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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고려

기본정보

궁예가 세운 나라의 국호(901-904)

일반정보

궁예가 901년 송악에서 고구려를 계승하여 세운 나라의 국호이다.

전문정보

궁예는 901년에 왕이라 칭하고 나라를 세웠는데 『삼국유사』왕력에 따르면 국호를 고려라고 하였다.『삼국사기』권50 열전10 궁예조에는 국호를 고려로 정한 배경을 설명한 기록이 전한다. “옛날에 신라가 당에 청병하여 고구려를 파(破)하였기 때문에 평양 옛 서울이 황폐하여 풀만 무성하니 내가 반드시 그 원수를 갚으리라(往者新羅請兵於唐 以破高句麗 故平壤舊都鞠爲茂草 吾必報其讎)”라고 하였다. 고도(古都) 평양(平壤)이 폐허가 된 모습을 지적하여 강조함으로써 고구려계 유민들을 고무하고, 신라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하여 고려에 귀부하도록 유도하려는 목적으로 보인다. 즉, 궁예 정권은 옛날 고구려 영역에서 나라를 세워 민심을 얻기 위해 국호를 고려라고 한 것이다. 고려라는 국호는 이후 고구려 영역을 뛰어넘어 세력을 확장하는 궁예에게 있어서는 만족할 만한 완전한 국호는 아니고, 임시방편적 국호로 볼 수 있다.(최규성, 1987)

참고문헌

최규성, 1987, 「弓裔政權의 性格과 國號의 變更」」『상명여자대학논문집』19.

관련원문 및 해석

後高麗 弓裔 [大順庚戌 始投北原賊良吉屯 丙辰都鐵圓城[今東州也] 丁巳移都松岳郡 辛酉稱高麗 甲子改國號摩震 置元<武>泰 甲戌還鐵原]
후고려 궁예 [대순 경술에 처음엔 북원의 적 양길의 진영에 투항하였다. 병진에 철원성[지금의 동주이다]에 도읍하였다. 정사에 도읍을 송악군으로 옮겼다. 신유에 고려라고 일컬었다. 갑자에 국호를 고쳐 마진이라고 하고 연호를 두어 무태라고 하였다. 갑술에 철원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