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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도금

기본정보

견훤의 누이동생

생몰년 : 미상

일반정보

견훤의 유일한 누이동생으로 기록되어 있다

전문정보

『삼국유사(三國遺事)』권2 기이2 후백제견훤(後百濟甄萱)조에는 『이제가기(李磾家記)』를 인용하면서 대주도금(大主刀金)을 능애(能哀), 용개(龍盖), 보개(寶盖), 소개(小盖)와 함께 견훤의 동생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곳 외에는 기록이 없다.

한편, 동광(同光) 3년(925) 조물성(曹物城) 전투 후 고려와 후백제가 일시 화친하였을 때, 왕건의 당제(堂弟) 왕신(王信)과 볼모로 교환된 견훤의 외생(外甥) 진호(眞虎)를 대주도금의 아들로 보는 견해도 있다. 외생이란 처남이나 누이의 아들을 말하는 것이므로 『이제가기』에 견훤의 누이동생으로 대주도금이 기록된 것을 신빙한 것이다.(이도학, 1998)

참고문헌

이도학, 1998, 『진훤이라 불러다오』, 푸른역사.

관련원문 및 해석

(『삼국유사』 권2 기이2 후백제 견훤)
後百濟 甄萱
三國史本傳云 甄萱尙州加恩縣人也 咸通八年丁亥生 本姓李後以甄爲氏 父阿慈个以農自活 光啓中據沙弗城[今尙州] 自稱將軍 有四子皆知名於世 萱號傑出多智略 李<磾>家記云 眞興大王妃思刀諡曰白□夫人 第三子仇輪公之子波珍干善品之子角干酌珎 妻王咬巴里生角干元善 是爲阿慈个也 慈之<第>(一)妻上院夫人 第二妻南院夫人 生五子一女 其長子是尙父萱 二子將軍能哀 三子將軍龍盖 四子寶盖 五子將軍小盖 一女大主刀金 又古記云 昔一富人居光州北村 有一女子 姿容端正 謂父曰 每有一紫衣男到寢交婚 父謂曰 汝以長絲貫針刺其衣 從之 至明尋絲於北牆下 針刺於大蚯蚓之腰 後因姙生一男 年十五自稱甄萱 …
후백제 견훤
『삼국사(三國史)』 본전(本傳)에 견훤은 상주 가은현 사람으로, 함통(咸通, 860-873) 8년 정해(丁亥, 867)에 태어났으며, 원래 성은 이씨였는데 뒤에 견(甄)으로 성을 삼았다. 아버지 아자개는 농사를 지어 생활하다가 광계(光啓, 885-887) 연간에 사불성(沙弗城)[지금의 상주(尙州)]에 웅거하여 스스로 장군이라 일컬었다. 아들 넷이 있어 모두 세상에 이름이 알려졌는데, 그 중에 견훤이 뛰어났으며 지략이 많았다고 하였다.『이제가기(李磾家記)』에 이르기를 진흥대왕의 비 사도(思刀)의 시호는 백숭부인(白□夫人)이다. 그의 셋째 아들 구륜공의 아들 파진간(波珍干) 선품(善品)의 아들인 각간(角干) 작진(酌珎)이 왕교파리(王咬巴里)를 아내로 맞아 각간 원선(元善)을 낳았는데, 이가 바로 아자개이다. 아자개의 첫째 부인은 상원부인(上院夫人)이며, 둘째 부인은 남원부인(南院夫人)으로 아들 다섯과 딸 하나를 낳았다. 그 맏아들이 상보 훤(萱)이요, 둘째아들이 장군 능애(能哀)요, 셋째 아들이 장군 용개(龍盖)요, 넷째 아들이 보개(寶盖)요, 다섯째 아들이 장군 소개(小盖)이며, 딸은 대주도금(大主刀金)이라고 하고 있다. 또 고기(古記)에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옛날에 한 부자가 광주(光州) 북촌에 살았는데, 하나 있는 딸의 용모가 단정했다. 딸이 아버지에게 말하기를, “매번 자줏빛 옷을 입은 남자가 침실에 들어와 관계를 합니다.”라고 하자, 아버지가 이르기를, “너는 긴 실을 바늘에 꿰어 그 남자의 옷에 꿰어 두어라.”라고 하여, 그 말대로 했다. 날이 밝자 실을 찾아 북쪽 담 밑에 이르니 바늘이 큰 지렁이의 허리에 꽂혀있었다. 이로 인하여 아기를 배어 한 사내아이를 낳았다. 아이는 나이 15세가 되자 스스로 견훤이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