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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모양새 이야기

정의

예로부터 머리카락은 “신체발부 수지부모”라 하여 신체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부위 중 하나였다. 그러면서도 한 편, 태어날 때 받은 신체 중에서 머리카락만이 그 양식의 변화가 자유로워, 옷차림이나 몸단장과 함께 그 사람을 표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따라서 머리모양새와 치레거리를 연구한다는 것은, 그 시대의 사회적 배경과 생활풍속 및 문화양식 등을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는 일이다.
머리모양새는 계양(髻樣), 발양, 수발 등의 의미로도 풀이되며, 시대와 유형, 신분과 연령, 혼인 유무나 성별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머리모양새의 분류
①시대별 :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②유형별 : 얹은머리,쪽진머리,땋은머리,묶은머리,풀머리
③신분별 : 왕족,궁중,귀족(양반),반가,서민,특수계층
④연령별 : 성인,아동,미성년
⑤혼인별 : 기혼,미혼
⑥성별별: 남성, 여성

머리모양새의 시대별 분류
삼국시대 : 후두부를 늘어뜨린 머리 / 환계식 머리 / 땋은 머리 / 주채로 장식한 머리 / 쌍계 머리
채머리 / 묶은 중발 머리 / 푼기명 머리 / 상투 / 민상투 / 얹은머리 / 쪽머리
고려시대 : 채머리 / 땋은머리 / 쪽머리 / 상투 / 민상투 / 쌍계머리 / 얹은머리
조선시대 : 어여머리 / 첩지머리 / 떠구지머리 / 대수머리 / 땋은머리 / 생머리 / 쌍계머리 / 바둑판머리 / 상투
민상투 / 코머리 / 얹은머리 / 개수머리 / 낭자쌍계머리 / 또야머리 / 조짐머리 / 쪽머리

머리모양새의 유형별 분류
얹은머리 : 대수머리 / 떠구지머리 / 어여머리 / 얹은머리(트레머리) / 코머리 / 쌍계머리 / 환계식 머리 / 상투
민상투 / 개수머리 / 주채로 장식한 머리
쪽진머리 : 쪽머리 / 첩지머리 / 또야머리 / 조짐머리
땋은머리 : 땋은머리 / 바둑판머리
묶은머리 : 푼기명 머리 / 묶은 중발 머리
풀머리 : 주채로 장식한 머리 / 후두부를 늘어뜨린 머리

머리모양새의 신분별 분류
반가 : 후두부를 늘어뜨린 머리 / 환계식 머리
궁중 : 떠구지머리 / 대수머리 / 또야머리
서민 : 묶은 중발 머리 / 푼기명 머리 / 코머리
특수계층 : 낭자쌍계머리
궁중,반가 : 어여머리 / 첩지머리 / 생머리 / 조짐머리
반가,서민 : 땋은머리 / 쌍계머리 / 채머리 / 개수머리
서민,특수계층 : 민상투
궁중,반가,서민 : 바둑판머리
반가,서민,특수계층 : 얹은머리
궁중,반가,서민,특수계층 : 상투 / 쪽머리
 
머리모양새의 연령별 분류
성인 : 후두부를 늘어뜨린 머리 / 환계식 머리 / 어여머리 / 첩지머리 / 떠구지머리 / 대수머리
주채로 장식한 머리 / 채머리 / 묶은 중발 머리 / 푼기명 머리 / 상투 / 민상투 / 코머리 / 얹은머리
개수머리 / 낭자쌍계머리 / 또야머리 / 조짐머리 / 쪽머리
미성년 : 땋은머리 / 생머리 / 쌍계머리
아동 : 바둑판머리

머리모양새의 혼인여부별 분류
기혼 : 환계식 머리 / 어여머리 / 첩지머리 / 대수머리 / 주채로 장식한 머리 / 상투 / 민상투 / 코머리
얹은머리 / 개수머리 / 낭자쌍계머리 / 또야머리 / 조짐머리 / 쪽머리
미혼 : 땋은머리 / 바둑판머리 / 쌍계머리 / 채머리 / 묶은 중발 머리 / 푼기명 머리
기혼,미혼 : 후두부를 늘어뜨린 머리 / 떠구지머리

