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문화원형 라이브러리
인쇄 문화원형 스크랩

상원부인

기본정보

견훤의 아버지인 아자개의 첫째 부인으로 기록된 인물

생몰년 : 미상

일반정보

견훤의 아버지인 아자개의 첫째 부인으로 기록되어 있기도 하고, 견훤의 부인으로 기록되어 있기도 한 인물이다.

전문정보

『삼국유사』 권2 기이2 후백제견훤조에서는 『이제가기(李磾家記)』를 인용하여 상원부인을 견훤의 아버지인 아자개의 첫째 부인으로 기록하고 있다. 아울러 아자개는 견훤․능애(能哀)․용개(龍盖)․보개(寶盖)․소개(小盖)․대주도금(大主刀金) 등 아들 다섯과 딸 하나를 낳았다고 하였는데, 상원부인과 남원부인 중 누구의 소생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런데 원문에서 후에 인용한 『이제가기(李磾家記)』에서는 상원부인이 견훤의 아내로 기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

관련원문 및 해석

(『삼국유사』 권2 기이2 후백제 견훤)
後百濟 甄萱
三國史本傳云 甄萱尙州加恩縣人也 咸通八年丁亥生 本姓李後以甄爲氏 父阿慈个以農自活 光啓中據沙弗城[今尙州] 自稱將軍 有四子皆知名於世 萱號傑出多智略 李<磾>家記云 眞興大王妃思刀諡曰白□夫人 第三子仇輪公之子波珍干善品之子角干酌珎 妻王咬巴里生角干元善 是爲阿慈个也 慈之<第>(一)妻上院夫人 第二妻南院夫人 生五子一女 其長子是尙父萱 二子將軍能哀 三子將軍龍盖 四子寶盖 五子將軍小盖 一女大主刀金 又古記云 昔一富人居光州北村 有一女子 姿容端正 謂父曰 每有一紫衣男到寢交婚 父謂曰 汝以長絲貫針刺其衣 從之 至明尋絲於北牆下 針刺於大蚯蚓之腰 後因姙生一男 年十五自稱甄萱 …
후백제 견훤
『삼국사(三國史)』 본전(本傳)에 견훤은 상주 가은현 사람으로, 함통(咸通, 860-873) 8년 정해(丁亥, 867)에 태어났으며, 원래 성은 이씨였는데 뒤에 견(甄)으로 성을 삼았다. 아버지 아자개는 농사를 지어 생활하다가 광계(光啓, 885-887) 연간에 사불성(沙弗城)[지금의 상주(尙州)]에 웅거하여 스스로 장군이라 일컬었다. 아들 넷이 있어 모두 세상에 이름이 알려졌는데, 그 중에 견훤이 뛰어났으며 지략이 많았다고 하였다.『이제가기(李磾家記)』에 이르기를 진흥대왕의 비 사도(思刀)의 시호는 백숭부인(白□夫人)이다. 그의 셋째 아들 구륜공의 아들 파진간(波珍干) 선품(善品)의 아들인 각간(角干) 작진(酌珎)이 왕교파리(王咬巴里)를 아내로 맞아 각간 원선(元善)을 낳았는데, 이가 바로 아자개이다. 아자개의 첫째 부인은 상원부인(上院夫人)이며, 둘째 부인은 남원부인(南院夫人)으로 아들 다섯과 딸 하나를 낳았다. 그 맏아들이 상보 훤(萱)이요, 둘째아들이 장군 능애(能哀)요, 셋째 아들이 장군 용개(龍盖)요, 넷째 아들이 보개(寶盖)요, 다섯째 아들이 장군 소개(小盖)이며, 딸은 대주도금(大主刀金)이라고 하고 있다. 또 고기(古記)에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옛날에 한 부자가 광주(光州) 북촌에 살았는데, 하나 있는 딸의 용모가 단정했다. 딸이 아버지에게 말하기를, “매번 자줏빛 옷을 입은 남자가 침실에 들어와 관계를 합니다.”라고 하자, 아버지가 이르기를, “너는 긴 실을 바늘에 꿰어 그 남자의 옷에 꿰어 두어라.”라고 하여, 그 말대로 했다. 날이 밝자 실을 찾아 북쪽 담 밑에 이르니 바늘이 큰 지렁이의 허리에 꽂혀있었다. 이로 인하여 아기를 배어 한 사내아이를 낳았다. 아이는 나이 15세가 되자 스스로 견훤이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