 결과물이라는 혹평을 받았다.(이기동, 2000)

참고문헌

박진욱, 1994, 「단군릉발굴정형에 대하여」『조선고고연구』1994-1
장우진, 1994, 「단군릉에서 나온 사람뼈의 인류학적 특징에 대하여」『조선고고연구』1994-1
이형구, 1994, 『단군을 찾아서』, 살림터.
이선복, 1997, 「최근의 “단군릉” 문제」『한국사 시민강좌』21.
노태돈, 2000, 『단군과 고조선사』, 사계절.
이기동, 2000,「북한에서의 단군연구와 그 숭앙운동」『한국사 시민강좌』27.

관련원문 및 해석

第一 東明王 [甲申立 理十八 姓高 名朱蒙 一作鄒蒙 壇君之子]
제1 동명왕 [갑신년에 즉위하여 18년간 다스렸다. 성은 고씨이고 이름은 주몽으로 추몽이라고도 한다. 단군의 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