전통적 사상

사회적 상징성
(1) 혼인의 의미
혼인여부에 따라 머리모양새에 차이를 두었다. 남성의 경우 미혼은 흑승(黑繩)으로 묶은 댕기머리를 하고 기혼은 상투를 트는 게 보통이었으나, 간혹 혼례전이라도 관례(冠禮) 의식을 통해 성인이 되었음을 상징하기 위해 상투를 틀기도 했다. 관례 날에는 복(福)있는 사람을 집사(執事)로 삼은 뒤에 그 집사로 하여금 장가들 아이의 땋은 머리를 풀러 처음으로 쌍상투를 짜게 하였는데, 이것을 총각(總角)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잠시 총각을 만든 뒤에 다시 상투로 빗는데, 이렇게 상투를 한 뒤에는 성인이 된 것을 정식으로 인정받게 된다. 이를테면 아명(兒名)대신 호를 부르게 되며, 절(拜)을 하면 답배(答拜)를 받게 되고, ‘해라’체에서 ‘하게’체로 어법이 바뀌게 된다. 이런 연유로 사대부 집안에서는 관례잔치를 혼례(婚禮) 잔치보다 더 성대하게 하였으며, 보통 혼인날을 앞두고 길일을 택해서 행하기도 하였다. 여성의 경우 미혼은 홍라(紅癩)로 묶은 댕기머리를, 기혼은 쪽머리를 했으며, 성인이 되면 남성의 관례처럼 계례(契禮) 의식을 행하였다.

(2) 계급의 의미
전통적인 성인 남성의 머리모양새는 상투였지만 천민인 백정은 장가를 들었어도 자식을 낳기 전까지 상투를 틀지 못했고, 길게 땋아 방석같이 머리 위로 둘둘 말아놓았다. 자식을 낳은 후에 상투를 틀게 되어도, 망건이나 탕건 및 겨울철의 털모자 등 일체의 관모(冠帽)를 착용할 수 없었다. 여성의 경우 어여머리(於由美)는 궁중이나 양반집 부녀자들만 할 수 있는 예장용 머리로, 서민에게는 허용되지 않았다.

(3) 부(富)의 의미
여성의 경우 커다란 가체(假髰,月子, 다리)를 이용한 높고 큰 머리모양새가 부(富)를 상징했다. 가체의 가격이 집몇 채 값에 맞먹을 정도로 고가(高價)였으므로, 이를 높게 올릴수록 더 큰 부(富)를 표현하게 되었다. 그러나 무거운 가체의 무게로 인해 목이 부러져 죽은 사람이 생길만큼 사치가 발생하고 폐단이 잦아지자, 영조는 ‘가체금지령’을 내리고 얹은머리를 쪽머리와 족두리 및 첩지로 바꾸도록 권하였다.

정신적 상징성
(1) 효와 순종의 의미
“신체발부(身體髮膚) 수지부모(受之父母) 부감훼상(不敢毁傷) 효지시야(孝之始也)”라 하여 부모에게 받은 머리카락을 손상하지 않는 것이 효(孝)의 시작이라는 공자(孔子)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머리카락을 매우 소중하게 여겼다. 심지어 흰 머리카락조차 마음대로 뽑지 않고 4월 16일을 ‘섭백일(鑷白日)’로 정해 그 날만 뽑도록 하였으며, 1년 동안 빠진 머리카락도 함부로 버리지 않았고 ‘유지 주머니’에 넣어 보관했다가 정월 초하루에 문밖에서 태웠다(燒髮風俗) 머리카락을 자를 수 있는 날이 한정된 당시 상황 속에서, 머리를 자른다는 것은 매우 특별한 행위였다. 이를테면 사랑하는 임에게 신체의 일부를 드린다는 의미로 머리카락을 잘라서 보내거나, 전쟁으로 인해 헤어지게 된 연인들끼리 상대를 향한 연정의 뜻이나 일편단심의 표시로 자르기도 하였다.

