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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씨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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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씨행단(孟氏杏壇)은 고려말에 최영(崔瑩)[1316~1388] 장군이 살던 집이었으며 이후 그의 손녀 사위인 조선초의 명정승 맹사성(孟思誠)[1360~1438]이 물려 받아 살았던 곳이다. 맹씨행단(孟氏杏壇)이란 이름은 맹사성 일가가 이곳에서 뿌리를 내린 데서 유래했다. 참고로 행단은 은행나무 단(檀)을 의미한다.

맹씨행단은 14세기 중반에 지어진 집으로 현존하는 전통 가옥중 가장 오래된 것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그 역사적 의미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세월이 오래된 만큼 맹씨행단은 여러차례 중수되었다. 그래서 원래의 모양을 볼 수 없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집이기도 하다.

한국 전통가옥의 전형적인 면모를 유지하는 가옥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맹씨행단은 한국 전통가옥이 가지는 전형적인 면모를 유지하고 있다. 맹씨행단은 크게 안채, 사랑채, 부엌 등으로 이루어진 본채 부분과 별채, 사당채 등의 부속채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들 부속채는 꽤 높은 단에 의해 분리되어 있다. 본채 부분은 단 아래에 놓여 있으며 별채, 사당채는 단 윗부분에 놓여 있다. 이런 식의 단을 이용한 배열은 맹씨행단에서만 볼 수 있는 아주 독특한 점이다. 하지만 이런 특수한 처리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구성만큼은 한국전통가옥의 전형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는 않다. 안채, 사랑채, 별채, 사당채 등으로 구성되었다는 점, 이들이 경우에 맞게 집 앞쪽 혹은 뒤쪽에 놓여진다는 점 등이 보통 한국전통가옥이 가지는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부속채인 별채와 사당은 더욱 주목할만하다. 이들 모두 전형적인 모습을 띠고 있으며 또한 별채의 경우 나름대로의 고유한 성격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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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채와 떨어져 있는 별채

별당채는 주가 되는 건물에서 떨어져 나와 그 곁에 따로 지어진 집을 말하는데 일반적으로 식구가 많을 때 이를 수용하기 위해 추가되는 공간으로 이해될 수 있다.
맹씨행단의 별채는 아주 떨어져 나와 있다. 집안의 다른 시설과 거리는 물론이고 위치상으로도 떨어져 나와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과 연관을 찾기가 어렵다. 마치 전체 문맥에서 벗어나 있는 것처럼 되어 있다. 그만큼 독립적이다.

돌아 앉아 있는 별채

맹씨행단의 별채는 건물의 전면이 벽으로 막혀있고 창은 옆으로 뚫려 있다. 그래서 마치 돌아앉아 있는 것처럼 되어 있다. 이 점 역시 집안의 다른 시설과 연관을 찾기 어렵게 하는 요소이다. 그만큼 맹씨행단의 별채는 다른 시설로부터 독립된다.
따라서 이런 별채는 아주 개인적인 곳이 될 수 있다. 자신만을 위한 곳, 가족과 관련된 일을 포함한 세상 일을 모두 잊고 온전히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는 그런 곳이다. 용도로 치자면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그런 용도라고 할 수 있다.

사람 사는 집과 모습이 유사한 사당

옛날 한국집에는 사당이 있었다. 이 사당의 내부는 대개 커다란 하나의 공간으로 이루어졌다. 그 안에는 조상의 위패1)가 모셔졌다. 보통 사대봉사라고 하여 위로 사대 조상까지의 위패를 모셨다. 이 사당은 보통 사람이 사는 집과 거의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다. 비록 몸은 없지만 혼은 일정기간 존재한다고 믿었고 이를 살아 존재하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1)위패(位牌) : 죽은 사람의 위(位)를 모시는 나무패. 장례를 마치고 나서 붓으로 써서 작성하는데, 이것을 제주(題主:신주를 쓴다는 뜻)라고 한다. 신주는 받들고 집으로 돌아가서 궤연(筵)에 모셨다가 3년상을 마친 뒤에 사당(祠堂)에 봉안한다. (네이버 백과사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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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근이 통제된 사당

사당은 보통 집 전체로 볼 때 뒤쪽에 위치한다. 그리고 주변은 담으로 둘러쳐져 있다. 사당을 신성한 장소로 여겼기 때문에 아무나 접근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비록 한 가족이지만 여성들이 사당에 들어가는 것을 금기시했을 정도였다.

많은 일이 벌어졌던 사당 앞마당

사당은 제사를 지내는 장소였다. 종손은 물론 많은 친족들이 모여 제사를 지냈다. 사당 앞에 있는 마당은 이런 의식과 관련된 행위를 수행하는 곳이기도 했다.
가문의 명예에 먹칠을 한 죄를 지은 후손들을 사당 앞에서 치죄했다고 하는데 그곳이 바로 사당 앞마당이 될 것이다. 관례 등의 대소사를 이곳 마당에서 치르기도 했다.

사당의 출입문

사당을 둘러친 담에는 보통 출입문이 따로 설치되었다. 문의 형식은 가옥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중문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기와로 된 지붕이 씌워 있고 그 아래 나무로 된 두짝문을 가진 그런 형식이다.
경우에 따라 출입문 앞에 따로 마당이 설치되기도 했다. 사당 건물 바로 앞에 있는 마당 외에, 담 밖에 마당이 하나 더 추가되는 것이다. 맹씨행단의 사당 역시 이와 같은 형식으로 볼 수 있다. 이만큼 사당이란 곳이 아주 비중 있게 취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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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치도-전체배치도
평면도-대문간채
평면도-맹씨행단
평면도-사당
입면도-맹씨행단 정면도
입면도-맹씨행단 좌측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