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문화원형 라이브러리
인쇄 문화원형 스크랩

대흥사

전체보기

대흥사(大興寺)가 창건된 정확한 시기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바는 없으나 고려 초기에 지어졌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대규모 사찰은 임진왜란이 있은 후 중건되었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대흥사의 독특한 배열 방식

대흥사는 여러 개의 무리로 나누어져 있다. 크게 보면 다섯 개의 무리라고 할 수 있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하는 한 무리, 천불전을 중심으로 하는 한 무리, 서산대사의 사당과 유물관으로 구성된 한 무리, 대명광전을 중심으로 하는 한 무리, 그리고 일지암을 중심으로 하는 한 무리 이렇게 다섯이다. 이들 무리들은 한 곳에 모여 있지 않다. 기다란 길을 따라 놓여져 있으며 서로간에 일정한 거리를 띠고 떨어져 있다. 이런 방식의 배열은 보통 사찰이 취하고 있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사찰은 보통 한 개의 축에 따라 건물들이 놓인다. 그리고 가운데 큰 뜰을 중심으로 거의 모든 건물들이 모여 있다. 이런 면에서 대흥사는 아주 독특한 배열 방식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배열 방식 뿐 아니라 모든 부분과 장소마다 아주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 곳이 대흥사이다.

부분보기
대웅전을 중심으로 독립된 무리

대웅전 앞에는 마당이 있다. 그리고 이 마당의 한쪽에는 출입문 역할을 하는 누각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스님들이 거처하는 요사체가 있다. 크게 보면 이들은 마당을 중심으로 모여 있는 꼴을 하고 있다. 즉 마당을 중심으로 한 하나의 무리가 된다.
이들 무리의 주변에는 담이 둘러쳐져 있다. 또 경계를 따라 천이 흘러서 사찰의 다른 곳과는 분리된다. 그냥 무리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것과 제법 분리된, 그런 무리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크게 보면 이런 분리는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크게 보면 서로 연결된 하나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천불전을 중심으로 독립된 무리

천불전 앞에는 마당이 있고 이 마당 주변에 출입문인 누각은 물론 다른 건물들이 놓여 있다. 그래서 마당을 중심으로 건물들이 모여 있는 꼴을 하고 있다. 이들 건물 뒤에는 스님들의 공부방이 있는 건물이 들어서 있고 그 옆으로 또 다른 불전이 있다. 이들은 서로 가까이에 있으며 담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다른 것들과는 거리를 둔다. 즉, 분리된 하나의 무리가 되는 것이다.

앞에 나서지 않으려는 동국선원

천불전이 중심이 된 무리는 그 안에서도 여러 개의 공간으로 분리가 된다. 천불전을 중심으로 한 공간과, 공부방인 동국선원이 중심이 된 공간, 이들 사이에는 담이 놓여 있다. 그래서 이 두 공간 사이가 분명하게 분리가 된다. 그렇지만 이 담에 출입문이 놓임으로써 제한적이기는 하나 서로 통하게 된다. 이런 구조 때문에 이들 두 공간들은 조금씩 다른 성격을 가지게 된다. 상대적으로 뒤에 있는, 동국선원이 중심이 된 공간은 바깥과 멀리 떨어지고 또 숨겨진 장소가 된다.

표충사를 중심으로 독립된 무리

대흥사 안쪽에는 표충사라 불리는 사당이 중심이 된 하나의 무리가 존재한다. 표충사는 임진왜란 시 승병을 일으킨 서산대사를 기리기 위해 건립된 사당이다. 이 곳에는 서산, 사명, 처영스님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이 표충사 주변에는 제실 건물인 의중당이 있고 그 옆으로 스님들이 거처하는 요사채가 있다. 이들 건물들은 서로 가까이에 놓여 있다. 그리고 주변을 따라 담이 둘러쳐져 있다. 그러면서 이들 역시 다른 것들과 떨어져 있다. 즉, 분리된 하나의 무리가 되는 것이다.

바깥과 직접 통하게 되어 있지 않은 표충사

표충사가 중심이 된 이 무리 역시 둘로 엄격하게 분리되어 있다. 표충사가 있는 구역과 의중당이 있는 구역 사이에 담이 쳐지면서 이들이 둘로 나뉘어 있는 것이다. 이둘 중 표충사가 있는 구역은 바깥과 직접 통하는 개구부가 없어 바로 들어갈 수 없고, 앞에 있는 의중당 구역을 거쳐야만 한다. 그 만큼 표충사는 노출이 극히 제한된 비공개적인 곳이 된다. 또, 표충사로 통하는 문이 앞 건물에 가려져 있어 그 은밀함은 더욱 강화가 된다.

대광명전을 중심으로 독립된 무리

대흥사 안쪽에는 대광명전이라 불리는 불전을 중심으로 한 또 하나의 무리가 존재한다. 여기에는 대명광전 외에 선방으로 쓰이는 보련각과 스님들이 기거하는 요사채가 있다. 이들은 중앙에 마당을 두고 둘러앉은 꼴을 하고 있다. 이들 건물들 외곽에는 담이 둘러쳐져 있어서 하나의 무리를 이룬다. 이 무리 역시 다른 무리들과는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하나의 분리된 단위가 된다.

p1 p1
일지암

대흥사의 가장 안쪽에는 조선조 말 고승이었던 초의선사가 거처했던 일지암이라 불리는 암자가 있다. 이곳은 대흥사 주요 불전이 있는 곳과는 한참 떨어져 있으며 진입하는 길은 제법 가파른 경사로 되어 있다. 그래서 절의 다른 곳과는 꽤 분리된 곳이 된다. 또한 이곳에 있는 건물, 조경의 형식은 절의 다른 부분과는 다르다. 속세에서 볼 수 있는 정자와 그 형상이 크게 다르지 않다. 이렇게 사가(私家)와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는 점 때문에 이곳이 절의 다른 부분과 더욱 분리되어진다고 할 수 있다.
이곳은 선을 위한 도장이기도 했다. ‘다선일여(茶禪一如)’라 하여 차를 다려 마시는 일을 수행의 일환으로 본 것이다. 따라서 이곳에는 초의 선사가 차를 재배하던 마당과 차를 다리는 부엌이 있으며 차를 마시던 장소였음직한 다감이란 이름이 새겨진 돌이 연못 근처에 놓여 있다.

p1 p1
사진보기
도면보기
배치도-전체배치도
평면도-대웅전 영역
평면도-천불전 영역
평면도-표충사 영역
평면도-대광명전 영역
평면도-일지암
입면도-대웅보전 정면도
입면도-천불전 정면도
단면도-대웅보전 종단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