(2) 위엄(威嚴)과 결연 의미
스님이 되기 위해 출가할 때는 반드시 삭발을 해야 하는데, 삭발은 단순히 머리카락을 자르고 머리모양을 간편하게 바꾼 것 이상의 의미가 담겨있다. 긴 머리는 남을 의식하여 곱게 단장해야 하는 번거로움 등 많은 번뇌를 일으키므로 ‘번뇌초(煩惱草)’ 또는 ‘무명초(無明草)’라고 하는데, 이러한 일체의 모든 번뇌와 습인(習因)을 남김없이 없애고 교만을 제거하며 스스로의 마음을 믿기 위해 출가 시엔 항상 머리를 깎았다.

심미적 상징성
미(美)에 대한 기준은 시대나 지역에 따라 다르겠지만, 미(美)를 추구하고자 하는 욕구만은 늘 존재하였다. 삼한시대의 진한과 변한에서는 어린 아이가 태어나면 머리를 돌로 눌러서 평평하게 만드는 편두(扁豆)가 유행하였고, 고려의 충렬왕 때는 몽고의 영향으로 정수리 부분의 머리카락만 남기고 뒤통수에서 묶어 길게 땋아 내린 개체변발(改剃辮髮)이 유행했다가 공민왕 때 복고적 중흥정책으로 다시 상투를 틀게 되었다.

조선 시대의 남성들 사이에서는 일찍 벗겨지는 두발을 출세의 상으로 여겨 상투를 틀고 망건을 맬 때 반드시 잔뜩 죄어 매어 빨리 벗어지기를 희망했고, 심지어는 족집게로 머리털을 일부러 뽑았다는 기록이 있다. 여성의 경우도 네모진 이마를 '진수(瞋首)'라 하여 미인의 기준으로 여겼고, "이마가 좁으면 속도 좁다."란 속설 탓에 족집게로 제모를 하였다.


주술적 상징성
머리카락과 관련된 세시풍속엔 대개 액을 막고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아름다운 머릿결을 갖고자 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현재까지도 6월 유두날과 5월 단오가 대표적으로 전해져 내려 오는데, 유월 보름날은 불길한 것을 씻어내고 여름의 더위를 막기 위해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았으며, 오월 초닷샛날은 나쁜 귀신을 쫒는다는 의미로 창포를 끓인 물에 머리를 감았다.

‘칠흑같이 검고 삼단 같은 머리채’라는 머리에 관한 최상의 수식어에서 알 수 있듯, 숱이 많고 윤기가 나는 검은 머리는 여인의 영양상태 뿐만 아니라 출산력까지도 짐작케 하여, 결혼을 앞둔 처녀들은 칠월칠석날 꼭꼭 땋았던 머리를 풀고 머리감기를 했으며, 중매쟁이들은 이 때 빠진 머리카락을 훔쳐가 처녀의 출산력을 점치기도 했다.

삼월 삼짇날에는 머리카락 끝단을 조금 잘라 삼밭(麻田)에 묻었는데 이는 머리카락이 삼베처럼 길고 질기게 잘 자라기를 바라는 여인의 유감주술에 의한 행위였다.

역사

통일신라 이전
우리나라 머리모양새에 관한 최초의 문헌상 글은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쓰인 “단군원년(B.C. 2333)에 머리를 땋고 개수하는 법을 가르쳤다”는 기록이다. 또한 BC3000년경으로 추정되는 청동기 시대의 유물 중, 사람 얼굴 형상을 한 뼈비녀가 출토되기도 하였으니, 당시의 정확한 머리모양새를 알 수는 없어도, 꽤 오래전부터 머리를 장식하곤 했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신라를 통일하기 위해 친당정책(親唐政策)을 쓰면서부터 중국풍의 머리모양과 복식이 들어와, 상류계급은 당제도를, 하류계급은 국제(國制)를 습용하는 복합구조를 보이게 된다. 당시 각 나라의 벽화나 유물, 문헌자료 등에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머리모양은 다음과 같다.

(1) 고구려
대륙으로 문호 개방이 되어 문화 교류가 활발했는데, 이를 다시 재수용하여 백제와 신라에 전파하는 선구적 역할을 한 강대국이었기에, 의복과 머리모양새 및 치레거리에도 그러한 경향이 보인다. 고구려의 계급제도는 왕을 비롯한 관리로 구성된 지배계급, 일반서민계급, 외국포로, 형벌노예 계급으로 구성되는데, 지배계급인 귀인계급은 머리에 관모를 쓰고 의복에 구별을 두어 서민들에게 권위를 나타내려 하였다.

환계식머리 : 조선시대의 떠구지처럼 머리 위를 크게 장식한 형으로, 안악3호분 부인과 시녀들에게서 볼 수 있다.
얹은머리 : 모발을 뒷머리로부터 앞머리로 감아올려 끝을 전두부 중앙에 감아 꽂은 모양으로, 무용총 주실벽화 여인도에서 볼 수 있다.
쪽머리 : 두발을 뒷머리에 낮게 트는 양식으로, 각저총벽화의 여인도와 쌍영총벽화의 여인도에서 볼 수 있다.
푼기명식 머리 : 좌우 양 뺨에 두발의 일부를 늘어뜨리는 머리모양이다.
묶은 중발머리 : 짧은 두발을 머리 뒤에 묶는 계양으로, 무용총 주실벽화 여인도에서 보인다.
채머리 : 머리를 뒤로 길게 늘어뜨리는 자연스러운 머리형이다.
상투 : 머리 좌우의 이마 가까이에 2개의 상투를 틀어 올린 것을 말하는데, 장년, 노년을 가리지 않고 머리숱이 많은 사람들은 좌우로 나누어 쌍계를 하였다.

(2) 백제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무예를 숭상하는 풍토가 발달하여, 복식 역시 활달하고 전투적인 게 특징이다. 또 중국과의 빈번한 왕래로 세련된 귀족문화가 형성되었으며, 그 결과 복식에 있어 계급 문화가 두드러진다. 관련 유물과 흔적이 많지는 않지만, 고구려, 신라 등과 비슷한 머리모양새를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혼녀는 땋은 머리를 뒤로 길게 늘어뜨리고, 기혼녀는 두 갈래 땋은 머리를 나누어 늘어뜨리거나 얹었다.

(3) 신라
고구려, 백제보다 대륙 문화 수입이 늦었지만,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면서도 자신만의 독창적인 문화를 완성한 나라로서, 점차 국력이 강해짐에 따라 창의적인 머리모양새를 보인다. ‘골품’이라는 신분관념을 확립하여 계급적 사회 질서를 세우고 있었다.
부인들이 긴 머리와 상투 모양을 즐겨 하였고, 체(다리)는 신라의 명물로 중국에 수출까지 하였으며, 주채로 장식한 땋은 머리를 즐겨했다.

(3) 통일신라
신라는 삼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친당정책을 쓴 결과, 당나라 의복을 직수입하여 입게 되었다. 문무왕 4년에는 여자 복식을 중국화 하는 등, 복식에 있어 우리 고유의 것과 중국의 문화가 더불어 발전하는 복합 구조를 갖게 되었다. 이에 머리모양새 또한 직, 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고구려, 백제에서 볼 수 있는 형태들이 유사하게 나타난다.

고려시대
고려는 신라시대의 머리모양새를 계승하면서도 당, 송, 원의 문화를 다각적으로 흡수하여 받아들였던 나라로, 불교문화가 화려했던 시대이기도 하다. 귀족적 관료주의의 중앙집권국가로서 지배체제는 군주를 위시한 귀족계급과 하급서민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밑에 피지배계급으로서의 서민층이 있었다. 고려 초와 중기에는 중국 송나라, 후기에는 몽골, 말기에는 명나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고려도경>의 천사(賤使) 조(條)에 “부인의 머리는 귀천이 한가지로 오른쪽으로 드리우고 그 나머지는 아래로 내려뜨리되, 붉은 깁으로 묶고 작은 비녀를 꽂는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
조선 사회는 엄격한 신분제도로 통제되던 곳으로, 복식과 머리 모양새 또한 법제와 정령(政令), 관습에 의하여 규제되었다. 전기엔 국조오례의를 편찬하여 이를 법으로 정하였으며, 후기에는 사회제도의 문란, 신분제도의 해이가 나타나면서 실용적으로 간소화 된 경향이 보인다.

쪽머리 : 삼국시대부터 볼 수 있는 머리모양새로, 시대에 따라 쪽의 크기와 위치에 차이가 보인다.
땋은머리 : 삼국시대부터 우리나라 미혼남녀의 기본 머리 모양으로, 세 가닥으로 가른 머리를 서로 엇갈려 땋아 한 가닥으로 한 후, 그 끝에 댕기를 물리는 형태이다.
어여머리 : 첩지와 어염족두리, 떨잠, 가체, 비녀, 댕기 등으로 장식한 내외명부의 머리모양새이다.
떠구지머리 : 떠구지머리란 어여머리 위에 나무로 만든 가체틀인 떠구지를 얹은 머리모양새로, 명부는 상시 착용했고, 내인들은 큰 잔치에 착용했다.
대수머리 : 조선시대 왕비가 큰 잔치 때 대례복에 하던, 매우 화려하고 웅장한 가체머리이다.
조짐머리 : 지밀상궁들이 숙직을 할 때의 머리모양새로, 가체를 열 가닥으로 땋아서 쪽부분에 함께 달았다.
첩지머리 : 신가체절목 이후, 머리 위에 가체의 대용인 첩지를 얹어 꾸민 부녀자들의 머리모양새이다.
생머리 : 조선 후기, 궁중의 어린 소녀나 반가의 미혼녀가 입궐할 때 했던 머리모양새이다.
종종머리 : 머리숱이 적은 여아(女兒)의 머리모양새이다. 앞가르마를 탄 후 좌우에 각각 세 층 씩, 세 줄로 머리를 종종 땋아 내려오다 귀 밑에서 합해서 땋은 후, 배씨댕기나 도투락댕기, 또는 말뚝댕기로 장식하였다.
바둑판머리 : 종종머리 이전의 3~4세 여아(女兒)의 머리모양새로, 앞가르마를 탄 좌,우 머리를 각각 세 줄로 땋아 내려오다 귀 밑에서 합하여 땋아 댕기로 장식한 머리모양새이다.
코머리 : 부녀자들의 머리모양새로, 본래 머리를 한 갈래, 또는 두 갈래로 땋아 머리끝에 빨간 댕기를 드린 후, 머리 둘레에 빙 둘러 감아 끝이 옆으로 되게 고정시킨 머리모양새이다.
개수머리 : 가체를 크게 땋아서 머리 위 정수리에 얹는 머리모양새로, 반가 노부인들이 선호하였다.
또야머리 : 어여머리를 하기 위한 밑받침 머리이다.

풍속

세시풍속 중에서
(1) 유두(6월15일)
신라 때부터 내려온 우리나라 민속 명절의 하나로, 특히 고려 시대에 크게 성하였다. 이 날은 음식을 장만하여 맑은 시내나 산 속의 폭포를 찾아 머리를 감으며 하루를 즐겼는데, 이는 액을 면하고 더위를 먹지 않게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특히 동쪽 개울물에 머리를 감는 것은, 동방은 청이요, 양기가 가장 왕성한 곳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유두날엔 국수와 떡을 비롯한 유두 음식과 참외 등의 햇과일을 사당에 올리고, 농가에서는 농신제를 지내기도 하였는데, 이 날 먹는 유두 국수는 장수를 부르며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음식이라고 생각했다.

(2) 단오(5월5일)
우리나라에서는 꽤 오랜 옛날부터 단오를 명절로 지내기 시작했다. 옛 기록(<삼국지> 위서 한전)에 의하면 고대시기 진국의 마한 지방에서는 파종이 끝나는 5월에 모두 모여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노래하고 춤추며 즐겁게 놀았다고 하였다. 민간에서는 단오를 ‘수리날’, ‘술의날’ 이라고도 하였는데, 이 말은 삼국시기부터 쓰기 시작하여 근대까지 그대로 전해 내려온 것이다.

18세기 기록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단오를 민간에서 ‘술의 날’이라고 하는데 ‘술의’란 우리나라 말로 수레이다. 이 날 쑥을 뜯어다 찧어서 멥쌀가루에 섞어 푸른색이 나도록 친 후 수레바퀴 모양으로 떡을 만들어 먹는다. 그러므로 이날을 ‘술의(수레)날’이라고 한다.” 이렇듯 단오 명절 때의 특색 있는 음식으로는 쑥떡, 수리취떡, 설기떡, 상화떡(귀지떡), 제호탕, 분단, 앵두 화채 등이 있었다.

단오날이 오면 여인들은 늪가나 진펄에서 자라는 창포 잎과 뿌리를 삶은 물에 머리를 감았다. 그러면 머리에 윤기가 나고 머리칼이 빠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또 머리치장이 끝나면 새 옷을 입곤 했는데 이렇게 명절옷차림을 하는 것을 ‘단오장’이라고 하였다. 단오날에 사람들은 약으로 쓰기 위하여 쑥과 익모초를 뜯었다. 5월 단오 때의 약초는 약 기운이 올라 약효가 좋다고 했기 때문이다. 또 단오 무렵이면 사람들은 부채를 만들어 여름 한 철 동안 이용하는 지혜를 보여 주기도 하였다.

단오날의 특색 있는 놀이로는 씨름과 그네뛰기, 탈놀이 등이 있다. 전국적으로 이름난 탈놀이로는 함경도 북청의 사자놀이, 봉산을 비롯한 황해도 일대의 해서 탈놀이, 경기 양주일대의 산대놀이, 경상도 토영을 중심으로 한 오광대놀이, 강원도 강릉의 단오제 등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이러한 민속 경기와 민속놀이들은 단오 명절을 즐겁게 지내게 하였고, 농민들의 피로를 풀어 주었으며, 체력단련과 친목 도모에도 큰 기여를 하였고, 새로운 영농작업을 하는데 흥을 돋우어 주었다.

풍속 중에서
(1) 비듬없애기
동의보감에 의하면 머리를 감고 물기를 말린 다음 두피에 박새뿌리 가루를 문질러 바르고 이틀 동안 싸매주면 비듬과 가려움증이 없어진다고 했다. 또 박새 뿌리 달인 물로 머리를 감으면 이 효과가 상승하고, 다른 처방으로는 구리때, 영릉향을 가루 내어 머리에 뿌렸다가 3~5일후 빗으로 두, 세 번 흰 비듬을 빗어 내리는 방법도 있다. 그 밖의 민간요법으로는 복숭아 삶은 물로 머리를 헹구거나, 쓴 풀 달인 물을 헤어토닉으로 바르는 방법 등도 있다.

(2) 탈모없애기
단백질과 비타민 등을 다량 함유한 흑임자를 복용하거나 상엽 달인 물에 개어 하루 두 차례 씩 바른다. 또, 하수오황백탕이나 측백엽을 장기 복용하거나 소루쟁이 뿌리나 파초뿌리 삶은 물로 머리를 감으면 혈행이 좋아져 탈모에 좋다. 원형탈모를 치료하기 위해, 볶은 고삼가루나 상지 태운 재를 참기름에 개어서 환부에 바르기도 했다.